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는 역시 사커유나이티드 www.soccerutd.co.kr
항상 영웅에게 라이벌이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니발에게는 스키피오가 있었고 제갈량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방에게는 항우가 있었다.
그러한 영웅의 라이벌이란 흔히 두종류로 구분되는데 첫번째 케이스는 바로 상반되는 스타일의 라이벌구도이다.
한때 스타크래프트에 있었던 양박시대에 박성준과 박태민이 서로 상반되는 스타일로 패권을 양분했었듯이 혹은 은하영웅전설에서 나오는 양웬리와 라인하르트가 그랬듯이 이런 케이스는 서로 상반되는 스타일로 각기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통해서 패권을 양분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다지 흔한 예는 아니다. 이러한 라이벌구도가 성립이 될려면 둘다 천재적이어야 하고 스타일도 상반되야지 라이벌이 되기 때문이다.
이보다 좀더 보편적인 라이벌구도는 바로 노력하는 자와 재능을 타고난자와의 구도일 것이다.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와 살리에르가 그랬듯이 수재와 천재의 라이벌 구도는 땀과 재능의 대결구도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반되는 스타일의 라이벌보다 장기적으로 좀더 흥미를 끄는 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한순간의 싸움에 집중을 하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천재의 재능을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재의 땀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러한 라이벌구도는 상업적으로 좀더 안정적인 구도이기도 하다.
무링요와 베니테즈의 관계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
무링요가 천재적인 재능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었다면 라파엘 베니테즈는 그러한 무링요를 보면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부족한 재능을 메꾸고 무링요의 장점을 자기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대표적인 노력형 지도자이다.
이둘의 라이벌관계는 첼시와 리버풀이라는 신 epl의 선두주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이둘이 오기전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유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둔 epl팀이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리즈유나이티드의 반짝활약을 빼고 맨유는 챔피언스리그에서 항상 외로웠다. epl은 항상 3등리그였다.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분석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겨울철 휴식기가 없다. 경기수가 많다 등등
하지만 모두 정확한 지적은 아니다. 프리미어리그에도 휴식기는 있다. 다만 해양성기후이기에 이탈리아나 스페인가 12월에 쉬는데 비해서 프리미어리그는 1월에 쉬고 정규리그가 쉬는 대신에 기타 경기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기에 일반인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다.
경기수또한 많지만 챔피언스리그가 열리는 시기의 전후한달간 경기일정은 다른 리그와 차이가 없다.
프리미어리그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성적이 신통치 안았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창조성 부족"으로 대표되는 리그 구성원들의 기술적 결함때문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뻥축구가 epl의 한계였다.
epl이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선수들이 유입이 되면서 첼시와 리버풀 그리고 아스날로 대표되는 epl답지 않은 컬러를 가진 팀들이 다시금 새로 만들어지게 된 2000년대 중반이후부터였다.
지금도 물론 epl은 기술적으로 아주 훌륭한 리그는 아닌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다 기술저항력이 월등하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 중심에 바로 첼시와 리버풀이 존재한다. 포르투갈산 지도자인 무링요와 스페인산 지도자인 베니테즈는 epl로 오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선수들을 데려오게 되었고 그것이 epl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첼시와 리버풀은 그러면에서 탈 epl에 성공한 팀이다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양팀간의 대결은 그런면에서도 몹시 흥미로운 대결이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와 그 천재를 보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재와의 대결은 흡사 데쓰노트의 L과 라이토의 대결을 보는 것같다고나 할까
이 둘의 첫 대결은 엄청난 수준차이를 보여줌으로 시작되었다. 두번다 첼시 특유의 1대0스코어를 보여줌으로써 리버풀의 베니테즈가 여타 다른 EPL의 지도자들과 다름이 없는 범재임을 무링요는 보여주었다.
두번의 리그경기가 벌어졌었고 겨우내 홈앤 어웨이 두번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그뒤로 무링요의 4-3-3 전술에 대해서 라파엘 베니테즈는 철저한 비디오 분석을 했다. 스스로도 나는 첼시의 경기를 비디오로 7번이나 봤다라고 자부할 만큼 베니테즈는 무링요의 전술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구했다.
첼시 4-3-3 전술의 핵심은 전에 말했듯이 드로그바를 이용해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사이의 간격을 벌려놓는 부분에 있었다.
이것을 메꾸기 위해서는 발이 아주 빠른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하지만 발이 빠른 좋은 최종수비수는 구하기가 리버풀같은 팀에게는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발이 아주 빠른 수비형미드필더는 이세상에 거의 없다.
그게 문제였다. 그것에 대하여 베니테즈는 해답을 구할수가 없었다.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한채 챔피언스리그 4강전은 다가왔다.
비록 리버풀은 첼시와의 가을과 겨울동안의 2연전을 모두 패하기는 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제라드의 기적적인 활약으로 4강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챔피언스리그 4강전의 상대는 파죽지세로 유럽의 초강호들을 연전연파하면서 단숨에 유럽축구계에 새로운 주적이자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체사레 보르지아, 무링요가 이끄는 바로 그 첼시였다.
베니테즈는 수많은 고심끝에 해답을 내놓았다. 그것도 상당히 수치스러운 해답을 말이다.
베니테즈는 첼시를 이기기 위해서 경기에서 이기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베니테즈는 현실적으로 첼시를 이긴다는 것은 자신으로서는 무리라는 최종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철저하게 비기고 나서 승부차기로 승부를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무장으로서 베니테즈는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포기했던 것이다.이것은 베니테즈로서는 현실적인 판단이자 일반인으로서는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인간이란 최소한의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자 본성이고 현실이 중요하다고 누구나 알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을 택하는 사람은 없다.
베니테즈는 감독으로서 첼시를 이기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감독으로서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굴욕적인 전술을 구사하기로 결심했다.
베니테즈가 취한 전술은 공격을 포기하고 미드필더라인을 수비앞에 바로 붙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드로그바가 수비형 미드필더와 최종수비라인사이의 거리를 강제로 째고 볼을 분배시켜주더라도 나름대로 어느정도는 수비커버가 가능하다.
그러나 역습은 불가능하다. 아니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자체가 세트플레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베니테즈는 즉 공수전환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전술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비록 수많은 슛팅을 내주었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리버풀 선수들의 밀도가 높아졌고 따라서 첼시의 구드욘센과 램파드가 슛할때 약간의 방해를 주는데 성공했고 따라서 슛정확도도 예전보다 부정확해졌다.
그러나 리버풀의 공격은 철저하게 무력했다. 경기는 일방적인 하프게임이었다. 그렇지만 리버풀은 실점을 하지 않았다.
1차전 결과는 0대0.
성공이었다.
무링요는 나름대로 위안을 찾았다. 실점하지 않았으니 앤필드에서 골넣고 비기더라도 올라갈수있다고 하면서 애써 태연한척 했다.
무링요의 계산은 골은 언젠가 넣을수 있다는 것이었다. 못넣어도 승부차기로 가는 것이기에 절대로 질리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것은 아주 정확한 판단이었다. 하프게임을 하면 비기기는 해도 질리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신의 장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앤필드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전혀 의외의 상황이 발생된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첼시 선수들이 미처 경기에 채비를 하기전에 루이스가르시아가 슛을 한것이다.
첼시 선수들은 이번경기에도 하프게임을 예상하고 준비를 해왔었는데 경기시작에 잠깐 방심을 한것이었다. 공은 골라인근처에서 갈라스에 의해서 걷어내졌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가르시아가 자신이 쏜 슛이 라인을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기쁨을 주체할수 없었고 이 기쁨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첼시 선수들이나 관중들이나 선수들이나 가르시아의 기쁨을 본 순간 현실을 오인해 버린 것이었다.
공은 골라인을 넘어가지 않았다. 훗날 영국우주과학연구소에서 비디오 분석을 통해서 밝힌 바로는 정확하게 공은 37% 넘어갔다. 공이 골라인을 100% 넘어가지 않는한 골이 아니다.
그런데 순간 루이스 가르시아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골인줄 오인했고 부심은 골을 선언해버렸다.
신의 장난은 가혹했던 것이다. 리버풀은 1차전과 같이 공격을 포기했고 하프게임은 여전했다. 하지만 경기는 1대0으로 끝났다.
베니테즈는 들어가지 않은 골로 무링요를 이겼던 것이다. 앤필드 홈인데도 도박사들은 첼시의 승리를 압도적으로 예상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갈라스는 경기가 끝나고 앤필드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축구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룰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훈련에 충실했던 그였다.
루이스 가르시아의 공을 마지막에 걷어냈던 그로서는 일찍 걷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골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마저 들 법한 일이었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유럽을 제패해가던 천재 무링요는 자신보다 한수 아래인 범재이자 수재, 베니테즈에게 패배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도운다는 말이 있듯이 리버풀 베니테즈는 무링요를 이길수 없는 실력이었지만 자신의 한계를 잘알고 있기에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이길수 있는 최선의 방향을 택했다.
결국에 운이란 것은 그러한 베니테즈에게 여신이 준 선물이었다.
들어가지 않은 골로 리버풀은 파죽지세의 04-05시즌 첼시를 4강전에서 물리치고 AC밀란과의 결승전에서 희대의 역전극을 이끌어내며 기적과도 같았던 리버풀의 행보에 화룡점정을 찍는데 성공한다.
05-06시즌에도 여파는 지속되었다. 두팀은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리버풀이 04-05시즌 5위를 하는 바람에 4위 에버튼과의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에 대한 분쟁이 생겼고 UEFA의 조정끝에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1차예선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리버풀과 첼시는 같은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같은 조에 배정되었고 베니테즈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지난 시즌처럼 04-05시즌 전술을 들고나왔고 결과는 홈앤 어웨이 모두 0대0이었다.
다만 전과 달라졌던 면이라면 시소코의 등장이었다. 시소코라는 걸출한 수비형미드필더를 베니테즈는 영입함으로써 이전보다 베니테즈는 경기력에서 좀더 대등한 경기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베니테즈는 자신감이 붙었다.
이기고 싶었다. 비기는건 할수있다는 자신감이 붙었고 욕심이 생겼다.
두번의 리그 경기가 앞으로 남아있었다.
베니테즈는 수 많은 고심끝에 비기는 전술이 아닌 이기는 전술의 새로운 모범답안을 내놓았았다. 수많은 상상력과 분석을 총동원한 비장의 카드였다..
두번의 무승부후에 05-06시즌 첫번째 리그 대결때 내놓았던 베니테즈의 무링요 전술에 대한 파해법 모의답안은 오프사이드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드로그바로 롱패스가 갈려고 하면 수비수들이 약속된 움직임으로 전진해서 드로그바를 오프사이드에 빠뜨리자는 시도였다.
아주 신선한 발상이었다. 첼시는 전반전에 수많은 오프사이드는 범했고 경기내용에서 리버풀은 우위를 잡을 수 있었다.
베니테즈는 자신이 새로운 해답을 구했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드로그바의 능력을 너무 간과했던 것이 초안의 문제였다. 드로그바는 신기에 가까운 볼뒷꿈치 컨트롤을 보여주면서 오프사이드트랩을 썼던 히피아를 제끼면서 개인능력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베니테즈가 만들었던 파해법에는 없는 가정이었다. 베니테즈의 전제는 드로그바는 스스로 골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전제가 무너졌던 것이다.
이후에 제라드의 월드클래스급 능력이 어거지로 만회골을 만들어냈지만 초안의 기본전제가 무너진 상태 이후 리버풀의 전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에 첼시는 4대1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어지는 리그 경기에서도 첼시는 2대0의 승리를 쟁취하고 그 뒤에 무리뉴는 구단주 아브라모비치의 꿈이었던 쉐브첸코 영입을 대비해서 4-4-2로 전환을 하였고 이제 시대를 풍미했던 첼시의 4-3-3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비록 그 뒤에 베니테즈는 첼시를 몇번 이기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4-3-3에 대한 승리가 아니었다. 베니테즈는 무링요의 4-3-3에 대해 거둔 전적은 1승 3무 4패였고 그 1승은 들어가지 않았던 골로 이겼던 바로 그 경기였다.
그렇지만 베니테즈가 무링요에 대해서 가장 근접한 축구를 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드로그바가 없지만 베니테즈는 무링요의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인 제공권의 분배력을 이용한 축구를 나름대로 베끼는데 성공한다. 드로그바처럼 기동력이 받쳐주는 제공권은 아니지만 베니테즈는 크라우치와 벨라미 카윗 등등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색깔을 내면서 무링요의 장점을 흡수했다. 그 색깔이란 바로 헤딩의 방향을 바꾼것이다. 드로그바가 후방헤딩을 함으로써 공간을 창출했다면 리버풀의 공격수들은 측면으로 헤딩을 함으로써 공간을 창출했다.
리버풀의 전술을 보면 공격수가 옆쪽으로 헤딩을 떨궈주고 받아먹는 식의 전개가 많은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다만 드로그바처럼 기동력이 확보가 되지 않기에 전방이동후에 후방헤딩이라는 방식의 공격전술을 활용할수가 없지만 측면헤딩이라는 나름대로의 창조적 흡수를 적극적으로 한것이다.
제공권의 중요성을 베니테즈는 무리뉴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렇듯이 베니테즈는 무링요의 라이벌이자 또한 제자였다. 마치 무링요가 에메자케의 제자였듯이 말이다.
p.s 무리뉴 평전 7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첫댓글 이거 쓴분 너무 무링요 좋아하네요ㅎㅎ 뭐 대단한 감독이기는 하지만.. 잘봤습니다~~
뉴로맨서님 6편에서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노쇠한 프랑스의 수비진이라는 부분이었는데요 그날 선발이었던 샤놀-튀랑-갈라스-아비달 의 4백라인은 분명 노쇠한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라인이라고 생각되네요
구체적으로 포백라인 이야기 하자면 조재진이랑 수없이 헤딩경합했던 튀랑은 노쇠했죠^^;;
아 그런데 님께서 쓰신 무리뉴 평전 1에서 무리뉴의 전술은 에메자케의 그것을 물려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무리뉴의 전술이 아리고 사키의 그것과 가장 비슷하다고 들었었는데.. 사키의 전술을 잘 몰라서 그런데 이 얘기에 대한 설명 좀 부탁드릴수 있을까요..ㅜㅜ 아 그리고 글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