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가와 다꾸보꾸 {石川啄本} 의 추억
김광한
고등학교 시절에 저는 유달리 책을 많이 접했습니다.학교 공부보다 책을 더 좋아했습니다. 서울의 마포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저는 그곳의 공덕동 시장 안에 있던 대본점의 단골 손님이었습니다.주로 헌책들을 빌려주었는데 여기서 저는 그 대본점에 있는 책들을 거의 다 읽었습니다.동화책을 비롯해 세계 명작 그리고 조흔파 선생의 얄개전 역시 이곳에서 읽었지요.조영암선생의 신임꺽정전도 봤고요, 그 책이 좀 야했지요. 최인욱선생의 벌레먹은 장미도 봤고요.그리고 킨제이 박사의 완전한 남성 등의 시리즈도 읽고요.골방에서 몰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도 봤고요.
러시아 쪽의 소설도 읽었는데 중역(重譯)을 해서 앞의 주인공과 뒤의 주인공이 잘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주인공 이름이 왜 그렇게 길고 어려운지... 그 당시 공덕시장안에 서점이 두군데가 있었는데 대본점에 없는 책들을 거기서 책을 사는 척하면서다 읽었어요. 그때 제눈에 들어온 시집이 있었는데 그것이 이생진 시인님이 번역한 "아름다운 천재들"이란 제목의 에세이집이었어요. 거기에 등장한 일본의 천재시인이 바로 이시가와 다꾸보꾸였는데 그의 시가 감수성이 예민한 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지요. "한줌의 모래"란 제목의 시집이었어요. 그 안의 한귀절이 이랬어요.
내가 정신모르게 취했을때
내 곁에 와서
자신의 슬픈 과거를 이야기해주던
그 여자여...
아!
이 한귀절이 그렇게 마음을 아리게 했는지.
그래서 저역시 시인이 되려고 시연습을 많이 했어요.
마치 천재시인이 된듯이...
대학의 국문학과에 입학해서 저는 시인처럼 얼굴에 털을 기르고 베레모를 쓰고 다녔어요. 그리고 곁에는 항상 원고지를 들고요.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모든 세상의 고민을 혼자 떠맡은 듯이 낯을 우그려뜨리고 비듬이 붙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연상의 마담들을 상대로 즉흥시를 써 헌납을 했지요.시인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서지요.그 당시 전임강사로 계시던 조병화선생이 제 시를 보더니 하시는 말씀이"이건 시가 아니라 유행가 가사같구먼, 하시면서 폼만잡지 말고 시공부나 열심히하라고 하셨지요. 그래요. 천재시인이 된듯이 폼만잡은 것이지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제스추어에 불과했지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요.시를하루에도 백편씩 쓰고 마치 천재시인처럼 행세했으니까요.문득 어느 카페에 나온 이시가와 다꾸보꾸 {石川啄本} 의 시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몇자 적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