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력은 멈춤이 없다
-마포, 난지도, 하늘공원
*월간 신문예 125호(2024. 9/10)/차용국
한강 둔치에 능수버들 새순이 피면, 나는 겨우내 녹슨 내 구형자전거를 꺼내 한강을 달린다. 행주나루터를 출발한 내 자전거가 가양대교를 지나 마포나루터를 향해 하류의 강을 거슬러 저어갈 때, 잘 정비된 한강 둔치의 도보와 자전거길 양옆으로 오래전에 심은 벚나무가 이제 청년기에 들어섰다며, 제법 의젓한 풍채로 가지마다 꽃망울은 드러내서, 토박이 버드나무 새순과 어울려 화사한 봄날의 축제를 예비한다. 수변 공원에 조성한 크고 작은 꽃밭마다 꽃을 심는 사람들의 손길은 바쁘고, 나무데크로 길을 낸 초지와 습지에서 갈대와 억새의 푸른 줄기는 초록의 기지개를 켜면서 솟아오른다.
봄날에 한강의 물결은 순해서 가지런한 수로를 따라 다만 물비늘을 일으키며 환하게 흐르고, 자유로를 건너 월드컵공원에 들어서면 자유로 길가를 따라 두 줄로 나란히 심은 메타세콰이어 나무에도 연초록 새순은 피어 둘이 걷기에 딱 좋은 숲길을 연다.
가을날 강물에 비친 한강의 풍경은 단풍을 닮아서, 올곧게 하늘로 치솟은 키 큰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꼭대기까지 온통 붉은 단풍으로 타오른다. 메타세콰이어 단풍은 한 그루의 나무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횃불처럼 붉게 치솟은 모양이어서, 사람들은 ‘불타는’ 나무라고 부른다. 가을날 등이 시린 바람이 불 때쯤 ‘불타는’ 나무가 불을 피우면, 연인들은 ‘불타는’ 나무 아래에서 ‘불타는’ 키스를 한다. 메타세콰이어 잎이 ‘불타고’ 사랑이 ‘불타는’ 길은 길고 멀어서 불이 꺼지고 사랑이 꺼질 걱정이 없다. 둘이 걷기에 딱 좋은 ‘불타는’ 숲길이다.
모든 길은 서울을 향해 있었으나 길 다운 길이 제대로 없었던 옛 시절에 사람들은 하류의 강에 배를 띄우고 서울을 왕래했다. 마포나루는 서울로 통하는 물길의 관문關門과 같아서 사람들과 가축들과 어패류와 채소류와 곡식류 등등이 얽히고설켜서 번잡했고, 온갖 냄새로 절여있었다. 옛 도성 사람들은 “아침에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새까만 사람은 보나 마나 마포 새우젓 장수다”라고 말했다. 아침에 마포에서 새우젓을 팔러 도성에 오려면 햇볕을 정면으로 받아야 했기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빗대 하는 말이었다.
글을 좀 아는 사람들이 '마포 8경'*이라 하여 강변의 절경을 즐기고 시문을 짓기도 했다지만, 실제 마포의 민중이 살아가는 삶의 풍경은 목가적인 서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130년(1894) 전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은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하류의 강을 거슬러 올라와 마포나루에서 내려 서울을 방문했다. 파란 눈의 서양 여성의 눈에 비친 마포는 끔찍했다.
*마포8경: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용호제월(용산강 물 위로 뜨는 달), 마포귀범(마포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방학어화(강 건너 방학 언덕의 밤낚시), 율도명사(밤섬의 깨끗한 모랫벌), 농암모연(동바위 마을의 저녁 연기), 우산방축(와우산의 소 말 방축), 양진낙조(양화나루의 낙조), 관악청람(관악산 맑은 날의 아지랑이) 등을 옛 사람들은 ‘마포 8경’이라 불렀다.
그녀는 “대도시인 수도가 이토록 불결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비틀어진 소로小路의 대부분은 짐 실은 두 마리 소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으며, 한 사람이 짐을 실은 황소를 겨우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이다. 그 길은 그나마 물구덩이와 초록색의 오수가 흐르는 하수도로 인해서 더욱 좁아진다. 하수도에는 각 가정에서 버린 고체와 액체의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불결함과 악취 나는 하수도는 반나체 어린애들과 피부병이 오른 채 눈이 반쯤은 감긴 큰 개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그들은 햇살에 눈을 껌뻑거리며 이 하수도에서 뒹굴고 있다”*라고 썼다.
*영국 최초의 왕립지리학회 여성 회원이었던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 사이에 4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했다. 그녀는 조선에 장기 체류하면서 여러 곳을 여행하고, 보고 듣고 연구한 조선의 지리, 환경, 풍속 등을 세밀하게 기록했고, 그것을 책으로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I. B. 비숍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50쪽, 2015, 집문당)
이사벨라 비숍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마포나루를 지나 하류로 흐르는 강은 무질서했다. 물살에 쓸려온 모래가 하류의 강에 사구와 섬을 만들었고, 물길은 난해한 손금처럼 크고 작은 수로를 바꿔가며 흘렀다. 강둑은 허약해서 제대로 물막이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하류의 강변은 드넓은 습지이면서 아슬아슬한 농토이기도 했다. 사실 마포 일대의 강변에 제대로 된 강둑을 쌓은 건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겪고 난 이후부터다.
내가 지금 올라가는 하늘공원 주변은 예전에 섬이었다. 마포와 고양 사이에 자리 잡은 섬이었다. 한강이 마포나루를 빠져나오면서 물길 하나를 더 텄는데, 그 샛강은 망원정에서 한강 본류와 갈라졌다가 행주산성 부근에서 다시 한강 본류와 합수했다. 사람들은 그 갈라진 물길을 난지 샛강이라 불렀고, 그렇게 만들어진 섬을 난지도蘭芝島라 불렀다. 난초蘭草와 지초芝草가 피는 섬이라는 뜻이다. 난지蘭芝가 피고 지는 섬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왔다. 새들은 한강의 물길을 따라 서울의 선유도와 밤섬과 여의도와 노들섬을 오가고, 고양의 행주나루와 장항습지에 펼쳐진 행호(杏湖. 이곳의 한강이 호수처럼 넓어서 부르는 별칭)를 비행했다. 난지도는 꽃과 새의 낙원이었다.
서울의 발전과 확장은 꽃과 새에게는 수난受難이었다. 난지도는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 매일 밀려들어 오는 쓰레기에서 쏟아내는 악취와 메탄가스가 진동했고, 먼지와 파리와 모기가 들끓었고, 지하수는 오염되었다. 난지는 꽃을 피우지 못했고, 새들도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불모의 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무자비한 15년의 폭력에 학대받으며 난지도는 해발 98미터의 쓰레기 산이 되었다. 약 1억 4천만 톤의 쓰레기가 만든 산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쓰레기 산이었다.
1993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중단되었다. 쓰레기 산에 더 이상 쓰레기가 들어오지 않자 풀씨가 날아오고 나무가 자랐다. 쓰레기 산은 서서히 초록의 숲을 덮고 안정을 찾아갔다. 1996년부터 추진한 안정화 사업도 한몫 거들었다. 더하여 2002년 서울 월드컵 축구경기장이 상암동으로 결정됨에 따라 2000년 11월부터 공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공원 조성 사업은 2002년 5월에 완료되었고, 공원 전체를 '월드컵공원'이라 이름 지으면서,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그 특징에 따라 '평화의 공원' , '하늘공원' , '노을공원' , '난지천공원'으로 명명命名했다.
그렇게 인간이 파괴하고 인간에게 버림받은 난지도에 자연의 순리가 다시 흐르기 시작한 지 30년, 자연은 놀라운 자정력과 복원력을 발휘하여 인간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빠르게 초원과 숲을 부활시키고 사람을 부른다. 이제 난지도 쓰레기더미를 쓰레기 산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해발 98미터의 시민 친화적인 초원의 숲이다. 월드컵 축구경기장의 어엿한 배산背山으로 2002년 월드컵 축구 축제를 추억하는 산이다.
하늘공원은 월드컵공원의 네 개 공원 중에서 가장 높다. 하늘과 가까운 공원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척박한 쓰레기 땅에 지대가 높아 건조하니 이러한 환경에 잘 자라는 억새와 갈대로 초원을 조성했다. 그래서 하늘공원 정상의 평원은 온통 억새의 물결이다. 그 출렁이는 소리는 탁 트인 시야를 타고 북한산, 북악산, 안산, 남산, 관악산에 이르고, 막힘없는 시계視界는 하류의 강을 따라 아득히 흘러간다.
가을이면 하얀 억새 초원은 온갖 축제가 열린다. 음악회가 열리고, 사진 동호회 사람들은 수려한 초원과 먼 북한산 준봉과 한강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고, 문인들은 시화를 세워 놓는다. 이제 하늘공원과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연관시켜서 생각하기란 어울리지 않는 비유처럼 보인다.
청년기에 들어선 하늘공원은 새로운 낙원을 예비한다. 억새 초원에 꽃이 늘어나고 있다. 자연에서 날아온 꽃씨와 사람이 심은 꽃들이다. 이제 하늘정원에 장미가 피고 작약도 피고 찔레꽃도 피고 이름 모를 꽃도 핀다. 꽃은 시원始原의 사랑으로 거듭제곱으로 피어서 영역을 확장한다. 머잖아 지금의 억새 독점 정원은 꽃의 정원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자연의 신통력을 사람이 다 알 수야 없지만, 우리가 힘을, 아니 사랑을 조금 더 보태주면 자연의 신통력은 흥이나 신을 보태서 가속 페달을 밟으며 변신을 거듭한다. 쓰레기를 품고 보듬어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신통력은 위대하다.
벚꽃이 지고 아카시아꽃이 떨어지면 산딸나무에 하얀 나비가 떼로 날아온다. 하얀 나비 떼는 곧 하얀 억새의 세상으로 날아갈 것이다. 내 구형자전거도 페달을 돌려 신통한 억새의 세상으로 간다. 신통력은 멈춤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