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특집 :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스님] 다만 하지 않았을 뿐,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네

[解脫(해탈)]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고요한 산 속에 홀로 앉아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니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
고요하고 고요해서 꾸밈없는 그대로가 본래 이러하구나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
그런데 무슨 일로 서풍은 숲과 나무를 흔드는고
일성한안누장천(一聲寒雁淚長天)
기러기 한 마리가 놀라 지르는
외마디 소리가 장천에 울려 퍼지는구나
- 야보도천(冶父道川)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라는 탄생게를 읊으셨습니다.

해석하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높도다.
중생이 사는 이 세상은 온통 고통일지니
내가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라는 뜻입니다.

한데 위의 시는 그러한 부처님의 탄생 원력마저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가 고요해서 자연 그대로인데,
왜 쓸데없이 태어나서
천지풍파를 만드느냐는 것입니다.

본래 자리에서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러한 허물을 남기셨는데,
오늘 제가 여러분께 설법을 한다는 게
전부 허물투성이가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1] 무명의 구름을 벗겨내고 진여의 마음을 보라

부처님께 설하신 8만 4천 법문을 한 마디로 응축시키면
마음 심(心)자 하나로 귀결된다고 합니다.
이를 진여(眞如)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왕자가 왕이 되기 위해 혹독한 왕자수업을 거치듯,
진여의 마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성인으로 추앙받는 달라이 라마 역시
끊임없는 훈련을 거듭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진여의 마음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게 아닙니다.
본래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저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구름에 가렸다고 한들 없어진 게 아닌 것처럼,
진여의 마음 역시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본래의 마음을 감싸고 있는 어둠,
무명의 구름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내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 작업을 불교에서는 수행이라고 말합니다.

불교의 수행법에는 참으로 다양한 것들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도 수행이요,
선행을 쌓는 것도 수행이며,
부처님 경전을 외우거나 절을 하는 것도
모두 수행입니다.

이 많은 수행법들 가운데 오늘은
참선에 대해 한 말씀 드려볼까 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대표 수행법은 간화선(看話禪)입니다.
조사선으로부터 명맥을 유지해온 화두법(話頭法)이
송나라 대혜종고 선사(大彗宗杲, 1089~1163)에 의해
간화선으로 정립되면서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대혜 선사에 관해서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지는데,
바로『벽암록』이라는 책을
불살라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벽암록』이라 하면 불교의 모든 법문이
총망라된 그야말로 굉장한 어록인데,
그걸 태워버린 것입니다.
그것도 본인 스승이 평생을 걸쳐 만든 역작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대혜 선사께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니
하나같이 정답만을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
『벽암록』을 읽고 그저
입으로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대혜 선사께서는『벽암록』으로 인해
선(禪)이 구두선(口頭禪)으로
전락할 것을 염려해 책을 없애버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정립된 수행법이 간화선입니다.
간화선은 나쁜 습관을 단박에 뿌리 뽑고,
번뇌를 일거에 제거해 버리는
날카로운 무기이자 최고의 수행법입니다.

상상근기를 지닌 사람들을 위한 수행법이기에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또한
반드시 해야 할 수행법이기도 합니다.

[2] 마음을 낮춤으로써 믿음의 뿌리를 굳게 내려라

간화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준비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간화삼요(看話三要)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대신근(大信根), 큰 믿음입니다.
전혀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화엄경』에서는
'신이도원공덕모 장양일체선근
(信而道源功德母 長養一切善根,
믿음은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이다.
이는 모든 선근을 증장시킨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은 보이지 않는 뿌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가 뻗어나가듯
간화선 수행을 할 때도 확고한 믿음만 있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제 출가 본사인 금산사에서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당시 한 보살님께서 절에 자주 오셨는데
종종 뵙다보니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보살님께서 제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관세음보살보다 더 영험 있는 분이 누굽니까"
질문을 받은 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럼, 영진 대사를 찾으시오." 라고 답해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결제를 맞아 선방에 들었다가
정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글쎄 금산사가 온통 웃음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살님께서 제 말을 철석같이 믿고,
기도를 할 때마다
"영진 대사, 영진 대사......" 하며
제 법명으로 불렀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 보살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보살님께서 바라던
더 좋은 결과를 얻으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관세음보살보다 잘나서가 아니라
그분이 순수하게 믿고 열심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믿음이라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확고한 믿음으로 하면
안 될 게 없습니다.

한편 모든 것의 근본인 믿음에도 근본이 있습니다.
바로 하심(下心)입니다.
하심은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버리는 일입니다.

처음 절에 오면 스님이 되기 전
행자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수행자가 평생 혼자 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시간인 동시에
세속의 물을 비워내고 마음을 낮추는
하심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입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공부하는 여러분도
모두 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심을 할 줄 아셔야 합니다.
하심을 바탕으로 믿음이 생길 때
비로소 자신의 본래 진면목을 찾겠다는
의지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3] 유수같이 빠른 세월, 분심을 일으켜 수행정진하라

간화삼요의 두 번째는 대의단(大疑團)입니다.
수행을 하겠다고 결심을 한 뒤에
스승을 찾아가면 화두를 내려줍니다.
그 때 화두가 가슴속에 딱 박혀서
화두를 드는 나와 그것이
둘로 나눠지지 않는 상태가 되면,
그것을 대의단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용맹정진을 하거나
100일 정진을 하더라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절을 하고
선방을 떠나거나 수행을 관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50대 때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떠난
나옹 선사나 보조 스님, 경허 스님
같은 분들을 떠올리며
'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화삼요의 세 번째 대분심(大憤心)입니다.
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반드시
윗사람만을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일전에 선방에서 정진할 때,
결제한 지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밤
취침 중에 소변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하판스님(下板, 선방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스님)들이 석상처럼
꼿꼿이 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 내가 보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구나'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분심은 누구한테라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피개장부 여역이 단부위야 비불능야
(彼旣丈夫 汝亦爾 但不爲也 非不能也)'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석하면 '당신들이 선지식이라면 나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다만 하지 않았을 뿐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라네.' 라는 뜻입니다.

곧 능력은 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분심을 일으켜서
한 번 해보시라는 말씀입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러서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 버립니다.
삶이란 영원히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하루 빨리 분심, 무상심을 내어
수행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철저한 하심을 바탕으로 믿음을 일으키고,
선지식이 제시해주는 말씀을 화두 삼아 공부하면서,
막힘이 있을 때는 포기하지 말고
더 분심을 내어 자신을 채찍질하는
그런 불자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관세음보살 _()_

觀世音菩薩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