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현 재
아내에게 주문했던 고등어구이가 아침 밥상에 올라왔다.
나는 어설픈 젓가락질로 연신 고등어구이의 살점을 발라낸다.
“어휴~ 나둬 봐. 내가 해줄게~”
아내는 나의 어설픈 젓가락질이 답답한 듯, 자신이 살을 발라주겠다며 젓가락을 든다. 이에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살점을 발라내어 아내의 밥 위에 얹혀 놓는다.
“내가 해줄게. 당신은 가만히 있어.”
아내는 의아한 듯이 발라낸 고등어구이 살점이 얹혀 진 밥을 수저로 떠 입에 넣으며 나에게 묻는다.
“아니, 평소에 고등어구이 좋아하는 당신은 안 먹고 날 다 주다 니… 웬일이래? 어제도 고등어구이 해 달래서 사왔더니… 내가 발라줄게.”
나는 묵묵히 익숙지 않은 젓가락질을 하며 답한다.
“내가 발라줄 테니 당신이나 많이 먹어.”
어렸을 때부터 난 고등어구이를 참 많이 좋아했다. 지금은 값싸고 흔한 생선에 불과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주 먹지 못하는 반찬이었다. 더욱이 모든 음식을 싱겁게 드시는 아버지 때문에 평소에 밥상에서 고등어구이를 맛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난 생 후 100일이 지나고 뇌성마비가 왔다. 그래서 7살이 다 되도록 걷지를 못해 어머니께서 나를 업고 키우셨다. 간혹 온종일 집에만 있는 내가 심심해 할까봐 시장에 가실 때 나를 등에 업고 시장 구경을 시켜주셨다.
보통 두 살만 되어도 아기를 업고 다니기엔 무거운 무게인데, 7살이 다 된 , 쌀 두 말 남짓한 무게와 같은 큰 아이를 그 야위신 몸으로 업고 다녔으니 그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난, 어머니의 고생은 모른 체 어머니의 등에 업혀 시장구경을 하는 것이 가장 신나는 일 중에 하나다.
어머니께서 나를 업고 시장에 가면 시장 상인들은 다 큰 애를 업고 다니느냐며 한 마디씩 했다. 그럴 때마다 고개가 절로 어머니의 등 뒤로 숨어 들어가는 날 들쳐 올리며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어?”
그럴 때 마다 난 고등어를 연신 외쳐댔다.
고등어를 시장에서 사오는 날이면, 저녁식탁에 고등어구이가 올라 왔었지만,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은 입도 대지 않아 그 고등어구이는 온전히 내 차지다.
나 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도 잘 하는 젓가락질을 나는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위해, 어머니께서는 항상 당신의 수저를 놓으시고, 고등어구이 살점을 발라내어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 마냥 입만 벙긋 벙긋 벌리는 나의 입에 넣어 주셨다.
고등어구이 한 쪽 살점들이 다 발라질 때까지 밥 한 숟가락도 들지 않으셨던 어머니에게 미안했던지 난 어눌한 말투로 물어보곤 했다.
“엄마는 고등어 안 먹어?”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고등어구이를 반편으로 뒤집어서 살점을 다시 발라주셨다.
세월이 지나, 어느새 삼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나는 착한 아내를 얻어 분가를 하여 살고 있다. 아직도 젓가락질이 서툴러 아내가 고등어구이를 식탁에 내어놓으면, 아내가 발라주는 살점만 받아먹는다.
작년 이맘 때, 여동생이 시집을 갔다. 시집간 후 첫 번째 맞이한 어머니의 생신날,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생신 상을 보러 마트에 간 나는 여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던 여동생이 생선 판매코너에서 잠시 발길을 멈췄다. 그리곤 한치의 망설임 없이 포장된 고등어 두 마리를 카트에 담았다. 난 의아해서 여동생에게 물었다.
“어머니 고등어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
그랬더니 여동생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고등어를 얼마나 좋아하시는데? 나랑 큰 오빠는 싱거운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아서 고등어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 작은 오빠는 엄마를 닮아서 고등어 좋아하잖아?”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설마 여태 몰랐던 거야?”
그랬다. 난 삼심 여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식성이 어떻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하물며 고등어구이를 좋아하신다는 사실 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난 어렸을 때부터, 외모며, 성격이며, 식성까지 어머니를 닮았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난 미처 어머니께서 나와 똑같이 고등어구이를 좋아하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죄스런 마음이 들 때 쯤, 여동생은 한 번 더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옛날에 맨날 엄마가 오빠 고등어구이 좋아한다고 살점 발라주셨잖아. 오빠가 밥 다 먹고 밥상에서 떠나면 남은 꼬리 있잖아? 먹을 것도 없는 꼬리 부분의 살점을 발라서 드셨어.”
순간, 난 눈앞이 아른 거려 어지러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둘러앉은 어머니의 생신 상 앞에서 멀찌감치 서 있는 날 보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아들이 좋아하는 고등어구이 했네? 얼른 와서 밥 먹자.”
언제나 그랬듯 어머니께서는 인자하신 얼굴로 금방이라도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고등어구이의 살점을 발라내어 당신의 입 속이 아닌 못난 아들의 입 속으로 넣어주실 것 같았다. 난 속이 안 좋다는 핑계로 밥을 먹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설 때 쯤, 뼈만 앙상히 남은 고등어구이가 내 눈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난 아내와 함께 집에 가는 내내 지난날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다. 옛날, 자주 먹지 못했던 고등어구이의 그 짭조름함에 마음을 빼앗겨 진작 알았어야 할 어머니의 사랑을 이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늘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까지 자식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삶이란, 후회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과거가 되어 버린 시간,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면 이미 과거는 후회로 남게 된다.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는 똑같은 후회로 남게 될 과거가 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다. 지나간 시간들이 후회로 남는다면, 지금부터라도 앞으로의 삶이 후회가 되지 않을 과거가 되도록 노력해보자.
몇 달 뒤면 어머니의 생신이 돌아온다. 그 때 식탁에 올라 올 고등어구이의 살점을 어머니의 손이 아닌 내 손으로, 어눌함이 아닌 제대로 된 젓가락질로 발라내어 어머니의 숟가락 위에 얹어 드리기 위해 오늘도 난 아침부터 고등어구이의 살점을 발라내어 아내의 밥 위에 올려놓는다.
출처 : <제2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