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서 양식을 취함은 단순한 섭취를 넘어선다. 그와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문다. 그것이 일이 처음 시작됨이요 만남의 이유로 자리잡는 중요한 계기가 되니까.
차창너머 나목들과 마른 풀들은 봄비로 촉촉하다. 꿈틀꿈틀 기지개를 펴고 있다. 무심코보니 우산 하나가 걸려있다. 방금 옆자리에 있다 홀린듯 일어서 어디론가 가버린 그녀의 것이 분명하다. 종일 비가 올것 같은데 나설때 가랑비가 내렸다. 어느날부터 우산을 안가지고 가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우산을 가지고 나갔다가 잊어버리고 두고 오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나 한때 친하였던 그녀와 소식이 끊어진지 사십 년은 되리라. 어느날 백회점 모자 코너에서 모자를 고르고 있었다. 앞으로 뒤로 자리를 이동하며 낯 익은 여인과 마주치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 일순간 서로 마주보며 ''맞지요?'' 라고 입을 떼었다. 그녀는 그녀데로 약속장소에 가야하고 나는 나데로 한비 수필반에 지각하지 않아야지 결심했던 터라 폰번호만 교환하고 헤어졌던 것이다.
내옆에 좀전에 앉았던 그녀는 세 번째 왔다갔다 해 다음 칸으로 가기전에 불러세울 요량으로 ''아주머니 여깁니다'' 하였다. ''아~햐하하. 제 짐짝을 어디에 둘까 물색하며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그녀는 캐리어를 저 구석에 세워두고 왔던 것이다. 사실 언니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탔다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띄었다. 그 이야기 하려는 찰나 역무원이 나타나 4호실이 비어 있으니 그쪽으로 가 두 분 이야기 하라고 나까지 끄잡아 들였다. 건너편 오자마자 간편식 꺼내놓고 얘기하는 아주머니들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일순간 조용해 졌다.
차창 밖을 보았다. 언듯언듯 흐르는 개울가의 풍경을 보며 옛날을 추억 하였다. 바위들도 이 봄비에 무슨 할 말이 있는것 같다. 산들은 금방 흙에서 진달래라도 토해낼 것 같다. 결국 그녀와의 해후를 오찬으로 풀기 위해 나는 달리고 있다. 내 옆자리 그녀는 쭈욱 보이는 비닐하우스가 바다같이 보인다고 하였다. 난 하얀눈이 소복히 내려 덮힌 것 같다고 하였다. 봄비 내리는 무궁화 열차에서 바라보는 세계는 각자가 달랐다.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가 사라지고 이어 낙동강 줄기는 길고도 길게 펼쳐졌다. 흰 매화가 연이어 선로 근처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봄은 어느사이 성큼 다가왔다.
원동 매화마을. 그녀는 스포츠 카를 몰고 마중 나왔다. 입구에 플랭카드는 며칠 있으면 게최 될 매화축제를 안내했다. 파랑우산 노랑우산 분홍우산 일찌감치 이곳을 찾은 여행객이다. 갓 피어난 매화꽃 향기를 맡으며 카메라 샷을 눌러 대었다. 머풍. 머무르는 풍경. 미나리 삼겹살 식당이 쭈욱 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상했던데로 그녀는 우산을 펼치고 그곳으로 안내를 하였다. 달짝지근하고 연한 생미나리는 돼지고기 삼겹살과 어울어져 찐한 맛을 내었다. 어째 식당 서빙하는 그녀는 구이 도구를 그녀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내가 무디어 보였나보다. 사십 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이었다. 순부드리한 눈매에 순부드리한 행동. 세월의 흔적이 주름에 잡혀 있는 것은 나와 닮았다. 아이 얘기부터 남편 얘기 궁금했던 그동안의 얘기들을 쏟아부었다. 술 대신에. 강과 기찻길과 매화가 어우러진 원동마을. 이곳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익어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 강물이 많이 일렁이었다. 우리나이에 호흡기질병 감기를 조심해야 한다며 마스크를 쓰라고 하여 아차하며 꺼내었다. 이곳은 흰매화가 대세인가 적매화 홍매화는 다문다문 보였다. 매화국수를 파는 식당위로 위로 언덕위로 산마루 낙동강으로 올랐을때 카톡이 왔다. 홍콩에 선배랑 여행중인 딸아이로부터 홍학이 날라왔다. 호수에서 노니는 홍색 학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학도 홍학이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연이어 두 돌된 외손자는 사위가 잘보고 있으니 염려는 붙들어 매라는 양 사위와 외손자가 끈끈하게 뽀뽀하고 빨간토끼 잡은 뽑기놀이 장면을 보내주었다. 요 앙식, 이 앙식, 저 양식 저마다 다 취해가며 산천을 누볐다. 산천은 누리는 자의 것이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
보름을 앞두고 갓 올라 온 생미나리를 탐닉하고 매화에 또다시 취하고 그녀를 만나 회포를 풀었다. 이른 저녁으로 가까운 중국요리집에서 까만 짜장을 시켰는데 물짜장이라고 해 의아 했는데 홍학을 닮은 색에 앙파와 해산물을 가득 담은 요리였다. 이것을 어찌 먹을꼬 하였는데 그 개발한 음식은 먹을수록 입에 착 달라 붙었다. 비를 막아주는 새 우산을 선물받았다. 내려 온 선로엔 비바람이 몰아쳤다. 춥지 않았다. 영적 육적 양식을 취하고 온 길은 따뜻한 훈풍을 만난듯 훈훈 하였다. (20260303)보름에~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