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을 들은 목자들 / 눅 2:8-14
한 독실한 크리스천 부부가 휴가 때 베들레헴으로 성지순레를 떠났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전날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묶을 곳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한참이나 숙소를 찾아다니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 호텔 프런트로 갔다. 남편이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방 남은 것 있나요?’ ‘죄송합니다.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빈 방이 하나도 없습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제발 방 하나만 구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방이 없습니다.’ ‘이런 환장하겠네. 그런데 만일 내가 요셉이고 저기 밖에 차에 있는 여자가 마리아인데, 지금 그 여자가 아기를 한명 안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소?‘ 호텔 직원이 약간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방을 구해 드려야겠지요.’ 남편이 말했다. ‘그럼 됐네요. 장담하건데 그분들은 오늘 밤 절대 안 올 겁니다. 그러니 그분들 방을 우리에게 내 주시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장기려 박사님이 80회 생신을 맞이해서 자기 생애에 가장 기뻤던 일이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첫 아들을 낳았을 때 그렇게 기뻤다고 했다. 두 번째는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고 했다. 온 국민들이 좌절감에 빠져있을 바로 그 일제시대 때 한 청년의 승리의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것은 당연하겠지요. 장 박사만이 기뻤던 것이 아니다. 온 국민이 기뻐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라고 고백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그 소식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확신이 생겼을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기쁨이 너무 커서 앞의 두가지 기쁨은 하찮은 것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과 그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소식이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기쁜 소식이 되었나? 여러분은 지금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나? 세상 사람들은 어떤 소식을 듣기를 원하고 있나? 소망의 소식을 원한다.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소식을 원한다. 잘된다는 소식,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소식을 원한다. 로또 복권을 사놓고 기다리는 사람은 1등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기다린다. 결혼한 자녀가 있는 부모나 당사자들은 임신했다는 소식을 기다릴 것이고, 그 소식을 들으면 아마 엄청 기뻐하게 된다. 혹시나 해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사람은 아무런 병이 없다는 소식을 기다린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는 모두가 기쁘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당사자들에게 국한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은 없나? 예를 들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모두가 100살까지 산다고 하면 아마 기뻐하게 된다. 암을 정복하는 특효약을 발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한다. 그런데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다면 얼마나 기쁘겠나?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한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 그러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닌가? 절말 복된 소식이요, 빅뉴스이다. 전 세계에 긴급 타전을 할 뉴스거리이다.
그 옛날 2014년 전에 온 인류를 구원할 구주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TV도 없었다. 신문도 없었다. 오직 입소문을 타고 전달되던 시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아름다운 소식, 기쁜 소식이 온 인류에게 전달되어야 마땅할 소식을 제일 먼저 듣는 기쁨은 얼마나 크겠나? 그런데 아기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누가 제일 먼저 들었나? 들판에서 양을 치며 관리하던 목동들이었다. 베들레헴 근처 목장에서 양을 돌보던 목동들이 밤을 지새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났다. 목동들이 무서워 할 때 천사가 말하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좋은 소식일수록 남보다 빨리 들으면 좋지 않나? 기자들은 큰 뉴스거리를 발견하여 남들보다 더 빨리 전하려고 안간 힘을 쓴다. 그래서 기사를 다룰 때 보면 ‘특종기사’ 또는 ‘단독 입수’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특종기사가 될 만한 사건을 단독으로 입수하여 전한다면 그 메스컴은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인류에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인 구주 탄생의 소식을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셨나?
첫째, 목동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사람들이었다.
8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목자들이 잠을 자다가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다.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양떼를 지켰다고 했다. 지켰다고 하는 것은 잠을 자지 않고 자신들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밤에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은 졸지 않았다.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신다. 작은 일이라고 충성하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크게 사용하신다.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할 때도 아무리 먼저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 중에서 선택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안드레 등은 자기의 직업인 고기 잡는 일을 잘하던 사람들이다. 마태는 세관에서 열심히 세금을 거두어들이던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가 받나? 은혜를 사모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을 성실히 감당할 때이다.
둘째, 목동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
8절 말씀에서 목자들이 양떼를 지켰다는 것은 깨어 있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영광을 보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을 때 이들은 곧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칠 때 이미 이들은 무서워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말씀이 있어도 듣지 못한다. 왜냐하면 닫혀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깨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엄마들은 자기 자녀의 소리를 멀리서도 듣는다. 잠자는 중에도 듣는다. 깨어잇는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러주는 말씀도 잘 듣지만 여러 가지 일을 직접 보게 된다. 본문에 보면 목자들은 천군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송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천군천사들이 찬송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영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천군천사들의 소리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는 것과 천군천사들이 하는 것이 찬송인 것을 분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영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했다. 영적인 것은 영으로라야 알 수 있다. 영적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한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한다. 영적으로 생각한다. 목자들이 영적인 삶이 아니었다면 영광을 볼 수 없다. 천사들을 알 수 없다. 아무리 깨어있다 하더라도 영적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눅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던 어떤 제자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님을 몰라 본다. 그 상황을 15-16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엠마오로 내려간 것 자체가 이미 영적인 삶에서 멀어졌음을 말한환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순간적으로 영적인 삶을 저버릴 때 그들은 영적인 안목이 어두어져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목동들이 영적으로 깨어있었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고, 복된 소식을 제일 먼저 들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깨어있으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복된 소식을 먼저 듣는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목자들이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철야를 할 때 그들은 그냥 양떼만 지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근무를 했다. 오실 메시야를 생각하면서 근무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았다. 천사들이 소식을 전해주고 자신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까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면서 올라가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후 그들도 역시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서를 알고 있었고 예언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남의 목장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믿음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의 소망은 이 세상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다. 그 일이 천하든 귀하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충성심이 나타난다. 기업하는 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크리스천들은 성실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여러분,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1837년 6월, 18세의 나이로 영국 여왕이 된 소녀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여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소녀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가장 먼저 기도했다.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영국을 인도해 주시고 자신을 도와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이 소녀가 64년 동안 대영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이다. 영국은 이 기간에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때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도약과 의회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도덕성과 예절이 강조되는 문화가 확산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런 영광의 상징이었다. 어느 날 인도의 한 왕자가 빅토리아 여왕을 접견한 자리에서 ‘번영하고 있는 영국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능력은 어디에서 나옵니까?’라고 물었다. 미소를 띤 여왕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한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이것이 그 비결이지요.’ 그 책은 바로 성서였다. 영적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운영한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간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을부터 복을 받는다.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영적으로 늘 깨어있는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다.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기쁨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듣는 영광을 얻었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볼 수 있는 복을 받았다. 세상이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지고, 악해지고, 사람들의 성품은 날이 갈수록 난폭해져도,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을 늘 만나야 하고, 아름답고 기쁜 소식을 들을수 있어야 한다. 요즘같이 우울한 소식들이 많아 백성들이 안절부절 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삶에 얼마나 활력소가 되는지 모른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목자들처럼 살아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14 성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