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인연
최명애
서랍 속에서 두툼한 일기장을 발견했다. 남편과의 연애 기간에 있었던 일들과 마음을 적어 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읽어보니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
인연은 친구가 주선한 미팅에서 시작된다. 나는 약속 장소를 착각하여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전화 확인도 못 하고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있으니, 친구가 집으로 전화가 왔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안 나간다고 하니 기다린다고 자꾸만 나오라고 한다. 다행히 약속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았다.
남편과 짝이 되었다. 남편은 주선자였고 파트너 정하기에 제외한다고 했는데, 남자가 한 명 부족해서 주선자도 참여했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여러 차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릴 때 살던 집에서 나를 보았다고 했다. 외할머니를 따라 친척 집에 종종 갔었는데 그 무렵에 같은 집에 세 들어 살았다고 한다. 할머니를 따라서 오는 어린 여자아이가 나였다는 것이다. 만나야 할 운명 같은 인연이었나 보다. 그때 모임에 끝까지 나가지 않았으면 ….
부부가 된다는 것은 더욱 깊은 인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불법에서는 부부 인연은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뿌린 씨앗의 결과물이며 선한 인연도 있고 악한 인연도 있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악연도 선연으로 만들어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다. 나는 남편과 3년을 철없는 연애 기간을 거치고 결혼했지만 신혼 시절부터 별거 아닌 거로 싸우고 성향 차이로 갈등을 많이 겪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위기를 극복하는 힘도 생기고 서로가 간섭을 자제하고 생각과 취향이 다름을 인정하니 관계가 편안해졌다.
남편은 남의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결혼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내가 가끔 상대의 흠을 이야기할 때도, 이해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상대의 편을 들어서 나를 화나게 만든다. 어쨌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고 흠을 잡지 않는 점은 대단하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고민을 말한다거나 힘들어하는 경우는 성실히 대화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아들이 사춘기 때도 깊이 있는 대화도 많이 한 것 같다. 살갑게 대하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꼭 필요한 말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남편은 검소하고 물건을 정리 정돈 하는 것을 좋아한다. 버리지 않고 옛날 것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책이나 물건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어 한 번씩 몰래 버리기도 한다.
아들은 긍정적이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다. 주변의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잘 보내고 책임감도 있다. 외둥이로 자랐지만 의외로 독립심이 강하고 스스로 잘해 나가는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서울로 가서 공부하고 군대도 선택하여 공군 복무를 마치고, 캐나다 어학연수일정도 혼자 찾아서 1년간 다녀왔다. 대학교 4학년 졸업하기 전에 직장을 일곱 군데나 지원해서 다 합격하였다. 선택한 직장에서도 열심히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데리고 타국 생활을 하고 있다. 모두 건강히 잘 있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
며느리 될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을 때 처음부터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상냥하고 예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하고 3년 뒤에 손자가 태어났다. 며느리의 육아 휴직이 끝나고 1년 반 정도 큰 손자를 돌봐 주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힘든 줄 모르고 했고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둘째 손자가 태어나는 날 아침에는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창밖에 탐스럽게 내리는 눈을 보고 있는데, 마트 행사에서 1등에 당첨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상금을 30만 원 받아 가라는 것이다. ‘복덩이가 태어났네.’ 며느리가 둘째 손자를 순산한 것도 반가운데 상금까지 받았으니 고마운 날이다.
며느리는 모성애가 강하여 두 아이를 모유 수유로 다 키웠다. 아기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의 자격을 믿을 만하다. 아기들을 위한 활동이나 장난감, 놀이 등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니 손자들이 엄마 복이 많은 것 같다. 며느리는 둘째가 태어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배운 것과 연봉을 생각하면 아깝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남편 내조를 하는 것도 아내로서, 엄마로서 큰 몫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온 것도 인연 따라온 것으로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 중에 나와 인연이 되어 가족의 일원으로 같은 울타리 속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인연인가?
첫댓글 아름다운 가족이며 시절인연입니다 가정의 평강을 기원 합니다 좋은 글을 계속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