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사과가 저문다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 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출처: 무등일보(www.mdilbo.com) --------------------------------------------------------------- 한 알의 사과가 저문다
한 알의 사과가 떨어지는 모양을 저문다로 표현합니다. 대단한 발상이죠. 해가 저물거나, 날이 저무는 것은 생각해 보았지만, 사과가 저물다니요. 이런 것이 시인의 시선입니다.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시인은 떨어지는 사과를 곤두박질치는 것이라고 해 놓고는 다시, 날아오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떨어지는 것들은 날아오르는 것이죠. 떨어지지 않는다면 날아오를 수 없지요. 비행기도, 새도, 사과도 붙어 있던 것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날 수 없습니다. 떨어져야 날 수 있다는 비범한 발견입니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사과가 붉게 익어갑니다. 완전히 익은 사과는 떨어져서 더 단맛을 냅니다. 사실 떨어진다고 해서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속성은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가지에 붙어 있던 사과가 툭 떨어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떨어지는 게 아니라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거죠. 가지에서 사과가 떨어지면 가지는 휘어졌다가 그 탄력으로 다시 원위치로 돌아옵니다. 그림을 보는 듯합니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인은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이제 횡단보도를 건너는 자신, 아니면 당신, 아니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이 중력의 법칙이 아니라는 거죠. 횡으로 나란히 가다가도 떨어질 수 있는 우리입니다. 다들 각자의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거죠.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고 경험하는 것도 다른 것이 인생입니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 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자동차를 달려온 길을 허공으로 보고 있습니다. 횡으로 떨어지는 거니까요. 삶은 후회와 기다림과 회한으로, 그리고 만남과 이별로 가득합니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라는 시인의 고백은 사과가 사과 apple이 아닌 사과 apology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사과는 모든 오해를 풀어내는 실마리입니다. 사과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일들이 우리에겐 익숙합니다. 우리 곁에 머물렀던 오해들은 지나고 보면 사실 사소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먼저 사과한다면 용서가 우리를 당기지 않을까요? 만유인력처럼 저절로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보시길 바랍니다. 자연의 법칙은 서로를 끌어당기게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