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TO ONE
필자 ‘필터 틸’은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회장으로 1967년 서독 프랑크푸르트 출생으로 1978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인물이다. 스탠퍼드 법대 박사다. PayPal 공동창업자며 2002년에 e-Bay에 매각했다. 2025년 기준 ‘포보스’ 추산 약 208억 달러로 세계 103위 부자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것은 기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기적을 우리는 ‘기술’이라 부른다. 기술이 기적인 이유는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기술은 우리가 가진 보잘것없는 능력을 고차원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준다.
창조적 독점이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지속 가능한 이륜을 얻는 것이다. 사람은 왜 경쟁이 건강하다고 믿는 걸까? 그것은 경제학적 개념이나 개인 또는 기업이 시장에서 겪어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의 강박관념, 즉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이라고 요구하는 것들을 실천한다. 그 결과 경쟁 속에 갇힌다. 경쟁을 많이 할수록 우리가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진실을 우리 모두 무시하도록 훈련받았다. 교육시스템은 경쟁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반영하는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 성적이라는 것 자체가 각 학생의 경쟁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도구다.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지위와 자격을 부여받는다. 우리는 각 학생의 재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과목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 그 결과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맞지 않는 학생들은 열등하다는 기분을 느껴야 하지만, 시험이나 과제와 같은 전형적인 측정 방식에 뛰어난 학생들은 이토록 작위적으로 구성된 현실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된다. 희한하게도 학교의 이런 현실은 바깥세상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싸운다. 프로레타리아가 부르주아와 투쟁하는 것은 생각과 목표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차이가 클수록 충돌도 커진다. 반면에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싸울 이유가 전혀 없으며, 왜 싸우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한 예로 ‘로미오와 주리엣’은 ‘똑같이 지체 높은 두 집안’이란 대사로 시작된다. 두 집안은 서로 증오하고 반목이 심해질수록 더욱더 닮아간다. 결국 두 집안은 애당초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더 나은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다. 사람들은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위해 경쟁자에게 집착하고, 그리고 나면 회사는 시장에서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집착한다.
가끔은 싸워야 할 때도 있다. 싸우면 이겨야 한다. 중간은 없다. 자존심이나 명예 같은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햄릿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죽고야 말 불확실한 목숨을 운명과 죽음, 위험천만한 일에 내맡긴다. 달걀 껍데기만도 못한 일 때문에 마땅히 위대하다는 것은, 위대한 논리도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만 한 일에서도 싸움 명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거리에 명예가 걸려 있다면.” 햄릿에게 위대함이란 달걀 껍데기만큼 얄팍한 이유를 위해서도 기꺼이 싸우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위해서라면 싸우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테지만, 진정한 영웅은 개인의 명예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나머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서 조차 기꺼이 싸우려 한다. 이 뒤틀린 논리는 인간의 본성의 일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비즈니스에서 이런 논리는 곧 재앙이다.
파괴하지 마라. 파괴적 혁신이란 개념은 기존 회사들에 대한 위협을 묘사하려고 만든 일이다. 그런데 신생기업들이 파괴에 집착한다면, 이는 구식 회사들의 시작으로 자기 자신을 보겠다는 뜻이 되고 만다. 자신을 스스로 반란을 도모하는 사악한 힘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부딪힐 장애물에 지나치게 연연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정말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면, 신생기업이 만들어낸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게 뻔한 구식 업계보다는 ‘창조’라는 활동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인접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면 시장을 파괴하지 마라. 할 수 있다면 경쟁은 피할수록 좋다. 따라서 누군가 따라와서 1위 자리를 빼앗는다면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라스트 무버’가 되는 편이 낫다.
스타트업은 로또가 아니다. 명확한 비관주의자는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믿지만, 그 미래가 암울할 것이기에 준비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 경제를 보면서 미국인들은 미래의 주인이 된 것처럼 자신감에 넘친 나라일 거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직 낙관주의자인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낙관주의를 중국에 투영시킨 것에 불과하다. 중국인들 처지에서 보면 경제가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느리기만 한 것 같다. 다른 모든 나라들은 중국이 전 세계를 잡아먹을까 봐 두려워하지만, 정작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전 세계를 못 잡아먹을까 봐 두려워한다. 중국의 성장 요인은 서구의 효과 있던 것을 무차별적으로 베끼는 것이고, 실제 중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 계획을 세워 많은 석탄을 태우면서 많은 공장과 고층 건물을 지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인구가 원자잿값을 상승시키는 마당에 중국의 생활 수준이 전 세계 부유한 국가들을 따라잡을 방도는 없다. 중국도 이점을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중국 지도자들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처럼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조치들에 집착한다. 중국 고위 지도자들은 어린 시절 기아를 겪어본 세대이므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미래를 생각할 때는 재난도 구체적으로 염두에 둔다. 엄청난 부가 중국에 만들어진 사실에 감탄했지만, 실제 부유한 중국인들은 국외로 돈을 빼돌리려고 기를 쓰고 있다. 반면에 돈 없는 중국인들은 힘닿는 데까지 뭐든 절약하고 비축해 두면서, 그 정도면 제발 충분하기를 바란다. 계급을 막론하고 중국 사람들은 미래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불명확한 낙관주의.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졸업생들에게 안정된 길을 가라고 격려한 것이다. 베이비붐이라는 기이한 역사가 만들어낸 이 불명확한 낙관주의자 세대는 힘들이지 않은 진보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자신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45~1955년 생이든, 베이비붐 세대는 만 18세가 될 때까지 세상은 해마다 나아지기만 했다. 그런 발전은 ‘그들 자신의 노력과 아무 상관 없이’ 벌어진 일이다. 기술의 발전은 어떻게 발전할지에 관한 구체적 계획은 없었다. 베이비붐 세대를 구원해 준 것은 소득 불평등 심화였다. 부유하고 성공한 베이비붐 세대들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해마다 모든 것이 저절로 좋아지기만 했다. 나머지 베이비붐 어 세대들은 자신들의 순진한 낙관주의를 의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뻔히 정해져 있는 커리어가 그들 자신에게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캐리어가 자녀들에게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불명확한 금융. 똑똑한 대학 졸업생들이 로스쿨을 가지 않으면 월스트리트로 향하는 이유는 커리어에 대한 제대로 된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골드만삭스’에 입사하면, 금융 내부에서도 모든 게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돈을 잃을 것으로 생각하고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계 내부의 교리는 시장이 아무 원칙도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이거나 실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극도로 중요해지는 것이 ‘투자의 다각화’이다. 창업자는 회사를 판 돈으로 무엇을 할까?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창업자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므로 그 돈을 대형 은행에 맡긴다.
은행가들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므로 기관 투자자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여기저기 투자를 다각화한다.
기관 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돈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므로 주식으로 잔뜩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를 다각화한다.
기업들은 잉여 현금 흐름을 만들어서 주가를 올리려고 애쓴다. 그래서 주가가 오르면 배당하거나 주식을 되산다. 이런 순환 고리를 계속해서 되풀이한다.
이 순환 고리에 있는 누구도 그 돈으로 실물 경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불명확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한정의 선택권을 ‘선호’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 돈 자체가 더 가치 있다. 돈이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려면 미래가 명확해야 한다. 불명확한 정치. 지금 우리는 10년 20년 후 이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 선견지명을 가지고 내다보는 예측이 아니라, 겨우 몇 주에 이 나라가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예측해 주는 통계에 더 열광한다. 선거 과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의 성격 자체도 불명확해지고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마치 미국과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와 상통하는 말이다.)
2025.07.07.
ZERO TO ONE
피터 틸 지음
이지연 옮김
한국경제신문 간행
첫댓글
삶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연속.
법학 전공자가 보는
이재.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도
시원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