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타박 / 이임순
엄마나 올케언니가 차려준 밥상에서 밥을 먹었다. 결혼하니 시댁 밥상 차리는 것은 내 차지였다. 요리를 못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눈여겨보고 곁에서 도와주면서 배울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는 시어머니와 우리 부부 세 사람이었다. 5일 장날이면 시어머니는 빠지지 않고 시장에 가셨다. 그리고 그날의 주메뉴는 당신이 하셨다. 밥은 시어머니 방에서 먹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가면 남편이 한마디 했다. 자기 엄마가 해준 음식은 맛있는데 내가 해준 것은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동물이 진화 과정을 걸쳐 변이되고 성장하듯이 음식도 경험을 토대로 맛을 우려내고 응용도 한다. 김치 한 번 담근 적이 없던 내가 차린 밥상이 맛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남편이 음식 타박을 하면 듣기가 싫었다. 가랑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수건으로 손을 닦는데 오늘 같은 날은 수제비를 먹어야 제격이라며 남편이 말문을 열었다. 먹기 전에 말을 해야지 잔소리를 왜 하느냐고 했다. 내가 해준 음식이 맛이 없어 그렇다는 것이었다. 듣기 좋은 노래도 삼 세 번이지 매번 그런 말을 할 거면 요리사와 결혼하지 왜 나하고 했느냐고 따졌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으니 숙련 기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이튿날 밥상머리에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맛있다고 하니 이제부터 아들 밥상 손수 차려주세요?”했다. 아무 말씀 없이 식사만 하시던 분이 숟가락을 놓으며 “배가 부르니 음식 타박하는 거다. 배가 고파 봐라 그런 말이 어디서 나온다냐.”하셨다.
남편의 음식 타박은 첫아이가 태어나 걸음마를 할 때까지도 간혹 이어졌다.
“당신은 맛없다고 하는데 우리 양리가 당신처럼 어른이 되면 내가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할 거요.” 하면서 시어머니 음식에 길들어진 남편의 입이 문제라고 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이가 바라보았다.
우리의 몸 중에 유일하게 혀는 뼈가 없다. 그러니 줏대도 없다. 길들이기 나름인 것이다. 누구나 자기 엄마가 해준 음식이 맛있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음식을 못 하는 것은 사실이다. 설사 맛있게 요리를 한다 해도 그이의 입맛에 맞을 리 없다. 30년 동안 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 맛에 남편 입이 순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주방에 들어가기가 두려운 적이 있었다. 아이들 간식을 내가 손수 만들어 먹이면서 거부반응이 차츰 줄어들었다. 서툴러도 자꾸 하다 보니 요령과 응용력도 생겼다. 주부 내공 45년이 넘은 지금은 웬만한 요리는 할 수 있고, 배추 200포기 김장쯤은 혼자 한다.
손자들이 왔다. 손녀가 주방으로 와서“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가리키며 “할머니, 냄새가 맛있어요, 무슨 국이에요?”하고 묻는다. “빨간 국.”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손자를 부른다. 집안으로 들어오던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이다.
녀석들이 맛있다고 해가면서 밥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운다. 남편이 “그렇게 맛있냐?” 하니 “할아버지는 날마다 잡수시니 할머니가 얼마나 맛있게 요리를 하는지 모르나 봐요.”하며 내 대변인처럼 말을 한다. 전에 구박받았던 것이 생각나“손자들이 내가 끓인 빨간 국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하요.”하고 쐐기를 박는다. 돼지고기 목살에 굵직하게 썬 무와 마늘과 양파, 대파를 듬뿍 넣어 푹 삶은 후 수육으로 먹는다. 국물에 배추김치와 콩나물을 넣고 끓인 다음 곱게 썬 방아잎을 넣어 상에 올리면 아이들 밥도둑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지 못한 남편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표정이다.
첫댓글 수육과 빨간 국 그 맛이 사뭇 궁금해지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손주들 하는 양이 마냥 예쁩니다.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반성했습니다. 저도 결혼 초창기에는 사장님과 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은 집사람 요리가 최고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들어 주시는 시어머니 말씀에 속이 다 풀리네요. 하하. 지금은 남편분도 선생님 요리가 최고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요즈음은음식 타박하지 않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첨엔 뭘 못했는데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 먹어서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이 선생님 손주가 너무 예쁩니다.
언제 봐도 예쁜 손주들입니다.
선생님의 손맛을 알아주는 손주들 덕분에 행복하시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때로는손주들 시집을 살기도합니다.
매사에 조심해야 하거든요.
주부 45년 내공이라....아직 28년차인 저는 그저 웃지요.
맛있게 먹어주는 손주들이 예쁘네요.
손주들 먹는 모습만 보아도 재미가 있습니다.
28년 주부내공이면 이젠 매사에 자신감도 생기셨겠어요.
하하.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빨간국 한번 끓여 보려고 끝 부분을 다시 읽었습니다. 맛있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저보다는 나으시네요.
전라도로 시집온 경상도 며느리가 만든 음식을 남한테 흉을 본 시어머니. 건너건너 제귀에 들어왔거든요. 정말 서운하더라구요. 지금도 안 잊혀진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솜씨 좋다고 자랑하시는 시어머니, 완전 이율배반적이랍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빨간 국' 맛있을 것 같아요.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말이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