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탕의 기억 외 1편
정애영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그녀의 방은 늘 어두웠고
오래된 것들이 뿜어내는 냄새가
떠돌다 가장 먼저 와 달라붙었다.
벽을 마주한 그녀의 눈 속으로
제 몸을 부둥켜안고 죽은 나무 한 그루
부옇게 쏟아지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바람의 길을 내고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비밀번호를 눌러쓰자
날개 달린 꽃들이 쏟아져 문이 열리고
얼굴 가득 웃음이 파문으로 번져간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따라 흥얼거리며
꽃 전설을 엮어 머리에 얹고, 제비꽃 반지
가 푸른 호수에 잠기면 개미들의 웃음소리를
모아 그녀의 맑은 눈에 넣어준다.
햇솜 같은 햇살이 여린 쑥에 내려앉은 봄
더듬 거리며 쑥을 따는 마른 손이 희다
젖먹이를 등에 업고 캄캄한 세상을 만지던 손
천천히 얼굴을 읽어 내리며 꽃이 열린다.
별사탕이 섞인 라면땅을 그녀의 손에 올려놓자
우물거리는 입을 따라 별이 쏟아진다.
위험한 식사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위
크고 작은 민달팽이들이 모여있다.
아기 달팽이들은 두리번거리다
안테나를 뽑아 뿔 춤을 추고
통통한 엄마 달팽이는
느리게 배를 밀며 한가롭다
톡 건드리자 몸속으로 더듬이를
집어넣고 재빨리 몸을 둥글게 만다.
금방이라도 짓이겨져 사라질 목숨들
먹이가 넘쳐나는 죽음의 골짜기에
펼쳐진 달팽이 가족의 천진난만
아침 신문, 지하철 문을 수리하다
전동차에 스러진 청년의 배낭 속
주인 잃고 남겨진 빵을 생각한다
자신마저 먹어 버리는 벼랑 끝 식사
공처럼 말고 버티는 아기 달팽이를 옮기고
엄마 달팽이를 떼어 풀잎 위에 가만히
올려놓는다.
정애영
2016년 예술가 가을호 등단
작품집 : 공저 [풍경 뒤], [너는 의문 부호다], [콩 구르는 소리마다 구석이 생겼다], [실행되지 않은 날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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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영 - 별사탕의 기억 외 1편
시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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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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