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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므로, 두려워하여 떨면서, 예수께로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하였다.
34.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35.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막5:33-36)
33 The woman realized what had happened to her, so she came, trembling with fear, knelt at his feet, and told him the whole truth. 34 Jesus said to her, “My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trouble.”
35 While Jesus was saying this, some messengers came from Jairus' house and told him, “Your daughter has died. Why bother the Teacher any longer?”
36 Jesus paid no attention to[a] what they said, but told him, “Don't be afraid, only believe.”
교회마다 관심사는 교회 부흥입니다.
그래서 사람 모이게 하려고 붕어빵 굽고, 짜장 볶고, 도서관 차리고.......
예수님은 붕어빵 구우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배 타고 호수를 건너가시면 사람들은 뛰어서 호수 건너편까지 쫓아와서 예수님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21.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다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계셨는데,
21 Jesus went back across to the other side of the lake. There at the lakeside a large crowd gathered around him.(막5:21)
사람들은 해변에 앉히고 예수님은 배 위에 앉으셨습니다.
그 배 위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을 통제하기 힘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이슬람 사원으로 팔리고 술집으로 팔려가는데 말입니다.
사막을 지나는 사람에게 물이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사방을 둘러 보세요.
우리는 지금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사막길입니다.
이곳에 바로 살아계신 예수님의 말씀이 충만하면 교회가 사람으로 꽉 찰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지 못해 들것을 들고 담을 넘어서 지붕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지붕을 뚫어서 주님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달아 내릴 것입니다.
2,000년 전 그 일이 우리 앞에 똑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를 온통 짜장면 붕어빵 도서관 병원으로 엉뚱한 것으로 채우니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오늘도 생명 걸고 예수님을 찾아온 두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엄청난 인파를 뚫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물론 예수님 아니면 죽게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아오더니 주님 앞에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 앞에 넙죽 엎어졌습니다.
22.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막5:22)
22 Jairus, an official of the local synagogue, arrived, and when he saw Jesus, he threw himself down at his feet
그리고 간절히 주님께 빌었습니다.
그는 그 지방의 유지였습니다.
존경받는 회당장이었습니다.
나이도 아마 회당장이 훨씬 더 들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30세 초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목수의 아들 발 앞에 엎드려서 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 앞에 그대로 엎어진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녀의 딸이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 살릴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재로 야이로의 딸은 살아났습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죽을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붕어빵 짜장면 주차 정리 구제 헌금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해 나는 죽은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게 해야 합니다.
그 죽은 존재가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일만 제대로 하면 교회가 호수 건너편으로 이사 가도 주일 되면 호수를 건너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술집이 되어가는 것도 사람 살리는 내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 죽겠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실제로 죽게 생긴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교회가 전하는 말씀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생명이 넘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기 위해 야이로의 집을 향해 급히 가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그 일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은 갖은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몰래 사라질 것입니다.
그 녀의 정체가 발각되면 큰 일이 납니다.
그 녀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유대의 율법은 이런 여인을 부정하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25. 어떤 여자가 자기 몸이 불결한 기간이 아닌데도, 여러 날 동안 줄곧 피를 흘리거나, 불결한 기간이 끝났는데도, 줄곧 피를 흘리면, 피가 흐르는 그 기간 동안 그 여자는 부정하다. 몸이 불결한 때와 같이, 이 기간에도 그 여자는 부정하다.
26. 그 여자가 피를 흘리는 동안 눕는 잠자리는 모두, 불결한 기간에 눕는 잠자리와 마찬가지로 부정하고, 그 여자가 앉는 자리도, 불결한 기간에 앉는 자리가 부정하듯이, 모두 부정하다.
27. 누구나 이런 것들에 닿으면 부정하다. 그는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레15:25-27)
결혼도 사회 생활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여인이 남에게 닿으면 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치명적인 병이다 보니 병 고치다가 전 재산을 다 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희생에도 그 녀는 그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막길에서 하루 종일 물한 모금 마시지 못한 셈이었습니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랬으니 인파도 또 율법조차 그 녀의 길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그 녀는 생명 걸고 주님 앞에 간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어도 그를 감수하면서 주님께 나아갈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것입니다.
28. (그 여자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 하고 생각 했던 것이다.)
28 saying to herself, “If I just touch his clothes, I will get well.”
그래서 그 녀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온전케 된 것입니다.
29. 그런 다음에 곧 출혈의 근원이 마르니, 그 여자는 몸이 나은 것을 느꼈다.
29 She touched his cloak, and her bleeding stopped at once; and she had the feeling inside herself that she was healed of her trouble.
이 여인은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입니다.
몸이 감쪽같이 나았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이 여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30.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0 “Who touched my clothes?”
급히 서둘러 가시던 주님이 그 자리에 스셨을 때 야이로는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기필코 찾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공개적으로 이 여인을 찾았을 때 그 녀는 이제 돌에 맞아 죽겠구나 했습니다.
그 녀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현장범입니다.
이 여인은 이 일을 계속 숨기려 했습니다.
제자들의 불평도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31.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31 His disciples answered, “You see how the people are crowding you; why do you ask who touched you?”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이 거기 지체하실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고 반복해서 물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 여인이 누구신지도 훤히 아시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여인을 밝히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틀림없이 이 여인의 자백을 기다리셨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저요 하고 자신을 시인하는 일이 하나님께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여인을 결국 저예요하고 손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곧바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대단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34.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34 “My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trouble.”
주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첫째 네 믿음이 병을 낫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이제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병 낫기를 위해 무진장 노력했습니다.
제 재산을 다 바쳐가면서 그 일에 몰두한 것입니다.
하지만 병에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공짜로 순식간에 완전한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그 녀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현장범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적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그녀가 한 일을 첫째 밤새운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역행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밀치고 들어가서 하나님의 옷깃을 부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완전히 모순이었습니다.
그 정신적인 고통에 당장 꼬꾸라질 지경이었습니다.
연약한 몸으로 인파를 뚫고 나아가는 육신의 고통 역시 컸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겼던 모든 일들을 믿음이라고 정의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녀의 그 믿음이 그 녀를 낫게 했다고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34.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34 My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여러분은 오늘도 교회에 앉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른 할 일들이 없어서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이 했던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찾아서 교회에 앉아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믿음을 보인 여인을 교정하신 것입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실 것입니다.
가난한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맞았습니다.
남편은 부인을 위해 자신의 시계를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부인의 긴머리를 빗을 빗을 샀습니다.
부인은 남편을 위해 시곗줄을 샀습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머리를 잘라서 팔았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시계 없는 시곗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습니다.
또 부인은 머리를 빗을 일 없는 빗을 선물로 받았던 것입니다.
이 부부는 정말로 무의미한 선물을 주고 받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 두 부부는 사랑을 확인하며 크리스마스 밤에 서로 껴안고 울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곗줄 그 빗을 선물한다고 그것이 사랑을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 이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고 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옷자락의 능력이 그 녀를 낫게 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옷자락을 통해 드러난 그 녀의 믿음이 그 녀를 낫게 했다고 교정하신 것입니다.
그 녀는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입으셨던 바로 그 옷을 달내 교회에 가져 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을 만지는 사람이 병에 나았다고 합시다.
이 때 기독교 미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2,000년이 지낭 지금도 이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옷감이 신비해서 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물이 신비해서,
또는 무슨 십자가의 나무가!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이 마술을 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30.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30 At once Jesus knew that power had gone out of him,
이 여인에게 옷자락이 수단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인격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예수님은 주님의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나가는 것을 경험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독교 신앙인들이 빠지기 쉬운 그 기독교 미신에서 이 여인을 건져 내셨던 것입니다.
옷자락이 아닙니다.
밤새 고민한 믿음
연약한 몸으로 인파를 뚫고 예수님께 나아간 믿음
돌에 맞을까 그 두려움을 이겨낸 믿음
더욱이 생각대로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그릇된 확신이 더 견고해졌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믿을 뿐 아니라 이제 남에게 간증을 해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은 신통하다고 엉터리 간증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신통력이 있다. 할렐루야!”
주님은 그것을 교정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주님은 이 여인의 불안을 아셨습니다.
이 여인은 율법이 금하고 있던 바로 그 일을 하고 치유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녀의 잘못을 지적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이 여인은 자유케 된 것입니다.
그 녀는 그 일들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길에 이 여인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무리가 지체했습니다.
그런데 야이로의 집에서 결정적인 소식이 왔습니다.
35. 따님이 죽었습니다.
35 Your daughter has died.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도움조차 의미 없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넘을 수 없는 경계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도움이 통하는 세상과 또 그 도움조차 통하지 않는 세상의 경계를 죽음이 가르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35. 따님이 죽었습니다.
35 Your daughter has died.
야이로의 집에서 소식을 가져온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제 주님의 도움의 경계를 넘어버렸는데요.!”
마리아도 그의 오빠의 죽음을 두고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32.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요11:32)
마리아는 주님께 “주님, 이제 그 경계를 넘고 말았습니다.
오빠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니 썩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제 소용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으신 주님을 성경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36.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36 Jesus paid no attention to[a] what they said,
영어 성경은 주님께서 그들이 말하는 것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Jesus paid no attention to[a] what they said,)고 번역하는 것입니다.
에덴에서 그랬습니다.
그 죽을 일이 일어났던 것은 이브가 사탄의 말에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다시 아담이 이브의 전하는 말에 그 눈길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더라면 죽음이 세상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탄이 떠들어대도 복이 있는 사람은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는 의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들의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신 주님은 이 말씀을 회당장에게 하셨습니다.
36.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36 but told him, “Don't be afraid, only believe.”
당시의 회당장은 예수님의 말씀과 그의 집에서 달려온 사람들의 말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한 말은 무시해 버려야 합니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 회당장은 두려움에 빠지고 그의 믿음은 좌초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일을 맞아서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오직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실은 이것이 신앙의 모든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41. 그러나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눅10:41,42)
주님은 마리아와 마르다를 비교하셨습니다.
마르다는 교회 식당에서 짬뽕 간 맞추고 교회 주차 봉사하고 헌금 많이 하고 율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말씀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르다는 불평이 많았는데 예수님께서는 봉사하는 마르다를 편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마리아가 분명 더 좋은 것을 택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지금 더 좋은 것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말씀은 여러분을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개조해 놓으실 것입니다.
말씀은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일들은 아주 지엽적인 부수적인 일들입니다.
그런 하나님 안에서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39.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셨다.
39 He went in and said to them, “Why all this confusion? Why are you crying? The child is not dead—she is only sleeping!”
그들은 죽음을 두고 잔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라도 곧 잠에서 깰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죽음에 대해 전혀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을 통한 세상 대안이 아닙니다.
사람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대안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닌 다른 나라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은 죽어 누워있는 야이로의 딸에게 들어가셨습니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고 말씀하셨다.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말이다.)
41 He took her by the hand and said to her, “Talitha, koum,” which means, “Little girl, I tell you to get up!”
달리다쿰이란 히브리인들의 일상용어입니다.
아침이면 아이 보고 학교 갈 시간이다 일어나라 그 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몰랐고 예수님만 아신 신비한 주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한국 분이셨으면 일어나라 하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죽은 야이로의 딸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수도 없이 사용하는 말인데 우리가 그 말을 사용해도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믿음이 없고 있음의 차이입니다.
그 믿음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믿음이 회복된다면 사람들이 호수 건너편으로 뛰어올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술집이 된다는 염려는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미신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12년 혈루증을 앓은 여인에게 주님의 옷자락이 아니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 역사는 너의 믿음 때문이라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34.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34 Jesus said to her, “My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trouble.”
야이로의 딸의 죽음을 본 사람들이 그 녀의 죽음의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들의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의 상식을 깨셨습니다.
“죽음이 믿음의 경계를 결정할 수 없다.
오직 믿기만 하라.”
36.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36 Jesus paid no attention to[a] what they said, but told him, “Don't be afraid, only beli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