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태복음 24장 40-42절『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성경에서 성전을 말할 때 세가지의 경우가 있다. 첫째,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2장 19-21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자기 육체가 성전이라는 말이다. 이는 돌 성전과 같이 무너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성전으로 표현된다.
예수님의 육체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죽은 육체와 상관없이 영으로 활동하셨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두번째는 돌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4장 1-2절에서『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서 조용히 물었다. 24장 3절에서『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21-22절에서『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라고 말을 하므로, 이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공격할 것인데, 미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라는 말씀이다. 실제 A.D. 70년 경에 그 일이 일어났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이제 성전이 있던 서쪽에는 통곡의 벽이라는 성전 바깥 벽들이 남아있으며, 이슬람 사원인 바위의 돔은 성전 터 위에 7세기 후반부터 서 있었으며, 알아크사 모스크도 성전 뜰 자리에 서 있다. 오늘날 제3성전을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으나, 부질없는 일이다. 심지어는 오늘날 교회가 이를 이어받았으므로,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을 하는 자들도 있으나, 이는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일 뿐이다.
세번째 성전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 마찬가지로 성도의 부활된 몸에 대한 말씀이다. 이는 심령 속에 세워진 새사람(새성전)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옛성전은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육체의 몸을 상징하는 옛성전도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의 몸은 옛성전에 해당되며, 이미 파괴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새성전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그 몸을 이어받는 것이다. 로마서 6장 5절『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24장 3절에서, 제자들이『주의 임하심(파루시아스 παρουσίας)과 세상 끝에는(쉰텔레이아스 투아이오노스 συντελείας τοῦ αἰῶνος)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예수께 질문했는데, 파루시아는 재림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쉰텔레이아스 투아이오노스는 세대의 완성을 의미한다. 파루시안(임마누엘)이 되었을 때 세상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성전이 무너지는 것과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서로 연결을 시도한다. 성전은 실제 이스라엘의 성전도 있지만, 여기에서 성전은 유대인들의 종교성을 의미한다.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는 종교성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무너뜨리는 것이다. 종교심이 왜 생기는가 하면 거짓 선지자(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때문인 것이다. 이제 성전은 율법 속의 성전이 아니라, 심령 속의 성전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령 속의 성전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된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여기에서 몸은 하늘로부터 받은 영의 몸으로서, 새성전을 의미한다. 영의 몸은 어디에 있는가? 골로새서 3장 3-4절에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영의 몸)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육체 속에 갇힌 영은 죽은 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의 죽음과 연합된 자(성도의 영)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의 몸을 입혀주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영은 성부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심령 속의 새성전에 대해서 많은 비유가 있다. 열처녀의 비유와 같이 지혜로운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미련한 다섯처녀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데려감을 당하는 사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는 영이 된다. 부활생명을 가진 영은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는 것이다. 맷돌질 하는 두 여자에서, 맷돌질은 떡을 만드는 일이다.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를 상징하는데, 부활생명인 영생의 떡을 얻는 여자는 하나님 나라로, 세상의 떡을 얻는 여자는 세상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말이다.
거짓선지자들이 예수님 당시에서 오늘날까지 신도들을 속이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거짓선지자들은 어떻게 복음을 왜곡하는가? 사탄 때문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탄이 아니라, 영적 눈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율법주의, 인본주의, 신비주의(영지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 자가 거짓 선지자들이다. 자신의 마음의 정체성을 영에 둔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가 되지만, 육적 마음에 둔 자는 율법주의에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합리주의, 이성주의를 따라 성경의 말씀을 바라보기 때문에 복음에서 이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