찰턴 헤스턴 (Charlton Heston, 1923~2008)
지난 2008년 4월 83세를 일기로 타계한 전설적인 영화 배우 '찰턴 헤스턴'은
64년간 해로(偕老)한 부인 '리디아'와 아들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턴(53)',
입양한 딸 '홀리 앤 헤스턴(48)'을 남기고 떠났다.
생전 120여편에 출연했는데 대표작인 <십계>, <벤허>, <엘 시드>,
<혹성탈출> 등은 여전히 세계적인 고전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벤허>를 통해 196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받았다.
이처럼 <십계> 에서의 '모세' 역과 <엘 시드> 에서의 영웅 '로드리고
데이야스' 역, 그리고 <왕중왕>에서는 '세례자 요한' 역(役)을 인상깊게
연기해냈다는 찬사(讚辭)를 받는다.
시상식장에서 신문 기자가 '찰턴 헤스턴'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경 속의 '세례 요한' 이나 '모세'의 성격을 가장 완벽하게 연기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비결(秘訣)이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찰턴 헤스턴'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성경(聖經) 속으로 들어가
그분들을 만나 보려고 애쓴 것 뿐이지요."
세계적인 영화배우도 결국 책을 통해 탄생되었던 것이다. '찰턴 헤스턴'은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과 똑같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연구
했다고 한다. 각 인물들의 성격은 물론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노트에
정리해 주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정을 연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각 영화사들은 성경 속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하려면,
으레 '찰턴 헤스턴'에게 출연을 부탁하게 된 것이다.
'찰턴 헤스턴'은 교양을 쌓기 위해 성경 이외의 다른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가장 넓고 밝은 방을 서재로 꾸며 놓고 각국의 문화, 인물,
사회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었다. 그는 어떤 배역을 맡게 되면 먼저
그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 당시의 말씨, 옷차림, 돈의 가치, 음식의 종류,
생활 풍습 등 온갖 것을 하나하나 찾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에는 극본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지적할
정도로 그의 지식은 뛰어났다. 그랬기 때문에 어떤 역을 맡아도 자신 있게
연기(演技)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이집트의 문명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뽑히기도 했는데, 영화배우인 그가 저명한 대학교수를 제치고
사회자로 뽑힌 것을 보면, 그가 역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다큐멘터리 방송'은 교육방송을 통해 우리
나라에서도 방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찰턴 헤스턴'의 풍부한
지식도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고, 세계적인 배우가 된 것도 이처럼
독서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찰턴 헤스턴'은 10세 때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는다. 뉴타이어 고교 진학 후 탁월한 연기 실력을 드러내며 노스웨스턴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다. 이어 대학 동창생 '리디아 마리 클라크'와 1944년
결혼한다. 같은 해 미국 공군에 입대, 2년간 복무하고 전역 후 아내와 함께 모
델로 잠시 일한다.
연극배우를 꿈꾸던 그에게 1948년 브로드웨이 연극 '안토니우스와 클레오
파트라'의 조연 제의가 온다. 이를 시작으로 '멕베스', '줄리어스 시저'등의 연극
무대에 서게 된다. TV로도 진출, 1950년대 인기 드라마인 CBS '원' 등에 출연
하며 성공을 맛본다.
대형 서사영화에서 주로 위대한 영웅을 연기한 헤스턴은 할리우드의 인종
차별에 반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인권운동도
활발히 했다. 1970년대에는 환경보호 메시지가 담긴 영화 '오메가 맨'(1971),
'소일런트 그린' (1973) 등에 출연했다. 그러나,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총기협회장을 맡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선(路線)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어떻든지 '찰톤 헤스턴'은 배우로도
사회 운동가로도 한 획을 그은 '걸물(傑物)'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