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과 새 사람①♡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제목을 정하고 보니 과거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 전의 필자가 생각납니다. 이것저것 마음과 양심에 걸리는 게 떠오르면 “이제는 새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회개’에 들어갑니다. 회개하고도 또 걸리는 게 있어 매 주일마다 반복적으로 회개하던 필자, 회개의 상습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새 사람’이 되지 못하던 참담한 모습을 회상합니다.
여성의 가슴이 보이고 엉덩이에 눈길이 가는 걸 남들은 어떻게 컨트롤 하는지 궁금했지만 말 꺼내는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라 묻지도 못하던 세월 가운데 새 사람이 되기 위해 회개를 지속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회개 꺼리가 생기는지 모릅니다. 도대체 성경에서 말하는 ‘새 사람’이라는 기준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이걸 가르쳐 주는 사람은 왜 없는지가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회당에서 살펴보면 양 옆 사람이 기도하는 걸 들어도 별 다를 게 없고, 앞 사람도, 뒷 사람도 다 그렇게 비슷하게 회개하고 담임목사도 “죄와 허물에 갇혀있던 한 주일 간의 생활을 용서하여 주시옵고...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회개하니 이것이 ‘새 사람’이 되는 회개 기도인 줄 알았는데, 거듭되는 회개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늘 편치 않았던 기억입니다.
더구나 새 사람이 되고자 성경을 읽을 때면 늘 숨이 콱 막히는 느낌입디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게 얼마나 많으며, 하지 말라 하시는 건 또 얼마나 많았는지, “아!... 이 많은 말씀을 어떻게 다 지킨단 말인가. 나는 새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뭔가가 가슴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게로 인해 얼마나 답답했는지, 초라한 내 몰골에 대한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끊임없는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있다는 내가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게 있는가? 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니 고맙기는 한데 나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걸까. 너무 막연하질 않는가. 그리고 어차피 죽지도 않을 예수를 이 땅에 보내 그를 믿는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건 모순적인 쇼 아닌가? 남들은 다 잘 믿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듯 끝없는 궁금증이 생기는가?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인간의 마음이 어디까지 얼마나 청결해야 하나님을 본다는 건가?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42) 상대가 계속 꾸고자할 땐 어떻게 하나?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이런 이가 얼마나 되며, 이게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긴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온전은 대체 뭐란 말인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22:39) 내 자식도 미울 때가 있고 아내도 싫을 때가 많은데,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어떻게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실성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매일 항상 기뻐할 수 있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일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먹을 것도 안 먹고 정말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 가족이 병들어 죽고 집이 불타고 직장을 잃고 사업이 쫄딱 망하는데도 모든 일에 늘 감사할 수 있을까?
성경에는 이것 말고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들은 이걸 다 이해하는지 일주일마다 만나는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평온합니다. 나만 모르고 있는 걸 알기 위해, 성경에 대해 얘기하는 많은 설교를 듣게 됩디다. 그러다가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상도 경험합니다. 재미있는 건 진리로 세워지기 전에 섭렵하게 되었던 소재들 모두가, 시간이 흐른 뒤 내 마음 안으로 찾아오는 그리스도를 만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게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듣게 하시고 꼭 필요한 것들만 모아 마치 ‘그림 맞추기 퍼즐’을 풀어가듯이 복음을 알게 하시더라는 얘깁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밤낮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과 씨름하며 말씀을 듣고 또 듣고 애타게 성경을 뒤지고 또 뒤지게 되었던 게 다 그의 이끄심이었던 거지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게 그 얼마나 큰 기쁨인지 경험하지 않은 분들은 모릅니다. 보혜사를 알게 된 날, 그와 내가 하나가 된 날, 은혜로 말미암아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을 입은 날의 기억입니다. 사무실 책상에서 인터넷으로 ‘죄’에 관한 자료를 찾던 중 마치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강권적으로 나를 뚫고 들어온 그를 만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하신 그,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하셨던 그였습니다. 그 느낌과 동시에 눈물과 콧물이 펑 터지며 콸콸 쏟아집니다.
“아! 아버지, 이거였군요. 바로 이거였군요.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저를 그토록 끌고 다니셨군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그를 배역하던, 죽어야 할 옛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 슬픔으로 울고,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신 기쁨으로 울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울고, 또 울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때부터, 이방인인 나, 때가 차서 만나게 된 그(파라클레토스), 보혜사인 그가 듣게 하시고 깨달을 때까지 알게 하시니 모든 게 기쁨입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사1:2) 땅이 어떻게 귀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하늘인 그가 말하시고 하늘이 될 땅인 나에게 임하여 그가 대신 들으시는 말씀인데, 혼인 인간이 어떻게 영의 말씀으로 비롯되는, 이 신비스러운 새 사람으로의 창조 과정을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시 17: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사 29:14]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행하시는 기이한 사랑, 기이하고 기이한 일,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세우시는 과정, 새 사람을 만드시는 과정,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의 마음, 육신의 생각을 죽이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을 주시는 창조는 육신을 입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이걸 어디부터 전할까 오래 망설이던 중 필자가 속한 2남전도회에서 조심스럽게 “고마운 죄, 죽어야 알 수 있는 죄”라고 했다가 말을 이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더니 “죄가 어떻게 고마운 거냐!” “내가 보니 둘 다 안 죽었다!” “이 집사, 살아있는데 뭘 죽었다 하느냐!”며 마치 벌떼처럼 달려드는, 융단 폭격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건물 교회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그때부터 그리스도를 아는 마음 성전으로 생명의 지식인 그 진리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엡3:19)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시는 중입니다.
[삼상10:6]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카리스 에클레시아 이화율 집사
Daegu / 010-3032-8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