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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종 원문보기 글쓴이: gottama
미트라스 축제일과 X마스의 탄생::
'예수의 탄생일은 전혀 근거도 알려진 바도 있지 않다.
복음서 어디에서도 그 달과 그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마가의 편지(복음)<다만 전승에 의지할 뿐 실제 마가가 누구인지 마가가 저자인지,
기록연대도 모두 확인 불가>에는 마태, 누가의 편지와 달리 예수의 30살 경 공생애 부터
바로 시작된다. 동정녀 탄생설화나 이교적 구전과 풍습인 동방박사의 방문이나 예물
설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태나 누가복음에 탄생설화나 동방박사 픽션이 첨가된 것은
당대의 조로아스터, 이스터,미트라스,북유럽신화.....등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서
첨가된 것들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가설에 의하면, 예수의 탄생이 동짓날
(율리우스력으로 12월 25일, 이집트인에게는 1월 6일<태양신의 음력 축일>)로 지정된 이유는,
바로 그날에 태양이 북쪽 하늘로 되돌아오기 시작할 때 이교도인 로마의 태양.농사의 신
미트라스 신 신봉자들이
디에스 나탈리스 솔리스 인빅티(무적 태양의 탄생일)를 축하하였기 때문이다.
아우렐리우스는 274년 12월 25일에,
태양신을 제국의 으뜸가는 수호신으로 선포하였으며
한 신전을 마르티우스 광장에 있는 그 신에게 바쳤다.
크리스마스는 태양 숭배가 로마에서 마트라스 대축제일이 설날처럼 풍습으로
고착화 되자 후에 정치적 이유로 콘스탄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미트라스 신 축제일과 예수의 탄생일과 겸하게 한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캐톨릭백과사전 참조)
로마의 농신 사투르누스신과 X마스::
'12월 25일을 X마스로 정한 이유는 좀 모호한 면이 있지만,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즈음에 ‘태양의 재탄생’을 위해 지켜졌던
이교 축제 기간과 일치시키기 위해 그 날짜가 선택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로마의 농신제(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와 새로워진 태양의 힘에 바쳐진 절기)
역시 이 시기에 지켜졌으며, 일부 X마스 관습들은 이 고대 이교 축제에서
유래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메리컨 엔사이크로피아나 참조)
*.참고
사투르누스 신이란: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경신(農耕神;S?turnus;
후에 토성 Saturn과 토요일 Saterday가 됨) 으로 그 이름은 ‘씨를 뿌리는 자’라는 뜻이다.
로마인은 그를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같은 신으로 보는데,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쫓겨
이탈리아로 도망가 농업기술을 보급함으로써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고 한다.
사투르누스의 축제를 사투르날리아(Saturn?lia)라고 하여, 12월 17일에서 19일까지 열었으나
나중에는 23일까지 연장하여 7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의 발아성장과 그 해의 풍작을 비는 제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문헌상에 나타난 사투르날리아는 로마시(市) 전체가 축제 기분에 젖어 떠들썩한 날로,
이 날은 모든 공공업무도 쉬고 전체 시민이 환락으로 밤과 낮을 보냈다고 하는데,
-Saturnus 신과 그의 이름을 딴 토성(Saturn)-
이것이 크리스마스 축제의 원형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의 이름은 행성의 이름(Saturn:토성)과 요일의 이름(Saturday:토요일)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http://100.naver.com/100.nhn?docid=84563)]
원래 X마스 1월 6일::
오늘날도
로마 바티칸 카톨릭은 12월 25일을
그리스 정교회는 1월 6일을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19일을 X마스로 지키고 있다.
모두 예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 지방 신들의 축제일 혹은
농신제,동짓날과 관계있을 뿐이다.
북유럽 신화와 X마스의 탄생::
북유럽 민족들의 남하 대이동과 종교.풍습의 기독교화
민족대이동 [民族大移動;Volkerwanderung]
↑민족대이동 경로 지도
4세기 말 훈족(族)의 서진(西進)에 자극을 받은 게르만계의 여러 부족이 대규모로 로마제국의
영토 안으로 이주하고,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전후하여 제국 각지에 정착하면서 여러
부족왕국을 건설하는 6세기 말까지의 200여 년 동안의 과정을 가리킨다.
민족대이동은 좁은 의미로는 위에서 말한 200년간의 과정을 가리키지만, 게르만 민족은 이미
BC 1000년 이래 원주지인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부, 발트해(海) 연안지방에서부터 매우 장기간의
이동 ·정주(定住)의 과정을 반복하여 남쪽으로 내려가 라인강 이동(以東), 도나우강 이북의
게르마니아 지역에서 흑해 북안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퍼져 살고 있었다.
BC 2세기 말경부터 로마제국에 대한 침입은 자주 시도되었고, 6세기 말엽의 랑고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입, 8세기에서 11세기까지의 노르만인 ·덴마크인 ·노르웨이인 ·스웨덴인 등 북게르만계
여러 부족의 유럽 각지에 대한 침입, 아일랜드에의 식민(植民), 키예프 ·러시아의 건국 등
(이른바 바이킹의 활동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제2차 민족대이동이라고도 한다)이 있으며,
넓은 의미의 민족대이동은 전후 2,000년에 걸친 오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좁은 의미의 민족대이동이라 부르는 앞에서 서술한 200년간의 과정은 넓은 의미의 민족대이동
중에서도 이동의 규모나 속도 등이 현저하였던 시기이다.
따라서 대이동에 대한 직접원인이 동방의 훈족의 압박 때문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게르만 민족 자체의 내부사정, 특히 인구증가에 의한 토지의 부족 등과 더불어 로마제국의
내부사정에도 관계가 있었다. 로마제국은 당시에 이미 군사적으로 약화되어 있었고 내부적 혼란과
모순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원인으로 민족대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67822)
로마족과 튜톤족의 문화
이교습관은 대개 남유럽 문화인 로마와 북유럽 문화인 튜톤족에게서 온 것들이다.
휴교, 형벌 중지
특히 선탄절의 여러 가지 호화로운 습관은 로마의 화려하기 그지 없었던
농신제에서 온 것인데 그들은 농신제를 12월 17~25일까지 지켰으며
즐거운 절기로 학교들은 휴교하고 쉬고 형벌도 중지했다.
각종 풍습들....
♤우스운 옷을 입고,
♤지위와 신분도 잠시 잊고,
♤종들은 상전과 한 자리에서 먹을 뿐 아니라,
(동양에도 이런 야자타임형 풍습이 있다.)
♤상전들이 상놈들과 종들의 시중을 들었으며,
♤서로 예물을 주고 받았고,
♤아이들에게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을 주었다.
♤방에는 촛불을 켜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었으며,
♤밖에 나갈 때에는 뾰족한 모자(원래 신분해방된 자유인의 갓)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는 등........ 다양한 풍습이 있었다.
당시 소수 종교인들이었던 기독교인들도 이런 이교도의
설날이나, 도시축제일, 농신제, 설날, 동짓날과 같은 자연스런 문화에
한주일 동안 즐겁게 이날을 축하하며 보냈다.
북유럽의 풍습과 X마스의 탄생:
북쪽에서 온 것은 튜톤족의 성탄절 습관으로 북쪽 가까운 지방에서는 40일 만에 해가 나타날 때,
스칸디나비아 남쪽과 독일에서는 동지에 ‘거룩한 밤’을 지켰으나 날짜는 분명치 않다.
(북유럽과 시베리아.. 등 북극과 가까운 지역은 백야. 백주 현상이 있다.
인류의 문화란 그 지역의 자연적 환경과 변화 때문에 생겨난다.
몇일 동안 낮이 계속되거나 오랜만에 해가 나타나면 그 지역 사람들은 당연히
각종 요란 장식과 행위로 축제를 벌이는 풍습이 생겨나게 된다.
이 풍습이 기독교 성탄절에 유입된 것이다.)
유럽 일대의 동짓날의 의미는 길고 긴 묵은 해의 끝을 훌훌 보내고
조금씩 낮이 길어지는 새해의 시작으로 생각한 까닭이었다.
(우리 동양의 풍습과 전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북유럽에는 해를
보기가 우리와 같지 않으므로 더욱 절실한 의미가 있다.)
그들은 겨울 한 고비에 ‘풍년과 태평’을 위해
돼지를 잡아 프로이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동지의 깊은 ‘거룩한 밤’은 가장 캄캄한 시기라 귀신들이 많이 나와 논다 생각하고
그 신 중에 왕을 ‘오딘’이라 하였다 한다.
천주교에서는 그 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훗날 ‘만신절’까지 지켰다.
(천주교가 동양에서 유교적 관습과 제사제도를 수용하였듯이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그 지역의 고유 문화와 풍습을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개신교는 선교지역의 풍습과 관습과 일체의 문화와 타협하지 않고
모두 기독교 식으로 바꿔버리려는 습성이 있다.)
*.참고
오딘 [Odin] 신은:
-오딘과 이리, 까마귀, 그리고 위미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아사 신족(神族)의 최고신으로 널리 게르만 민족이 숭앙한 신으로,
고대 인도어로는 보탄(Wu?tan)이라 하였고, 고대 영어로는 보딘(W?den)이라고 하였다.
원래는 천공(天空) 또는 바람의 신이었는데 고대 인도의 풍신(風神) 바타와도 가깝다.
처음에는 농민이 섬기는 토르신보다도 하위에 있었던 듯하나, 귀족 전사(戰士)계급이
세력을 얻음에 따라 싸움의 신으로 격상되었고, 《에다》에서는 ‘만물의 아버지’라고
불리어 천지와 인간의 창조자이며, 모든 신은 그의 아들로 되어 있다.
‘싸움의 아버지’ ‘창을 던지는 자’ ‘전사자(戰死者)의 아버지’ 등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고 처녀들로 구성된 부하 발퀴리(바그너의 오페라에도 등장)를
파견하여 명예로운 전사자를 천상의 자기 궁전인 발할라에 초대한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암소 아우돔라가 얼음덩이를 핥고 있는 동안에 그 속에서 나타난 최초의 신 부리의
아들 보르가 거인의 딸 베스트라와의 사이에 낳은 3명의 아들 가운데 장남
(나머지는 윌리와웨, 또는 헤니르와 로둘이라고 한다)이며,
아우들과 힘을 합쳐 원초의 거인 위미르를 퇴치하고
그 시체로 대지를,
두개골로는 하늘을,
뼈와 이빨로는 산맥이나 바위를,
털로는 숲을 만들었고,
흘러나온 피는 바다와 호수가 되었다.
또한 그는 더 많은 지혜를 얻기 위하여 위미르의 우물물을 마시려다가,
우물의 관리자인 거인 위미르로부터 그 대상(代償)을 요구받고는
자신의 한쪽 눈을 우물에 던져 주었다.
그래서 외눈이 된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수염도 길렀다.
그의 어깨에는 푸긴과 무닌이라는 2마리의 커다란 까마귀가 앉아 있고
발 곁에는 2마리의 이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커다란 까마귀는 하루에 한 번씩 공중으로 날아올라가 세상을 구경한 다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에게 알려준다.
그는 또한 룬 문자를 발명하고,
또 마시면 시인이 된다는 꿀술이 담긴 단지를 거인에게서 훔쳐내는 등,
지혜의 신, 시인의 수호신으로도 알려졌다.
그의 아내는 프리그인데 둘 사이에서는 사랑과 빛의 신 발데르가 태어났으나
그는 사신(邪神) 로키의 간계로 살해당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거마(巨魔)의 연합군과
신들의 일대 결전이
벌어져 거랑(巨狼) 펜리르가 오딘을 삼켜버림으로써 세계는 일단 멸망한다.
이것이 이른바 ‘신들의 황혼’이라는 신화이다.
한편,
그는 발할라궁에 모인 망령들을 거느리고 슬레이프니르라고 하는,
다리 8개가 달린 명마를 타고 공중을 날아 사냥길을 떠나는데,
도중에 만난 인축(人畜)을 닥치는 대로 죽여 없앤다고 하여 ‘난폭한 사냥꾼’으로도 불린다.
이 ‘난폭한 사냥꾼’의 민간전설은 최근까지도 남아 있어 근대에 와서도 그에 관한
여러 가지 보고가 있다.
영어의 수요일(Wednesday)은 ‘오딘의 날’이라는 뜻이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14987)
북유럽.그리스.로마.........등의 신화가 기독교의 성탄절 등 여러 주변 이야기의
첨부.각색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신화의 대서사시적 웅장함과
주도면밀성, 인간미적 여러 면모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북유럽 신화와 신들 종합에 대한 전문글을 여기를 클릭하십요!)
X마스 전나무 추리 장식의 유래
X마스의 전나무 트리는 1605년 전나무가 많은 독일 스트라스북의 고유한 풍토문화였다.
(전나무가 많은 북부독일의 민요
"O Tannenbaum, O Tannenbaum,
Wie gruen sind deine Blaetter...
오 전나무야 오 전나무야
그 변하지 않는 푸르름이아.."로 시작되는 유명한 민요를 상기하라.)
이런 아름답고 신비로운 숲에서 신화는 자연스럽게으로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 풍습이 각국으로 퍼졌으며 키작은 전나무를 집안으로 들여와 장식하는
변모된 풍습은 켈트족이 남긴 습관이라 한다.
*.참고
켈트족이란:
-독특한 문화와 용감무쌍하기로 유명한 케트족 전사들-
[서양 고대에 활약한 인도 유럽어족의 일파로 원주지는 청동기시대의 독일 남동부, 라인강 ·엘베강 ·
도나우강 유역이며, BC 10∼BC 8세기 무렵부터 이동하기 시작하여, BC 6∼BC 4세기 무렵
갈리아 ·브리타니아에 진출하였다.
BC 4세기 초에는 이탈리아에 들어가 로마를 침공한 후, 포강 유역에도
정주하였으며, BC 3세기에는 멀리 소아시아에도 진출하였다.
라텐문화를 낳은 민족으로서, 특이한 철기문화를 지녔고 호전적이며 목축경제사회를 형성하였다.
한때 널리 유럽을 지배했으나 갈리아는 BC 1세기에 J.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판도에,
브리타니아는 1세기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풍습 및 언어는 아일랜드 ·웨일스 ·브르타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戰記)》에 의해, BC 1세기의 켈트족
(로마인은 갈리아인이라 불렀다)의 사회제도를 알 수 있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51494)]
산타 할아버지의 굴뚝과 선물의 유래
성탄절 저녁에 북쪽 나라에서는 썰매를 끌고 온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내려와
아이들의 양발에 선물을 넣어두고 가는 풍습은 어린이에게 선을 베푸는
북유럽 산신령 즉, 이방 고유종교의 정겨운 이미지이다.
(동양에도 산신령은 하양 수염의 정겨운 동네 할아버지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풍습이 기독교와 결합하면서 카톨릭 성인 성니콜라스의 자선사업과
결부되어 엮어지게 된다.
북유럽 할아버지 산신령 산타의 현신과 선물 행위가 기독교에 덫 입혀져 전해진 것이다.
성탄절 카드와 캐롤의 유래
성탄절 카드는 1864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독일의 성탄절 민요가 제11세기 이래로 펴졌으며
성탄절 캐롤은 제13세기 이후에 전래 됐다.
(월간 북책 93년 12월호 참조)
결론::
예수의 생일이란 절기는 원래 없었다.
로마나 유럽 일대 신화 속의 신들의 생일과 축제일, 농신제...등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대대로 지켜져 절기화 되자 기독교도 자신의 종교의 교주 생일도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따라서
미트라스신, 농신제, 각 지역별 동짓날과 관련된
1월 6일, 12월 25일, 1월 19일에 예수 탄생을 겸하여 지키게 된 것이다.
오늘날 X마스는 예수와 아무 관계가 없다.
첫댓글 12월 25일은 로마의 최고신 미트라님 생신이군요 미트라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