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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1-12) / 문지기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모세는 시내 광야 호렙산에서 처음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소명(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능력)를 통하여 애굽에서 종의 삶을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1.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은 항상 우리 주위에서 일하고 계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2.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 3:4).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셨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불러주셨음을 깨닫고 응답해야 한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 6:8).
3. 신을 벗고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 신을 벗는다는 의미
1)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 거룩한 일을 해야 한다.
2) 자기의 의지를 포기하고 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3) 가나안 땅의 여정은 하나님과 함께 가는 영적전쟁의 여정이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17).
내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나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 대가(세상 포기: 전적 하나님을 의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4. 순종의 결단을 내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해야 한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출 5:1).
“바로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출 12:5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출 19:1).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킬 때,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기적의 시간은 시작된다.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5.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살아야 한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나님은 자신과 그의 목적들과 그의 길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성령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결론.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된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1)
모세는 시내 광야 호렙산에서 처음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의 소명(부르심)을 받고 애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능력)를 통하여 애굽에서 종의 삶을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글쓴이: 문지기
부르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
출 3: 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머물며 초기의 1세기 정도는 재상 요셉의 후광으로 편히 지낸 것 같습니다. 백성의 수도 많지 않았고, 애굽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히브리 민족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압제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혹시 주변 나라와 전쟁이라고 일어난다고 하면 히브리인들이 외국 세력과 내통하여 국민을 위협할 것으로 생각하여 완전히 노예로 삼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운반하고 성을 쌓는데 동원되어 죽도록 일하였습니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데 투입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엄하게 일을 시켰습니다. 힘든 노동으로 흙을 이기고 벽돌을 찍어 굽고 성을 쌓고, 농사짓는 것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니 애굽의 왕은 심히 걱정하였습니다. 산파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여인들이 해산할 때에 남자아이면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잘 안되니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이스라엘이 가장 비참한 노예 생활하던 때에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같은 레위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아므람, 아내의 이름은 요게벳이었습니다. 아므람은 아버지의 누이인 고모 중의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한 것입니다. 이 아므람은 미리암이라는 딸을 낳고, 아론이라는 큰아들을 낳았고, 다음으로 모세를 낳았습니다. 이 모세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양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인데 그 뜻은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라는 말은 마사( )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물에서 끌어내다"는 말입니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가정에 아들을 낳으면 강물에 빠트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복종하지 않으면 그 아이는 물론이고, 아이의 부모들도 죽인다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때에 태어난 아이가 바로 모세였습니다. 엄마가 어린 아들을 보니 준수한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아름다운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석 달을 숨겨 길렀지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서 더 이상 집안에서 숨겨 기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 하나 살리려다가 이미 있는 아들도 죽이고, 집안 식구들 모두 죽을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위하여 갈대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나무의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에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강 한 복판에 떠내려가라고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 바로 그 갈대 상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테바( )"라고 하여 노아의 방주와 같은 말입니다. 방주라 하면 같은 테바라고 하는데 규모가 큰 것뿐이고, 상자도 "테바"라고 합니다. 방주의 테바는 노아의 식구들과 생물들을 살렸고, 갈대상자 테바는 모세를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테바는 지성소 안에 있던 법궤도 하나의 테바였습니다. 그 법궤는 속죄소였는데, 그 속죄소는 바로 우리 주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방주와 갈대상자와 법궤로 이어지는 것은 놀라운 은총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구상하는 구속사의 어떤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모세를 갈대상자에 눕히고 그의 누이 미리암은 강가에 어린 동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때 마침 애굽의 황제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왔다가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공주는 시녀들에게 갈대상자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갈대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 히브리인의 남자아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공주의 마음에 어린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심정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마침 미리암이 달려나가서 공주에게 말합니다. "내가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고 했습니다. 공주는 "가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참으로 빨리도 데려왔는데 아이의 생모를 불러다가 젖을 먹이는 유모가 되게 한 것입니다. 모세는 젖을 떼면서 바로의 궁궐에서 왕족들이 누리는 혜택을 누리면서 자랐습니다.
모세가 궁궐밖에 나가보니 자기 동족 히브리인들은 정말 죽도록 고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 사람이 다가와서 일하는 히브리인을 때리는데 잘못하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한 사람을 세워놓고 때리는데, 아무 소리 못하고 얻어맞는데, 그렇게 매맞다가 죽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은 때려도 좋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얻어맞아 죽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주위에 보는 사람도 없기에 애굽 사람에게 달려들어 그를 쳐죽여 모래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모세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울분이 일어나고 자기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하여도 과도하게 때리지 못하도록 말린다든지, 공권력을 사용하여 정당한 체벌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지,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다고 달려들어 사람을 죽인 것은 모세가 아무리 변명해도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세와 그 때리던 애굽 사람과 다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나쁘다고 하면 모세가 더 나쁜 사람이라고 보여집니다.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핍박하니까 그를 죽여도 된다는 말은 없습니다.
모세는 이제 지명수배를 받는 입장이 되어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같은 동족 히브리인끼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말리면서 "네가 어찌하여 동족을 치느냐?"고 했더니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고 달려들었습니다. 이런 일은 히브리인들끼리 쉬쉬하면 넘어갈 수 있는 사건입니다. 애굽 사람들 중에 누가 본 것도 아니요, 같은 동족이니 입만 다물고 있으면 미궁에 빠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동족 히브리인들이 애굽의 황제 바로에게 고발하게 하고 모세는 지명수배 받은 입장이 되어 도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붙잡히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라고, 잘 먹여주고 입혀 사람 만들었더니 배반하였다고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애굽 사람을 죽인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마음놓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자기의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은 이렇게 연단에 연단을 거듭하면서 낮아지고 낮아지게 하여 다시 올려 쓰실 때는 위대한 사람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하셨습니다. 도피 생활하는 미디안에서의 모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이요, 일곱 딸을 두고 있는 이드로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서 처가살이했습니다. 이드로의 딸들이 양을 치는데, 우물가에 일찍 도착하여도 다른 힘센 남자 목자들이 자기들의 양에게 물을 다 먹이고 나서 그 후에야 먹이라고 하니 언제나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가 우물가에서 지켜보니 남자 목자들이 와서는 이드로의 딸들이 물을 먹이고 있으면 좇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모세가 나서서 목자들을 물리치고 여자들이 돌보는 양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이래서 모세는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이드로의 딸 중에 십보라를 아내로 맞아 살게 되었습니다.
1. 섭리하시는 하나님(1-3)
모세의 생애를 3단계로 나누어볼 때에 애굽에서의 40년은 세상적인 준비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또한 미디안에서의 40년은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준비였다고 봅니다. 모세는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미디안에서 40년 간 보내면서 어느 듯 80세라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80세로부터 120세까지는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생애를 살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3단계로 나누어보면 지금 어떤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까?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할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한번 깊이 생각해보세요. 모세는 난세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나일강에 던져지고 죽었어야 하는 사람으로 시대를 잘못 골라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난 과정을 보거나 성경을 읽어보면 권력을 동원하고 무력을 행사하면서 아무리 가로막고 거스른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섭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애굽의 황제 바로가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 바로의 딸 공주를 불러내어 살리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인을 살리는데, 히브리 사람을 통하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는 그 애굽 사람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있습니다.
지나간 80년 간을 깊이 생각해보면 살아온 전 과정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훈련시키시는 교과과정을 거쳐온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자라온 것을 가만히 연구해보면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먼저 믿음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이며, 특별히 생모의 젖을 먹고 자랄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민족은 그냥 노예에 불과한데 모세만은 당대 최고의 학문을 두루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온갖 문물을 공부한 학자로, 공주의 양아들로 지도자의 수업을 받았으나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기에 그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겸손과 인내를 배워야 했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던 자가 미디안 광야에 숨어들어 양을 치고 있는 것은 낮아질 대로 낮아진 것을 말합니다.
모세는 자기 집도 없이 그저 처가살이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처가살이가 나쁘다 좋다할 것은 아니지만, 남자로서는 참으로 자존심 죽이는 것이 처가살이입니다. 애굽의 공주의 양아들이라는 왕족이 전락하여 처가살이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특별한 뜻이 있어서 그 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마땅히 있을 곳도 없고,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보니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부인과의 사이가 그렇게 좋았다고 볼 수 없는 일들이 몇 번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장인 이드로의 노력이 없었다고 하면 모세의 가정에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양치는 목자로서 살고 있었습니다. 목자라는 직업은 양을 잘 먹이고 기르는 것이기에 자기 혈기만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으로 자기를 훈련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자연을 벗삼아 양을 기르면서 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양들을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알았습니다. 양을 잘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미디안에서의 연단이라는 것은 인생 실패자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시키는 훈련소였습니다. 사람이 고독을 곱씹을 때에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교만하던 성격이 다 꺾이고 모난 부분들이 다 원만하게 다듬어졌습니다. 옛 사람은 죽고 이제는 짐승의 생명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빈 들판에서 누구와 교제하겠습니까? 허허벌판 빈들에서 양떼를 몰고 가는 목자로서는 교제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세찬 비바람을 맞으면서 양떼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여러분의 용모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산이나 지식과 학벌에 있지 않습니다. 잘 먹어서 행복한 줄로 알고 좋은 옷을 입어 행복한 줄로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쓰임을 받을 때,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을 때, 나의 하는 일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에 쓰임을 받고 있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가치와 행복은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가 가치 있는 일에 쓰임 받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을 유익하게 하고,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하여 일하고 있습니까?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이끌어 광야 서쪽의 호렙산으로 불러내시고 있습니다. 양들이 좋아하는 풀들이 돋아나게 하시어 조금 조금씩 호렙산으로 이끌어내신 것입니다. 허허벌판 광야를 넘어 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양떼를 이끌고 왔습니다.
2. 부르시는 하나님 (4-7)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이상하게 떨기나무에 불에 붙었는데 불은 붙었지만, 나무가 타들어 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 붙는 것도 아니요, 불이 커지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하여튼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모세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셨다고 하지만,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먼저는 여호와 사자가 나타나시지만,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신 것을 여러 번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는 심히 두려워 떨고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 얼굴을 가리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후에 산을 내려올 때는 다시 신을 신었겠지만, 그는 일생 신발을 벗은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신발을 벗으면 맨발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언제나 맨발의 사람이라는 심정으로 서야 합니다. 성경에서 신을 벗는다는 말은 참으로 심각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 설 때 가장 먼저 들어야 하는 말씀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할 때 다음으로 넘어가고 하나님 앞에 계속하여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 귀한 뜻을 다 말씀드릴 수도 없고, 우리는 그 당시의 하나님이 명하신 그 깊은 뜻을 다 헤아려 알 수는 없습니다. 그 당시의 풍습에서 신발을 벗었다는 말은 곧 노예라는 뜻이었습니다. 적어도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신을 벗으라고 했을 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알아들은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의 궁궐에서 자라난 사람이었기에 신을 벗은 수많은 노예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동족 히브리인들도 신을 신지 못한 노예였습니다. 모세는 고통받는 히브리 사람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노예로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에는 지금까지 네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자기의 경험, 자기의 의지, 자기의 지식, 자기 이기주의를 버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기의 습관, 자기의 아집을 버리고 온전히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신을 벗으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장해제와 같은 것이며, 과거와의 단절이었습니다. 과거 자기 방식대로 살던 옛사람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우리 발에서 신을 벗는 심정으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잘못된 과거의 모든 허물을 내어놓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과거에 자기가 엄청난 일이나 한 것처럼 과신해서도 안되고, 과거에 실패하였다고 하여 자포자기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무사안일에 빠져 있었던 모든 지난날을 잊어버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3. 사명주시는 하나님 (7-11)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부르신 귀한 뜻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이스라엘이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보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르짖는 안타까운 호소도 알고 있으며,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질겁하였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자기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보잘것없는 인간 도망자요, 살인자요, 처량하게 지내는 양치기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지나친 겸손이 아니라 진실한 자기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모세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거나, 자기를 민족의 지도자로 써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하나님을 만나 뵙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섭리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셔서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시고 보내시려는 말씀에 모세는 한없는 부족을 느꼈습니다.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심히 두렵고 떨리는 것뿐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심히 두렵고 떨리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일거리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펴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고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는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리석은 인생을 사시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낮 시간이 그렇게 많지 못합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일에 매달려야 합니다. 이제야말로 되돌려드리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4. 함께 하시는 하나님(12-14)
우리는 여기 본문에 모세만 만나고 가신다면 조금 은혜를 받고 나가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인도하시고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면서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고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모세에게 사정해보기는 처음이실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던져 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시어 순종하였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모세에게 손을 품안에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품안에 넣었더니 문둥병이 생겨 눈 같이 변하였습니다. 다시 손을 품안에 넣었더니 깨끗하여졌습니다. 나일강의 물을 떠다가 땅에 부으면 피가 된다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12절 말씀에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내가 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사실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 간섭하시고, 우리가 가는 길에 형통하게 하시고, 일마다 때마다 앞장서주시고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감히 당신의 이름을 묻는 이 모세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입니다. 영어성경에는 "I am who I am"이라고 합니다. 굳이 번역하면 "나는 내가 나되게 하는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야훼라는 이름만 가지고도 하루 종일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활동하신 하나님이시며,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시고 일을 맡겨주시고, 그리고 함께 해주신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 평생에 이러한 은총을 받았다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옛날 모세를 부르시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은 부르시고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많은 일들이 있기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고 함께 하신다고 약속해주시고 있습니다. 함께 해주시는데 있어 우리의 존재를 의미있게 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아름답게 해주시고 우리의 생애를 크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일생을 바친 리빙스턴을 아실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오직 하나님의 선교에 쓰임 받겠다고 자기는 돈은 없어 헌금은 드리지 못하지만, 이 몸을 바치겠다고 헌금 주머니 위에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학위를 받고 나서 많은 청년들을 앞에서 강연합니다. 그는 사자에게 물려서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빈 소맷자락만이 늘어져 덜렁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감동하고, 선망의 눈으로 그를 우러러봅니다. 그리고는 질문을 합니다. "사나운 맹수들과 야만인들 속에서 어떻게 그리도 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리빙스턴은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오직 하나뿐인 참 비결을 말해줍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20)"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3: 1-14
거친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 / 민경진 목사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준비하시고 지도자 모세를 물에서 건져내어 살리시고 1단계로 40년을 애굽의 왕궁에서 믿음을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배우고 애굽의 최고의 학문으로 배웠고 연단하시고 2단계로 40-80세까지 광야로 내 보내셔서 거친 미디안 광야에서 십보라와 결혼하여 장인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며 고생 속에 훈련과 연단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었습니다. 광야생활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자신의 혈기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무엇보다도 우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단계는 80부터120세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거룩한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가 부름은 받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부름 받고 쓰임을 받았는가를 상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연단하고 부르시는 하나님(1-4)
40년을 왕궁에서 떠나 40년을 미디안 광야에서 그의 장인인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던 모세를 때가 이르매 하나님이 호렙산으로 부르시고 만나주시는 장면입니다. 그 산을 시내산이며 에벨무사라고 하고 모세의 산, 하나님의 산이라고도 합니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를 애굽사람을 죽인 살인자에서 동족들의 배척했던 자리에 철저히 비천함과 낮아짐의 훈련기간이 끝나고 이제는 구체적인 사역을 위하여 거룩한 산, 꺼지지 않는 가시떨기나무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와 능력의 상징이며 하나님의 만나는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자는 부르시고 만나는 경험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가에서 부르시고 세관에서,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부름의 응답하는 사람이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사전통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 이사야를 부르실 때도 요셉에게 나타나실 때도 내가 너에게 갈테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식의 언질이 없이 40년간 말없이 계시다가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거친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쓰시기 위하여 고생하고 낮아진 목부에 불과한 모세를 부르시고 만나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갑작스러운 나타남이지만 하나님은 오랫동안 준비하시고 사람을 연단하여 때가 차매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2.거룩하게 준비하시는 하나님( 5-8 )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르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거룩한 곳이며 거룩한 땅입니다.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사명자가 해야할 준비는 신을 벗는 일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의미는 지금까지 온갖 부패한 장소로 두루 다니며 붙어있는 죄악의 삶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보잘것없는 죄인입니다.
사명자가 가장 먼저 준비할 자세는 자기 정리입니다.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니라. 지금까지 자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광야에서 양이나 소를 기르는 목동이 되어 장가가고 평범하게 살았는데 때묻고 더러워지고 사명을 잊고 사는 모세에게 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내 백성을 인도할 사명자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세의 생활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할 일이 많은 세상인데 사람은 많지만 준비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신을 벗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틈만 나면 자기 길을 갈 사람은 많지만 주님을 위하여 자기 신을 벗어야 합니다. 너는 거룩한 사명자다 네 맘대로 가던 신을 벗어라 그리고 나의 명령을 따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교 사원에 들어가려면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다메섹에 가장 큰 사원에서도 신을 벗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내야 하는데 신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직도 벗지 못한 것이 있다면 오늘 우리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성도여 네 발에 신을 벗어라 그리고 내 명령을 따를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면 벗지 못한 습관, 생각, 내 고집, 이런 것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3.구원을 위하여 명령하시는 하나님(9-14)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이유를 설명하시기를 430년간 고통과 압제를 당했는데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듣고 너를 애굽의 바로에게로 보내어 내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에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며 민족을 구원할 지도자로 모세를 파송하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명령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인 애굽에 가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낸다는 것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누군데 바로에게 가며 어떻게 인도하여 냅니까? 나같은 것이 어떻게 이 민족을 무서운 바로에게서 인도하여 냅니까? 계속하여 사양하며 못 간다고 하는 모세에게 단순한 만 마디 내가 정령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보다 더 큰 보장은 없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어, 이 말은 형을 피하여 도망하는 야곱에게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아브라함에게도 형들에게 팔려가는 요셉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전도하러 나가면서 두려워하고 떠는 우리들에게 임마누엘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기를 가서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하면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무어라고 합니까? 그들은 여러 신들을 섬기는 다신 숭배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어떤 신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누가 만든 신이 아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그분이 보내셨다고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는 말은 그는 완전히 독립적인 분이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적인 분이시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 뜻이 히브리어로 여호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절대적인 능력자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명자입니다.
사명자는 하나님을 경험하여야 합니다. 내일부터 있을 성회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성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듣다가 기도하다가 주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기도원 원장 조용기목사님의 안수받다가 온몸이 떨리는 경험을 하고 그가 달라졌다고 간증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눈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두려움이 없어지고 사명이 변하고 삶의 가치가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부름 받은 것은 우리의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자격을 가춘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어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마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면서 지금도 가나안을 알지 못하는 영적인 고통으로 신음하는 우리 민족에게 세계 모든 족속에게 복음으로 출 애굽시킬 막중한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출처] 출3장 1-14 거친 광야에서 경험한 하나님 -민경진 |작성자 상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