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에베소서 4장 22-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유혹은 속이는 것(deception)입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은 애당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면 주님이 새사람을 입혀주십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까?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에서 옛 성경을 보면 "너희가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되어있습니다.『심령』이라는 말은 "생각의 영"이라는 표현입니다. 영어로는 niv와 kjv가 차이가 있습니다.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niv) "in the spirit of your mind"(kjv), attitude 가 아니라 spirit 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는 spirit이 혼과 영으로 섞여 해석된 경우도 있으며, mind도 마음과 생각이라는 표현으로 섞여있습니다. 이 mind는 생각이라는 단어입니다. 마음은 heart로 표현합니다. 너희의 생각의 영으로 새롭게 되어 24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거듭남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전후로 에베소서 5장 6-9절에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어둠의 자녀가 옛사람이고 빛의 자녀가 새사람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옛사람이 노력하여 새사람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옛사람은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어둠이 노력하여 빛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은 사라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중간으로 생각합니다. 옛사람을 벗지 않고 온갖 노력을 통하여 새사람으로 전환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출애굽을 할 때 사람이 건널 수 없는 홍해바다를 건넙니다. 그리고 광야가 나타납니다.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를 언약으로 말미암아 영접하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세상을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나오는 것이 네가지 밭의 비유입니다. 길가밭(하나님 말씀을 마귀가 가져감), 돌짝밭(말씀으로 시험받아 말씀을 버리는 것), 가시떨기 밭(말씀의 씨가 자라지 못함) 그래서 자기부인의 회개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세가지 밭의 유형에 속하는 것입니다.
믿은 후에 회개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돌짝밭과 같이 베드로도 삼년동안 주 예수님을 믿었지만, 단 하루에 이런 믿음은 무너지고 맙니다. 베드로는 인간들 중에 기적을 가장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계시가 있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믿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고, 모세와 엘리야를 이 땅에서 직접봤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이 오늘밤 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리라 이게 복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태를 깨달아라"고 말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깨닫는 자는 좋은 소식이 됩니다. 주 예수님 당시 주 예수님이 죽는다는 말씀에 반응하는 자가 단 한명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주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말에 얼마나 반응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주 예수님이 베다니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있을 때, 한 여자가 와서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때 주 예수님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눈물로 나의 장사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죽음이 이 여자의 생각에 들어왔습니다.
생각에 들어오므로 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은 다 버려도 나는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라고 힘주어 강조했지만, 그날 밤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복음은 인간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려주는 소식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성공했다 할지라도 인간이 쌓은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주 예수님이 없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주 예수님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는 십자가에서 죽은 주 예수님과 연합되는가 아닌가의 차이입니다. 내가 죽을 죄인임을 아는 자는 주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합될 수 없습니다.
연합될 수도 없으며, 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단 하나 "나는 주님이 보시기에 죽은 자구나,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자구나"라고 깨닫는 자가 못 박하신 주 예수님과 연합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구나"를 깨달을 때, 자기를 부인하는 회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은 자신의 전적타락을 외면한채 주 예수님을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서 "할 수 있다 하시는 주 하나님"을 부르면서 주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식입니다. 십자가를 붙잡지 못하는 회개없는 믿음은 구원이 아닙니다.
회개없는 믿음은 "오늘밤 다 나를 버리리라." 와 같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31절에서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라고 말씀하십니다. 긍휼이십니다. 그리고 32절에서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라"는 말씀입니다. 열두제자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모든 인간이 전적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아무도 십자가의 주님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전에는 옛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노아처럼 이 말을 전해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전적타락이며, 회개해야만 살 수 있다." 고 전해야만 합니다.
어떠한 체험을 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옛사람은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성경의 지식을 쌓고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옛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합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회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못 박히신 주 예수님과 연합되는 길입니다. 회개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자기부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부인의 회개없이, 회개했다는 말은 다 거짓입니다. 회개와 거듭남은 같이 붙어있습니다.
회개할 때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죄사하심을 받고, 의롭다하심을 얻는 길입니다. 회개할 때 성령을 선물로 받게됩니다. 회개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나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로소이다. 단 하나 주 예수님이 주인인가 내가 주인인가입니다.
주 예수님이 전부이던지 아니면 내가 전부이던지 중간은 없습니다. 주 예수님이 전부인 자는 죽을 때까지 주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됩니다. 50%, 70%, 90% 정도를 믿는다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광야에서 사는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을 뿐,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옛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습니다. 옛사람이 죽을 수 있는 기회는 광야입니다. 옛사람이 죽을 때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새사람 만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게 구속입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
첫댓글 아멘아멘~~할렐루야!!!
할렐루야 새사람으로거듭나게습니다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