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 in God
목요일 아침 관리자 회의하면서, 행정실장님이 “신부님, 신부님은 휴가 계획 어떻게 되세요? 무슨 계획 있으세요?” 그 옆에 있던 교감 선생님이 “신부님도 쉬셔야죠? 좀 쉬고 오세요. 언제 가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이번 주에 다녀올 생각입니다.”라고 했더니, “신부님, 오늘이 목요일이고 내일이면 주말이 시작되요. 이번 주가 다 갔어요. 다음 주에는 교감 선생님이 휴가 계획이 잡혀 있으니, 이번 주에 못 가시면 또 휴가 없이 보내야 해요. 다녀오세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오늘 오후부터 휴가 다녀올께요.”
그리고는 11시 미사에서 “오늘 오후부터 휴가라서, 내일(금요일) 미사 없습니다. 여러분도 건강 잘 챙기면 좋겠습니다.” 하고는 교장실에 내려왔는데, 막상 갈 곳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고,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부산한데, ‘어디를 간담?’하고는 혼자 웃었습니다. ‘간다고 큰소리는 쳐 놓았는데, 어디를 가지?’
그러다가, 2년 전에 행정실 직원들과 함께 갔던 봉평 펜션이 생각났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 오세요. 신부님은 언제나 최고의 VIP이십니다. 언제든 오세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출발하려고 하는데, 괜찮습니까?”라고 했더니, “조심히 오세요.”라고 전화를 끊었는데, 10여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언제쯤 오세요? 오늘 오시는 것 맞지요?” 제가 “왜요?”라고 하니깐, “신부님께서 혼배 주례해주셨던 애들이 손주를 데리고 이곳에 왔는데, 신부님이 오시면 뵙고 내일 간다고 하네요. 오늘 저녁과 내일 일정을 바꾸겠다고 하네요. 신부님 오늘 오실 수 있으시죠?”
그래서 떠나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오후에 출발했습니다. 봉평 ‘가재와 곰’ 펜션으로!
출발은 했는데, 휴가 떠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집을 떠나기 위한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양말도, 양치질할 것도, 속옷도 없이 출발했습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무작정 떠나는 휴가 사람’이라고 혼잣말로 저 자신에게 하면서 말입니다.
준비한 것은 없어도,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그래도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 안성을 빠져나가기 전에 ‘안성포도’(씨없는 샤인 머스켓 도와 검정 포도를 섞어서)를 푸짐하게 한 상자 마련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거리, 졸릴 것 같아, 차 안에서 먹을 포도 한 송이를 사서, 잘 씻었습니다.
초반에는 길이 막혔지만, ‘이번 휴가는 좀 거시기하다.’라고 생각하며 룰루랄라 하며 안성 포도를 입에 넣어가며 습니다. 어머니께는 휴가 간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몰래 가는 기분 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죽산, 호법 분기점을 지나면서 막히지 않고 신나게 달릴 수 있었습니다. 안성과 죽산, 이천 여주의 논밭과 산야를 지나, 문막을 지나 원주, 둔내쯤 가니, 조금씩 높은 푸른 산이 반겨주었습니다. 정말 푸르름의 극치였습니다. 날도 좋았습니다. 기분도 좋았습니다. 밖에 날씨는 더웠지만, 차 내는 에어컨으로 시원했습니다. 기도도 하고, 그동안 들어왔던 오디언 북, ‘Becoming’(미셀 오바마의 자서전) 들으며, 앞을 향해 갔습니다.
그동안을 생각해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19로 개학을 5번이나 연기하면서 선생님들과 준비했던 일들, 학생들과 조심조심하며 학교생활(수업과 기숙사, 식당)을 하면서, 긴장했던 많은 것들이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그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으니, 얼마나 고심하며 달려온 시간인가?’ ‘선생님들과 직원들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피곤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은인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고 함께 하려고 노력하며 기도했던 시간들. 모두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지난 시간을 헤아려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떠날 수 있는 시간, 여유있는 시간이 감사했고, 저 자신에게, ‘안법 교장 최 신부, 그동안 수고했어. 당신은 휴가 다녀올 자격이 충분히 있어, 내가 허락한 시간이니, 즐기다 오길 바란다.’라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설립자 공베르 신부님도 하늘에서 격려의 미소를 짓는 것 같았습니다.
봉평 IC를 빠져 나와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계곡물과 푸른 숲에 온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마음만을 담그며 찾아갔습니다.
친한 친구 신부님의 소개를 받아, 찾아갔던 펜션,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행정실 직원들과 연수도 갔던 곳. 그곳에서 구름과 산과 하늘만 보고 온 것이 아니라, 그 집 주인과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곳 분위기는 정말 끝내주는 곳입니다. 봉평의 펜션들이 많은데, 가장 큰 마을의 가장 끝 쪽에 있는 곳입니다. 펜션 뒤에 큰 산이 있고, 옆에는 큰 산줄기가 오고 가는 사람을 감싸주고 있으며, 앞산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왼쪽에서 시작되어 집 앞으로 흘러가는 골짜기 계곡은 세상에 생명수를 전해주는 것처럼 보였고, 계곡물은 기분 좋아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듯했습니다. 약 3천 5백 평 규모의 펜션을 30여 년간 가꾸어온 야고보씨의 수고가 있었기에(얼마나 튼튼하고 견고하게 꾸며 놓았는지 그 어느 곳도 비 흔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번 크고 긴 장마에도 불구하고) , 정말 자연과 잘 어울리는, 머물다 가기에 딱 좋은, ‘좌청룡 우백호’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곳, 이곳에 수도원이나 피정의 집으로 이용하면 좋을 곳입니다. 쉼이 필요한 분에게는 딱 좋은 곳이라 여깁니다.
그곳 주인과 두세 번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집 아들 혼인미사 때에, 혼배 주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땜빵으로, 혼배 주례해주기로 했던 분이 다른 일정 있어서, 저에게까지 연락이 된 것입니다. 그곳에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오시는데, 제가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더욱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그 주인장은 안법 학교의 영적은인이 되어주셨고, 저는 그분들의 은인 아닌 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혼배해 준 신랑 신부가 저를 참 잘 따랐습니다.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소식을 주었습니다. 그 소식 때마다 그 내용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내용으로, 각인될 만한 내용과 주제로, 글을 예쁘게 보내주었습니다. 신혼 이야기, 아기를 좀 늦게 갖게 된 이야기, 아기를 낳아 건강하다는 이야기, 가끔 기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저의 축일과 성탄과 부활 축하의 메시지 등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가족처럼 발전해 나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저이기에게, 진행되는 이야기와 사연과 깊어가는 우정 안에서 가족애가 싹트기에 충분했습니다.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반가워했습니다. 집 앞에 묶어둔 까미(까만 개)도 신나게 뛰며 반겨주었습니다. 물 한 잔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서로가 경쟁하듯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큰 주제는 ‘아기’였습니다. 이름은 건우.
이번 코로나와 장마로 인하여, 건우도 처음에 그곳에 왔다고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제 두 번째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즐거워하는데, 아기 엄마 아네스가, 건우를 번쩍 안아 제게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좀 당황했습니다. 보통 갓난아이를 건네주는 엄마들은 많지 않은데, 아네스는 달랐습니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아이가 낯설어 하는데, 자기들에게 혼배해준 신부님에게 덥썩 안겨주는 모습에 감동 받았습니다. 제게 온 건우는 웃어주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바람에, 저는 아네스에 이어 건우에게도 감동 받았습니다. 그렇게 안아서 한참 웃기고 어르고 달래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카들을 안아 본 것이언제인지...? 그 조카들이 벌써 애기들이 둘씩이나 있으니... ㅎㅎㅎ.
그리고 귀한 손님 왔다고 그동안에 감춰두었던 좋은 것들을 하나씩 내어놓았고, 그것을 군침 삼기며 한잔하며 주는대로 먹었습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는 생각으로 즐겼습니다. 밤늦게까지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단지, 어머니가 좀 걸렸고, 학교 선생님들과 영적은인들을 이곳에 모시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즐거운 시간이 잘 지나갔습니 다. 그러다가 밤 9시에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리자, 안주인이신 아네스 자매님이 성월기도 해야지요.. 그래서 떠나기 전에 행정실장님이 챙겨준 학교선물 가운데, 성월기도문이 있었는데, 그것을 꺼내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강원도 봉평에서 아시아지역과 오산지구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이 묘하게 다가 왔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인간적인 친분을 넘어 영적인 친교까지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기도 후에 강복을 주는 저도 참 행복했습니다.
산이 깊은 곳에 밤과 행복이 깊어가니, 펜션은 더위는 사라지고, 냉기를 느낄 만큼, 기분 좋은 기운이 돌았습니다. 휴가 준비를 해가지고 가지는 않았지만, 특급 대우를 받으며, 편안한 밤을 맞이했습니다. 몸이 기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아침에 깨어나, 계곡물과 주위를 산책하고, 몇가지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것을 총무님이 우리 카페에 담아 주었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 다 챙겨주셨고,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들이 챙겨주셔서, 행복의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해서 맛난 곤드레밥을 먹고, 모닝커피, 못다 한 사연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좀 나른해서, 방에 들어가 또 한숨 잤습니다. 그러고 나니, 점심때... 또 점심을 먹고, 또 이야기와 웃음과 즐김, 기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온 김에, 삼척에 있는 친구 신부님에게 들렀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했습니다. 처음에는 통화가 안되었지만, 나중에 연락이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형, 오세요. 기다릴께요.”라고 하여, 약속이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또 다른 휴가의 여정이 확장되어 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휴가 2로 기대하시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글을 기다렸던 분들, 기도해주셨던 은인 분들에게 기도와 강복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저희 모두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아멘.
+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아멘. 찬미 예수님~
아멘~!
감사합니다~♥
혼자 무작정 떠나는 여행~!
정말 멋진 휴가를 즐기고 계시네요.
편하고 행복한 휴식 중에 저희를 위한 영상까지 잊지 않고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촬영 너무 멋지게 잘하셨어요.
음악과 함께 영상 편집해서 카페에 올리려고 하는데...
대용량이라서 올려지지 않네요.
신부님~
유튜브에 올려서 링크 공유하면 카페에 올릴 수 있어요.
남은 시간 행복하고 멋진 휴가 되세요~^^♡
신부님의 휴가 얘기도 연재되는건가요?ㅋㅋ
좋은사람들과 주님께서 마련하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편히 즐기다오십시오.
경기도는 저희가 지킬께요.
아름다운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행복 충전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세상일 멀리하고 훌쩍~
자연과 함께 건강한 삶 건강한 휴가 내일을 향한 활력소 가득담긴 풍경은
저희에게도 휴식으로 풍덩 빠지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