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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왕생 후, 다시 돌아와 시현하다
나무아미타불.
정종 스님께 올리는 글이다.
유선수(游先壽) 노거사가 왕생한 실제 정황을 스님께 알리기 위해, 이 중대한 일의 전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다시 한 번 스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게 됨을 송구스럽게 여긴다. 필자는 우매하여 자료를 제대로 종합하지 못하였기에, 글이 다소 산만하니 부디 인내심을 가지고 살펴주시기 바란다.
유 노거사는 해방 이후 판결을 받아 13년간 노동개조형을 받았다. 그 13년 동안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별도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혹독한 환경 탓에 노인은 여러 질병을 앓게 되었는데 , 특히 천식, 폐기종, 류머티스성 관절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1992년, 나는 인연이 닿아 유 노거사 댁과 바로 이웃하게 되었는데, 단지 한 벽만을 사이에 두고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우리는 가까이 지내며 서로 불편함 없이 잘 어울렸다. 나는 노인이 병고에 시달리며 괴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두 분께 함께 기공(氣功)을 수련해 보자고 권하였다. 얼마간 함께 연마한 뒤, 병세가 점차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1998년, 내가 처음으로 불법을 접하게 된 후, 그 사실을 두 분께 전하였더니 매우 기뻐하셨다. 음력 10월 초하루에 두 분은 함께 불문에 귀의하여, 불법을 배우고 염불 수행을 시작하였다. 그 무렵에는 심(沈)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정공(淨空) 스님의 녹음 법문을 들려주셨다.
1999년 초, 우리는 인연이 닿아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我們回家吧)』라는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참으로 아미타불의 부름이라 할 만하였다. 그 한 번의 부름으로 인해 우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감격하였다. 그 이후로 심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단단히 붙잡고 우리 모두를 이끌어 아미타불의 본원을 배우게 하셨다. 그 후 심 선생님께서는 안휘성(安徽省)으로 직접 스님을 찾아뵙고,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듣고 가르침을 받으셨으며, 아미타불 본원에 관한 여러 경전과 녹음 법문을 가져오셨다.
그때부터 유 노거사 부부와 우리 소모임의 구성원들은 정식으로 성도문을 버리고 정토문에 들어섰고, 난행도를 버리고 이행도를 택하였으며, 자력 수행을 버리고 타력 구제를 따르게 되었다.
유 노거사가 읽은 책으로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我們回家吧)』, 『염불인 열전(念佛人列傳)』, 『염불하는 마음(念佛的心情)』, 『아미타불의 본원 명호(彌陀本願名號)』, 『정종 강의(淨宗講義)』, 『정종 요의(淨宗要義)』, 『선도대사 요의(善導大師要義)』, 『영원한 생명의 부름(永恆生命的呼喚)』 등이 있다.
유 노거사가 들은 녹음 테이프로는 스님께서 설하신 『선도대사 요의(善導大師要義)』, 대만의 심련 거사(心蓮居士)가 강설한 사십팔원 중 『제18원』, 『진선미의 소리(真善美之音)』, 그리고 『아미타불께서 반드시 당신을 구제하신다(阿彌陀佛一定要救您)』라는 제목의 테이프 한 통이 있다. 그는 이 녹음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우리는 이웃이었기에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불법을 배우고 염불하면서 수행의 체험을 자주 나누었다. 나는 두 분께 아미타불의 본원이 얼마나 수승한 가르침인지 자주 들려드렸고, 그럴 때마다 두 분은 기뻐하며 환희심을 내셨다.
작년 가을, 유 노거사는 폐렴에 걸려 한 달 가까이 고열에 시달렸다. 치료를 받은 뒤 열은 가라앉았으나, 몸이 눈에 띄게 야위어 소모임 학습에 더 이상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집에서 스스로 염불을 이어가도록 권하였고, 그는 그대로 실천하였다.
올해 3월 중순,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의사의 진찰 결과 역시 폐렴으로 진단되었다. 그의 며느리는 효심에서 치료를 계속하고자 하여, 4월 초순까지 수액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4월 9일, 유 노거사는 더 이상 수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하였고, 치료를 중단한 뒤에는 열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무렵부터 그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으며, 다만 소량의 물만을 마셨다.
4월 10일, 나와 연우 황문영, 왕신옥 세 사람은 유 노거사를 찾아뵈었다. 우리는 그에게 염불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러자 노거사는 우리 셋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구와 말도 나누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저절로 ‘나무아미타불’하고 소리가 나온다. 내 귀에는 그 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그것은 바로 아미타불의 부름이며, 염불하는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과 상응하게 된 것이라 여겼다. (물론, 우리의 이러한 생각이 과연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4월 14일 오전 8시, 유 노거사의 부인이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한 회계님, 좀 와주시겠어요? 할아버지(유 노거사)께서 꼭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요.”
나는 그의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유 노거사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오후에 나는 떠날 것이다. 방금 연꽃 한 송이를 보았는데, 그 연꽃 위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저희가 한 번 목욕을 시켜드리고, 옷도 갈아입혀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노거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하, 나는 이미 칠보지(七寶池)에서 목욕을 했다. 그 연못의 물은 덥기를 원하면 따뜻해지고, 시원하기를 원하면 시원해지니 참 좋다!”
내가 다시 여쭈었다.
“혹시 지금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아. 저쪽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 참 좋다!”
그분께서 “오후에 떠난다”고 하셨기에, 우리는 조용히 방을 나와 거실로 모였다.
그곳에서 염불기를 틀어놓고 함께 염불하였다.
오후 두 시, 유 노거사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내 시간이 다 되었어. 아미타불께서 오셨어! 빨리 옷을 입혀 줘!” 그는 침대에 누워 있었기에 속옷만 입은 상태였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그때 그는 매우 맑은 정신으로, 아미타불께서 자신을 맞이하러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방을 나와, 부인과 아들이 그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도록 하였다. 약 30분 뒤, 목욕과 갈아입기를 마친 그는 조용히 잠시 쉬었다. 나는 다시 그의 침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미타불께서 이미 나를 데려가셨다가, 지금 다시 돌아오게 하신 거다.” 나는 어리석게도 당황한 나머지 급히 말했다. “아니, 어르신! 왜 다시 돌아오셨어요?” 그가 돌아오셨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졌고, 혹시 왕생이 방해받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었다.
그러자 노거사는 차분히 말씀하셨다. “다시 돌아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매장을 원하지 화장을 원치 않는다. 아미타불께 여쭈었더니 허락하셨다. [토가(土家) 사람은 국가에서도 허용된다] 둘째,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내가 이미 서방 극락세계로 왕생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기에, 그것을 전하고 이제 다시 떠난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언제 다시 떠나실 예정이십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걱정할 것 없다. 아미타불께서 보증금을 주셨다. 내가 돌아와 이 말을 전한 뒤 다시 가도 된다고 하셨으니, 아침에 가든 저녁에 가든 상관없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그는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서방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사바세계로 돌아오는 길이다. 보다시피, 나는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4월 16일 아침 8시가 조금 지난 시각, 유 노거사의 부인이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한 회계님, 할아버지께서 오늘 떠나신다고 하세요. 오후에 못 가시면 저녁에는 반드시 가신다고 하시네요.”
그리고 같은 날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무렵, 유 노거사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곧 떠날 거야. 물 좀 가져와 줘. 씻고 가야지.” 부인이 물을 가져오자, 그는 스스로 얼굴을 씻고 손을 닦았다. 그리고 두 발을 내밀어 부인이 씻을 수 있도록 하였다. 씻는 일을 마친 뒤, 부인이 물을 버리러 나갔다가 곧바로 나를 부르러 왔다. 그러나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유 노거사는 이미 왕생한 상태였다.
그의 부인이 물을 버리러 나온 바로 그 순간, 유 노거사의 큰손녀 유계미(游桂美)가 할아버지께 말하였다. “할아버지, 제가 책을 읽어드릴게요.” 하지만 손녀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에, 유 노거사는 손으로 서랍을 가리키며 책이 그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손녀가 책을 꺼내 침대 옆에 앉아 읽기 시작했으나, 불과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께서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유 노거사는 4월 16일 오후 5시 50분에 왕생하셨다. 이틀 뒤인 18일 정오 12시에 장지로 모셨는데, 온몸은 부드럽고 얼굴빛은 불그스름하였다. [나는 유 노거사를 고향인 후베이성 우펑현(湖北五峰縣)까지 직접 모셔가 장례를 마친 뒤에야 돌아왔다.) 이상이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겪은 유 노거사의 왕생 전후의 모든 과정이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릴 일이 있다. 이미 왕생하신 분께서 왜 다시 돌아와 인사를 하고, 자신이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였음을 밝혔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다음과 같이 짐작해 본다. 유 노거사는 평생 돼지고기를 즐겼고, 특히 족발탕을 좋아하셨다. 그는 한 번은 나에게, “노동개조를 받던 시절에도, 돈만 있으면 반드시 돼지고기를 사서 먹었다. 아무리 비싸도 아끼지 않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그러한 식습관을 유지해 왔기에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병세가 깊어져 몸이 허약해졌지만, 그는 거의 끊임없이 족발탕을 마셨다. 4월 7일과 8일 무렵부터,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유 노거사가 오랫동안 임종하지 못한 이유가, 족발을 계속 먹은 탓에 죄업이 깊어져 극락에 왕생할 수 없어서라고 하였고, 어떤 이들은 그것이 지옥의 인연이라고까지 하였다. 이 문제는 전체 모임과 각 소모임에서도 논의되었으며, 의견은 매우 분분하였다. 또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있었으나, 뚜렷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아미타불께서 이러한 상황을 보시고 얼마나 애가 타셨겠는가. 그래서 유 노거사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어, “나는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는 인사를 하게 하시고, 이를 통해 아미타불의 구제는 무조건적임을 분명히 드러내시며, “더는 이 문제를 두고 논의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신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짐작을 잘못하였다면, 부디 가르침으로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란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제자 한복준(韓福俊) 삼가 절 올림
2000년 4월 22일
【왕생자: 유선수(游先壽) 거사, 남성. 후베이성 잠강시(潛江市) 원림진 성남촌 출신. 본적은 후베이성 오봉현(五峰縣)이며, 토가(土家)족이다. 음력 1925년 3월 15일에 태어나, 2000년 4월 16일에 왕생하였다. 향년 75세. 1998년 음력 10월 초하루에 불문에 귀의하였고, 1999년 정월에 정토종 본원법문과 인연을 맺었다. 기록자: 한복준(韓福俊) 거사, 여성. 유선수 거사의 바로 이웃에 거주.】 (이상은 정종 스님께서 제공해 주신 내용이다.)
생각건대:
아미타불의 구제는 이미 마련되어 있으며,
스스로 먼저 나서서 중생을 평등하게, 아무 조건 없이 구제하신다.
누구든지 지금 이 자리에서 믿고 받아들이면,
즉시 구제를 받고, 살아 있는 채로 왕생할 수 있다.
고기를 먹든 채식을 하든 전혀 제한은 없지만,
불자로서의 도리는 마땅히 자비심을 배우는 데 있다.
살생을 삼가고, 생명을 보호하며,
인륜을 돈독히 하고, 자신도 실천하며 남도 교화하면,
부처님의 마음이 기뻐하신다.

첫댓글 유선수 극락성중님의
자재하신 왕생사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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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부처님의 무조건적인 자비구제를 가슴깊이 받아들이며 감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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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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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나는 떠날 것이다. 방금 연꽃 한 송이를 보았는데, 그 연꽃 위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하, 나는 이미 칠보지(七寶池)에서 목욕을 했다. 그 연못의 물은 덥기를 원하면 따뜻해지고, 시원하기를 원하면 시원해지니 참 좋다!”
채식을 하지 않아도 왕생에 제한이
없다 다만 채식은 불자로서 자비심을
배우는데 있다 자비구제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믿고 받아 들이면
즉시 구제 받고 살아 있는 채로
왕생할 수 있다는 법문을 증거로
보여준 생생한 사례법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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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찬탄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