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역사 길 비봉산의 강이식 장군 (4)
수양제의 사치(2)
경성 낙양에서 배를 타고 양주까지 유람하기 위해 용선과 대규모 선박 수천 척, 잡선 수만 척을 만들게 하고 자신은 상하 4층 높이가 45척, 너비가 50척, 길이가 200척에 안에는 금과 은으로 장식한 대룡주(大龍舟)를 만들어 타고 황후와 후궁, 대소 신료, 승려, 도사 등은 그 뒤를 잇는 화려한 배들에 타게 하였으며 배 안에서는 음주와 가무가 끊이지 않았고. 수행선이 1,000척을 넘어서 행렬이 전후로 무려 100리나 이어졌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선대가 지나는 곳에는 대량의 기병을 파견하여 호송하도록 했고, 지나가는 군과 현은 도로를 닦아야 했을 뿐 아니라, 풍성하게 바친 자는 승진했고, 약소하게 바친 자는 벌을 받으니 운하 500리 이내 지역의 지방관들은 앞다투어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양제에게 온갖 진귀한 물품과 산해진미를 갖다 바쳤다. 배가 떠날 때가 되면, 이 음식 중에서 다 못 먹은 것은 그냥 그 자리에서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떠났으니 그 폐악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강남(중국) 놀이가 싫증이 나면 서북쪽으로 행차하였는데 양제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아첨꾼과 간신들은 서역 소국들의 군사들과 사신들에게 후한 선물로 꼬드겨서 양제가 지나는 길에 무릎을 꿇고 영접하도록 하니, 그들의 접대를 받는 것에 양제는 만족해 하고 그 기가 살아서 천하에 두려움이 없는 자가 되었다.
그는 유람을 떠나다가 길이 막히면 태행산에 굴을 뚫게하고 대로를 건설했으며, 100만여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20일 만에 장성을 쌓기도 했다. 겨울에도 일을 강행하므로 눈보라의 습격을 받아서 양제의 북방 원정을 수행하던 병사들 상당수가 동사하기도 했지만 그의 만행은 그칠 줄 몰랐다.
백성들은 홍수, 가뭄, 메뚜기 떼 같은 천재지변에 희생당한 사람보다 양제의 무분별한 놀이와 그에 따른 대재앙으로 희생당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에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손이나 발을 잘라 노역을 면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는데 복수복족(福手福足)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즉 팔과 다리가 없는 것이 복이라는 뜻이었다. 양제는 건축가에게 '이동식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했는데, 이 궁전을 관풍행전(觀風行殿)이라고 칭했는데, 관풍행전은 언제든지 조립과 해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양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문제가 만들어 놓은 풍요함이 그 원인이기도 하고 백성들은 문제의 선정으로 인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양제는 이런 부요 속에서 악을 악으로 생각지 못하고 끝없이 그 길을 갔으니 물질의 풍요가 복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행적이 또한 그와 같았음을 본다. 자녀에게 풍요를 누리게 가르치지 말고 풍요를 나눔의 기쁨을 가지게 가르치는 것이 참교육이라 본다.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