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지는 책이 있다. 김진명의 소설이다. 작년 호주대륙 최고봉 코지어스코 등정을 하기 위해 출국을 하려는데 하루 전에 "싸드"라는 책이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않고 읽은 기억이 새롭다. 그때 사실 싸드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참 후에 싸드가 미국과 중국간의 G1 경쟁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는 안보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만큼 김진명의 소설은 마치 허구같기도 하면서 현실의 핵심이 되는 점을 집고 있다. 이번 "글자전쟁"이라는 책이 주목되는 이유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 박사가 장관 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林語堂)을 만났을 때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놓아서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고 농담을 하자, 임어당이 놀라며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라는 핀잔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신네 동이족'. 임어당이 가리키는 동이(東夷)가 예전 우리를 지칭하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이는우리의 뿌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한자(漢字)의 기원인 갑골문자가 은(殷)나라 때의 것이고, 그 은나라는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니, 한자는 우리 글자라는 이야기이다. 한자가 정말 우리 글자일까? 김진명의 이번 소설 "글자전쟁"은 그 의문에서 시작한다.
스탠퍼드 출신의 명망 있는 국제무기중개상 이태민. 어려서부터 수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일신의 명예보다는 오로지 500억의 커미션을 챙겨 안락한 인생을 살고픈 욕망으로 가득 찬 남자다. 무기제조업체 '록히드마틴'에 입사한 지 2년도 안 되어 주목받는 사원이 된 태민은 특유의 비상한 머리와 국제정세를 꿰뚫는 날카로운 식견으로 나날이 탄탄대로를 걷는다. 하지만 무기중개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법의 그물에 갇히게 되고, 궁지에 몰린 그는 검찰 출석 하루 전날 중국으로 도피한다. 그곳에서 태민은 비밀에 싸인 남자 '킬리만자로'에게 USB 하나를 받게 되고, 뒤이어 그날 밤 그가 살해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의문의 죽음 앞에 남겨진 USB. '중국의 치명적 약점'이라던 킬리만자로의 말을 떠올리며 태민은 정체불명의 파일을 열게 되고, 역사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데…….
허구라는 장치로 진실을 알리는 작가,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팩션의 대가, 치밀하고 날카로운 동시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하는 작가, 그리고 이 모든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대표 작가 김진명. 천년 제국 고구려를 되살리고 있는 김진명 '필생의 역작'인 대하소설 "고구려"와,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충돌의 그림자에 드리운 한반도의 운명을 그린 "싸드"에 이어, 2015년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대작 "글자전쟁"은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는 마력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