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봄나들이 / 양선례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홍매화를 보러 가는 길. 오늘은 고속도로 대신 국도로 간다. 길가의 매화가 반쯤 피었다. 겨울도 그 긴 꼬리를 슬그머니 감추었는지 오늘은 봄 햇살이 따사롭다. 언제 가도 좋은 천년 사찰 화엄사 경내에 들어선다. 화엄사는 국내 최대 목조 건축물인 각황전을 비롯해 다섯 점의 국보와 여덟 점의 보물, 그리고 두 점의 천연기념물이 있는 지리산 최대의 사찰이다. 나무 그대로를 기둥으로 써서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는 보제루를 지나 너른 대웅전 앞마당에 다다랐다.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어 혹여 매화가 피었나 싶었는데 아직이다. 싹눈이 나오려면 한참 멀었다. 지난겨울이 추워서 올해는 게으름 부리는 모양이다.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금둔사 납월매는 본 적 있으나, 화엄사 홍매는 처음이라 마음먹고 왔는데 허탕이다.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이 어찌 관장하랴.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을. 다음을 기약하고 발길 돌릴 수밖에.
각황전 뒤편 사사자 삼층석탑으로 향했다. 2016년에 해체되어 2018년부터 약 3년간의 수리를 끝내고 작년 9월에야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갈 때마다 공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기에 오랜만의 모습이 반갑다. 통일신라시대 건립되어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모양이 특이한 대표적인 석탑이다. 보통의 석탑이 사각형 돌로 기단을 쌓았다면 이 탑은 사자 네 마리가 받치고 있다. 비슷한 크기와 모양으로 어떻게 조각하여 균형을 맞췄는지 신기하다. 오래된 데다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어서 국보 35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세월은 어쩔 수 없었는지 비와 바람에 조금씩 무너지고 균열이 생겨서 이번에 해체하여 수리한 것이다. 원래 석탑에서 나온 석재를 거의 대부분 재사용하여서 더 의미가 깊다.
소나무 숲에 싸여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르는 길의 나무를 몇 그루만 남기고 다 베어 내어 멀리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는 우람한 동백나무와 소나무를 잘라 내서 아쉽다고 했지만 나는 시원한 눈맛이 오히려 좋았다. 양쪽의 소나무 두 그루가 탑과 잘 어울린다. 산 너머 또 산, 부드러운 능선이 일품이다. 왜 지리산을 어머니 산으로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대웅전 뒤편의 오솔길을 걸어 작은 계곡을 건너면 구층암이다. 죽은 모과나무가 승방의 기둥이 되고, 가지는 뻗어 서까래가 되었다. 낮은 툇마루에 앉아 햇살 바라기를 한다. 천불보전 부처님 앞마당에는 한눈에 봐도 나이를 꽤 먹은 모과나무가 서 있다. 생명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한자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나들이 온 젊은 부부의 어린 자녀 둘이 샘물가에 달린 작은 바가지로 물장난을 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다. 작은 화단에 무리 지어 핀 복수초와 수선화의 노란 빛이 기특하다.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 갔다.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온다. 5분 거리의 천은사 둘레길로 향한다. 숲 속 입구에서 오색 딱따구리를 보았다. 우리보다 앞선 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도 집 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검은색의 몸에 흰색 가로줄이 군데군데 나 있다. 닭의 볏처럼 정수리가 붉어서 눈에 확 띈다. 긴 부리로 구멍을 내다가 이게 웬 횡재냐며 감탄하는 우리들 소리에 놀랐는지 종종거리며 나무 뒤로 사라진다. 청량감이 느껴지는 키가 큰 소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성질 급한 청매화와 산수유가 반긴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 인간의 욕망에 맞추어 피는 건 아니건만 올 들어 처음 보는 봄꽃이 그저 반갑고 고맙다. 긴 겨울 어떻게 이겨 냈는지 그 의지에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한 시간을 돌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그 사이 손님이 많이 빠져서 한산하다. 도토리묵과 비빔밥, 수제비 2인분을 주문한다. 오후 2시 반, 뭘 먹어도 입에 착착 감긴다. 접시 가장자리에 묵을 빙 두르고 한가운데는 고춧가루 양념을 버무린 양배추와 상추가 담긴 도토리묵은 꽃처럼 이쁘다. 쫀득쫀득한 게 맛도 좋다. 도토리묵만 따로 팔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안 된단다. 얇게 뜬 수제비도, 맑고 시원한 국물도 정성 가득이다. 왜 맛집인지 알 만하다. 셋이서 사 인분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해치웠다. 정원이 잘 가꿔진 식당 마당에 앉아서 다시 또 해바라기를 한다. 황후의 찬에다, 불어오는 봄바람까지 기분 좋은 오후다.
내 친구 둘은 명예퇴직을 고민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만난 꼬맹이 이야기가 한창이다. 둘 다 2학년 담임이다. 해가 갈수록 힘이 딸린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이러다간 유일하게 승진한 나만 정년을 채우게 생겼다. 원래 대학 친구는 넷이었다. 한 명은 광주로, 셋은 전남으로 발령받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건 진리였던가. 우리만은 그런 징크스를 깨고 싶었는데 결국 셋만 남았다. 사는 곳은 꽤 멀지만 한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만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결혼과 이어지는 출산, 그리고 육아로 꽤 오랜 공백기가 있었다.
마흔이 넘어서 아이를 낳은 친구가 있어서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 늦둥이 딸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서야 꼬박꼬박 만난다. 목포에 한 명, 나머지 둘은 순천에 살다 보니 전남 동부에서 만날 때가 많다. 그런데도 목포 친구는 먼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다. 예전에는 이름난 관광지를 둘러보고 찻집에 앉아 밀린 이야기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무조건 걷는다. 그 길이 유명한 둘레길이 아닌 한적한 시골길이나 골목길이어도 상관하지 않는다.
지난 2월의 임실 나들이에서는 가다가 길이 끊긴 적이 있다. 이정표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나뭇가지로 여러 겹 막아 놓아 지나갈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둘레길은 남의 선산으로 이어지고, 그 후손들이 야무지게 길을 막아 놓은 거더라. 고개를 숙이고 가시에 찔리며 겨우 통과하고 보니 이번에는 하루에 차가 몇 대밖에 지나지 않는 외진 마을이 나왔다. 택시를 불러도 30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히치하이킹하여 차 있는 곳까지 오고 보니 모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짜릿했다.
색다른 일을 하거나, 멋진 풍경 바라보지 않아도 그저 같이 걷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른다. 평소에는 셋뿐이라 외롭기도 했는데 사적 인원을 제한하는 코로나 상황에서는 톡톡히 덕 봤다. 오늘 먹은 보약으로 한 달을 잘 살아 내고 다음 달에 보자며 인사를 나눈다. 돌아오는 길이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