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동학사,연산등지로 자동차를 타고 나들이를 다녀 왔다.
단풍이 들다가 지고 말았을 11월에 때늦게 동학사에 갔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려니 부족한 영양분은 물론, 꽁꽁 얼어붙은 지하에서 식구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기가 어려우니 미리 식구를 줄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그래서 열심히 살아온 지난 여름의 그 무성하던 기상도 다 지하로 갔는지 하나둘씩 겨울철에 대비하여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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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도 사라질 망정 예쁘게 화장을 하고 이 한해를 열심히 살았다고 저세상에가서 이야기라도 할려고
붉고 노랗게 연지찍고 곤지찍고
열심히 단장을 하고 있는 동학사 입구의 많은 나무들을 바라 보면서 문득 우리 인간들 보다 더 철저하게 한해 한해를
맘리 해가몃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히 평지만 걸으려고 갔는데 은선폭포까지 가려다가 중간에 그만 하산을 하고 나오다가 가장 위쪽에 자리를 잡은 궁중 호떡집에 잠시들려서 호떡으로 13시가 넘은 시각에 간단히 요기를 하고 연산으로 달렸다.
연산 순천 추어탕, 벌써 20년도 더 지난 시절 1989년 7월경에 삼각지에서 계룡대지역으로 내려왔다가 6개월도 살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갔던 그 시절에 엄사리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밥을 사먹다가 언젠가 부터 여러번 다니던 그 추억의 추어탕집을 찾아갔는데 여전히장사를 하고 있었다.
산초 김치, 미꾸라지 숙회, 등등 그당시의 기억을 더듬으며 갔었는데
추어탕 맛은 여전한데 메뉴판에 국내산 미꾸라지(이식)이라고 하는 간판이 이상도 하여
뭔가하고 물었더니 그것이 새끼를 가져와서 키운 것이라는 말이란다.
못자리에서 모를 쩌서 다시 논에다가 모내기를 하는 것처럼
미꾸라지 새끼를 외국네서 수입을 하와서 국내에서 키운 것이란 뜻인데
그래서 이식하여 키운 미꾸라지라서 국내산의 조건을 갖춘 미꾸라지란다.
동학사는
우리나라 비구승을 양성하는 승가대학이 있다고 했는데 첫 인상은 점차 단양 구인사를 연상하게 한다.
동학사 하면 남매탑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득한 엣날 어느 스님이 바위굴속에서 도를 닦고 있었는데 어느날 굴 앞에 호랑이 한마리가 목에 가시가 걸려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 스님이 목안으로 손을 넣어 그 가시를 빼내어서 구해 주었다고 한다. 어느 겨울에 그 호랑이가 아랏다운 처녀한사람을 업고오서 굴앞에 내려두었다고한다. 그 아가씨는 상주에서부터 업혀서왔다고 하는데 인연이라고 여기고 스님에게의탁하려 했으나 스님이 자기는 수양을 하는사람이라 처녀를 아내로 맞을 수는 없고 그냥 오누이로 지내자고 하면서 두사람이 함께 수양을 하다가 같은날 같은시에 열반에들었다고 하는데 그 아름다운 전설이 깃든 남매탑가 동학사의 여승양성소 승가대학과도 인연이 없지는 않은가 보다.
동학사는 길쭉하게 개울을 따라서 이어진 건물들로 인하여 짜임새는 별로 인데 그런 전설과 함께 봄 벚꽃을 보러 다니던 계룡대 근무시절이 떠오르기에 예사롭지않은 장소이기도하다.
기와 한장마다 소원을 걸어둔 기증자들의 도움으로 단계적으로 많은 증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대령 시절에는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몇몇 대령들이 장군이되려면 한번씩 올라가보아야 한다면서
그당시 동기생들과ㅔ 작정을 하고 오르던 장군봉도,
몇년전 임관 40년이 넘은 우리들이 임관 기념행사로 동기생들 100여명이 함께 올라갔던 날의
남매탑도생각이났다.
남매탑의 오누이 그리고 호랑이의 전설...
아득한 옛날의 전설이라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전설인가..
계룡대 로 이전하던 그 시절의 기억도절절하고 논산 탑정 저수지,등등
하루 추억 여행을 모처럼 율리안나와 같이 다녀왔다.
700년대의 시작이라
천년 사직이 남가 일몽이었고 그들이 가신지도 아득하여라
인 생이 미만백년인데
부질없는 사람들이 천년의 꿈을 꾸는구나..
첫댓글 배경 사진에 눈이 부셔 행복합니다.
타고난 역마살?!, 또 거길 달렸군요.
그래도 저 보단 낳네요. 전 기냥 ~~~?
오십보백보
아침에 세면을 하면서
문득 안면 살이 엷어졌다고 느꼈어요.
.朝如靑絲 暮成雪이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