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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북’에 등재 될 세계 최초 하모니카 연주〔백두산 천지〕
1년 365일 중에서 ‘천지’에 오를 수 있는 날은 평균 275일 정도라고 한다.
그중에서 40% 정도인 110일 정도만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도 안개나 구름 탓으로 수시로 변하는 날씨 때문이다.
연 365일의 110일은 30%가 되는데 이렇게 낮은 확률임에도 우리는 단 한번 도전에 성공을 했으니 참으로 운이 좋은 경우다.
그래서
“천지를 보는 것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
라고 한다.
가이드는
“20년 가이드 생활하면서 천지를 보기 위하여 9번 도전 끝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도 있어요!”
라고 한다.
위의 영상은 이렇게 등정에 성공한 ‘천지의 모습’이다.
오르는 도중에 비가 내리더니 정상에 도착하니 겨우 비는 멎었지만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강풍이 불어오고 손이 시렸다.
잔설이 쌓인 주변과 어울린 ‘천지’의 모습을 담기 위한 구름 같은 인파 때문에 촬영을 한 즉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13번째 해외여행은 ‘백두산’이다.
(2024년 5월 29일~6월 2일:4박5일)
그동안 다녀온 나라를 손꼽아 보았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스위스, 이탈리아, 호주, 뉴질랜드, 중국, 말레이시아, 일본, 라오스, 태국, 베트남, 필리핀, 북한(금강산) 까지 총 17개국을 다녀왔지만 아직 ‘백두산’을 보지 못하였다.
남한 제1봉인 한라산 정상을 비롯하여 제2, 제3봉인 지리산, 설악산과 덕유산, 태백산, 오대산, 남덕유산, 소백산, 가야산, 금원산, 치악산, 민주지산, 가지산, 일월산, 신불산, 천황산, 운문산, 팔공산, 황매산, 비슬산 등 남한에서 높이로 순위를 다투는 산의 정상은 대부분 정복을 했다.
그러나 한국 제일의 ‘백두산’은 못 가보았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정복을 해 보고 싶었다.
정년퇴임을 한 후에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하기 위하여 여유로운 일정을 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정이 허락하면 해외여행을 많이 하리라 평소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간사인가 보다.
아내가 어지럼증이 있는 관계로 혼자만 다니려니 미안해서 많이 망설였다.
게다가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겨서 몇 년 동안은 엄두를 못 내었다.
그런 어느 날
“××아빠를 보니 건강이 허락할 때 해외여행도 부지런히 다녀오세요!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가고 싶은 곳 다녀오세요!”
라고 한다.
아내의 말에 용기를 내어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백두산’에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천지’를 보지 못한 아내에게는 여행후기를 상세하게 기록하여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함께 할 동지를 구하였다.
다행히 대학동기 이군과 뜻이 맞아 4박5일 일정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알아본 여행사에서 진행되는 백두산 여행은 일기 관계로 전반기에는 4월에서 6월까지만 진행이 되고 있었다.
추진과정에서 [무 옵션에 쇼핑만 3회 있는 상품]과 [무 쇼핑에 옵션이 있는 상품]을 발견하였다.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해보니 쇼핑이야 내게 필요하지 않는 상품을 사지 않고 버티면 그만이지만 ‘옵션’이 많은 상품은 여행 기분을 잡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상품은 [무 옵션에 쇼핑 3회]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선택 관광’이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광고와 다른 내용으로 진행을 하면서도 여행사에서 이런 광고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4박 5일에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는 일정으로 ‘북파코스’와 ‘서파코스’의 각기 다른 코스로 ‘천지’를 2회 오르는 상품인데 가격이 74만 9천원이다.
그런데 연휴를 낀 이 상품의 다른 출발일 최고가격은 104만 9천원이다.
여행사에 확인해 보니
“항공요금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행사에서 확보한 표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가격 변동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라고 한다.
예약을 마친 후 어느 날 ‘최소출발인원 10명’이 되었나 확인을 위하여 여행사에 접속을 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안내가 있었다.
우리가 예약한 2일 후에 출발하는 동일 상품은 ‘선착순 할인 가격’으로 69만 9천원이다.
잽싸게 담당자와 통화를 하여 이 상품으로 일정을 변경하였다.
그런데 이 상품은 선착순 가격인 69만 9천원으로 최소 출발인원인 10명이 예약을 하고나니, 74만 9천원, 79만 9천원, 84만 9천원으로 가격이 점차 인상되더니 출발 전 최종 가격은 89만 9천원이다.
늦게 예약한 팀에 비하면 우리는 동일 상품을 20만원이나 싸게 이용한 셈이다.
이 여행사 상품을 이용하여 지난 2017년에 99만원으로 ‘캐나다와 미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도 선착순 6명 모집 가격으로 인원을 채우자 뒤에 예약하는 사람들은 동일 상품이지만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여행 중에는 숙박시설이나 음식 등 모든 면에서 똑같은 대접을 받으며 다녀 온 경험이 있었던 관계로 이번에도 아무런 부담 없이 이 상품을 선택하였다.
그렇게 예약을 하고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문자 1통이 왔다.
[백두산 서파코스는 현지 도로 공사 관계로 6월 15일 까지 등정이 불가하여 북파코스로만 2회 진행이 됩니다.]
라는 내용이다.
이 무슨 황당한 내용인가?
「1일차에 천지등정을 성공」해도 북파로만 2회 진행한다는 것인지?
성공을 했을 때 「대체 일정」이 있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일정을 연기하던지 다른 상품으로 교체를 하던지 확인하기 위하여 여행사와 연락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체일정을 확인하고 계획된 일정대로 진행을 하였다.
나중에 연락을 준 본사 팀장과 현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처음에 나와 통화한 남자 직원의 깔끔하지 못한 일 처리 때문에 오해를 한 것 같다.
나와 통화를 하면서도
“북파코스로만 2회 진행이 됩니다. 성공을 했을 경우에도 업그레이드 된 방법으로 진행이 됩니다!”
라고만 안내를 했지 대체 일정에 관한 얘기는 일체 없었다.
‘업그레이드 된 방법으로 등정을 한다는 것은 한번은 차를 타고 가고 한번은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뜻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었다.
타 여행사와의 경쟁을 위해서도 관계자 모두가 확실하게 여행 상품 내용의 숙지가 필요할 것 같다.
당초 이 상품을 예약한 것은,
1) 북파와 서파 양쪽 코스로 등정을 하므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하기 위함이었고
2)「노옵션」으로 부담 없이 진행된다는 여행사 [여행포인트] 안내를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파코스를 체험하기 위하여 위약금을 부담하면서 까지 일정을 바꾸기 싫어서 그대로 진행을 하였다.
▶ 1일차(29일-수)
Ktx 시간이 맞지 않아 밤 11시 20분에 출발하는 심야리무진 버스를 이용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다.
시간이 되어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다.
비행경로를 확인하니 인천에서 중국 ‘산둥반도’ 앞바다를 지나 ‘장춘 공항’으로 가고 있다.
북쪽 영공을 직진하여 통과하지를 못해 우회해서 비행을 하니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셈이다.
비행 중에 중식이 제공되었다.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라서 그런지 비행 중에 제공되는 식사가 달라진 것 같다.
예전 기억으로는 승무원이
“비빔밥과 양식 중 뭘 드릴까요?”
라고 선택을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번에 보니 같은 용기에 밥과 반찬 그리고 빵이 함께 제공되어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대한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기내식의 차이점인가?
이륙 후 실제 비행시간은 1시간 40분이 소요되었지만 입국 수속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목적지 ‘장춘 공항’에 도착하니 인천에서 쾌청하던 날씨가 이곳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백두산 관광을 위해서 중국에 도착하는 곳은 여러 곳이 있다.
‘백두산’까지 가장 빠른 코스를 택하려면 ‘연길 공항’을 이용하면 된다.
이곳은 2박 3일 코스로 주변 관광을 하지 않고 백두산 위주로 관광을 할 때 주로 이용한다.
장춘 공항은 백두산 등정의 베이스 캠프격인 ‘이도백하’까지 5시간 정도 걸리지만 가곡 ‘선구자’의 무대인 ‘일송정’과 ‘해란강’,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는 ‘서시’의 시인 윤동주의 고향 ‘명동촌’ 관광,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가장 짧은 거리에 위치한 중·조 국경지대인 '두만강강변공원'등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이 코스를 택하였다.
그런데 5시간이 소요된다지만 우리나라 같았으면 훨씬 더 단축이 된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는 관광객의 안전을 최우선하여 차량의 속도제한을 버스의 경우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80km, 그 외 다른 도로는 60km로 제한을 하고 있다.
승용차는 버스보다 20km를 더 허용하니 도로에서 버스는 엉금 엄금 기는데 비하여 승용차는 쌩쌩 추월을 하여 잘도 달리고 있다.
기사들은 제한 속도를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으니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이런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본받아야 할 제도라고 생각이 된다.
조선족들은 중국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가능하고 수입이 좋으니 ‘가이드’의 인기가 굉장하다.
그래서 2개 국어를 동시에 구사해야 하는 선발 시험의 경쟁이 엄청 치열하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의 토지는 모두가 국가소유라고 한다.
개인은 능력에 따라 임대료를 내고 경작을 한다.
노동력이 있는 집에서는 많은 땅을 임대하여 경작하고 일손이 적은 집은 작은 땅을 임대해서 경작을 하니 여기에서 빈부의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토지는 국가소유지만 주택 같은 건물은 개인 소유다.
점유하고 있는 토지의 임대료는 물론 개인이 부담한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열심히 살펴보았다.
고속도로는 포장이 잘 되어 있었지만 지방도나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는 아직도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다.
때마침 내리는 비에 도로 군데군데 파인 웅덩이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지방도는 물론이고 마을 안길이나 웬만한 농로도 모두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는 우리와 대비가 되었다.
아직도 차량 보유 가구가 많지 않은 탓에 고속도로마저 한산하여 어쩌다가 한·두 대씩 오가는 차를 볼 수 있었다.
차창밖에는 끝이 없이 들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만주벌판’은 정말 광활하였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은 없다지만
‘삼국통일의 주체가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되었으면 이 많은 땅도 주인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들판이 워낙 넓다가 보니 대부분이 논이고 밭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같이 경사가 심한 것이 아닌 논 보다는 살짝 위치가 높은 논 같은 밭이 대부분이다.
산자락에 붙어있는 계단식 다락 논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볼 수가 없다.
4박 5일 일정 중 이동을 하면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논이나 밭은 볼 수가 없었다.
농토를 만들 땅이 그만큼 넓은 지역에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곳을 힘들여 개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근에 백두산이 위치하고 있어서 화산재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농토는 유기질이 풍부한 검은 빛을 띤 비옥한 토지다.
농토 개간 시 나온 돌무더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금방 ‘모심기’를 끝낸 논이 끝없이 이어진다.
여행 출발 직전에 포항 기계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곳이 기후 상 1주일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우리 지역에서는 아카시아 꽃이 다 지고 없는데 이곳에서는 한창이기 때문이다.
‘저 넓은 논에 어떻게 모내기를 할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던 차 때마침 모내기를 하는 한 무리의 주민들이 보인다.
옛날 우리 농촌에서 모내기 하던 방법과 똑 같다.
못줄을 넘기는 사람, 모를 나르는 사람, 모를 심는 사람 등등
예전 우리네 농촌에서 모내기를 하는 장면을 보는 느낌이다.
가이드 왈,
“일부는 기계로 심고 일부는 손으로 심는데 아직은 손으로 심는 논이 더 많습니다!”
라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밭에는 기장이나 조, 콩을 재배하지만 주로 재배하는 것이 옥수수이고 보니 지금은 옥수수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드넓은 밭에 비닐을 깐 곳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밭에 비닐을 깔지 않으면 농사를 못 짖는다고 할 정도로 일반화가 되어 있는데 이곳은 간혹(1% 정도) 보일뿐 비닐 깐 밭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닐 구입에 들어가는 농자재 값 때문이다.
드넓은 밭에 비닐을 깔려면 작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많은 면적에 잡초를 어떻게 처리하지?”
그래서 나온 방법이 잡초를 이기는 옥수수를 재배하는 것이다.
잡초보다 키가 큰 옥수수를 재배하면 잡초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대형 비닐하우스 시설이 가끔씩 나타나더니 들판 가운데 ‘묘’가 나타난다.
이곳에 장묘문화는 우리와 똑 같았다.
이주한 조선족들이 많이 있으니 그들이 고국에서 하던 방법대로 조상을 모신 것이다.
달리는 중간 중간 마을이 나타난다.
한옥, 양옥, 빌딩 등 다양한 우리의 촌락과는 다르게 연립식 주택이 하나같이 같은 형태로 마을을 구성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국가의 통제를 받은 흔적이 시골에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구당 대지 면적은 상당히 넓다.
아마도 넓은 면적의 지역이다 보니 좁은 국토의 우리와는 다르게 사용료만 조금 부담하면 원하는 만큼 면적을 차지하고 담장 안에서 ‘텃밭’도 운영하기 위해서이다.
달리는 도중 시간이 되어서 중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식당에 들렀다.
메뉴는 [현지 식]이다.
남녀 공용이라는 표지를 따라 들어간 화장실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남자소변기가 없었다.
대신에 칸이 막혀있는 공용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 안에는 ‘좌변기’가 아닌 쪼구려 앉아서 볼 일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이곳에서 남녀가 공용으로 사용을 하는 특이한 구조의 화장실이었다.
백두산 등정의 전초기지라 할 오늘의 숙박지 [이도백하]가 가까워올수록 먼 곳에서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달리자 [자작나무 군락지]가 차창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이도백하]에 도착하였다.
오늘 저녁은 [샤브샤브 무한 리필]이다.
우리가 선택한 상품에는 [샤브샤브 무한 리필]과 [한식], [삼겹살 무한 리필]의 식사 3회 업그레이드가 기본 메뉴로 진행이 된다.
중국여행은 3번째지만 개인적으로 식사방법 적응에 가장 힘이 든다.
예전에는 특유의 향때문에 고추장이나 새우 젓을 가지고 간적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식사방법이 문제다.
그 이유는 사진에서 보듯이 한식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경우는 공기 밥이 개인별로 제공이 되지만 현지 식은 작은 밥공기 하나가 제공되고 밥은 양푼이에 한꺼번에 제공된다.
밥그릇이 있는 공간은 고정이 되어 있지만 나머지 반찬 류는 원형으로 되어 있는 유리판위에 올려 진다.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메뉴를 유리판을 돌려서 당기거나 다른 사람이 돌려서 자기 앞에 오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4명을 기본으로 상이 차려지니 점잖게 여유롭게 식사를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11명의 일행 모두가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다.
차려진 된장을 먹기 위하여 내 앞으로 당기기가 미안해서 점잖게 앞으로 올 때 까지 기다렸다가 도착 후 보니 앞 순서 10명이 모두 사냥을 한 후라서 두부는 구경도 할 수 없고 멀건 된장 물만 남아있다.
그것은 명태 국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뒷 순서는 명태대가리와 멀건 국물만 남아있다.
고등어는 대가리와 뼈만 앙상하고…….
우리 기준으로는 11명이면 4인상 3개를 차려야 하니 고등어도 당연히 3마리가 올라와야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해도 올려 진 고등어는 달랑 1마리뿐이니 저런 현상이 벌어진다.
상추를 좋아하는 일행들은 상추 맛을 보기 위하여 원형테이블을 자기 쪽으로 돌리면 반대편 사람이 먹기 위하여 또 돌려야 하는 것이 중국식 식사방법이 불편한 이유다.
식사문화가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이곳에 와보면 비교가 된다.
일본도 그렇지만 이곳 역시 김치가 맛있다고 더 요구를 했더니 추가요금을 지불해야 한단다.
무한리필로 제공되는 우리나라의 식당이 참으로 대단하다.
중국여행을 하려해도 이런 식사문화 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런 실정임에도 오늘 저녁 메뉴로 나온 [샤브샤브 무한리필] 은 대만족이다.
원형의 테이블은 기본이다.
11명이 함께 자리를 하고 식탁을 살펴보니 고기를 익혀 먹는 작은 솥이 개인별로 인덕션 위에 올려져 있다.
그 솥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각종 버섯류나 채소류로 육수 물을 우려낸 후 돌아가는 원형 유리판 위에 올려 진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원하는 만큼 익혀서 먹었다.
각종 버섯류를 비롯하여 고기류, 칼국수도 면발이 가는 것과 넓은 것, 수제비까지 무한 제공해주니 자기 솥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멋진 식사는 없을 것 같다.
이 방법은 한 솥에서 단체로 익혀먹는 우리나라의 샤브샤브 식사보다 훠~얼~씬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메뉴임에도 식사 장소에 도착 전
“업그레이드를 하면 소고기가 무한 리필이 된다!”
라고 해서
“이 곳에 무한리필 샤브샤브가 엄청 좋다는 소문이 있어서 우리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 결정은 참으로 잘 한 일인 것 같다.
추가 요금을 부담하고 업그레이드를 했다면 소고기는 많이 먹었을지 몰라도 양고기나 돼지고기는 어디에서 보상받나?
멋지게 풍족한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오늘 숙소인 [왕조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은 호텔에서 온천을 할 수 있으며 수영장도 갖춘 멋진 호텔이다.
야외 온천 시설까지 갖춘 최저 38도에서 최고 51도의 백두산 온천이 쉴 새 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 후 와이파이를 연결하였다.
요즘 세상은 지구 어느 곳을 여행하여도 와이파이만 연결하면 카톡으로 무료로 연결되니 세상 참으로 좋아졌다.
그런데 아뿔싸!
와이파이를 연결했는데도 이곳으로 오는 것은 볼 수 있어도 보내는 것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국에서는 〔China 모바일〕이라는 통신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국가에서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때는 미국보다 자기들을 더 좋게 대접해서 통제를 하지 않았지만 현 정부는 미국 쪽과 더 가깝게 지내니 시샘을 부려서 통제를 한다고 한다.
이 방침은 두만강 유람선에서도 똑 같이 적용이 된다.
▶ 2일차(30일-목)
기상과 동시에 날씨를 살폈다.
무심한 비는 추적추적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어제도 하루 종일 내렸는데 오늘도 우리들의 바람과는 관계없이 무심하게 내리고 있다.
정말 [천지]를 보는 것은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더니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을 때였다.
광주에서 왔다는 일행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자기들은 우리보다 하루 전에 왔는데 어제는 비가 내렸지만 백두산 정상에는 눈이 내려서 입산통제를 하는 바람에 오늘 2번째로 도전하는데 비가 와서 걱정이라고 했다.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는 형편이라 식사 후 07시 10분에 비옷을 챙겨 입고 우리는 출발했다.
정상부에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우산사용이 안되기 때문에 모두가 비옷을 입어야 한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가는 길은 농경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작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침엽수림이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도착한 [북파 산문]
이른 시간인데도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어제 등정을 못한 2번째 도전 팀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사진에서 붉은 색과 푸른 색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중국인들이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백두산 정상의 날씨를 고려하여 모두 두터운 옷을 준비하라고 예고가 되어 준비를 했다.
그러나 광활한 국토 곳곳에서 모인 중국인들은 여행사에서 단체로 빌린 옷을 입는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이라고 빌려 준데도 입지 않겠지만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는가 보다.
이곳에서 우리가 타고 온 버스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옮겨 탔다.
중형버스로 최신형이었다.
40여분을 부지런히 달린 우리는 우리나라의 스타렉스급 소형버스로 다시 옮겨서 탑승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도로 폭이 좁아서 소형버스로 운행을 하기 때문이다.
시멘트로 포장한 좁은 길은 소형버스 2대가 겨우 교행을 할 정도인데도 매일을 운행하는 기사들은 잘도 달린다.
낭떠러지 커버 길을 달릴 때 조마조마한 일행들은 좀 천천히 달렸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끝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그들에게는 일상이 된 일이라 잘도 달리고 있다.
자작나무의 새잎이 돋는 것을 관찰하니 산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엄연하게 차이가 났다.
끝없이 이어지던 자작나무 숲도 고도가 높아지니 더 이상 보이지를 않는다.
대신에 이끼류가 서식하는 잔설이 남아있는 민둥산이 나타난다.
천신만고 끝에 백두산 북파코스의 종착점인 [천문봉휴게소]에 도착하다.
북파코스는 차량으로 정상까지 올라오니 가장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
도로공사 때문에 [서파코스]는 못 올랐지만 북파코스를 허락하신 하늘에게 감사를 드린다.
정상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멎었지만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불어오고 기온이 내려가서 손이 시리다.
휴게소에서 천지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80여 미터를 더 가야하는데 천지를 보고 나오는 사람과 보려고 들어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인파로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가 없다.
기념촬영을 하고 자리를 비켜줘야 다른 사람들이 구경을 하며 기념촬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빠르게 기념촬영을 한 친구와 나는 역사적인 모험에 도전을 하였다.
내가 활동하는 [하모니카 동아리 카페]에 탑재할 자료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천지등정을 기념하는 인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인파를 살짝 벗어 난 곳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흥이 많은 민족이다.
영상에서 ‘조~옻타!’하고 추임새를 넣은 남자들이나 신바람 나게 춤을 춘 아줌마들은 우리 일행들이 아니다.
그 시각 촬영을 하는 친구와 나를 제외한 우리 일행 9명은 각자 흩어져서 촬영과 구경에 열중이었다.
중국인들은 우리 노래를 모르니 관심이 없다.
‘디스코 베이스 리듬’에 맞춘 ‘밤열차’ 연주가 흘러나오니 흥이 나서 저절로 반응을 한 것이다.
아무튼 열심히 반응을 해준 분들 덕분에 연주를 하는 나도 신이 낫다.
그런데 나중에 연주모습을 본 우리 일행들과 가이드 왈
“백두산 가이드 20년 했지만 천지에서 하모니카 공연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공연이 될 것이다!”
라고 하면서 다음날부터는 버스가 출발하면 공연요청을 한다.
마땅히 싫어할 이유도 없어서 부지런히 연주를 했다.
“하모니카 연주 덕분에 더 풍성한 여행이 되는 것 같아요!”
하면서 덕담을 건넨 대구에서 오신 이쁜 아줌마들 덕분에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부피가 큰 악기나 Mr반주 도움을 받아야 하는 연주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사고를 친 친구와 나는
‘기네스 북’에 세계 최초로 천지에서 하모니카를 공연한 일로 등재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런데 ‘천지’에서는 북측과 맺은 규정에 의해서 몇 가지 제한 점이 있다.
1) 사진촬영은 가능하지만 동영상 촬영은 못한다.
2) 단체로 온 팀이 ‘플랭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지 못한다.
3) 정치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등이다.
위반 시에는 중국공안이 물론 제제를 한다.
‘천지 쪽을 촬영하면 안 된다’니 천지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그쪽 방향으로는 촬영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들은 연주 흔적을 남겼다.
나는 못 보았지만 그날도 다른 팀에서 ‘플랭카드’를 펴다가 중국공안에게 압수 되었다고 한다.
☞ 공연을 방해 한 무식한(?) 중국 인
몰려든 인파가 너무 많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손도 시리고 해서 우리들은 80여 m떨어진 ‘천문봉 휴게소’로 이동을 해서 잠시 몸을 녹였다.
그리고는 천지를 바라보며 2번째 연주를 시작했다.
그때 연주장면을 열심히 촬영 중인 친구에게로 중국인이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천지를 향해서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동영상 촬영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조금 전에 촬영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일까?’
연주 중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중국 공안에게 잡혀가서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천지 방향으로 촬영을 하지 않고 인파를 벗어 난 곳에서 연주를 했는데 그것도 문제인가?’
연주는 뒷전이고 짧은 순간에 온갖 상념이 스쳐갔다.
친구가 ‘촬영 중’이라고 방해하지 말라는 손 짖을 하자 그 친구는 한창 연주 중인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자기의 폰을 들이민다.
'아하!
우리가 위반한 것을 증거로 남겼구나!
그것을 보여주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며 들이 민 폰을 살짝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이구 이 친구야!”
그것은 [기타를 치며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아마 자기도 이렇게 연주를 하면서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고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이 친구야 연주장면을 촬영 중인데 그러면 안 되지…….”
이 친구 덕분에 완전한 연주를 못하고 1절에서 끝이 나고 말았다.
잔잔한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장백폭포]를 보기 위하여 이동을 했다.
☞ 장백폭포란?
천지에서 68m 높이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장백폭포이다.
이 물은 드넓은 만주 벌판을 적시며 흘러가는 송화강의 원류이다.
[장백 폭포]는 백두산(중국명:장백산)에 있다.
장백산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화산으로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이자 [중국 동북부 최초의 산]이며 중국과 북한의 경계가 되는 산이기도 하다.
정상의 16개 봉우리 중 [장군봉]을 포함하여 9개는 우리나라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군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다.
산 정상에 있는 유명한 [천지]는 화산 폭발 후 자연적으로 형성된 세계에서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화구호다.
이 부근 겨울기온이 영하 40도 이상 내려가도 이 폭포는 얼음이 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달걀이 익을 정도인 83도의 온천수가 솟아나는 주변 지형의 영향으로 얼음이 얼지 않는다.
[장백폭포]의 웅장한 물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에 손을 담가 보았다.
뜨거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지근한 물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변에는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온천수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며 보글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백두산 온천 지구다.
[장백폭포 주차장]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준비한 '온천수로 삶은 달걀'을 맛보라고 한다.
83도의 물에서 삶은 탓인지 이 달걀은 노른자만 익고 흰자는 완전히 익지를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3개에 우리 돈 2천원인데 어제도 삶은 옥수수를 제공하더니 가이드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잠시 이동을 한 우리들은 중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구 내 유일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가이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 식당선택권인데 이곳에서는 다른 식당이 없으니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사가 부실하니 컵라면을 준비하신 분들은 함께 이용하세요!”
라고 안내를 한다.
과연 엉망이다.
비빔밥이라고 나왔는데 밥에 계란후라이 1개, 콩나물 약간, 고추장, 그리고 약간의 국이 전부다.
사진을 보니 실망한 일행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백두산 부근이라서 산나물이 많을 텐데 그 흔한 나물반찬 1가지 없이 콩나물 약간이 전부라면 누가 이해를 할까?
우리 동네 비빔밥 집에는 [시골비빔밥]이 5천 9백 원이다.
산나물을 비롯한 온갖 나물이 비빔밥 재료로 들어감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실한 비빔밥의 가격을 메뉴판에서 확인하니 우리 돈 1만원이다.
그런데 옆에서 식사를 하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뷔페식 식사를 하는데 반찬이 다양하다.
이로 미루어보아 이 메뉴 선택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샤브샤브와 삼겹살 무한리필에 식사비가 너무 많이 소비되었나?
타 여행사에 손님을 빼앗기기 전에 본사에서는 재빠르게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엄청 고급스러운 비빔밥(?)으로 중식을 해결한 우리들은 전용버스가 있는 북파산문으로 이동을 했다.
이번에 이용한 버스는 뒷좌석이 높게 설계가 되어서 음악당이나 공연장 같이 앞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앞자리를 조망할 수 있게 설계가 된 버스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에서 사용하던 폐차직전의 차를 수입해서 관광객들을 태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살펴 본 중국은 타는 버스마다 대부분이 신형버스다.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차를 만드는 기술이 그만큼 발달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들의 전용버스에 오르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천지'에서의 연주를 목격한 가이드와 일행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모니카를 연주하면 안되느냐?"
고 얘기를 한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해서 이후 부터 버스를 오래 타야 할 경우에는 하모니카 연주를 했다.(아래 링크로 들어오시면 동영상 탑재 제한편수가 있는 관계로 본문에서 올리지 못한 백두산을 오르는 과정 동영상이나 공개되지 못한 다른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gkahqkr/nicO
이동 중에 살펴보니 주택이나 농경지는 전혀 보이지를 않고 자작나무를 비롯하여 주목, 낙엽송(잎갈나무 혹은 이깔나무)이 대부분인 녹색의 산림지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도로변에 위치한 [환상의 동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다시 이동을 하여 우리들의 전용버스가 있는 [북파산문]에 도착을 하였다.
이곳에서는 미국인이 개발한 [5D 영상 체험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헤드셋을 쓰고 체험하는 [3D 영상 체험]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재직 중에 3D 영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 친구와 나는 선택을 하지 않고 자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체험을 마치고 나온 여성 동료 한분이 멀미가 나서 아침 먹은 것 까지 원위치 시켰다고 한다.
예약 시 [부담 없이 즐기는 노옵션]이라기에 이런 선택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선택이 있는 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우리들의 죄명이었다.
다시 우리들은 숙소인 [이도백하]로 이동하였다.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이제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주택이 간혹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곳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도착 후 기본 일정에 포함된 우리 돈 4만원인 [전신마사지]를 받았다.
1시간의 마사지 후 가이드의 사전 안내에 따라 우리 돈 3천원을 팁으로 내밀었다.
그런데 마사지 아가씨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고맙습니다!”
“......,”
팁은 받았지만 좀 더 줬으면 하는 표정으로 말없이 실망하는 아가씨!
“오빠!
오빠 돈 많잖아? 나 5천원 줘!”
“나 돈 없어 나이를 먹어 권력이 마누라에게 넘어가서 이 돈 3천원도 겨우 받아서 온 거야!”
라고 얘기하는 옆자리 대화도 들렸다.
마사지 후일담을 들은 가이드 왈
"팁은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되는데 변질이 되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정말 나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고마운 표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1만원을 팁으로 준다면 준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우니까 당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기준이 되어 다음부터는 팁의 기준이 1만원이 되는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다음 손님에게 인상된 팁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함부로 팁을 많이 줘서는 안되는 이유지요."
옳은 말이다.
다음에 이용하는 사람을 위해서 팁을 함부로 올려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중국은 인구 제한 정책으로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도 역시 남아 선호사상이 강해서 남자아이를 낳기 위하여 여자 아이인 경우 남자아이를 낳을 때까지 계속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1인 출산정책에 위반이 되므로 호적에 올릴 때는 여자아이는 빼버리고 남자아이만 출생신고를 하는 관계로 호적이 없는 아가씨들이 많습니다. 성인이 된 그녀들이 취업을 하려고 해도 호적이 없는 관계로 이런 마사지 업소에서 정상적인 보수를 못 받고 일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라고 한다.
잔잔한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오늘의 저녁 메뉴인 [삼겹살 무한 리필]을 하러 가다.
[양꼬치가 무한 제공 되는 식사 업그레이드] 안내가 있었다.
기본 메뉴가 삼겹살 무한 리필이어서 업그레이드를 시킬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들은 기본메뉴로 식사를 하였다.
접시가 비는 대로 삼겹살은 계속 제공이 되었다.
맥주와 38도짜리 중국술을 가이드가 제공했다.
손님대접을 톡톡히 하는 가이드가 고마웠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서 분위기가 고조되자 친구의 주도로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하는 호기를 부리면서 분위기를 이어갔다.
38도 술이 바닥을 보이자 남자 3명만 팀을 이루어 온 일행 중 한 분이
“좋은 술은 도수가 높아야 맛이 더 납니다.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를 하여 42도짜리로 한 병 더 주세요. 제가 쏩니다!”
하면서 한 병을 더 시켜 분위기는 점점 더 부드러워 졌다.
우리가 선택한 상품 중 [샤브샤브]로 진행된 어제 저녁 식사와 [삼겹살 무한 리필]인 오늘 저녁 메뉴는 기본 제공되는 것으로 아주 훌륭한데 ‘식사 업그레이드’는 맞지 않은 것 같다.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차라리 [현지 식]으로 구성된 내일과 다음 날 저녁에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야외온천을 즐기며 천지를 본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다.
▶ 3일차(31일-금)
어제와 다르게 아침에는 쾌청한 하늘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날씨임에도 백두산 정상에는 어제 내린 비가 살짝 얼음이 끼어서 통제를 했다는 가이드의 얘기를 듣고 우리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단 1번 도전에 성공했으니 오늘 못 올라가는 것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우리 일정대로 [서시]의 시인 윤동주의 흔적을 찾기 위하여 [비암산]으로 출발을 하다.
그러나 날씨는 금세 흐려지더니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장마철 같이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비옷을 입고 관광길에 나서다.
비암산은 [용정]에 소재한다.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8개의 현·시가 있는데 [연길]이 중심도시인 주도(主都)이고 [용정]은 북간도 지방의 주도(主都)였던 곳으로 우리 민족이 최초로 정착한 곳이다.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나온 독립운동가나 지주들에게 착취를 당하던 소작농들이 생계를 해결하려고 와서 정착한 곳이다.
중국에는 11개의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조선족은 220만이라고 한다.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 연변지역인데 96%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도백하 부근에서는 보이지 않던 농경지가 용정으로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비로소 논과 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넓은 농경지가 대부분 우리 민족이 이주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이주한 대부분이 소작농들이었는데 그들의 손에 의해서이다.
그들은 고국에 있을 때 피땀 흘려 지은 농사의 결과물을 대주주에게 착취당하다가 생계를 해결하려고 드넓은 만주벌판 이곳 용정에 정착했다.
개간을 하면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죽자 살자 농토를 일구어갔다.
그들의 고생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렇게 개간을 한 농경지는 사회주의 국가가 된 지금은 20~30년 주기로 임대료만 내면 마음껏 내 것처럼 능력껏 경작이나 사육을 할 수 있다.
일송정에 가기 위하여 탑승한 버스는 옆면이 없는 소형버스다.
선구자 노래에 등장하는 [일송정]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일송정 푸른 솔은 홀로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 ~ ♩♪♬ ~
용주사 우물가에 저녁 종이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되였나
비옷을 입고 탐사 길에 나서다.
이곳은 독립운동 당시 비밀 집결지였다.
또한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일제가 베어내는 바람에 지금의 소나무는 다시 심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송정 뒤로는 [해란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우중에 다시 이동을 한 우리는 [비암산] 유리다리를 건너다.
아찔한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무서움에 망설이는 사람들은 밑으로 보지 말고 먼 산을 보면서 걸어야 한다.
'일송정'과 '해란강'을 뒤로 하고 또다시 이동을 하다.
[용정]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에는 [태양광 설비]가 군데군데 가끔씩 눈에 띈다.
[연길]과 [용정]시내에는 한글간판을 병기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읽기에 아주 편하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관찰되는 표현이 재미있었다.
버스 터미널을 [연길뻐스역]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간판에 표기된 한글로 봐서 우리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미미사]라는 [한식]집에 들어가다.
식당 부근에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도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개조한 오토바이가 눈에 뛴다.
또한 거리를 누비는 영업용 택시는 대부분이 현대에서 만든 [엘란트라]택시다.
중국의 부자들은 외제차를 선호한다.
가장 많은 차가 [폭스바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민들이 애용하는 영업용 택시는 그렇지 않다.
지금이야 자기들도 자동차를 만들므로 사정이 달라졌지만 예전 자체 생산이 되지 않던 시절에는 현대의 [엘란트라]를 들여와서 택시로 이용했는데 아직도 많은 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또한 삼륜차가 눈에 뛴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기아자동차에서 만들어서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직접 만들어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서 소규모 배달용이나 농민들의 운반 수단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메뉴가 [한식]이라서 지긋지긋한 중국식으로 돌아가는 원형테이블에서 11명이 한꺼번에 식사하는 것에서 해방이 되겠구나 하는 작은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다.
음식의 메뉴만 한식이지 방법은 같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돌아 돌아서 도착한 된장찌개는 앞 순서에서 모두 낚시를 한 후라 탐스러운 두부는 구경도 못하고 국물만 남아 있고 잘 구워진 고등어도 그 많은 사람 앞에 1마리만 달랑 나오니 뒷 순서의 사람은 대가리만 돌아온다.
게다가 상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원형테이블을 체면 불구하고 자기 앞으로 돌려야 한다.
1곳에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추가로 반찬을 요구하려고 해도 부담스러우니 포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김치가 맛있다며 추가로 청구하니 기본 제공된 것 외에는 나중에 가이드가 별도로 계산을 해야 한다.
그러니 부담스러워서 그냥 있는 반찬으로 해결할 수밖에…….
무진장으로 무한 리필이 되는 우리나라의 식당문화가 그리워진다.
소비자 보다는 공급자 우선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4인 기준으로 반찬을 내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11명의 대식구를 고등어 1마리만 차려도 되고 큰 그릇에 한번만 담아도 되니 식당 측에서는 상차리기가 얼마나 간편한가?
식사 후 30분을 다시 이동하여 [명동촌]으로 향하다.
이곳은 [서시]로 유명한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서 거주한 곳이다.
☞ [서 시]란?
윤동주가 지은 시다.
1941년 11월 20일에 창작되었고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윤동주의 생애와 시의 전모를 단적으로 암시해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탐사를 마친 우리들은 연변의 주도(主都)인 [연길]로 이동을 하였다.
연길시민은 60만 명이다.
이곳은 가구당 평균 2명이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적령기에 있는 노총각들이 신부 감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북한과 인접해 있다가 보니 탈북 한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웃에서만 눈감아 주면 그들을 아내로 받아들여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같은 동네 아가씨는 한국에 빼앗기고 탈북 한 북한여성과 결혼을 하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가 문제다.
당초 일정에는 현지 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돈 3만원을 추가하여 업그레이드를 하면 12가지 요리가 나오는 [연변냉면]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4만원을 더 추가하여 7만원이면 북한 공연 팀의 공연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5D 영상 체험]과는 다른 경우다.
영상 체험은 선택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자유일정을 보내면 된다.
그러나 식사는 다르다.
일행들이 모두 선택을 하면 우리 팀만 당초 계획된 [현지 식]을 먹자고 우길 수가 없는 구조다.
가이드가 이쪽에 있으면서 우리 팀 식사하는 곳에 인솔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7만원+알파(현지 식 식사비)]는 국내에서도 최상의 대접을 받는 식사일 텐데 물가가 싼 중국에서 이런 식으로 업그레이드해서 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그것도 북한식당에서......‘
2008년에 ‘금강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유명한 ‘평양옥류관 냉면’을 맛 본적이 있는데
북한 식당에서 만든 ‘연변냉면’이라니 한번 맛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금강산에서 구경한 세계 제일의 ‘평양교예단 서커스 공연’을 본 느낌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서커스는 아니지만 공연 팀의 공연도 괜찮겠다는 생각에서 우리 팀도 동의를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대 실망이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통치자금 확보를 위한 외화벌이 사업에 이용된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근거는,
1) 술값이 비싸다.
어제 삼겹살집에서 3천 원 하던 맥주가 이곳에서는 5천원이다.
평양맥주는 1만 2천원이다.
맥주는 고맙게도 가이드가 서비스로 제공했지만, 북한산 유명 [들쭉 술]이 있기에 우리들 4명은 인당 2만원씩 추가 부담하여 8만원에 45도짜리 한 병을 시키다.
이 술은 통일전망대휴게소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술이다.
적당하게 분위기가 오른 일행들이 노래방을 문의하니 노래 한곡을 부르는데 2만원을 요구한다.
그래서 포기를 하다.
2) 공연이 별로다.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들 4명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색소폰 연주를 25분 정도 하였다.
앞부분에서 사회자가 인사말 하는 부분과 첫 곡은 빠졌지만 대부분 녹음이 되었다.
연주곡은 관객들의 대부분이 한국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요가 아니었다.
다만 '홍도야 울지마라!'를 섹소폰으로 1번 연주하였는데 연주를 좀 해 본 사람들은 Mr반주에 맞추어 하는 연주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것을 알기에 별로였다는 평가였다.
그리고 녹음파일에서 확인하였듯이 '난타공연' 한번 한 것을 제외하고는 북한 노래만 부르는 이 정도 공연은 별로였다는 일행들의 평가다.
이곳에 종사하는 북한종사원들의 얼굴 사진이 노출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공연 중 사진촬영은 일체 허용이 되지 않는다.
가끔씩 북한종업원이 관중들 사이를 오가며 살펴보았다.
‘사진촬영을 하지 말라고 했지 음성녹음 얘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공연 실황을 녹음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뒤늦게 녹음을 시작했다.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공연인지 궁금할 것 같아서 앞부분 사회자의 멘트와 사회자가 부른 노래 1곡을 제외하고 공연 전 과정 녹음한 것을 공유한다.
우리 다음에 누군가는 이곳을 방문할 것이므로 사전에 자료를 제공하는 차원에서다.
그래서 결론은 처음부터 이런 줄 알았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외화벌이 창구를 통한 이 식당을 우리는 내막을 몰랐으니 이용을 한 셈이다.
저녁을 마친 우리들은 연길 교외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을 하였다.
연길 시내의 야경은 아름답다.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빈 집에도 불을 밝혔기 때문에 이렇게 야경이 아름답다고 한다.
▶ 4일차(6월 1일-토)
기상과 동시에 날씨를 살펴보니 이곳 도착 후 처음으로 맑은 날씨이다.
이곳에서 이용한 호텔은 모두가 만족할만한 수준이다.
식사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커피를 마시는 문제다.
호텔 측에서는 고급 커피를 제공하기 위하여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는 기계’를 설치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항상 줄은 선 사람들이 만원이어서 시간이 촉박한 사람들은 포기를 한다.
우리 일행들이 제안한 방법은 한국인은 ‘믹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두커피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는 자판기 커피를 제공하면 훨씬 더 인기가 있을 것 같다.
아침 후 우리는 북한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두만강을 보기 위하여 [도문]으로 이동하였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처음 보는 과일 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이 나무는 돌배나무와 사과나무를 접 붙여서 만든 나무로 [사과·배나무]라고 한단다.
맛도 좋아서 이곳만의 특산물이라고 하며 따라서 이곳에서는 엄청 인기 과일이라고 한다.
드디어 북한과의 접경지대인 [도문]으로 들어왔다.
사진은 [탈북민수용소]다.
지척에 북한의 [남양]이 있는 관계로 이곳은 탈북한 사람들이 많이 검거된다고 한다.
일단 검거가 되면 이 수용소에서 1주일간 감금생활을 한다.
이 기간 동안 아주 융숭한 대접을 해서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낸다고 한다.
좋은 식사로 대접하는 것은 [도문]은 중국이지만 시민의 70%가 조선족이라고 한다.
중국과 북한 간 정치적인 관계 때문에 탈북 민을 돌려보내지만 같은 조선족으로서 배려차원에서 1주일간은 잘 먹이고 좋은 대접을 해서 인간적인 배려를 하고 추방을 한다고 한다.
드디어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인 [두만강 강변공원]에 도착했다.
중국에서는 오늘이 [어린이 날]이라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현지인이 제법 북적대고 있었다.
우리는 5월 5일인데 이곳은 6월 1일이 어린이 날이라고 한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 ~ ♩♪♬ ~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떠나간 내 님이 보고 싶구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중국의 [도문]과 북한의 [남양]은 지척의 거리에 있다.
50여m의 두만강 폭은 조금만 수영을 할 수 있어도 쉽게 건널 수 있으며 갈수기에는 걸어서도 건널 수 있도록 수심도 깊지 않았다.
중국 쪽 강변에는 철책이 둘러쳐있었는데 북쪽에는 철책이 없다.
그것은 탈북을 막기 위하여 군데군데 지뢰를 매설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유람선이 한가롭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용객들은 모두가 중국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국에서 [와이파이]도 통제를 하더니 유람선도 통제를 한다.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정권이라고 판단한 전 정권에서는 한국관광객들에게 [두만강유람선] 탑승을 허용했는데, 미국과 더 가깝다고 생각한 지금은 허용을 하지 않으니 우리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밖에…….
탑승 못 하는 사연을 모르는 유람선만 여유롭게 운항을 하고 있다.
북한과 교류를 하는 철길과 도로가 동쪽으로 향한 끝에는 북한의 [남양]이 있다.
김정일과 김정은의 대형초상화가 선명하게 관찰이 된다.
3대가 세습한다고 보기 드문 현상이라고 세계 매스컴이 아무리 떠들어도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그들의 세계는 불가사의한 곳이다.
[강변공원]이어서 포장마차 촌이나 관광객 상대의 기념품 가게 등이 손님들의 발길을 잡았지만 포장마차 촌은 밤이 되어야 흥청거리려나?
중·조 국경지대인 [두만강강변공원]에서 자유 시간을 만끽한 우리들은 중식을 위하여 다시 [연길]로 향했다.
이번에는 고속도로가 아닌 지방도로를 이용했다.
그런데 도로가 장난이 아니다.
포장은 되어있었지만 오랫동안 보수를 하지 않은 관계로 군데군데 웅덩이가 파여 있어서 이건 포장을 하지 않은 비포장도로보다 상태가 엉망이다.
연길에 도착하여 중식을 마친 후에는 오늘의 주 일정이 모두 끝난 관계로 당초 예고된 대로 3회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다.
1곳에서 1시간씩이니 3곳에서 무려 3시간을 억류 아닌 억류를 당한 셈이어서 일행 모두가 불만이다.
처음 들린 곳이 [침향]을 파는 곳이다.
2번째로 들린 곳은 [라텍스 매장]
라텍스 매장은 동남아나 중국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한 두 번씩 모두 경험한 곳이다.
들릴 때마다 판매원들은 자기들 제품이 신제품이라고 열변을 토하지만 사용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놈이 그놈’이라는 반응이다.
자꾸 강요를 하기에 은근히 짜증이 나서
“아니 장사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딱 보면 이 사람이 구매를 할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안나요?”
라고 한마디 하니
“저희들도 알지요! 그러나 팀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저희들도 가만히 있을 수많은 없잖아요? 월급을 받는 입장인데요.”
맞는 말이다.
여행을 주관하는 본사 차원에서 관광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분명히 제도를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3번의 쇼핑 중 마지막으로 들린 [찻집]
[보이차]라던가 무진장 비싼 차라지만 관심이 없어서 나는 차 이름도 까먹었다.
무한리필로 차를 제공하고는 판매에 열을 올린다.
가격이 만만찮다.
일행 중
‘진품명품’에 출연한다며 차 주전자가 마음에 드니 그 놈을 서비스 해주면 구매를 하겠단다.
판매원 왈
“손님 그 주전자는 20만원이 넘는 특수 재질로 만든 도자기 주전자예요. 그걸 드리면 제 봉급에서 계산이 되요. 대신에 저렴한 주전자를 드릴게요!”
하며 난처해한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계속되자 가이드가 개입하여 원하는 주전자를 받는 조건으로 구매가 성사된 것을 마지막으로 지루한 3회의 쇼핑이 끝이 나다.
쇼핑이 끝난 홀가분한 기분으로 4박 5일의 마지막 숙박지인 [길림]으로 향했다.
[길림성]의 성 소재지 하면 [길림]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러나 소재지는 제1의 도시인 [장춘]이고 길림은 제2의 도시라고 한다.
달리는 차창 밖에는 논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전봇대를 살펴보았다.
이곳에는 아직도 낙엽송에 콜타르를 검게 칠한 목재전봇대가 주로 보인다.
우리도 예전에는 이런 식의 전봇대가 주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시멘트전봇대를 이용하고 있으니 우리와의 차이점을 보는 것 같다.
아침에 쾌청하던 날씨는 중간 중간 장마철 같이 비가 오락가락 쏟아진다.
흘러가는 강줄기나 하천은 온통 황토 빛 흙탕물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창밖에 보이는 시골집에는 저녁 짓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6,70년대 우리네 시골 느낌이다.
이곳은 아직도 나무가 땔감의 주원료라고 한다.
이동 중에 휴게소에 들러 저녁을 해결하고 오늘의 숙소인 [이아덕 호텔]에 들리니 백두산 여정의 마지막 밤도 마무리 되다.
▶ 5일차(6월 2일-일)
호텔에서 조식 후 [장춘 공항]으로 이동하여 인천행 비행기를 타니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를 구경하는 커다란 성과를 기쁨으로 간직한 채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천지'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한 영광스런 순간을 영원히 추억할 수 있도록 촬영을 해 준 친구에게 감사함도 함께 전하고 싶다.
☞ 여행후기
1) 백두산 직항로가 개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관람객의 다수가 한국인이다.
중국으로 우회해서 [천지]에 간다면 쓰지 않아도 될 경비가 추가로 지출된다.
통치자들이야 정치적인 입장이 있겠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경비도 절약되고 중국에 퍼부을 돈이 북한으로 들어가니 북한도 엄청난 이익이 될 것이다.
정보공개를 염려할 필요 없이 인천에서 백두산으로 곧바로 가는 비행노선을 개발하면 된다.
영공에서의 사진 촬영은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리안을 비롯한 성능 좋은 인공위성이 북한 전역을 초정밀촬영이 가능한 세상인데 비행기가 통과한들 잃을 것이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 이유로 [금강산 관광]도 재개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어느 정치인 말마따나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저 사람들이 도무지 내 말을 들어야지…….”
2) 중국 호텔 관계자 여러분 시설이나 식사 등 모든 면에서 아주 훌륭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식사 후 여유를 즐기는 [커피]문제입니다.
고급스런 원두커피를 내려먹는 자체는 아주 훌륭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판기 커피도 엄청 즐깁니다.
자판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설은 엄청 싸게 설치할 수 있으니 한번 쯤 고려해 보심이?
왜냐하면 원두커피 기계가 1대만 설치 되어 있어서 뽑는데 엄청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점이 불만이 됩니다.
3) 여행사 관계자 여러분!
[노옵션으로 부담 없는 여행일정]이라는 문구를 함부로 사용하지 마세요.
옵션이 아닌 것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서 가이드와의 관계도 있고 또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경우 벌어지는 현실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5D 체험관]같은 경우야 다른 사람들이 체험할 때 자유 시간을 즐기면 됩니다.
그런데 [북한 식당]으로의 업그레이드 같은 경우는
우리 팀만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경우
① 꼭 평양냉면 맛을 보고 싶은 일행들에게 먹을 기회를 빼앗는 문제
② 그래서 일행 대부분이 냉면 맛보러 갔을 때 남는 일행들만 별도로 식사를 해야 하는데 가이드 혼자서 2군데 식사를 진행할 수가 있을까?
이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런 실정임에도 [노옵션으로 부담 없는 여행 일정]이라고 광고를 해도 될까요?
미국과 캐나다 여행 시 이용해 보니 괜찮아서 이번에도 이곳을 이용했는데 이 여행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 누가 방문했는지 모르지만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드리고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이 번창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송이골님 백두산 관광후 장문의 여행후기를 열정적으로 올려 주셔서 재밋게 잘읽었습니다.3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다는 천지를 더구나 비,바람이 부는등 열악한 기상환경을 극복하고 천지를 구경하셨다는 것은 평소 후학 양성에 힘쓰고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해서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셨슴에 틀림없습니다 백두산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모습은 천지보다 더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송이골님께서 재밋는 사연과 함께 여러장의 사진을 올려 주신 덕분에 집에서 편안히 백두산 구경을 잘했어요. 다양한 많은 여행정보는 차기 여행하시는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겠으며 여행후기 애독자가 많아서 '하모애 앙상블' 홍보효과도 대단히 클것으로 기대가 됩니다.늘건강하시고 애독자들을 위해 여행후기를 많이 올려 주시면 감사히 잘읽겠습니다.
하모애 앙상블 고문님 화이팅!!!
장문의 댓글로도 모자라서 방금 전 전화까지 주신 부회장님의 격려 고맙습니다.
통화 중
"수 많은 방문자가 있는데 댓글로 방문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아서 아쉽다!"
라고 말씀 하신 부분은 이렇습니다.
백두산여행기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전국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는 있지만(4박5일을 함께 한 일행 등) 댓글은 '하모애앙상블' 까페 회원만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은 자격이 안되어 못 올리지만 톡으로 개인적인 답글이 엄청 많이 와서 눈 아파하며 작업한 일이 헛된 짖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두산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부회장님!
감사합니다.
아침시간 조용해서 읽어보니 여행하고픈 맘이 꿀떡 같습니다.
건강 하실때 많이 다니시고 이렇게 간접여행 힐수있는기회 주셔서 감사 합니다.
다닐수 있는 건강이 부럽습니다.
항상 좋은 글로 격려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