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
장옥관
태어나 보이 모태신앙인기라. 봉제사 접빈객이 헌법이고 족보가 경전인 경상도 땅인기라. 꿈에도 생각 몬 해본 배교背敎는 오직 분선이 이모 때문이제. 이모는 내보다 딱 한 살 더 뭇는데 분해서 분서이, 다섯째 딸인기라. 우에 히는 필선必宣이고, 그 우에 히는 필조必助. 삼신할매한테 우짜든동, 우짜든동, 손바닥 닳도록 치성 드리가 얻은 아가 또 딸인기라. 낳자마자 웃목에 던져짔던 분서이는 큰히의 큰아들인 날 딴 별에서 온 사람으로 여겼을끼라. 외가 가믄 분서이 이모는 방금 낳은 알을 몰래 내 손에 쥐키줬지. 그기 새 새끼 심장메로 팔딱이는 기라.
내가 어무이 뱃속에 들앉아 있을 때 이모는 외할매 몸에서 불안한 숨 몰아쉬었을 끼라. 부른 배 때매 사우 피해 츠마 밑으로만 댕깄다는 할매, 한 지붕 아래 뒤뚱뒤뚱 딸내미와 어매가 서로 마주치는 거도 을매나 민망시러운 일 아니었겠노. 누가 등 떠민 것도 아인데 또 아를 가진 할매, 고마 죽은 아들 손잡고 저세상으로 가시뿌고. 분서이는 뺑덕어마이 눈칫밥이 떠밀어 국민학교 졸업하자마자 대처로 떠났는기라. 큰히의 아들은, 아부지 어무이 다 잃고 교복 차림으로 난생처음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는데 이모는 주인 몰래 나왔다카미 구개진 지폐 한 장 쥐키주고 캄캄한 골목으로 사라지는기라.
그 후에사 말해가 뭐하겠노. 우째우째 내가 얼치기 박사 따고 교수 되는 동안 이모는 나이 많은 신랑 만내 노점채소장사하다 덜컥 암종에 발목을 잡혔는기라. 여러 해 방사선에 항암제에 조리돌림 당하다 서둘러 가고 말았으이,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남자와 여자, 아니 여자와 남자 그 한 끗에 누린 것들, 당연해서 당연하다 여기고 저질렀던 것들 미안코 미안해 때늦게 신앙 고백하는기라. 수지븜 많았던 이모는 외가 삽짝 밖에 핀 분꽃을 닮았었제. 살구꽃 이파리 날리듯이 눈발 흩뿌려지는 이 겨울 아침, 난데없는 까치 울음 속으로 분서이 이모가 사부잭이 내리와 내 어깨를 다독이는기라.
*송재학, 『슬프다 풀 끗혜 이슬』,문학과지성사, 2019.
----애지, 2024년 여름호에서
유교사상의 대가인 맹자는 사단四端을 역설한 바가 있는데,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사양지심辭讓之心과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측은지심은 인仁으로서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고, 수오지심은 의義로서 자기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말한다. 사양지심은 예 禮로서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뜻하고, 시비지심은 지智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을 말한다.
장옥관 시인의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은 남존여비, 즉, 남성중심주의의 수혜자로서 그 남성주의를 부끄러워하며, 그 반대방향에서 남성중심주의의 최대의 피해하자인 분서 이모의 삶과 그 넋을 위로해 주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봉제사 접빈객이 헌법”이라는 것은 조상의 제사와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는 것을 뜻하고, “족보가 경전인 경상도 땅”이라는 것은 혈연중심의 가계와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여필종부’와 ‘일부종사’, 또는 ‘출가 외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유교적인 가부장 제도를 숭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미리부터 말한다면 장옥관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모태신앙, 즉, 유교적인 남성중심주의를 입고 태어났던 것이고, 따라서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은 이제는 유교사상과 남성중심주의를 멀리하고, 만인평등주의에 입각하여 자기 자신의 삶과 그것을 반성하고, ‘분서이 이모’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배교는 자기 자신의 모태신앙을 부정한다는 것이고, 자기 자신의 모태신앙을 부정한다는 것을 그가 태어난 사회의 역사와 전통을 모조리 부정하는 이단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순교자는 이단자였고, 그 이단자들은 조르다노 브루노와 스피노자처럼, 또는 예수와 부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화형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주의 사회는 ‘사농공상의 최하천민’인 상인들이 그 모든 권력을 장악한 시대라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장옥관 시인의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신앙 고백이지만, 그러나 그가 ‘배교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분서이 이모’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분서이 이모의 큰언니는 장옥관 시인의 어머니이고, 분서이 이모 위에는 필선이고, 그 위에는 필조이다. 분선이 이모는 “삼신할매한테 우짜든동, 우짜든동, 손바닥 닳도록 치성”드려 얻은 다섯 째 딸아이였던 것이고, 태어나자 윗목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탄생이 축복이 아닌 저주였던 분선이 이모, “내보다 딱 한 살 더 뭇는데 분해서” 분선이가 되었던 이모, 외가 가면 방금 낳은 알을 아무도 몰래 손에 쥐어주었던 분선이 이모, 외할머니는 자나깨나 남아선호사상으로 분선이 이모를 가졌고, 그 큰딸인 어머니는 친정살이를 하며 시인을 가졌고, 이 눈꼴 사납고 민망한 일도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벌어진 불상사였지만, 그러나 분선이 이모의 불운한 팔자는 피해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실망이 크면 그 불행한 운명은 사나운 재앙처럼 덮쳐온다. “내가 어무이 뱃속에 들앉아 있을 때” “부른 배 때매 사우 피해 츠마 밑으로만 댕깄다는 할매”, “한 지붕 아래 뒤뚱뒤뚱 딸내미와 어매가 서로 마주치는” 일마저도 감내해야만 했던 할매, 그 할매마저도 벌써 “죽은 아들 손잡고 저세상으로” 떠나가시자, 즉, 계모, “뺑덕어마이 눈칫밥”이 싫어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처로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분선이 이모의 운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큰히의 아들”, 즉, 내가 일찍이 “아부지 어무이 다 잃고 교복 차림으로 난생처음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는데” 분선이 이모는 “주인 몰래 나왔다카미 구개진 지폐 한 장”을 쥐어주고 캄캄한 골목으로 사라져갔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우째우째 내가 얼치기 박사 따고 교수 되는 동안 이모는 나이 많은 신랑 만내 노점채소장사하다 덜컥 암종에 발목”을 잡혔던 것이고, “여러 해 동안 방사선에 항암제에 조리돌림 당하다가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인생은 짧고, 그 슬픔은 풀끝의 이슬과도 같다. 남자란 무엇이고, 여자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 그 사상과 이념, 또는 사회적 신분과 명예를 떠나서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 갈 수는 없었던 것일까? 똑같은 신분과 똑같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유교사상의 수혜자가 되고, 분선이 이모는 여자라는 이유로 그 수많은 학대와 천대 속에 최하천민의 삶을 살다가 떠났다는 것은 너무나도 크나큰 모순이자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명은 야누스의 얼굴과도 같고, 이 야누스의 얼굴이 남자와 여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남자와 여자, 아니 여자와 남자 그 한 끗에 누린 것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유교적인 남성중심주의는 남자에게는 부귀영화를, 여자에게는 그토록 처절한 빈곤과 무명의 삶을 강요했던 것이다. 나는 얼치기 박사 따고 대학교수가 되었고, 수줍음 많아 분꽃을 닮았던 분선이 이모는 분해서 분꽃이 되었다. 운명은 야누수의 두 얼굴과도 같고, 부귀영화와 피골상접의 가난은 영원히 계속된다.
장옥관 시인의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은 “살구꽃 이파리 날리듯이 눈발 흩뿌려지는 이 겨울 아침, 난데없는 까치 울음 속으로 분서이 이모가 사부잭이” 내려와 쓰게 된 시이지만, 그러나 유교사상의 최고의 수혜자로서 유교사상에 반대하면서도 유교적인 앎과 그 예절로 용서를 빈다는 ‘역설의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남성중심주의와 여성중심주의, 유교사상과 반유교사상, 이 상호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삶의 태도가 서로 어긋나고 일그러지며,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운명의 교향곡을 연주해 나간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유교적인 사상과 이념이 배어 있고, 그 전통과 예법에 익숙한 그 옛날의 구어체의 이야기와 그 언어들이 장옥관 시인의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을 천하제일의 명시로 만들어 준다.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화형을 당할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는 그야말로 아주 웃기는 코미디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수줍음 많은 분선이 이모에 대한 기억과 추억과 그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대한 속죄는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풀끝의 이슬 같은 운명은 영원히 계속된다. 장옥관 시인의 [어느 배교자의 신앙 고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