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문제가 이석기사태를 덮고 새로운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조선일보의 1면 보도는 상식을 깨는 행태였다고 생각한다. 공인이지만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은 일을 마치 기정 사실인 것 처럼 보도하는 행태는 저열한 짓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조선일보가 장자연 사건과 이만의 장관의 문제에 대한 보도태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언론의 저널리즘, 기자 정신은 실종되고 언론주식회사에서 봉급받고 사회적인 대우까지 받는 그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는 진실을 밝히는 직업이다. 공자시대에도 선비는 군주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했다. 하물며 지금 시대에야 말해 무얼하리.
이번 사건을 보면서 또 하나의 느낌은 지식인들마저도 사건의 본질보다는 혼외자 자체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 청와대나 국정원이 노리는 효과가 그것이긴 하지만 - 이 사건의 본질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하나는 왜 조선일보가 아무도 주장하지 않은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을 1면에 크게 보도했을까.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으며, 어디에서 제보를 받았을까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총장의 중립적인 검찰권 행사에 불편해 하는 세력들에 의한 작전(?)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기소가 결정적으로 현 정권의 역린이 거스르는 일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언론의 해석이고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5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 있음에도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려고 할까?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주변 사람들의 구속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멋지게 임기를 마치고 자유롭게 사는 게 진정 행복이 아닐까.
어제 채동욱 총장이 조선일보에 대한 정정보도 소송을 제출했다고 하니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결말은 날 것이지만 과연 혼외자가 긴지 아닌지에 대한 결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건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서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문제와 같은 잣대를 버리고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다. 성숙된 사회의식이 필요하다.
이제 무더위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추분이 지나 낮과 밤의 길이도 바뀌고 곧 산하는 만산홍엽으로 옷을 갈아 입겠지. 8월28일은 집사람의 생일이었는데 난 서울에 있고 집사람은 광주에 있어 전화로만 축하를 했다. 미안한 마음이다. 오랫만에 반지를 선물했다. 저녁에는 국화꽃 모임이 있었다. 30일 저녁 집사람과 늦둥이가 올라와 31일 태백 금대봉 분주령 야생화 트레킹을 했다. 강원도에 접어드니 비가 조금씩 내렸다. 두문동재에서 출발을 했는데 겨울처럼 추었다.(산 이야기에 게재) 그날 삼척으로 이동하여 다음날 대금굴을 관람하고 대전에서 집사람과 헤어져 서울로 돌아왔다.
4일 저녁약속이 광화문에서 있어 나가는 길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카파사진전을 관람했다. 전쟁종군기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로버트 카파는 인도차이나 전쟁 취재 중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헤밍웨이, 존 스타인 백, 피카소, 마티니 등과 교유하고 당대 최고의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혼도 거절했던 카파가 남긴 한 마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 사진전이었다.
사진전을 보고 서울에서 주재하는 광주기자들과 저녁을 했다. 친분은 오래됐지만 만날 기회가 없어 오랫만에 얼굴들을 봤다. 광주걱정하고 옛날 이야기를 술안주삼았다. 5일에는 세종시와 대전을 방문했고, 6일에는 화순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고교동창회에 참석했다. 7일(토) 전남대동창산악회와 용봉성당산악회의 합동산행으로 속리산을 갔다. 이제 진영이도 산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8일 서울에서 법조에 있는 후배들과 저녁약속이 있어 광주에서 일찍 올라왔다. 11일 인사동에서 강만성 작가의 그림전시회를 보고 12일에는 국토연구원 공간정보산업 인재양성공청회에 참석하고 광주로 내려와 용현회 모임을 가졌다. 전 곡성군수이신 고현석 선배와 부인 김화중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성한 곡성 죽곡의 은퇴자마을을 둘러보고 시 낭송, 트럼펫 연주 등 작은 음악회를 갖고 그곳 식당에서 유기농반찬과 직접 담근 막걸리를 곁들여 저녁을 했다.
13일 그동안 만나지 못한 분들을 찾아뵙고, 좋은 이야기를 나눴다. 14일 우리 가족들만 조촐하게 지리산 둘레길 -하동호에서 신촌마을까지- 을 걸었다. 토요일은 비거 조금 내렸지만 날씨가 더워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징검다리도 건너고 길에 떨어진 밤도 주우며 10km를 걷고 이정마을에 있는 황토민박집에서 하루를 쉬었다. 다음날 진영이만을 데리고 신촌마을까지 걷고 날이 너무 더워 남은 길은 다음으로 미루고 발길을 돌렸다. 광주로 오다가 하동 악양에 있는 최참판집에 들려 구경하고 구례 산동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돌아왔다. 17일 꽃무릇이 한창인 불갑산에 올랐다. 대개 추석 전후하여 9월 중순에 만개하는 꽃무릇은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애틋한 사연을 가진 꽃이다. 18일 진영이, 집사람과 함께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여 성묘를 갔다. 아이들이 각자 일을 하다보니 명절이라고 해도 광주에 내려오지 못해 부모님께 죄송스럽다. 성묘를 마치고 천봉산에 올라 점심을 먹고 대원사를 보고 광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고위공무원단 후배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19일 매년 추석날에는 큰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갔다 처가에 갔는데 오늘은 운동약속이 있어 처가에 내려가지 못했다. 집에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있어 사실 처가에 내려가는 일이 큰 의미는 없다. 20일 처가식구들과 고창에서 시간을 보냈다. 22일 문형섭 변호사 별장에서 부부모임을 하기로 해서 부근에 있는 용진산을 함께 등반하고 점심을 같이 했다. 별장 앞 전경이 좋았는데 댐을 높인다고 공사를 하다 중단해서 흉물스럽게 변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좋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