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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 51. 태진 그룹/입구/아침.
라면 등을 끓여 먹고 있는 시위대.
그 앞으로 차를 주차하는 준하.
준하, 차에서 내려 저벅저벅 시위대로 걸어간다.
준하를 보는 사람들.
씬 52. 로펌/황변호방/낮.
안을 기웃대는 김변, 최변.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책상에 앉아있는 황변과 정장.
심각하고 삼엄해 보이는 분위기.
앞을 지나다가 두 변의 뒤에 와서 서는 사무장.
사무장: 뭔 일이에요?
김변: 서선배가 노조한테 최 회장 별장을 가르쳐 줘서 지금 한바탕 난리래요.
사무장: 미쳤네. 완전히 미쳤어요.
최변: (부러운 듯) 어쨌든 서 선배 멋지다. 그렇게 안 봤는데.
확 열리는 문.
급히 사무장의 서류를 가져다 뒤적이는 시늉을 하는 김변, 최변.
황변호, 정장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정장,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황변.
황변: (사무장에게) 서준하 지금 어디 있어요? 당장 전화 해 보세요.
사무장: 지금요? (눈치 보다가 핸드폰 단축키를 누르는)
준하E: 여보세요.
사무장: (서둘러 끊으며) 수화기가 꺼져 있다는 대요. 지금.
황변: (할 수 없다는 듯) 연락 오면 바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이번 일에서 손 떼라고 전해요.
방으로 쾅! 들어가 버리는 황변.
씬 53. 로펌/로비/낮.
로비 적당한 구석에서 전화를 하는 사무장.
사무장: 대체 어딥니까? 지금.
씬 54. 준하의 차/낮.
준하: 회사로 들어가는 길인데요.
씬 55. 로펌. 로비/낮.
사무장: 여기 올 생각 말고 전화기나 꺼놔요. 당장. (황변호가 지나가자) 이만 끊어요.
황변과 목례하고 밖으로 나가는 사무장.
씬 56. 준하의 차/낮.
전화를 끊는 준하, 괜히 피식 웃음이 나는.
유턴해서 시원하게 달리는 준하의 차.
씬 57. 신영아파트/경비실/저녁
벌써 졸고 있는 경비.
소주랑 간단한 안주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입구에 서있는 사무장,
경비실 작은 창을 두드리며 씩 웃어 보이는 사무장.
씬 58. 법정/낮.
변호인 석의 준하.
준하: 일심 재판부에서 받아들인 살해 계획과 살인에 대해 이의 제기합니다.
대기석에서 서류를 넘기던 황변호, 준하를 본다.
판사도 준하를 뜨악해서 본다.
준하를 한번 힐끔 보고 다시 서류로 돌아가는 박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신영.
증인석의 경비.
준하: 증인은 일심에서 사건 당일 새벽에 외부 출입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죠?
경비: 자정에 교대해서 아침 8시까지 근무합니다.
준하: 사건 당일 날도 같은 시간에 근무했습니까?
경비: 그날은 제가 상가 집에 갔다 오느라고 새벽 3시쯤인가 교대했습니다.
준하: 그렇다면 새벽 3시 이전 출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겠네요?
박검: 이의 있습니다. 성종훈의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30분 사이 입니다. 새벽 3시 이전의 출입 여부는 본 재판과 무관한 일입니다.
준하: 제3자가 범인이면 미리 침입해 한 두 시간 후 살해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판사: 이의 기각합니다. 변호인 계속하세요.
준하: 신고를 받고 그곳에 갔었다고 했는데, 어떤 신고였죠?
경비: 밤새도록 물소리가 나서 시끄럽다고 했습니다.
준하: 새벽 3시 이후가 아니라 ‘밤새도록’ 이라고 했단 말이죠?
경비: 네.
준하: 이상입니다.
판사: 반대 심문 하세요.
박검: 발견 당시 피고인이 증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까?
경비: 아니오.
박검: 만약 외부 침입자가 피고인의 남편을 살해했다면 증인에게 도움을 청했겠죠?
준하: 이의 있습니다.
박검: (자르며) 이상입니다.
증인석의 증인, 30대 의사.
의사: 신경외과 전문읩니다.
준하: 죽은 성종훈과 같은 병원에 근무하셨죠?
의사: 네.
준하: 부검의 소견서를 보면 죽은 성종훈의 위 내에서 다이어드팜 성분이 발견됐는데, 다이어드팜에 대해 아십니까?
의사: 신경안정제나 수면제 등에 들어있는 성분입니다.
준하: 그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복용하신 적이 있습니까?
의사: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가끔 복용하기도 합니다.
준하: 죽은 성종훈도 그 약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었겠죠?
박검: 이의 있습니다.
판사: 변호인. 유도심문은 삼가 하세요.
준하: 알겠습니다. (다시 의사에게) 일반인이 그 성분의 약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까?
의사: 구할 수는 있지만 신분증 확인 등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준하: 증인은 제 부탁으로 부검의 소견서를 다 검토 하셨습니다.
의사: 네.
준하: 성종훈의 몸엔 경동맥을 포함한 다섯 군데에 상흔이 있습니다. 상흔엔 어떤 특징이 있죠?
의사: 모두 손상됐을 때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 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준하: 성종훈에 비해 약자이면서 초범인 피고인이 찾아서 찌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까?
의사: 제가 비록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소견을 가지고 볼 때, 처음 사람의 몸을 대하는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준하: 범인이 초범일 확률이 적다는 말씀이시죠.
의사: 네.
준하: 이상입니다.
판사: 반대 심문하세요.
박검: (자리에서 일어서 의사 앞에 서며) 외람된 질문이지만 박사님께서 어떤 사람을 죽인다고 가정했을 때 물론 지금처럼 초범일 경웁니다. 박사님께서는 상대의 어느 부분을 공략하시겠습니까?
준하: 이의 있습니다.
판사: 반드시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 물론 급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가 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보통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경동맥을 정확히 찾아 찌른 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박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외과 간호사라면 어떻습니까.
서기에게 서류 한 부를 내미는 박검.
박검: 피고인 이신영이 92년 3월부터 95년 11월까지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춘천소재 건민외과의 근무 기록 사본입니다. 이상입니다.
준하를 보는 의사.
실수를 자책하듯 눈을 감았다가 신영을 보는 준하.
(인서트)
욕실에서 피범벅이 된 채 실랑이를 벌이는 종훈과 신영.
미동도 없이 그대로인 신영.
방청석에서 준하를 보는 사무장.
증인석의 30대 여약사에게 기록을 제시하는 박검.
박검: 증인이 기록한 이 장부에 의하면 1월 30일 주민등록번호 711204-2067510 이 신영에게 신경안정제를 판매했는데, 맞습니까?
여약사: 네.
박검: 어떤 성분의 신경안정제였죠?
여약사: 다이어드팜입니다.
고개를 드는 준하.
박검: 그 성분의 약을 가령 3~4알 정도 투여하면 어떤 상태가 됩니까?
여약사: 그 정도면 의식을 잃게 돼요.
박검: 저항할 수 없는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된단 말이죠?
여약사: 네.
박검: 약을 산 사람이 피고인 맞습니까?
여약사: 맞습니다.
검사석으로 돌아가 서기에게 서류 한 부를 건네는 박검.
검사: (짧게 준하를 보다가) 사건 하루 전인 2월 4일 받은 피고인의 임신 중절 수술 기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합니다.
놀란 얼굴로 짧게 신영을 보는 준하, 급히 일어선다.
준하: 이의 있습니다. 본 재판은 성종훈의 사망에 관련된 재판이지 피고인의 사생활을 들추는 재판이 아닙니다.
박검: 피고인의 살인 계획성을 입증할 중요한 자료입니다.
판사: 이의 기각합니다. 계속하세요.
박검: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증오를 가진 남자의 아이가 필요했을까요? 피고인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낮에는 아이를 죽이고, 밤에는 남편을 죽였습니다. 이상입니다.
(인서트)
욕조에 거꾸로 떠있는 남자의 시신.
허한 표정의 신영, 눈을 감는.
판사: 반대 심문 있어요?
신영을 보고 있는 준하, 자리에서 일어서는,
준하: 이신영씨.
판사: 피고인이라고 부르세요.
준하: 피고인.
신영: …….
준하: 피고인은 지난 2월 5일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독극물과 메스로 남편을 죽이고 도주 하려다 붙잡혔어요. 피고인은 남편을 메스로 찌른 후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중에 검거됐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입니까?
(인서트)
불안한 얼굴로 세면대에서 피 묻은 자신을 닦아내고 있는 신영.
그대로 앉은 신영.
준하: (검사보며) 맞죠?
박검: (수긍하는)
준하: (신영 보다가 판사 보며) 사건 현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사건 현장과 수사 기록 어디에도 범행 당시 입었다는 피고인의 옷가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준하를 보는 박검.
준하: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에서 강압에 못 이겨 허위자백 한 거예요. 맞죠?
신영: …….
준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피고인이 남편 성종훈을 죽였습니까?
신영: …….
보는 재판부와 박검, 방청석의 사무장.
변호인 대기석의 황변과 김변, 최변들.
준하: 죽이지 않았죠?
신영: …….
준하: (다소 흥분한) 죽이지 않았죠?
(인서트)
화장대에 멍하게 앉아있는 신영.
신영: …….
준하: 대답해요 이신영씨.
박검: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아직 채택되지 않은 증거물을 앞세워 본 검사와 재판부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판사: 변호인, 중단하세요. 다음 공판은 2주 뒤 8월 17일 오후 2시에 하겠습니다.
신영을 보는 준하.
준하를 보는 황변호와 김변들.
뒤늦게 준하를 보는 신영.
씬 59. 로펌/저녁.
불편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는 준하, 사무장.
게시판 앞을 지나는데 준하에게 축하 인사하는 사람들.
게시판 앞에서는 사무장과 준하.
연수 일정이 앞 당겨졌다.
반갑지 않은 얼굴의 준하.
씬 60. 로펌/로비/저녁.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소파로 가는 사무장.
각자 음료수를 든 김변, 최변이 사무장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
최변: 안 죽인 건 확실한 거예요?
사무장: 거야 본인이 입 다물고 있는데 누가 안대요?
최변: 난 아무래도 이신영이가 범인 같아.
김변: 살해 동기가 없잖아. 정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변: 그럼 정부나 재산 있으면 죽여도 된단 말이야?
김변: 그럴 수도 있단 얘기지.
최변: 그럴 수 있긴 뭐가 그럴 수 있어.
김변: 왜 갑자기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또?
최변: 야, 꼬리 잡힐 짓을 했잖아 네가.
이어지는 실랑이.
가운데서 황당하게 보는 사무장.
한참을 하다 문득 사무장을 의식하고 멈추는 두 변호사.
사무장: 뭐 하는 거래요 지금. 꼭 부부싸움 하는 거 마냥.
당황스런 기색의 두 변.
사무장이 먼저 웃으면 따라 웃으며 어색하게 마무리 하는.
김변: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오늘 커피 맛있네요.
사무장: (허허 웃으며) 그거 콜라에요.
잠시……. 큰 소리로 껄껄 웃는 두 변.
같이 웃는 사무장.
씬 61. 로펌/황변방/저녁.
서류를 책상에 탁탁 쳐서 정리하고 있는 황변.
황변: 다른 거 없어. 지금 하는 국선 빨리 처리해서 넘기고 연수 뜰 준비하라고.
준하: 일정을 좀 미뤘으면 합니다. 예정보다 너무 앞 당겨졌어요.
황변: 우리 쪽에 맞춰 움직이는 일정 아니야. 서준하, 딱 보면 몰라? 그 여자가 죽였어. 죽여 놓고 할 말 없으니까 쇼하는 거라구. 무모하게 덤비지 말고 범행 시인하고 선처 부탁해. 그게 그 여자 돕는 길이야.
준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황변: 잔소리 말라고? 어쨌든 재판 길게 끌어서 연수 포기할 거 같으면 미리 말하라고. 서준하 빠진다면 가겠다는 사람 줄을 섰으니까.
짧은 한숨을 뱉고 돌아서는 준하.
황변: 오늘부터 이 신영 건 판공비 결재 안 나니까 그런 줄 알아.
멈춰 섰다가 그냥 나가는 준하.
황변: (하던 일로 돌아가서는) 죽일 놈 보듯 그러지 마. 나도 국선 포함해서 착한 일 많이 하는 사람이야.
준하: (돌아보면)
황변: 제발 현실감을 좀 가져. 잘 하다가 요즘 왜 그래? 여름 다 지나 더위 먹었어?
나가버리는 준하.
황변: (뒤에 대고) 돈 되는 일 좀 하자. 응?
씁쓸하게 보는 황변.
씬 62. 접견실/저녁.
마주 앉은 준하와 신영.
강하게 신영을 보는 준하.
눈 맞추지 않는 신영.
두 사람을 보다가,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 여교도1.
신영을 보며 준하, 문이 닫힘과 동시에,
준하: 이신영씨가……. 죽였어요?
신영: (본다.)
준하: 죽였어요?
신영: (여전히)
준하: 정말 죽인 거면 죽였다고 말해요. 지금.
신영: (떨리는 눈으로 그렇지만 강하게 준하를 본다.)
말없이 보는 둘.
신영: 죽였어요.
준하: …….
신영: 그러니까 그만 와요. 이제.
보는 두 사람.
씬 63. 와인바/밤.
제법 고급스런 분위기의 바.
사무장,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스탠드의 준하를 보고 간다.
이미 취기가 도는 준하.
사무장: 웬일이래요? 이런 데로 다 부르시고.
준하: 오늘 사무장님 취하게 해 드리려구요.
사무장: 변호사님이 취하고 싶은 게 아니고요?
준하: (술을 따르며) 같이 일하면서 한 번도 사무장님 취한 걸 못 봤거든요.
사무장: (잔을 받으며) 선수가 링에서 쓰러지면 숟가락 놔야죠.
준하: (술을 따르며) 저 더 취하기 전에 부탁 하나 할게요. 이신영씨 수술한 병원 기록들 좀 다 찾아 주실래요?
사무장: 공술 없네.
다시 한 잔을 털어 넣는 사무장, 이상하다.
사무장: 마시던 술이 아니라 그런지 술인지 쥬슨지 시큼털털하네.
보는 준하.
씬 64. 포장마차/밤.
포장을 열고 들어오는 사무장과 준하.
아주머니와 인사 나누며 자리를 잡는 사무장.
사무장: 사장님 여기 꽁치 고등어만 한 놈으로 한 마리 굽고, 소주 한 병 줘요.
준하의 잔을 채우는 사무장.
준하, 거침없이 들이붓는다.
사무장: (마시고는) 이제야 술맛이 나네.
준하: 그러게요.
사무장: (다시 채우며) 오늘 힘들었죠?
준하: 아니요. (또 마시고) 좋은데요. (취한 듯) 참, 제가 아까 병원 기록 부탁했나요?
한 잔을 더 마시고는 그대로 불판으로 푹 쓰러지는 준하.
놀란 사무장, 준하를 얼른 일으키고 손님들과 아줌마 의식하며.
사무장: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가 꽁친줄 아나, 불판으로 왜 겨올라가 겨올라가긴.
허허, 웃는 사무장.
준하, 다소 비틀대며 큰 소리로 웃는다.
사무장,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 등을 줍는 동안, 등받이 없는 원의자에 앉아있는 준하.
웃다가 어두워지는.
씬 65. 준하원룸/밤.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한쪽 귀퉁이가 떨어진 포스터를 보고 있는 준하.
씬 66. 교도소/거실/밤.
어두운 거실에 웅크리고 앉아 화집을 넘겨보는 신영.
문득 자신에게 화가 나는지 몇 장을 거칠게 넘기다가 탁 덮어 버린다.
씬 67. 준하원룸/밤/꿈.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준하.
여자의 그림자가 준하 곁을 맴돈다.
다가와 빠른 동작으로 준하의 심장에 칼을 꽂는다.
눈을 뜨는 준하.
눈앞에 있는 건……. 신영.
씬 68. 준하원룸/밤.
그대로 누운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준하.
이내 진정하고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머리맡에 놓인 신영의 화집을 보게 되는 준하.
몇 장 넘기는데 정사각형 종이가 준하 가슴위로 떨어지고 책 귀퉁이에 <또 울고 있다. 바보같이…….>라고 적힌 것이 눈에 들어온다.
씬 69. 농구구조물/새벽.
멀리 보이는 혼자 농구하고 있는 준하.
씬 70. 신영아파트/몽타주/아침.
열리는 현관문.
혈흔이 군데군데 희미하게 말라 있는 바닥을 훑는 시선.
(인서트)
들것에 실려 나오는 성종훈의 시신.
시선은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간다.
침대……. 신영과 성종훈의 결혼사진……. 화장대를 보는 시선.
(인서트)
화장대에 앉아있다 체포되는 신영.
다시 거실을 지나 욕실로 들어가는 시선.
욕조와 타일 바닥에 남은 혈흔들…….
(인서트)
피를 흘리며 욕실을 오가는 남자의 나신.
돌아보는 남자.
(F. O)
E: 준하의 휴대폰 멜로디.
(F. I)
지친 얼굴의 준하.
준하: 여보세요. 네.
씬 71. 산부인과/낮.
벽에 붙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는 사무장.
사무장: 기록들은 다 찾았는데, 살해 동기만 더 강해진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지금 어디예요?
씬 72. 욕실/낮.
준하: 화장실이요. 볼 일 보는 게 아니고 갇혔어요. 참……. 회사 들어가시면 저 연수 다음 기회에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황변호사님한테요. 그렇게 됐어요.
열리는 문.
지친 얼굴로 변기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받고 있는 준하.
씬 73. 신영아파트/엘리베이터/낮.
엘리베이터 안의 준하와 열쇠수리공.
준하를 위 아래로 훑으면 준하 역시 같이 훑는다.
다시 앞을 보는 둘.
열쇠 밤새 아르바이트하느라 잠도 못 잤는데 뭐 이깟 일에 전문 인력을 부르고 그러세요?
준하: 간단한 거였나 보죠.
씬 74. 신영의 아파트/거실/낮.
안으로 들어와 문손잡이 커버를 벗겨보는 준하.
뭔가 감 잡은 얼굴로 거실에 서 있는.
거실에 드리운 방범 창 그림자에 갇힌 듯 보이는 준하.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는 준하의 얼굴.
E: 소란한 법정의 소음.
씬 75. 법원/로비/낮.
걸어오는 준하,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 계단을 올라간다.
씬 76. 법정/낮.
증인석의 이모, 피고인석의 신영을 보며 글썽인다.
이모를 보는 신영.
준하: 피고인은 증인과 왕래가 잦았습니까?
이모: 띄엄띄엄 오곤 했어요. 지 남편한테 붙잡혀 끌려간 이후론 한 번도 못 봤고요.
준하: 그게 언제죠?
이모: 3년 전 언니 기일 부근이니까……. 97년 4월 15일쯤이요.
증인석의 산부인과 의사.
산부의: 97년 4월 16일입니다.
(인서트)
만신창이가 된 채 침상에 실려 빠르게 응급실로 들어가는 신영.
산부의 (E): 외부 충격에 의해 아이가 자연유산 됐고, 환자 상태가 너무 심해 외과로 트랜스퍼 시켰습니다.
준하: 낙태 시술하신 걸로 아는데 그 이유가 뭐였죠?
산부의: 산모가 임신 중인걸 모르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준하: 어떤 성분의 신경안정제였죠?
산부의: 다이어드팜입니다.
박검: 약을 복용한 사실을 확인하셨습니까?
산부의: 환자에게 들었습니다.
박검: 확인도 않고 시술했단 말입니까?
산부의: 이신영씨는 3년 전부터 제가 권유해서 그 약을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확인하는 절차는 필요 없었습니다.
증인석의 남자 의사.
남의 독방에 수감됐을 때 폐소공포 증세로 저희 병원으로 옮겨온 적이 있습니다.
준하: 폐소공포증은 어떻게 나타나는 증상이죠?
남자의사: 남의 쉽게 말하면 갇혀 있는 것에 대한 공포죠. 문이 닫혀 있는 것만으로 산소가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처음엔 잘 모르다가 한 두 시간이 지나면 괴로워지기 시작하고 일반적으로 서너 시간이면 의식을 잃기도 합니다.
준하: 그런 증상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남의 로 천천히 움직인다.
행렬 너머에 신영이 보이지 않자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준하.
잠시 엇갈려 다른 곳을 보다가 정면을 보면, 그곳에 두 사람이 서있다.
행렬이 빠지고, 길 가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 길로 섞여 들어오기 시작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있는 두 사람.
씬 100. 인사동/카페/낮.
가만히 커피를 마시는 신영,
탁자 옆에 세워둔 준하의 액자를 본다.
준하: 같이 일하던 동료 둘이 사무실을 새로 개업했어요.
말없이 각자 차를 마시는 둘.
준하: 어떻게……. 지냈어요?
신영: …….
준하: 잘 지냈어요?
신영: …….
준하: 대답 없는 건 여전하네요.
신영: 미안했어요……. 그때…….
준하: (쑥스럽게 웃으며) 뭐……. 그런 걸 다 사과하고 그래요……. 어쨌든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요.
신영: 오늘……. 처음 나왔어요. 바깥에
유리너머의 거리로 시선을 돌리는 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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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고 삼엄해 보이는 분위기.
앞을 지나다가 두 변의 뒤에 와서 서는 사무장.
사무장: 뭔 일이에요?
김변: 서선배가 노조한테 최 회장 별장을 가르쳐 줘서 지금 한바탕 난리래요.
사무장: 미쳤네. 완전히 미쳤어요.
최변: (부러운 듯) 어쨌든 서 선배 멋지다. 그렇게 안 봤는데.
확 열리는 문.
급히 사무장의 서류를 가져다 뒤적이는 시늉을 하는 김변, 최변.
황변호, 정장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정장,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황변.
황변: (사무장에게) 서준하 지금 어디 있어요? 당장 전화 해 보세요.
사무장: 지금요? (눈치 보다가 핸드폰 단축키를 누르는)
준하E: 여보세요.
사무장: (서둘러 끊으며) 수화기가 꺼져 있다는 대요. 지금.
황변: (할 수 없다는 듯) 연락 오면 바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이번 일에서 손 떼라고 전해요.
방으로 쾅! 들어가 버리는 황변.
씬 53. 로펌/로비/낮.
로비 적당한 구석에서 전화를 하는 사무장.
사무장: 대체 어딥니까? 지금.
씬 54. 준하의 차/낮.
준하: 회사로 들어가는 길인데요.
씬 55. 로펌. 로비/낮.
사무장: 여기 올 생각 말고 전화기나 꺼놔요. 당장. (황변호가 지나가자) 이만 끊어요.
황변과 목례하고 밖으로 나가는 사무장.
씬 56. 준하의 차/낮.
전화를 끊는 준하, 괜히 피식 웃음이 나는.
유턴해서 시원하게 달리는 준하의 차.
씬 57. 신영아파트/경비실/저녁
벌써 졸고 있는 경비.
소주랑 간단한 안주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입구에 서있는 사무장,
경비실 작은 창을 두드리며 씩 웃어 보이는 사무장.
씬 58. 법정/낮.
변호인 석의 준하.
준하: 일심 재판부에서 받아들인 살해 계획과 살인에 대해 이의 제기합니다.
대기석에서 서류를 넘기던 황변호, 준하를 본다.
판사도 준하를 뜨악해서 본다.
준하를 한번 힐끔 보고 다시 서류로 돌아가는 박검.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신영.
증인석의 경비.
준하: 증인은 일심에서 사건 당일 새벽에 외부 출입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죠?
경비: 자정에 교대해서 아침 8시까지 근무합니다.
준하: 사건 당일 날도 같은 시간에 근무했습니까?
경비: 그날은 제가 상가 집에 갔다 오느라고 새벽 3시쯤인가 교대했습니다.
준하: 그렇다면 새벽 3시 이전 출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겠네요?
박검: 이의 있습니다. 성종훈의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30분 사이 입니다. 새벽 3시 이전의 출입 여부는 본 재판과 무관한 일입니다.
준하: 제3자가 범인이면 미리 침입해 한 두 시간 후 살해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판사: 이의 기각합니다. 변호인 계속하세요.
준하: 신고를 받고 그곳에 갔었다고 했는데, 어떤 신고였죠?
경비: 밤새도록 물소리가 나서 시끄럽다고 했습니다.
준하: 새벽 3시 이후가 아니라 ‘밤새도록’ 이라고 했단 말이죠?
경비: 네.
준하: 이상입니다.
판사: 반대 심문 하세요.
박검: 발견 당시 피고인이 증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까?
경비: 아니오.
박검: 만약 외부 침입자가 피고인의 남편을 살해했다면 증인에게 도움을 청했겠죠?
준하: 이의 있습니다.
박검: (자르며) 이상입니다.
증인석의 증인, 30대 의사.
의사: 신경외과 전문읩니다.
준하: 죽은 성종훈과 같은 병원에 근무하셨죠?
의사: 네.
준하: 부검의 소견서를 보면 죽은 성종훈의 위 내에서 다이어드팜 성분이 발견됐는데, 다이어드팜에 대해 아십니까?
의사: 신경안정제나 수면제 등에 들어있는 성분입니다.
준하: 그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복용하신 적이 있습니까?
의사: 업무에 시달리다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가끔 복용하기도 합니다.
준하: 죽은 성종훈도 그 약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었겠죠?
박검: 이의 있습니다.
판사: 변호인. 유도심문은 삼가 하세요.
준하: 알겠습니다. (다시 의사에게) 일반인이 그 성분의 약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까?
의사: 구할 수는 있지만 신분증 확인 등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준하: 증인은 제 부탁으로 부검의 소견서를 다 검토 하셨습니다.
의사: 네.
준하: 성종훈의 몸엔 경동맥을 포함한 다섯 군데에 상흔이 있습니다. 상흔엔 어떤 특징이 있죠?
의사: 모두 손상됐을 때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 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준하: 성종훈에 비해 약자이면서 초범인 피고인이 찾아서 찌를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까?
의사: 제가 비록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소견을 가지고 볼 때, 처음 사람의 몸을 대하는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준하: 범인이 초범일 확률이 적다는 말씀이시죠.
의사: 네.
준하: 이상입니다.
판사: 반대 심문하세요.
박검: (자리에서 일어서 의사 앞에 서며) 외람된 질문이지만 박사님께서 어떤 사람을 죽인다고 가정했을 때 물론 지금처럼 초범일 경웁니다. 박사님께서는 상대의 어느 부분을 공략하시겠습니까?
준하: 이의 있습니다.
판사: 반드시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사: 물론 급소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가 의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보통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 놓였을 때 경동맥을 정확히 찾아 찌른 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박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외과 간호사라면 어떻습니까.
서기에게 서류 한 부를 내미는 박검.
박검: 피고인 이신영이 92년 3월부터 95년 11월까지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춘천소재 건민외과의 근무 기록 사본입니다. 이상입니다.
준하를 보는 의사.
실수를 자책하듯 눈을 감았다가 신영을 보는 준하.
(인서트)
욕실에서 피범벅이 된 채 실랑이를 벌이는 종훈과 신영.
미동도 없이 그대로인 신영.
방청석에서 준하를 보는 사무장.
증인석의 30대 여약사에게 기록을 제시하는 박검.
박검: 증인이 기록한 이 장부에 의하면 1월 30일 주민등록번호 711204-2067510 이 신영에게 신경안정제를 판매했는데, 맞습니까?
여약사: 네.
박검: 어떤 성분의 신경안정제였죠?
여약사: 다이어드팜입니다.
고개를 드는 준하.
박검: 그 성분의 약을 가령 3~4알 정도 투여하면 어떤 상태가 됩니까?
여약사: 그 정도면 의식을 잃게 돼요.
박검: 저항할 수 없는 완전 무방비 상태가 된단 말이죠?
여약사: 네.
박검: 약을 산 사람이 피고인 맞습니까?
여약사: 맞습니다.
검사석으로 돌아가 서기에게 서류 한 부를 건네는 박검.
검사: (짧게 준하를 보다가) 사건 하루 전인 2월 4일 받은 피고인의 임신 중절 수술 기록을 증거자료로 제출합니다.
놀란 얼굴로 짧게 신영을 보는 준하, 급히 일어선다.
준하: 이의 있습니다. 본 재판은 성종훈의 사망에 관련된 재판이지 피고인의 사생활을 들추는 재판이 아닙니다.
박검: 피고인의 살인 계획성을 입증할 중요한 자료입니다.
판사: 이의 기각합니다. 계속하세요.
박검: 살인을 저지를 정도의 증오를 가진 남자의 아이가 필요했을까요? 피고인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낮에는 아이를 죽이고, 밤에는 남편을 죽였습니다. 이상입니다.
(인서트)
욕조에 거꾸로 떠있는 남자의 시신.
허한 표정의 신영, 눈을 감는.
판사: 반대 심문 있어요?
신영을 보고 있는 준하, 자리에서 일어서는,
준하: 이신영씨.
판사: 피고인이라고 부르세요.
준하: 피고인.
신영: …….
준하: 피고인은 지난 2월 5일에 자신의 아파트에서 독극물과 메스로 남편을 죽이고 도주 하려다 붙잡혔어요. 피고인은 남편을 메스로 찌른 후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중에 검거됐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입니까?
(인서트)
불안한 얼굴로 세면대에서 피 묻은 자신을 닦아내고 있는 신영.
그대로 앉은 신영.
준하: (검사보며) 맞죠?
박검: (수긍하는)
준하: (신영 보다가 판사 보며) 사건 현장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출합니다. 사건 현장과 수사 기록 어디에도 범행 당시 입었다는 피고인의 옷가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준하를 보는 박검.
준하: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에서 강압에 못 이겨 허위자백 한 거예요. 맞죠?
신영: …….
준하: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피고인이 남편 성종훈을 죽였습니까?
신영: …….
보는 재판부와 박검, 방청석의 사무장.
변호인 대기석의 황변과 김변, 최변들.
준하: 죽이지 않았죠?
신영: …….
준하: (다소 흥분한) 죽이지 않았죠?
(인서트)
화장대에 멍하게 앉아있는 신영.
신영: …….
준하: 대답해요 이신영씨.
박검: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아직 채택되지 않은 증거물을 앞세워 본 검사와 재판부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판사: 변호인, 중단하세요. 다음 공판은 2주 뒤 8월 17일 오후 2시에 하겠습니다.
신영을 보는 준하.
준하를 보는 황변호와 김변들.
뒤늦게 준하를 보는 신영.
씬 59. 로펌/저녁.
불편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는 준하, 사무장.
게시판 앞을 지나는데 준하에게 축하 인사하는 사람들.
게시판 앞에서는 사무장과 준하.
연수 일정이 앞 당겨졌다.
반갑지 않은 얼굴의 준하.
씬 60. 로펌/로비/저녁.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소파로 가는 사무장.
각자 음료수를 든 김변, 최변이 사무장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
최변: 안 죽인 건 확실한 거예요?
사무장: 거야 본인이 입 다물고 있는데 누가 안대요?
최변: 난 아무래도 이신영이가 범인 같아.
김변: 살해 동기가 없잖아. 정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변: 그럼 정부나 재산 있으면 죽여도 된단 말이야?
김변: 그럴 수도 있단 얘기지.
최변: 그럴 수 있긴 뭐가 그럴 수 있어.
김변: 왜 갑자기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또?
최변: 야, 꼬리 잡힐 짓을 했잖아 네가.
이어지는 실랑이.
가운데서 황당하게 보는 사무장.
한참을 하다 문득 사무장을 의식하고 멈추는 두 변호사.
사무장: 뭐 하는 거래요 지금. 꼭 부부싸움 하는 거 마냥.
당황스런 기색의 두 변.
사무장이 먼저 웃으면 따라 웃으며 어색하게 마무리 하는.
김변: (어색하게 허허 웃으며) 오늘 커피 맛있네요.
사무장: (허허 웃으며) 그거 콜라에요.
잠시……. 큰 소리로 껄껄 웃는 두 변.
같이 웃는 사무장.
씬 61. 로펌/황변방/저녁.
서류를 책상에 탁탁 쳐서 정리하고 있는 황변.
황변: 다른 거 없어. 지금 하는 국선 빨리 처리해서 넘기고 연수 뜰 준비하라고.
준하: 일정을 좀 미뤘으면 합니다. 예정보다 너무 앞 당겨졌어요.
황변: 우리 쪽에 맞춰 움직이는 일정 아니야. 서준하, 딱 보면 몰라? 그 여자가 죽였어. 죽여 놓고 할 말 없으니까 쇼하는 거라구. 무모하게 덤비지 말고 범행 시인하고 선처 부탁해. 그게 그 여자 돕는 길이야.
준하: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황변: 잔소리 말라고? 어쨌든 재판 길게 끌어서 연수 포기할 거 같으면 미리 말하라고. 서준하 빠진다면 가겠다는 사람 줄을 섰으니까.
짧은 한숨을 뱉고 돌아서는 준하.
황변: 오늘부터 이 신영 건 판공비 결재 안 나니까 그런 줄 알아.
멈춰 섰다가 그냥 나가는 준하.
황변: (하던 일로 돌아가서는) 죽일 놈 보듯 그러지 마. 나도 국선 포함해서 착한 일 많이 하는 사람이야.
준하: (돌아보면)
황변: 제발 현실감을 좀 가져. 잘 하다가 요즘 왜 그래? 여름 다 지나 더위 먹었어?
나가버리는 준하.
황변: (뒤에 대고) 돈 되는 일 좀 하자. 응?
씁쓸하게 보는 황변.
씬 62. 접견실/저녁.
마주 앉은 준하와 신영.
강하게 신영을 보는 준하.
눈 맞추지 않는 신영.
두 사람을 보다가,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 여교도1.
신영을 보며 준하, 문이 닫힘과 동시에,
준하: 이신영씨가……. 죽였어요?
신영: (본다.)
준하: 죽였어요?
신영: (여전히)
준하: 정말 죽인 거면 죽였다고 말해요. 지금.
신영: (떨리는 눈으로 그렇지만 강하게 준하를 본다.)
말없이 보는 둘.
신영: 죽였어요.
준하: …….
신영: 그러니까 그만 와요. 이제.
보는 두 사람.
씬 63. 와인바/밤.
제법 고급스런 분위기의 바.
사무장,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스탠드의 준하를 보고 간다.
이미 취기가 도는 준하.
사무장: 웬일이래요? 이런 데로 다 부르시고.
준하: 오늘 사무장님 취하게 해 드리려구요.
사무장: 변호사님이 취하고 싶은 게 아니고요?
준하: (술을 따르며) 같이 일하면서 한 번도 사무장님 취한 걸 못 봤거든요.
사무장: (잔을 받으며) 선수가 링에서 쓰러지면 숟가락 놔야죠.
준하: (술을 따르며) 저 더 취하기 전에 부탁 하나 할게요. 이신영씨 수술한 병원 기록들 좀 다 찾아 주실래요?
사무장: 공술 없네.
다시 한 잔을 털어 넣는 사무장, 이상하다.
사무장: 마시던 술이 아니라 그런지 술인지 쥬슨지 시큼털털하네.
보는 준하.
씬 64. 포장마차/밤.
포장을 열고 들어오는 사무장과 준하.
아주머니와 인사 나누며 자리를 잡는 사무장.
사무장: 사장님 여기 꽁치 고등어만 한 놈으로 한 마리 굽고, 소주 한 병 줘요.
준하의 잔을 채우는 사무장.
준하, 거침없이 들이붓는다.
사무장: (마시고는) 이제야 술맛이 나네.
준하: 그러게요.
사무장: (다시 채우며) 오늘 힘들었죠?
준하: 아니요. (또 마시고) 좋은데요. (취한 듯) 참, 제가 아까 병원 기록 부탁했나요?
한 잔을 더 마시고는 그대로 불판으로 푹 쓰러지는 준하.
놀란 사무장, 준하를 얼른 일으키고 손님들과 아줌마 의식하며.
사무장: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가 꽁친줄 아나, 불판으로 왜 겨올라가 겨올라가긴.
허허, 웃는 사무장.
준하, 다소 비틀대며 큰 소리로 웃는다.
사무장,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 등을 줍는 동안, 등받이 없는 원의자에 앉아있는 준하.
웃다가 어두워지는.
씬 65. 준하원룸/밤.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한쪽 귀퉁이가 떨어진 포스터를 보고 있는 준하.
씬 66. 교도소/거실/밤.
어두운 거실에 웅크리고 앉아 화집을 넘겨보는 신영.
문득 자신에게 화가 나는지 몇 장을 거칠게 넘기다가 탁 덮어 버린다.
씬 67. 준하원룸/밤/꿈.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준하.
여자의 그림자가 준하 곁을 맴돈다.
다가와 빠른 동작으로 준하의 심장에 칼을 꽂는다.
눈을 뜨는 준하.
눈앞에 있는 건……. 신영.
씬 68. 준하원룸/밤.
그대로 누운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준하.
이내 진정하고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머리맡에 놓인 신영의 화집을 보게 되는 준하.
몇 장 넘기는데 정사각형 종이가 준하 가슴위로 떨어지고 책 귀퉁이에 <또 울고 있다. 바보같이…….>라고 적힌 것이 눈에 들어온다.
씬 69. 농구구조물/새벽.
멀리 보이는 혼자 농구하고 있는 준하.
씬 70. 신영아파트/몽타주/아침.
열리는 현관문.
혈흔이 군데군데 희미하게 말라 있는 바닥을 훑는 시선.
(인서트)
들것에 실려 나오는 성종훈의 시신.
시선은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간다.
침대……. 신영과 성종훈의 결혼사진……. 화장대를 보는 시선.
(인서트)
화장대에 앉아있다 체포되는 신영.
다시 거실을 지나 욕실로 들어가는 시선.
욕조와 타일 바닥에 남은 혈흔들…….
(인서트)
피를 흘리며 욕실을 오가는 남자의 나신.
돌아보는 남자.
(F. O)
E: 준하의 휴대폰 멜로디.
(F. I)
지친 얼굴의 준하.
준하: 여보세요. 네.
씬 71. 산부인과/낮.
벽에 붙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고 있는 사무장.
사 KGB의 모습이 보인다.
창가에 쳐진 커튼이 바람에 날리고 창문이 조금 열려 있다. 조용해지는 주위.
KGB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바쁘게 전화기로 다가간다.
독불이를 보자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는 KGB.
피투성이가 된 채 살기 어린 눈빛을 띄우며,
침묵맨이 지나가는 수진의 엉덩이를 슬쩍 만지자,
수진이 짜증을 내며 침묵맨의 손을 탁 쳐낸다. 머쓱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허나 그 인
간이 이세상에 숨쉬고 있는 한은 늘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듯
싶습니다. 폐하께서 저의 마음을 헤아리신다면 그 인간에게 사약을
내리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왕비: 저런 망칙한 년! 일등공신에게 사약을 내리는 법이 어디 있더냐? 어째
네 년의 언행이 날이 갈수록 방자해 지느냐? 왕께서 저년만 싸고 도
시니까 그러는 것 아닙니까?
왕: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조용히들 하시오. 모두들 물러가
있거라. 박사와 내관은 여기 남으시오. 내 의논할 일이 있으니까.
맹대장을 불러오너라!
(모두들 퇴장하 는데 왕비는 자리에 그래로 앉아있다.)
6.경사.
왕: 왕비도 이제 일어나셔도 좋소.
왕비: 제가 있으면 안되는 자리 입니까.
왕: 그런건 아니지만...
왕비: 그런게 아니라면 있어도 무방하다는 얘기로 알겠습니다.
왕: 허어, 왕비!
(이때 맹대장 등장한다.)
맹대장: 부르셨습니까? 대왕폐하
왕: 어서 오시오, 자. 모두 이리들 앉으시오.
(왕비는 왕 옆에 버티고 앉아있고 나머지 사람들 왕앞에 자리잡고 앉는다.)
왕: 의논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시간 끌지 말고 빨리빨리 의견들 내
놓으시오. 먼저 홍동지 문젠데 그 놈을 어찌 했으면 좋겠소?
내관: 능지처참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박사 누가 능지처참을 한단말이오? 그 놈의 힘이 천하장산데 어떻게 손을
대겠소?
왕 맹대장 생각은 어떤가?
맹대장: 이번일이 모두 저의 불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엎드려 사죄드리겠습
니다.
왕: 사죄 같으거 필요없고 어서 의견을 얘기해 보시오.
맹대장: 그놈이 다른 건 몰라도 저희 말은 잘 듣습니다. 그러니 잘 타일러서
자기 살던 산속으로 도로 돌려보내는 게 좋을듯 싶습니다.
박사: 다시 이리로 찾아 오면 큰일 아닌가?
왕: 그렇지. 그러면 큰일이지.
왕비: 답답들 합니다. 맹대장은 어찌하다 그를 알게 되었는가?
맹대장 지난 겨울 저희 패거리들이 몸 눕힐 곳이 없어 헤메던 중 산 속에서
황소만한 호랑이를 만났읍죠. 그놈은 서두는 기색도 없이 슬금슬금 저
희들 주변을 돌면서 킁킁 냄새를 맡더군요. 모두을 얼이 빠져 도망도
못가고 싸워볼 엄두도 못내고 두 다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지요. 그
놈은 재간이 옆으로 다가 가더니 어흥 소리를 한번 지르고는 그대로
앞발을 들어 달려들더군요.그 순간이엇습니다. 난데 없이 허공중에 뭐가
나타나더니만 호랑이의 턱주가리를 퍽 소리가 나게 내지르더군요. 호
랑이라는 놈은 소리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그자리에 픽 쓰러지더니
묽은 똥을 찔끔싸고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얼결에 보니 사람인지 짐
승인지 알수 없느 것이 숨을거둔 호랑이 옆에 떡 버티고 섰는데 이건 또
뭔가 싶더군요.
왕비: 그게 바로 홍동지였단 말이지?
맹대장: 그렇습니다.
왕비: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맹대장: 자세히 보니 짐승 같지는 않더군요.
왕비: 그러니까 그가 형체만 사람이지 실상은 산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얘
기지?
맹대장 예, 그때는 그랬지요.
왕비: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건가?
맹대장: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마는 어떻게 하다보니 그것과 함께 겨울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심성이 착해서인지 정이 그리웠는지 그저 기르는
개처럼 사람을 잘 따르고 또 그렇게 둔한것 같지도 않아 웬만한 건 한번
일러주면 다 알아먹더군요. 그러는 사이에 간단한 말도 가르치고 연장
사용하는 법도 가르쳤습죠. 그래서 이제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듣고 간단
한 의사 표현도 제법 하지요.
왕: 홍동지라는 이름은 무어야?
맹대장: 예, 저희들 꼭두각시 놀음에 홍동지라는 것이 있는데 이 친구 꼴이 그
비슷한데가 있어서 저희끼리 부르던 이름입지요.
왕비: 왕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왕: 무어 말이요?
왕비: 제 생각에는 홍동지를 잘 가르쳐 인간으로 만들면 쓸 데가 많을 것 같
은데 말입니다.
왕: 그런걸 어디다 쓴단 말이오?
왕비: 장차 영노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나와 나라를 휩쓸어 버릴지 누가 압
니까?
왕 박사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박사: 글쎄요. 누가 가르칠 사람이 있겠습니까?
왕비: 박사는 뭐 하는 사람입니까? 아는 것이 많으면 뭔가 남과 다른점이 있
어야지요.가르치기 어려운 사람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게 박사 아닙니까?
박사: 그놈이 힘이 그렇게 센데 인간의 지혜까지 생기면 장차 궁안에 두기
위험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왕비: 별 걱정을 다 하느구려. 박사는 지혜가 많아서 역모에 가담한 일이라도
있단 말이오?
박사: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왕비 (웃으며) 박사가 그 사람을 한번 잘 가르쳐 인간으로 만들어 보시라는
얘깁니다.
박사: 제게 그만한 능력이 있을지 걱정되옵니다.
왕비: 왕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왕: 글쎄요. 박사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왕비: 박사보다도 왕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죽여 없애자니 나라의 일등공신
이라 문제고, 궁안에 그냥 두자니 불안하고, 산회곡2
희곡
산문
고소설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