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31
중국의 천자를 낳은 춘천의 최고 명당 물로리 한천자묘
<인정이 낳은 중국 천자>
춘천의 지리지와 향토문화 자료집에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천자묘> 이야기가 있다. ‘한천자’의 ‘한’은 ‘크다[大]’라는 뜻의 우리 고유어이다. 한치[큰 고개, 높은 고개], 한밭[대전] 등처럼 ‘한’은 쓰인다. 천자(天子)는 중국에서 황제를 일컫던 용어이다. 그러니 ‘한천자’는 ‘중국의 천자’라는 뜻이다. ‘한천자’는 우리말과 한자가 결합하여 생긴 복합어이다. 당시 중국은 공자와 주자 같은 유학자를 배출한 문명국이며, 인구가 많아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중국의 천자가 된다는 사실은 엄청난 영예였다. 바로 이 무덤이 춘천과 홍천에 걸쳐 있는 가리산 아래 물로리에 있다. 그럼 한천자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야기 줄거리를 보자.
옛날 물로리에 한 머슴이 있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머슴의 주인집에 머물고자 청했다. 그러자 주인은 박정하게 스님을 내쫓았고, 머슴이 그를 방으로 모셨다. 스님은 머슴에게 달걀 두 개를 요구했고, 머슴이 달걀을 주다가 하나를 끓는 여물에 떨어뜨렸다. 스님은 두 개의 달걀을 들고 산으로 갔고, 머슴은 뒤를 따랐다. 달걀을 땅에 묻은 스님은 주문을 외웠고, 한 마리의 닭이 나와 울며 홰를 쳤으나 끝내 하나는 나오지 않았다. 스님이 자신의 도가 트지 않았다고 한탄하며 떠나자, 머슴은 그곳에 아버지 묘를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스님은 그 자리는 황금관에 투구를 쓴 자만이 묘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주인 산에 허락 없이 무덤을 쓴 머슴은 주인에게 혼날까 봐 중국으로 갔다. 마침 중국에서는 자식이 없는 천자가 죽었는데, 짚으로 된 북을 쳐서 소리를 내는 자가 뒤를 잇도록 했다. 머슴의 어린 아들이 북을 치자 소리가 났다. 그래서 머슴의 아들이 중국 천자가 됐다.
이야기가 길어서 많이 생략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복을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어두운 저녁에 갈 곳 없는 스님에게 인정을 베푼 머슴이었다. 이처럼 이 이야기의 또 하나 교훈은 사람은 인정을 베풀어야 복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용신을 불러 비를 내리는 터>
한천자묘에 아버지 무덤을 쓴 후 머슴의 아버지 시신은 용이 되어서 산을 뚫고 나가 물길을 만들었다. 용신(龍神)이 되어 하늘의 용궁으로 가서 물을 관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춘천 사람들은 하지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용신이 기거한다는 신연강 백로주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역시 용신이 산다는 대룡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그래도 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용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한천자 무덤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결국 한천자묘는 춘천사람들에게 뭇사람을 살리는 기우축제의 기원터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무덤을 돌보는 사람들>
사람들은 늘 부족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삼시 세끼 밥을 먹기가 쉽지 않았고, 몸은 아팠다. 그래서 사람들은 풍요와 건강을 누군가에게 기원하며 살았다. 그런데 <한천자묘>에 가서 벌초하고 소원을 빌면 이뤄졌다. 산삼을 캐고 싶으면 벌초하고 빌었고, 아프면 낫게 해달라고 벌초하고 빌었고, 시험이 있으면 붙게 해 달라고 벌초하고 빌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첩첩산중 외따로 있는 <한천자묘>까지 가서 빌었을까. 용신이 된 머슴의 아버지는 그렇게 춘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