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이 넘어 성공한 이들
환갑이 넘으면 퇴물로 취급받는 게 요즘 세태인데 벌써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오호통제라! 그러나 강태공(姜太公)은 80세에 서백(西伯, 후의 文王)을 만나 주(周)나라를 세웠고, 백리해(百里奚)는 70살에 진나라 목공(秦穆公)을 만나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위업을 이루지 않았나. 우리나라에선 육십이 넘어 영조에게 발탁되어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서울시장)까지 하고, 칠십이 넘은 나이에 청나라 使行도 마다하지 않았던 강세황(姜世晃, 1713~1791 英,正祖대), 구십이 낼모랜데도 인기 TV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송해씨가 있지 않는가. 이들을 중심으로 몇가지 남다름을 짚어본다.
강세황의 碧梧淸暑圖(중앙박물관)
쇠고집이었다
강태공은 마누라가 먹고 살기 힘들어 도망치든 말든 개울(磻溪)에 나가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았고, 백리해는 사십이 넘은 나이에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도성으로 올라와 문전걸식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사대부 자제라면 다 한다는 과거를 마다하고 처가가 있는 안산으로 내려가 삼십년을 처남 유경종, 허필, 괴짜 화가 최북, 그리고 김홍도 등과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던 강세황. 초년 구봉서, 곽규석에 밀리고 후에 이주일 등에 치어 빛을 보지 못했던 송해씨도 초지일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명줄이 길었다
재주가 출중했던 수많은 이들이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스러질 때 이들은 굳건히 살아남아 '西山을 벌겋게 물들였다'. 太公望이 팔순을 훨씬 넘겨 장수하지 않았으면 어찌 西伯을 만나 대업을 이루었을까. 우(虞)나라 첫무대에서 쓴맛을 보고 도망치다 잡혀온 백리해, 진목공이 나이를 묻자 "아직 70밖에 안되었다" 라 하였다나. 송해씨는 지금도 밤새 술을 자시고 다음날 전혀 기색도 없이 노래자랑을 진행한다고 하니 대단한 건강체질이 아니신가.
기초가 튼튼했다
강태공은 요즘 용어로 정치, 경제, 사회 각분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을 뿐더러, 군사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춰 최초의 兵書라고 하는 육도(六韜)가 그의 저서라고 한다. 백리해는 진목공과 첫대면에서 오랑케 나라들에 둘러쌓여 발전하기 힘들다는 말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을 바로 내놓을 정도의 내공을 갖추고 있었다. 오랜기간 詩書畵 모두를 섭렵한 강세황의 재능은 이순이 넘은 나이에 빛을 보게 되었으니, 청나라 사행시에 그곳 지식인들이 그의 재능을 일컬어 '문장은 퇴지(退之 : 韓愈의 호)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요, 그림은 고개지(顧愷之)에, 풍채는 두목지(杜牧之)라[文之退之, 筆之羲之, 畫之愷之, 人之牧之]' 고 상찬했다. 필자는 어느 TV프로에서 송해 선생이 부르는 '가거라 38선아'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그 나이에 그 노래실력은 '노래자랑'에 나가도 대상감이 틀림없겠다(그는 해주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악극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람을 잘 만났다
주지하다시피 강태공은 비록 팔십 늦은 나이지만 그를 알아주는 西伯을 만났고, 백리해는 유리걸식할 때 그를 먹여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준 평생의 벗 건숙(蹇叔)을 만났다(후에 진목공에게 건숙을 천거하여 秦나라가 춘추5패의 위업을 이루는데 함께 한다). 강세황은 처남이자 절친인 유경종으로부터 많은 서책과 화첩을 보며 예술가로서 미술비평가로써의 튼실한 실력을 다진다. 출연요청이 별로 없어 빈둥거리고 있던 송해씨를 부른이는 KBS에서 잘 나갔던 PD 안인기씨란다. 안피디가 물을 먹고 B급 프로인 '노래자랑'을 맡게 되자, 여러 후보들 중에 서민적인 풍채(?)와 구수한 입담에 노래실력까지 갖춘 송해씨를 사회자로 발탁, 오늘이 있게 되었다고..
심심하여, 여기에 조선조에 鄭씨라는 사대부집 여인이 그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다는 '강태공 낚시 그림에 붙여(題太公釣魚圖) 라는 시 한자락 붙인다.
鶴髮投竿客(학발투간객) 백발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분
超然不世翁(초연불세옹) 보통을 뛰어 넘은 불세출의 노인이시지
若非西伯獵(약비서백엽) 만일 西伯(周文王)이 사냥나오지 않았다면
長伴往來鴻(장반왕래홍) 오랫동안 오가는 기러기와 동무했겠지만..
첫댓글 요즈음 들어 박옹의 문장은 어느새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장가들을 이미 앞지르고
잇는 기분이 듭니다
변옹! 리모델링 기간이 넘 길어유~~
모두들 옛 변옹의 재치넘치는 글과
변설(?)을 듣고싶어합니다.
박옹도 이젠 오래 살기만 하면 되는 거 같소
태공망의 낚시에는 바늘이 없어 세월만 낚앗다는디 박옹도 한시로 세월을 낚다가 존사람 만나 큰일 한번 해보소
큰일을 저지르지는말구^^^
용두열 카페에 본격 진출하신 님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옛날 고교시절! 영어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한 말씀이 생각나네요.
나중에 시간이 허락되면 중국문학을 접하는 것이 어떠냐?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보배가 있다고 말씀하신 깊은 의미가 있겠지요.
좋은 글! 좋은 마음! 마음이 편해집니다. 한문은 좀 어렵지만 그래도 좋지요.
선비같은 학자같은 선생님같은 고마움이 깃드는 것은 나만일까?
종근이형! 아무래도 영어보다는 중국문학에 소질이보여 그러신것 같으니 한번 해보소
박옹과 쌍벽을 이룰지 뉘 알리오????박옹도 혼자 외롭다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