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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창세기
오컴의 면도날로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보면 우주는 시뮬레이션이다. 잘라낼 군더더기는 인간의 관측에 의한 오염이다. 관측을 배제하면 관계가 남는다. 순수하게 관계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칸토어가 무한대를 연구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관계만 따지기로 조건을 걸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겁먹지 말자. 시뮬레이션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우리가 아는 물질 세계는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상태의 변화에 비용이 든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세계는 여러가지 상태가 중첩되므로 비용제한이 없다. 관측의 세계는 비용이 들지만 관계의 세계는 비용이 없다.
1. 관측의 세계.. 외부 작용
2. 관계의 세계.. 내적 질서
존재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존재 이전은 게임이다. 아기가 탄생하기 전에 자궁이 있었다. 관측에 막히는 것은 에너지의 세계다. 관측을 넘는 것이 시뮬레이션의 세계이며, 그 이전에 게임의 세계가 있었다. 게임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맞대응 규칙이다. 변화가 서로 연동되는 성질이다.
1. 게임의 설정.. 선우주의 자궁
2. 존재의 시뮬레이션.. 탄생된 우리우주 아기
3. 물질 세계.. 인간의 관측에 의해 왜곡된 원자론의 세계
그것은 설정이다. 설정이 잘못되면 모순이다. 우리우주 이전의 선우주는 부분과 전체가 공유되므로 설정의 모순이 실시간 소거된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모순이 제거되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게임의 세계는 그런게 없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형태가 깨지는 형태로만 모순의 제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탄생 이전에 물질도 없고,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지만 대본과, 설정과, 캐릭터와, 완성도와, 결맞음이 있었다. 우리는 우주의 탄생 이전의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 단서가 없는데 어떻게 상상할 수 있지? 관계가 있잖아. 단서가 있다. 우리는 관측에 집착한다. 그러나 관측은 오염된 거짓이다.
수학자가 무한대의 세계를 상상하듯이 관측을 넘어선 세계로 용감하게 올라서야 한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현상을 변경시키려고 작용을 가하면 반작용을 하는 에너지의 세계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는 상태의 변화에 저항하는 물질이란 것이 없었다. 공간의 한 지점을 점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차지한 영역을 지키며 외력의 작용에 저항하는 물질이 없으므로 물질의 대칭성인 공간도 없고, 그 대칭성의 결맞음인 시간도 없다. 물질과, 공간과, 시간은 별도의 여러 존재자가 아니라 하나의 물질에 딸린 속성이다. 물질의 공간성과 시간성이이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은 저항이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저항(밸런스)이 없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 용감하게 그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한다. 무를 생각하기는 힘들다. 무한대를 연구하다가는 정신병에 걸리는 수가 있다. 절대적인 무를 생각하면 괴롭다. 칸토어가 공식의 증명 없이 직관력만으로 파고든게 구조론의 접근법과 일치한다.
인간의 관측은 오염이므로 일단 배제한다. 규칙을 세우고 규칙과 일치하는지만 조사하려면 배짱이 있어야 한다. 소설의 작가가 설정을 하는 것과 같다. 설정이 잘못되어 모순되기가 다반사다. 나홍진의 신작 '호프'만 해도 외계인의 추격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하며 설정오류를 들키고 있다.
태초에 무엇이 있었는가?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고, 물질도 없는데 무엇이 있기는 개뿔 그런거 없다고 시비할 사람은 닥쳐! 구조론의 접근은 수학자의 방법과 같다. 존재가 없으므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원자론의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인간이 지목하여 가리킬 수 있는 객체는 없다.
외부에서 간섭하는 객체는 없지만 내부에서 자체적인 규칙은 있다. 게임의 규칙은 공간적 상관관계와 시간적 인과관계다. 물질도, 공간도, 시간도 없지만 관계가 있다. 규칙의 오류를 적발하는 게임이 있다. 인과관계 자체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것을 외부에서 관측하므로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아기의 원인은 자궁이다. 물질의 자궁은 관계다. 관측을 극복하고 관계를 추궁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시간은 인과관계를 인간이 관측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관측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 관측은 다른 말로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 대본에는 시작과 결말이 동시에 존재한다.
관계의 대칭성에 의해 '이것이 있다'고 할 때 동시에 '저것이 있다'. 태초에 규칙의 통일이 있었다. 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자체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 규칙의 통일이다. 설정오류를 제거하는 것이 규칙의 통일이다. 선우주에는 부분과 전체의 구분이 없으므로 게임의 설정오류는 자체적으로 폭파된다.
우리가 아는 시공간과 물질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얻어진 통일된 규칙이다. 규칙을 통일하는 과정이 있었다. 거대한 우주에서 어떻게 규칙은 통일되었나? 우주의 자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태초에 대본과, 설정과, 캐릭터와, 완성도와, 결맞음이 있었다. 설정오류는 자체적으로 소거되었다.
대본이 무모순적으로 완성되면 양자역학의 공유논리로 전체가 한꺼번에 격발되는게 빅뱅이다. 선우주는 전체와 부분 사이에 실시간 정보 공유가 일어나는게 다르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광속에 막혀서 공유가 차단되었다. 선우주는 부분과 전체가 불가분인데 빅뱅에 의해 그러한 공유가 깨진 것이다.
우리우주는 선우주가 깨지고 남은 잔재다. 선우주가 깨진 파편들이다. 선우주는 모두가 중심이다. 빅뱅에 의해 비로소 전체와 부분이 나누어졌다. 양자역학에서 부분과 전체는 공유한다. 선우주의 작동방식이 우리우주에 남아있다. 드라마 삼체에서 외계인은 거짓말을 못하는게 실시간 정보 공유다.
무(무대칭)에서 유는 없다. 유는 유(대칭)에서 나왔다. 원인 측의 유는 관계의 세계, 공유의 세계다. 부분과 전체가 공유하므로 빅뱅은 고르게 일어난다.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다. 빛보다 빠른 정보전달이 일어난다. 현실의 3차원 개념은 무시된다. 선우주에서 우주가 크다거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미세조정을 한다. 공간의 크기와 시간의 길이는 공유가 깨졌을 때의 사정이다. 태초에 변화가 있었고, 약속이 있었고, 게임이 있었다. 변화는 에너지를 조달하고, 약속은 단위를 만들고, 게임은 의사결정을 한다. 우리우주의 탄생이다. 에너지가 투입된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공유하는 상관관계가 깨져서 공간과, 물질과, 시간이라는 장벽에 갇혔다. 우리우주가 에너지의 세계라면 선우주는 정보의 세계다. 변화가 실이라면, 약속은 매듭이고, 의사결정은 그 실의 갈래다. 매듭을 따라서 실을 연결하고 끊어진다. 대본에는 캐릭터가 있을 뿐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없다.
대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 공간의 전후, 좌우, 상하는 없다. 작품의 수준은 있다. 스토리의 지속가능성이다. 드라마로 찍어도 몇 시즌이 되는지가 다르다. 작품이 공유하며 완성도로 대결하여 이긴 작품이 바로 우리우주다. 작품이 통합되며 작품 내부 모순은 게임에 져서 삭제되었다.
방정식으로 나타나는 공간적 상관관계와 함수로 나타나는 시간적 인과관계가 존재할 뿐인데 에너지와, 물질과, 공간과, 시간과, 정보로 이루어진 우리우주가 이겼다. 패배한 우주는 자체모순에 의해 소거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존재 그 자체다. 왜 존재하느냐? 이겼기 때문이다. 왜 이겼느냐?
상관관계와 인과관계가 효율적으로 디자인되어 다른 작품들의 모순되고 비효율적인 설정을 소거했기 때문이다. 부분과 전체가 공유하면 설정충돌이 일어나 모순된 설정은 소거된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고 관계는 상충되거나 공유된다. 모순된 관계가 죽고 살아남은 관계가 공유된 것이 우리우주다.
태초의 관계는 시간과, 공간과, 질량의 제약이 없고 캐릭터와 완성도만 따진다. DNA가 공유되는 진화원리와 같다. 여기까지 생각해 본 사람은 신의 목소리를 들을 귀를 얻는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더 높은 세계로 초대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창세기 한 줄 못 써보고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관측은 오염된다. 존재는 대칭에 의한 밸런스의 결맞음인데 관측하면 관측자인 인간과 대칭되므로 내부의 자체 대칭이 깨진다. 어떤 것을 관측했다면 그것을 파괴한 것이다. 존재는 파동이고 파동은 간섭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세계로 올라서려면 관측을 배제하고 관계를 추론하는 힘을 얻어야 한다.
우주의 탄생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나는 답을 알지만 들을 귀 있는 자가 지구에 한 명 이상 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말하지 않겠다. 우주의 탄생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철학자의 대화상대가 될 수 없다. 높은 세계로 가는 출발점이다. 진지해야 한다. 남이 머리가 빠개지게 생각하여 얻은 성과를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
우주는 무에서 탄생할 수 없다. 노자 부류가 무타령 좋아하지만 성의가 없다. 그들의 무는 유를 뒤집은 말장난(유를 뒤집어도 무가 아니다. 뒤집혔어유다)에 불과하다. 초딩 반사놀이와 같다. 물리학의 무는 물질과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없는게 아니다. 불교의 무나 공은 파동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무는 부재를 뜻하며 부재는 그 빈 자리가 있으므로 그것은 유다.
순수한 무는 없으므로 무에서 유가 탄생할 수 없다. 없음에서 있음이 탄생하면 열역학 1법칙 위반이다. 무에서 탄생했다는 말은 탄생하기 전에는 관측되는 형태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관측자의 입장일 뿐 존재 자체의 사정과는 무관하다. 내가 탄생하기 전에 내가 없었지만 대신 나의 부모가 있었다. 반드시 무엇이 있다.
무와 유를 관통하는 것은 변화다. 우리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다른 우주가 있었다. 유는 유에서 탄생한다. 그 유는 시공간 속의 유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수학적인 접근일 뿐 존재 자체의 본질과 상관이 없다. 우주는 시뮬레이션이므로 시간과 공간은 없다. 우주는 게임 속의 존재처럼 일종의 약속으로 있는 것이다.
태초에 물질도 없고,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고, 변화와 약속이 있었을 뿐이다. 우주 안에 오직 일치와 불일치(불일치는 소거된다)가 있었을 뿐이다. 변화의 나란함과 어긋남이 있었을 뿐이다. 확실한 것은 그것이 붙잡힌 존재가 아니라 붙잡히지 않는 변화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붙잡힌 존재다.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는 변화가 있었다.
우리가 아는 존재는 스크린에 띄워진 가짜다. 윤회니, 천국이니, 과거가 무한하다느니 하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들은 진지하지 않다. 그냥 생각하기가 싫은 것이다. 돌려막기 수법을 쓰면 안 된다. 출루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다음 타자에게 문제를 떠넘기면 안 된다. 또한 오백 방을 피할 수 없다. 정면돌파 해야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충돌에 의해 우리우주가 탄생했다는 말은 필자가 20년도 더 전에 했다. 구조론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구조론의 질은 두 세계의 충돌이다. 투수의 공과 타자의 방망이가 충돌하는 순간 잠시 멈추어 있는게 물질이다. 방망이가 밀릴지 공이 밀릴지 밸런스의 축이 방향을 정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우주의 탄생과 소멸까지는 야구공이 정지해 있는 찰나다. 우주는 시뮬레이션이고 실제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상호작용의 규칙에 불과하다. 실재하는 것은 약속이다. 특정한 조건에서 특정하게 반응하는 게임의 규칙이다. 존재가 변화의 게임이라면 게임의 엔진이 있다. 존재를 연출하는 우주의 엔진을 발견했느냐 말이다.
순수한 무는 없고 우리가 아는 공간의 무는 진공의 요동에서 밸런스의 결맞음이다. 물질이 꼬인 실이라면 공간은 풀린 실이다. 풀린 실은 수축되어 0으로 돌아가게 된다. 태초의 요동에 밸런스가 만들어졌고 밸런스가 결어긋ㄴ암을 튕겨내므로 자투리가 남아서 물질이 되었다. 회전체에서 비대칭의 코어는 무조건 존재한다.
물질은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근원의 흔들림은 파동의 간섭에 의해 결맞음을 따라 무로 돌아가고 우리가 아는 존재는 거기서 살아남은 비대칭의 코어가 만든 이차적인 존재다. 필름이 1차적 존재라면 스크린은 2차적 존재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존재는 그림자의 그림자다. 우리가 아는 공간과 시간은 극장의 스크린과 같다. (광원, 광자, 피사체, 그림자, 스크린)
실제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관측이 간섭하여 오염된 가상의 세계다. 우리는 근원적 존재를 논해야 한다. 무에서 유가 나왔다느니 공이 어쩌니 하는 말은 스크린의 존재는 믿을 수 없고 필름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필름도 없고 스크린도 없다면 진짜는 어디에 있나? 진짜는 배우와 감독이다. 그 이전에 대본이다.
관객은 극장에 있지만 배우와 감독은 자기 집에서 치킨 시켜먹고 있다. 엉뚱한 데 가 있다. 더 깊이 들어가보자. 대본이 1차적 존재라면 배우가 2차, 필름이 3차, 스크린이 4차, 우리가 본 것은 5차적 존재다. 존재의 차원은 다섯이다. 무니 공이니 하는 말은 4차나 5차의 거짓을 부정한다. 당연히 없지 그럼 그게 진짜 있겠냐?
1차적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게임의 엔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겉보기 하나를 부정할 때마다 높은 차원의 하나가 찾아진다. 우주 탄생 이전은 다른 차원에 속하므로 우리우주 차원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일일이 적시하여 설명하기 복잡하므로 지름길을 찾아낸 것이 신이다. 신은 대본-연기-필름-스크린-관객의 연결이다.
어떤 객체를 부정할 수는 있지만 연결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부정하는 것은 관측자인 인간과의 연결이다. 무다, 공이다, 허다, 멸이다, 비다 하고 부정할 수 있다. 비상도 비상명은 인간과의 연결을 부정한다. 인간을 지우면 자체 연결이 드러난다. 인간을 지우는데 분주할 뿐 자체적인 연결을 드러내는 진짜배기는 없다.
우리는 게임 속의 아바타이며 우주는 게임의 맵과 같은 것이며 신은 게임의 개발자다. 게임의 개발자가 사는 세계와 아바타가 사는 세계는 다르다. 게임이 탄생하기 전에 뭐가 있었느냐고 묻지마라. 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신이 고민해야지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우주에 의해 신이 완성된다는게 중요하다.
대본-연기-필름-스크린-관객의 연쇄적인 연결고리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이러한 전개 자체가 통째 무너진다. 에너지로 보면 다섯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은 불완전하며 우리우주는 신이 자신을 완성시켜 가는 과정이다. 평행우주니, 다중우주 하는 것은 없다. 말장난이다. 신에게는 신의 시간이 있다.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
신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 수 있다. 비디오를 감았다가 풀었다가 한다. 결정론이 옳다면 신은 개입할 수 없지만 결정론이 틀렸으므로 신이 현실에 개입할 수 있다. 우주가 물질이 아니고 수학적 약속 곧 게임의 규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어렵지 않다. 이것을 이렇게 하면 저것은 저렇게 한다는 규칙이 그 자체로 존재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에 주눅들면 안 된다.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안에서 건드리면 비용이 들지만 밖에서 건드리면 비용이 들지 않는다. 밖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법칙을 얼마든지 초월할 수 있다. 광속 따위는 문제도 안 된다. 양자역학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여러가지 다른 상태로 중첩된다.
양질전환의 기적
양질전환은 없지만 있다면 기적이다. 기적은 없지만 기적적인 일은 있다. 양질전환은 없지만 양질전환처럼 보이는 일은 있다. 기적적인 일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아두면 유용하다. 무한동력 아저씨가 원하는 것은 기적이다. 기적이 없는건 알지만 기적적인 일은 있으므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의 삽질을 멈추게 하려면 기적적인 일을 알려줘야 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의심할 수 없다. 간단하다. 만약 엔트로피가 감소한다면? 저절로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것이 바로 빅뱅이다. 에너지가 저절로 생성된다면 가속적으로 생성되어 우주는 즉시 파멸한다. 자체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다.
엔트로피 증가는 자체 브레이크가 있다. 엔트로피는 무한증가 하지 않고 밸런스에 도달하면 멈춘다. 존재는 곧 밸런스다. 어떤 것이 그곳에 있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안정되어 밸런스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이유로 언밸런스가 발생한다면 둘의 차이만큼 계에서 이탈시켜 밸런스를 맞춘다.
어떤 것이 3 대 2로 균형이 안 맞다면 3에서 1을 빼서 2 대 2로 균형을 맞춘다. 이때 남는 1이 엔트로피 증가다. 외부의 영향에 의해 내부가 교란될때마다 다시 균형 맞추기를 반복하면? 조금씩 상실하여 왜소해진다. 곧 무질서다. 3 대 2에서 3 대 3으로 증가시키는 형태로는 균형을 맞출 수는 없다.
증가할 1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가다. 닫힌계는 에너지 입력부가 닫혀 있으므로 자원의 외부 조달은 불가능하고 자체해결만 가능한데 자체해결로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마이너스다. 경상도 인구가 많아서 전라도와 균형이 안 맞다면 경상도 인구 일부를 수도권으로 빼서 전라도와 균형을 맞춘다.
이 방법을 반복하면 경상도와 전라도 인구가 줄고 수도권만 이익본다. 그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정치판에서 흔히 관찰된다. 서로 약점을 잡아 상대방을 약화시키다보면 다 같이 망해 있다. 중국의 환관, 이집트의 맘루크, 오스만의 예니체리가 그러하다. 서로 내부 약점잡기 하다가 사이좋게 망했다.
문제는 존재가 밸런스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있다. 구조론의 쉬운 엔트로피가 열역학에서 어려워지는 이유다. 세상은 전방위로 대칭이다. 존재는 곧 밸런스이며 밸런스는 대칭이다. 그렇다면 엔트로피 증가와 엔트로피 감소도 대칭되어야 하는거 아냐? 엔트로피 감소의 법칙은 왜 없느냐고? 있다.
무한동력 아저씨의 불만을 잠재우는 방법은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전에 감소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알려주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엔트로피의 증가 때문에 일이 실패한다면 일을 성공시키는 방법은 엔트로피의 감소다. 이걸 알려달라고.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에서 양은 상자 속에 있다. 왕자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거기서 공포를 느껴야 한다. 작가의 책이 대박난 후다. 모자를 그려주었는데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구만.' 오직 어린이 한 명만이 '엉덩이 그림이네.'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구체적으로 뭐가 하느냐고?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증가한다. 무질서도는 생텍쥐뻬리의 모자와 같다. 모자 속에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들어 있다. 모자 하나로 퉁치지 말고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꺼내야 한다. 엔트로피는 내부변환이다.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다.
에너지는 질 하나에 입자 둘, 입자 하나에 힘 둘, 힘 하나에 운동 둘, 운동 하나에 량 둘로 변환된다. 무질서도 증가는 자체 에너지의 소멸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에너지 탄생이다. 그것은 양질전환이다. 양질전환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모든 쓸만한 것은 외부에서 어떤 둘의 충돌로 만들어진다.
에너지는 내부변환이다. 양질전환은 외부변환이다. 그러므로 무한동력 아저씨가 원하는 자발적 에너지 생성의 기적은 사실 에너지가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무수히 있다. 사실 양질전환은 없다. 양을 많이 투입하면 성과가 좋은 것은 로또를 많이 사면 당첨 확률이 오르는 것과 같다. 어리석다.
양질전환은 사건 A의 량이 사건 B의 질이 되는 것이다. 사건이 다르다. 에너지의 입력이 두번 일어난다. 기름을 많이 넣을수록 자동차는 멀리 간다. 양질전환이네. 기름의 양이 많으니까 멀리까지 가는 좋은 차가 되었어. 천만에. 기름을 넣은 것과 차가 잘 달리는 것은 별개의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불은 성냥의 유황과 적린의 충돌이 만들어낸다. 부싯돌과 쇠의 충돌로 불이 만들어진다. 자식은 부와 모의 만남으로 만들어진다. 모든 가치있는 것은 외부 자원의 내부화에 의해 만들어진다. 외부를 내부화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부 공간의 부족 때문이다. 이때 공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원은 10명인데 후보자가 100명이라 치자. 90명은 외부에 남는다. 이때 외부의 90명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한달씩 돌아가면서 하면 된다. 집 하나를 부부가 같이 쓰면 방세를 아낀다. 질의 도약이다. 양질전환이 공유라면 질량변환은 공유의 해제 형태로 일어난다.
양질전환 - 엔트로피 감소. 부부 두 사람이 결혼하여 건물 하나를 쓴다. 결혼에는 비용이 든다.
질량변환 - 엔트로피 증가. 부부 두 사람이 이혼한다. 이혼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무엇이 다른가? 열린계냐 닫힌계냐가 다르다. 강제변화냐 자발적 변화냐가 다르다. 양질전환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열린계의 강제변환이다. 무한동력 아저씨가 원하는 것은 돈이 들지 않는 것이고 돈이 들지 않는 변화는 나빠지는 것 뿐이다. 모든 좋아지는 변화는 돈이 든다. 공유하는 비용이 든다.
모든 좋아지는 것은 공유하는 것이며 공유하려면 서로 밀착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돈이 든다. 양질전환 변화는 강제로만 가능하고 자발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양질전환은 없지만 양질전환처럼 보이는 현상은 있다. 그것은 질의 형성이다. 닫힌계 내부에 가두어져 있는게 질이다.
외부를 내부로 바꾸면 양질전환이 일어난다.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면 베트남에 가서 열심히 싸운다. 비회원을 회원으로 승급시켜주면 말을 잘듣는다. 결혼해 주겠다고 약속하거나 취직시켜 준다고 약속해도 말을 잘 듣는다. 비용이 들지 않는 양질전환은 없지만 비용이 드는 양질전환은 있다.
그것은 내부자가 되는 것이다. 국적을 얻거나, 시험에 합격하거나, 결혼하면 내부자가 된다. 진보의 가치가 그러하다. 외부자로 밀려나기 쉬운 소수자를 내부로 끌어들여 코어로 만드는 것이다. 옛날 방패는 가운데 구리로 만든 바람개비 모양 장식이 있다. 방패의 귀퉁이를 창으로 찌르면 튕겨낸다.
가운데를 찌르면 방패가 둘로 쪼개진다. 가운데가 약하다. 코어가 약하다. 그러므로 가운데를 보강해야 한다. 조직의 발전은 코어의 강화로 일어난다. 자원들은 코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코어를 공유하면 막강해진다. 민주당의 코어가 중요한 이유다. 코어가 깨지면 공유가 깨지고 당은 망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