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y to remember - Patti Page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grass was green And grain was ye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삶은 여유롭고 너무나 달콤했었죠.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초원은 푸르고 곡식은 여물어갔죠.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you were a tender And callow fe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그대는 여리고 풋풋했던 젊은 나날을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할 수 있다면
그대의 추억을 따라가요.따라가요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That dreams were kept beside your pi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삶이 평탄하고
버드나무 말고는 아무도 눈물짓지 않던 그날들을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젊었었던 시절을
그리고 그대의 배게 옆에 있는 그 꿈을 유지하고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ove was an ember About to bi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fo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사랑의 불씨같았어도 연기로 변할듯이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할 수 있다면
그대의 추억을 따라가요.따라가요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Although you know The snow will follow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Without the hurt the heart is hollow
12월이 깊어갈 무렵 추억을 되새기기 좋은 시간
비록 너가 알고 있는 눈보라가 따라가더라도
12월이 깊어갈 무렵 추억을 되새기기 좋은 시간
텅 빈 마음의 아픔을 제외하고
Deep in December it's nice to remember
The fire of September That made us mellow
Deep in December Our hearts should remember
then follow, follow, follow
12월이 깊어갈 무렵 추억을 되새기기 좋은 시간
우리를 녹여 내리던 9월의 화롯불처럼
12월의 깊은 우리 마음을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그 추억을 따라가요, 따라가요
[Patti Page]
50~60년대 감미로운 목소리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패티 페이지(Patti page)
스탠다드 팝의 여왕 왈츠의 여왕으로 불렸던
미국의 거장(巨匠) 패티 페이지.
1927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클레어모어의 가난한 집안에서
11남매 중 10번째로 태어나 18세 때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노래 실력을 인정받으며 직업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1947년 머큐리 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콘페스(Confess)’ ‘소 인 러브(So In Love)’ ‘위드 마이 아이스 오픈,
아임 드리밍(With My Eyes Open, I’m Dreaming)’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톱스타로 올라섰다.
이후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에 출연해 풍부한 표현력과 미성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페이지는
1951년에 발표한 ‘테네시 왈츠(Tennessee Waltz)’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다. 이 곡으로 페이지는 ‘왈츠의 여왕’이란 애칭을 얻었다.
이어서 페이지는 ‘체인징 파트너(Changing Partners)’를 히트시키며
스타의 자리를 굳혔다.
‘테네시 왈츠(Tennesse Waltz)’는 그에게 두 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안겨준 노래.
‘테네시 왈츠’로 전 세계적인 홍보 효과를 얻게 된 테네시 주는
1956년에 이 곡을 테네시 공식 주가로 채택했다.
현재까지 1000만장이 판매됐을 정도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스탠다드 팝의 걸작으로 통한다.
이후에도 ‘아이 웬트 투 유어 웨딩(I Went To Your Wedding)’
‘머킹버드힐(Mockin’ Bird Hill)’ 등의 걸작을 남겼으며
2000년대 후반까지도 활발하게 무대에 섰다.
페이지의 음악은 컨트리와 재즈의 색채가 적절히 가미된 스탠다드 팝
스타일이었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감성적 창법으로
감동을 안겼다.
ABC, CBS, NBC 등 미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 모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정도로 ‘수퍼스타’였다.
1963년 서울 대한극장에서 첫 내한공연을 열었고
1979년과 89년에도 방한했다.
6·25 전쟁 직후 패티 페이지의 우아하고 감미로운 3박자 왈츠는
고달픈 한국인들에게 깊은 위로를 줬다.
가수패티 김은 패티 페이지처럼 노래를 잘하고 싶어
예명을 린다 김에서 패티 김으로 바꿨다고 고백한 바 있다.
패티 페이지는 노래에 대한 해석력과 표현력이 탁월한 가수로
노래에 가득한 따뜻한 정서 때문에 1950~70년대 한국 대중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팝스타였다.
평생 동안 50여 장의 앨범을 녹음하고
총 1억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페이지는 19장의 골드 레코드
(50만 장 이상 판매)와 14장의 플레티넘(100만 장 이상 판매)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13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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