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가 용왕의 병을 고치려고 뭍으로 올라와 토끼를 찾았다. 호시탐탐 토끼를 용궁으로 데려갈 기회를 노리던 중 토끼가 거북이를 보고 달리기 시합을 제안한다.
"거북아! 거북아! 난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과 달리기를 하여 모두를 다 이겼어. 그런데 네가 나타나는 바람에 이기지 못한 단 하나의 동물이 생겼지. 난 이런 상태를 견딜 수 없어! 그러니 오늘 나랑 경주를 하자!"
"네가 보다시피 나는 땅에선 그리 빠르지 못해! 하지만 바다에선 상당히 민첩하지. 굳이 시합을 하고 싶다면 수영 시합을 하는 것이 공평할 것 같은데..."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동물들이 거북이에게 비아냥을 보낸다.
"수영은 중요한 시합이 아니야! 달리기만이 수준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이지."
거북이가 억울하여 항변한다.
"하지만 내가 살던 바다에선 수영이 가장 중요한 시합이었어."
"그런 미개한 동네하고 우리 동네를 비교하지마!"
"우리 동네가 미개하다고? 어떻게 그런 망발을... 좋아! 내가 달리기에서도 너를 이겨 우리 동네의 우수함을 알리고야 말겠어!"
화가 나서 질 것이 뻔한 발언을 한 거북이는 후회로 땅을 쳤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비록 정당한 항변일 것이지만 발언을 번복하면 육지 동물들은 더욱 더 바다 생물들을 낮추어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거북이는 뱉어낸 말을 지켜 마음 속 자부심만이라도 지키고자 하였다. 공평하지 못한 시합을 강요한 것은 저들의 잘못이니 그가 개의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다행히 시합을 하던 도중에 토끼가 당근 밭에서 잠이 들어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 하였다. 조심조심 토끼 옆을 지나던 거북이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되돌아와 토끼를 흔들어 깨운다.
"토끼야! 토끼야! 이곳에서 계속 잠을 자면 시합에서 나한테 지게 될 거야!"
잠에서 놀라 깨어난 토끼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판단할 틈도 없이 이겨야겠다는 승부욕 하나로 땅을 박차고 결승점을 향해 내달았다. 거북이는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토끼를 뒤 쫓았다. 그런데 잠에서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토끼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이 나무뿌리에 메달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다시 거북이가 가까이 와 토끼를 구해주었다. 잠에 빠지지 않아 정신을 바로 차린 토끼는 거북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를 살린 것은 이해가 되! 왜냐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잠이든 나를 두고 그냥 달리면 경주에서 이길 수 있는데 왜 나를 깨웠지?"
"그렇게 이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달리기 시합에선 나보다 훨씬 빠른 네가 이겨야 세상이 발전하는 것이지. 이 시합에서 내가 이겼다고 하여 나는 위대해지지 않아! 그저 단 한 번 운이 좋았을 뿐이지. 그렇지만 다른 육지 동물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바다에서 나는 대단히 훌륭한 생명체임에 틀림없으니 나의 자부심이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니야!"
시간이 너무 걸려 혹시라도 있을 사고를 대비해 경주자들을 찾아 나선 동물들이 모두 이 대화를 듣고는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사과하였다. 그러자 거북이도 자신의 마음 속 숨겨진 의도가 불편하게 느껴져 고해성사를 하고 말았다.
"사실 나는 토끼를 잡으러 이곳에 온 거야! 토끼의 간만이 용왕님을 살릴 수 있거든... 용왕님의 지혜는 헤아릴 수 없이 깊어 그분이 돌아가시면 용궁의 정치가 어지러워져 많은 물고기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니, 나는 토끼 한 마리를 꼭 잡아가야만 해!"
그러자 주변의 동물들은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왜? 왜 그렇게 웃는 것이지? 그동안의 우정을 깨고 토끼 한 마리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나는 지금 가슴이 너무 아픈단 말이야. 웃을 일이 아니라고!"
"수영을 얕잡아보는 우리만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토끼의 간만이 용왕을 고치리라고 생각하는 너희 물고기들도 어리석은 것은 마찬가지이구나. 용궁의 의술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라면 너무 노쇄하여 기력이 소진되신 것이니, 근본적인 희망은 없겠지만 수백년 묵은 산삼을 복용하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찾고 명상까지 겸비하시면 상당기간은 생존하실 것이야. 그리고 산삼의 위치는 산에 사는 우리들이 제일 잘 알지!"
그렇게 육지 동물의 도움을 받은 거북은 용왕을 구한 영웅이 되었고, 죽음에 직면했던 용왕은 권력의 덧없음을 깨닫고 자신만이 독점하였던 지혜를 후세들에게 전달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후 왕좌에서 물러나 평화로운 삶을 누리다 수명을 다하였다.
첫댓글 천혜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_()_
물론 초기불교에서는 자기만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으며, 부처님께서도 몸소 이를 실천하셨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초기불교 교학을 배우는 목적이 분명한 카페이므로, 이곳에서만큼은 법우님께 초기불교 교학을 권했을 뿐입니다.
모든 종교와 도를 아우르려면 먼저 다른 종교와 도에 대해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 올렸습니다.
또 천혜님은 그런 존중을 실천하시는 분으로 보입니다.
도산님 범부들중에는 도저히 대화가 통할 수 없는 범부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천혜님은 도산님이 아무리 초기불교를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시더라도
천혜님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고 보입니다.
저는 천혜님께서 나름대로 도를 얻었거나 또는 모든 종교를 조화할 수 있는 견해가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당면한 본 카페의 수행자들을 어떻게 조화시키실 것인지 여쭌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 초기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3가지의 예를 든 것입니다.
즉, ①삼계의 광활한 공간과 ②헤아릴 수 없이 반복되는 겁의 시간과 ③이 시간과 공간에서 도를 성취한 네 성자들의 가르침의 분들
이러한 간단한 세가지 예로 들어서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초기불교를 배우는 자들에게
천혜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시어 포용하실 지를 고견을 여쭌 것입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 법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 쓰라리고 괴롭고 거부감이 들더라도 진실이라면 수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우님은 모두 터놓고 토론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이곳은 초기불교를 배우는 카페입니다.
그래서 법우님은 법우님의 카페로 와서 대화하자고 제안하셨을 것이고, 그 제안 자체는 법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초기불교의 최대 관심은 괴로움의 소멸(열반), 즉 삼계 윤회의 괴로움의 소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만일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는 법우님의 도가, 초기불교보다 더 쉽고 더 훌륭하다면
기꺼이 법우님의 카페에 가입하여 법우님의 도를 알아보아야 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초기불교에는 사성제, 12연기를 꿰뚫어 아는 실천적인 바른견해와, 팔정도의 실천적인 도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도보다 천혜님의 도 또는 천혜님이 믿는 도가 윤회의 괴로움의 소멸로 더 잘 인도한다면
그것이 어떤 도인지 이 자리에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법우님의 카페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셔서 법다운 대화가 오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쭈겠습니다.
윤회의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방법으로서 천혜님의 도닦음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괴로움의 소멸을 영원히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습니까?
간략한 소개의 가르침 부탁합니다. _()_
저의 답글이 불교 신자 분들에게 극히 가슴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답을 원하신다면 한 번 드려보긴 하겠습니다마는
도산님이 아닌 다른 분들이 화를 내실까 걱정입니다.
도산님은 상대가 예를 갖추고 진실을 말하는한 절대 화를 내실 분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과찬이십니다. 본 카페에는 수 많은 대덕들께서 말없이 교학과 수행에 정진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오직 매순간 제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무상, 고, 무아의 인식을 닦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법우님의 말씀은 글을 보는 많은 분들에게 이익과 향상이 있지 않다면 그 법담은 보류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다른 조건에 의해 만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만 인사올립니다.
행복하시길, 괴로움 없으시길... _()_
도산님의 현명하신 결정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성인'이라는 천혜님의 설명이 다음과 같다면,
'모두'의 정의는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든 분을 일컫습니다. '성인'은 각종 종교의 교주님 수준의 성인을 말합니다. 성인이란 지금 즉시 자신이 성인되겠다고 맹세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믿음이 깨지는 행동을 하는 순간 자격을 잃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의 [천혜님의 정의]는 [이성적(논리적)이지도 않고, 명확한 기준도 결여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하므로
저하고는 더 이상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기불전연구원에 본문 글 같은 동화이야기를 게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구루마님의 정직한 평가에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저를 잘 살펴 어리석음을 극복하고 구루마님에게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