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32) 관우와 장비의 재회
장비처럼 위대한 영웅도 없었다.
싸움이면 싸움, 전쟁이면 전쟁, 나서면 절대무퇴(絶對無退)요, 당당한 기백은 세상 어느 남자가 따라 올 수 없는 용맹함과 충의로움의 사내였다.
그러나 이런 장비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술을 너무 좋아하고, 취하도록 마시며, 마신 뒤에는 주사(酒邪)가 심하다는 것이다.
소위 , 장비는 술에 취하면 <개차반>이 되기 일쑤였는데, 그것도 하루걸러 한 번씩 그렇다 보니, 말리려 하여도 말릴 사람도 없고, 말하여도 듣지도 아니하니, 주변의 사람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일 수밖에 없었다.
장비의 술 버릇은 고성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예전에 유,관,장, 삼인이 도원결의를 했던 때를 회상하며, 이날도 복숭아 꽃이 흐러지게 만개한 후원 정자에서 술독을 옆에끼고, 휘하의 젊은 장정들을 불러들여 봉술 대련을 시키면서 관전하고 있었다.
"좋아! 잘하고 있네! 야! 너 말야, 어서 한대 후려갈겨!"
장비는 흡사 자신이 싸움판에 있는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러자 장비의 말 대로 봉을 한대 후려맞은 사내가 쓰러지자, 이번에는 얻어 맞은 놈의 편이 되어 소리를 지른다.
"일어나! 병신 같이 그걸 맞고 쓰러지냐? 저 놈이 후려칠때 이렇게 막았어야지!"
장비는 팔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입에 침을 튀겨가며 떠들었다.
그러자 쓰러졌던 놈이 장비를 향하여 고개를 쳐들고 애처로운 어조로 말한다.
"장군! 손이 부어올라 더는 못 합니다."
"예끼, 이놈! 손모가지가 부러져라 놈을 쳐야지!"
장비는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두 놈은 봉을 버리고 본격적인 몸싸움을 시작한다.
"그래! 그거야! 계속해! 하하하하!"
이러는 가운데 수하 병사가 고한다.
"장군! 수색을 나갔던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만하고 물러가라!"
장비는 봉술 대련을 중지시키고 수색을 다녀온 자를 불러들였다.
"장군!"
"형님들 소식은 있더냐?"
장비는 화색을 띠며 물었다.
"소인이 연주까지 가서 들었는데, 관우가 조조 밑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뭐야? 잘못 들은 것은 아니냐?"
"틀림없습니다. 관우는 조조의 밑에서 벼슬도 받고, 많은 금은 보화와 특히, 예쁜 시녀를 열 명씩이나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뭐야? 이런 개뿔 같으니! 이건 틀림없는 헛소리야!"
장비는 화를 발칵 내면서 휘하 병사에게 말한다.
"저, 헛소리 한 놈을 곤장 열 대로 다스려라!"
"예!"
장비는 자신이 적으로 싸우던 조조에게 둘째 형 관우가 몸을 의탁했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번 째 달려 온 자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장군! 관우는 조조에게 투항하였다고 합니다."
"헛소리!"
"확실합니다요!...투항해서 조승상을 도와, 원소의 두 장군 안량, 문추를 죽였답니다. 그 공으로 한수정후에 봉해지고, 승상이 내린 저택에서 호의 호식하며 산답니다."
"개소리 작작해! 그럴 리가 있나? 여봐라! 이 놈도 끌고가 곤장을 쳐라!"
장비에게 관우의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의 말을 종합해 보면, 마냥 잘못 알고 온 소식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장비는 술독을 독째 들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봉술 대련을 할 때에 놓고 간 봉을 집어들었다.
"관우! ~...관우!..."
목이 터져라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 장비는 봉을 들어, 도원의 복숭아 가지를 닥치는 대로 후려갈겼다.
마치, 도원결의를 할 때에 그곳에 함께 있었던 관우를 보듯이...
장비의 난동은 한참을 끌었다. 이윽고 봉이 부러져버리자 장비는 복숭아 나무를 뿌리째 뽑아가지고 성한 가지와 나무를 후두려 갈겨대었다. 한참을 이렇게 힘을 뺀 장비가 그 자리에 털석 주저 앉으며 울부짖었다.
"유비 형님! 어딨소? 관우가 역적놈 밑에 갔소! 우와! 내 이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야 말겠소!"
...
한편, 산적 부하들을 모두 해산시킨 주창은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한 손에 거뭐쥐고, 적토마의 고삐를 잡아끌며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였다.
그리하여 여남군 고성현의 성문이 보이자, 관우가 주변 경관을 살펴보며 주창에게 묻는다.
"주창! 저 앞은 어디더냐?"
"성문을 지나 5 리를 더 들어가면 고성 관아입니다. 그런데 두 달전 쯤, 어떤 도적놈이 나타나서 현령을 붙잡고 왕노릇을 하고 있는데, 주위 삼백 리 내에는 그를 당할 자가 없습니다."
관우가 그말을 듣고, 마상에서 웃으며 말한다.
"허허허허! 자네도 못 건드릴 정돈가?"
"말씀맙쇼. 덩치도 집채 만하고 잔인한 놈이라, 어찌나 억센지, 제가 세 번이나 겨뤄봤는데 모두 지고 말았습니다."
주창은 기가죽어서 침울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러자 관우가,
"그럼, 나와 관문을 지나가 보려나?"
하고, 말하자 주창은 신이나서,
"장군께서 가시면 그놈은 오늘이 제삿날이 될 겁니다. 제가 앞장 서서 놈을 쫓아내지요! 가시죠!"
하고, 말하며 앞장서서 성문으로 향한다.
그러자 관우가 손건을 부른다.
"손건!"
"네!"
"여기서 마차를 세우고 기다리게, 성문부터 열고 데리러 오겠네."
"그럽지요."
관우는 마차를 그곳에 세워두고, 주창의 뒤를 따라 적토마를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장군! 조심하세요."
뒤에서 손건이 안전을 당부한다.
한편, 고성현 관아에서는 장비가 낮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현령이 쪼르르 달려와 아뢴다.
"장 장군! 와우산 산적 두목 주창이 달려와 장군은 꺼지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장비가 뜬던 닭 다리를 놓고 현령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현령은 대번에,
"아, 아뇨... 장군보고 나가시라고..."
"번번히 진 놈이 또 왔어? 난 진 놈하고 상대하기 싫어!"
장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번에는 장군이 한명 더 있사온데, 장군이 찾던 관우라는 장군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장비는 입 안에 있던 술을 <확 >뱉어내며,
"뭐라? 관우?"
"그렇습니다! 장군이 그토록 찾으시던 형님! 관우, 그가 왔어요!"
현령은 무지막지한 장비를 보내버리고 다시 예전의 현령자리를 되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신이나서 말하였다.
그런데 어럽쇼? 장비는 의외의 대꾸를 한다.
"그래? 마침 잘 왔다. 좋아!"
그러면서 마시던 술잔을 바닥에 <탁!>던져 깨버리고, 장팔사모를 꼬나잡고 밖으로 뛰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편, 주창은 고성 성문 앞에서 큰소리를 질러댔다.
"도적놈아! 어서 나와서 관장군께 절을 올려라, 이놈!"
그러자 불현듯 성문이 열리며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나오는데, 손에는 장팔사모를 꼬나쥐고 공격해 오는데, 그는 살기가 등등한 장비가 아니던가?
"익덕! 자네가 여기 어떻게! ..."
관우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오는 장비를 보고 말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갔다.
"엇?"
장비는 관우를 향하여 창을 날렸다.
"아우!"
영문을 모르는 관우는 자신을 향하여 공격해 오는 장비의 창 끝을 피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어서,
"익덕! 자네 형 관우라네!"
하고, 말을 하니, 장비는 창 끝을 들어 관우를 향해 소리를 질른다.
"역적놈! 난 너 같은 형 없어!"
그러면서 다시 말을 달려 관우를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아항!...."
관우는 그제서야 장비가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오는 까닭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받아랏!"
장비의 장팔사모가 관우를 향해 날아왔다.
관우는 몸을 돌려 창 끝을 피하며, 그 끝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장비에게 물었다.
"왜 다짜고짜 날 죽이려 하냐?"
그러자 마상의 장비가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대답해! 조조에게 투항했지? 조조가 제후로 봉해줬지? 예쁜 미녀를 열 명씩이나 하사받았지?"
(여기서 장비는 예쁜 미녀 열 명에는 더욱 힘을 주어서 외쳐댔다.)
그러자 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네."
하고, 대답하였다.
(사실이니까)
"놈을 위해서 안량과 문추도 죽였지?"
장비의 추궁이 이어졌다.
"그렇네."
(사실이니까)
"이 짜식, 배은망덕한 놈! 뭔 낮짝을 들고 여길 와! 내가 오늘, 아주 아작을 내주마!"
장비의 분노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관우가 진실한 어조로 마상의 장비에게,
"아우님! 어쩔 수가 없어, 형수님을 지키고 형님 소식을 듣기 위해, 조조에게 투항했던 것이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형수님>이란 소리에 다소간 화를 가라앉히며,
"형수님? 어디 계신데?"
하고, 물었다.
"뒷쪽에 계시네."
그리하여 장비가 뒷쪽을 쳐다보는 순간, 두 사람을 향하여 일단의 군사가 말을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응? 저게 누구지?"
관우가 달려오는 군사들을 유심히 바라보니, 군졸이 든 장군 깃발은 채양이었다.
이를 본 장비가 말한다.
"그래! 조조군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변명을 늘어놔? 잔말 말고! 내 창부터 받아!"
장비는 다시 관우를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그러자 관우는,
"그렇다면 조조의 장수, 채양을 죽여 진심을 보이면 되겠나?"
하고, 장비에게 물었다.
그러자 장비는,
"좋다! 북을 세 판 칠 동안에 저 역적 놈을 죽여봐! 안그럼 너는 조조와 한 패라고 믿을 테니까!"
장비는 이 말을 끝으로 고성 성루로 달려 올라갔다.
장비가 떠나자 관우는 주창에게 청룡도를 넘겨받아 달려오는 채양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관우의 지척까지 달려온 채양이 말을 멈추고 소리를 지른다.
"관우! 내 조카 진기를 죽였더냐! "
"그런가? 앞 길을 막는 자는 모조리 베다보니, 죽였는 지도 모르지!"
그 순간 성루에서 장비는 북을 치고 외친다.
"한판 쳤소!"
그 소리를 듣고 관우가 채양을 향하여,
"채양! 널 죽이긴 싫었지만, 하필 너는 이런 때 나타나는 바람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고, 말하였다.
"두판 쳤소!"
그때, 약이 바짝 오른 채양이 관우를 향하여 달려온다.
"받아라!"
"야 ~ 아! ~..."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던가? 실력보다는 월등히 목소리가 큰 채양이 괴성을 지르며 관우에게 달려들며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관우는 땅바닥에 그대로 서서 달려오는 채양을 향하여 청룡도를 한번 들었다가 내렸을 뿐인데, 채양은 말에서 그대로 떨어져 버린다.
그러자 관우는 다시 한번 창을 들어 채양의 목을 따버렸다.
세번째 북을 치고 돌아선 장비가 두 사람의 대결을 쳐다보니, 채양과 함께 달려온 조조군은 관우의 위세에 놀라 그대로 모두 꽁무니를 빼는 것이 아닌가?
관우가 성루의 장비를 보고 묻는다.
"아우님! 보셨는가? 관우가 누구던가! 절대 배은망덕하진 않네!"
그러면서 청룡언월도를 들어 허공을 향해 한바퀴 휘돌아 보이면서 자루를 땅바닥에 <쾅!>하고 내려 꼿았다.
그러자 북채를 놓아버린 장비가 소리를 지르며 관우에게 달려온다.
"형~니~임! ~ .... 형님! ~..."
그러자 관우는 두 눈을 감은 채 대답조차 아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형님!... 내가 잘 못 했소! 엉? 형님! 나 좀 보시오 예?"
그래도 관우는 눈을 감은 채로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러자 장비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관우의 앞에 <털썩> 무릅을 꿇었다. 그리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형님! 나요! 나, 장비!"
그러자 그제서야 눈을 뜬 관우가 장비의 눈 높이로 허리를 구부리며.
"아우! 날 세!"
하고, 장비의 앞으로 다가갔다.
"형님!"
"아우님!"
"하하하하!"
"으 하하하하!"
이렇게 서로 부등켜 안은 관우와 장비의 웃음 소리는 좀 체 끝날 줄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