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1. 19. 수요일
수락산을 오르기 위해 마들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마들역에 도착하니 기상청 예보보다 더 이른 시각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함박눈이었다. 눈 예보를 듣고 눈길 산행을 한다는 기대를 하며 그에 맞게 준비를 해왔기에 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면서 내심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일상에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은 다소 무겁고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하지만, 함께 산행하기로 한 분들과 만나 얘기를 한 결과, 일정을 변경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산행 대신 경춘선숲길과 태릉, 강릉을 걷기로. 짧은 시간의 논의를 거쳐 개개인의 입장과 날씨 변화를 감안한 최선의 의견 조율이 이루어졌다. 그리곤, 즉시 실행에 옮겼다.
눈은 예상보다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옛 경춘선 철길을 따라 조성된 숲길을, 푸르던 잎들을 다 털어내고 속살을 드러낸 초목들이 서 있는 숲길을 걸었다.
노원불빛정원과 삼육대를 지나면서 눈은 점점 더 많이 쌓이고,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덕분에 눈길을 걷는 낭만의 분위기는 더해갔다. 함께 걷는 분들과, 나이를 잊고 어린 시절 눈과 관련된 아련하면서도 행복했던 추억들을 소환해 얘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걸었다.
‘강릉~태릉 숲길’은 아쉽게도 개방 시기(5~6월, 10~11월에만 개방)가 아니라 걷지를 못했다. 다음 기회에 걷기로 하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뒤돌아섰다.
강릉을 관람하고 태릉을 돌아봤다. 명종과 인순왕후, 그리고 문정왕후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며 생각에 잠겼다. 왕릉과 같은 상징물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 권력욕에 대해서도…, 종교적 집단의 거대 건축물에 대해서도…, 오늘날의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태릉을 둘러본 후, 조선왕릉전시관에 들어가서 찬찬히 관람하였다. 아직 가보지 못한 왕릉들을 틈나는 대로 들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화성에 있는 정조의 건릉과 사도세자의 융릉이 그러했다.
태릉을 나서서 6호선 화랑대역까지 걷는 길은 아주 호젓한 눈길이었다. 인적이 뜸했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치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이 걷다가 뛰다가, 돌아서서 발자국을 보며 웃다가…. 그렇게 걸었다.
화랑대역에서 전철을 타고 태릉입구역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여 도봉산역에서 내렸다.
지난번에 잠깐의 실수로 찾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던 음식점을 다시 찾아갔다. 삼겹살 바비큐를 하는 집이었다. 배가 고픈 탓도 있었겠지만, 음식 맛도 술맛도 좋았다.
옆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부부가 자연스레 말을 걸어왔다. 조금 투박스럽지만 순박한 표현들과 접근이었다. 그러더니, 밖에 나가 초콜릿을 사가지고 와서 나눠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낯선 사람이 건네는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 고마웠다. 자리를 뜨면서 부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마음속으로는 진한 감동을 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