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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초림의 주님을 만난 안나의 영성/ 누가복음 2:36-3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오늘 다룰 인물은 안나입니다. 안나는 인간적으로 볼 때 불쌍하고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입니다. 바누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 곳에 붙인 ‘브니엘’이라는 지명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바누엘은 히브리식으로는 ‘브니엘’이며,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안나는 헬라어 이름인데, 히브리식으로는 한나이며 ‘은혜’라는 뜻입니다. 아마 그의 아버지 바누엘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라고 안나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인간적으로 보면 이름과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인생이 아니라 매우 불행한 인생이었습니다. 안나는 결혼하고 겨우 7년 만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안나가 예수님을 만날 때 84세였습니다. 유대사회에서는 남자는 13세, 여자는 12세에 성인식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여자들은 평균 14세에 결혼했습니다. 만약에 안나가 그 당시 평균적인 나이인 14세에 결혼하고 7년이 지난 21세 남편을 잃었다면 63년을 과부로 산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안나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안나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1. 성전 중심의 영성입니다(37절).
본문 37절에 보면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성전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➀하나님 중심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장막을 쳤습니다. 성막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으로 세 지파씩 장막을 쳤습니다. 그들이 이동할 때는 성막을 중심에 두고 앞뒤로 여섯 지파씩 행진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남자들은 1년 3차례씩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하나님 중심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성전 신앙은 하나님 중심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안나의 소망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있습니까 자식이 있습니까? 그녀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막 11:17입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➁예배자의 삶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자로 삽니다. 예배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집을 사모합니다. 안나는 주의 전을 떠나지 않고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➂주님을 향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습니다. 다윗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하나님의 집에서 문지기로 있어도 좋을 만큼 하나님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크린턴 대통령 때에는 누구나 백악관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잘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대통령과 같이 하면서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조건은 약 1억 원의 정치자금을 내야 했습니다. 우리 정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집에서 하루 자며 한 시간 이야기하는 데 1억 원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지내며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데에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료입니다.
주의 전을 섬기다보면 힘든 일도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겪는 갈등이나 상처나 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일들이 사랑이 식어지면 큰 문제가 되고 짐이 무거워지고 불편해지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며느리를 매우 사랑하는 한 시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시아버지 등에 손자를 업혀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버님! 오늘 시장 갔다가 늦게 올 것 같아요. 애기 좀 봐주세요.”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예뻐하고 아기를 사랑하기에 흔쾌히 아기를 업었습니다. 며느리의 귀가가 예정보다 늦었습니다. 며느리가 집에 돌아와서 보니 시아버지가 아기를 보느라고 고생한 흔적이 고스라니 보였습니다. 시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아기를 업고 있었습니다. “아버님! 죄송해요. 수고하셨어요. 힘들지 않으세요?” 시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즐거웠다.” 그리고는 손주를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아기를 보는 것이 왜 안 힘들겠습니까? 힘들지만 사랑으로 보는 것이죠. 잠시 후에 며느리가 옆집에서 빌려온 항아리를 돌려주려고 하니 시아버지가 “내가 가져다주마.”라고 하더니 항아리를 등에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며 말했습니다. “이 항아리는 너무 무거워!” 사실 그 항아리는 손자의 몸무게와 같았습니다. 시아버지는 손주를 하루 종일 업고 있으면서도 행복했는데, 빈항아리를 등에 지는 것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손주를 향한 사랑 때문이죠.
교회 일이 짐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의무감으로 억지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시험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힘듭니다. 일하는데 왜 힘들지 않겠습니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면 회복 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교회와 주님을 사랑하면 힘든 봉사도 힘들지만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의 힘 때문입니다.
창 29:20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위하여 7년을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사랑의 힘으로 7년을 며칠 같이 여겼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사랑하면 무거운 짐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안나는 사랑의 힘으로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2. 변함없는 영성입니다(37절).
성경이 안나의 나이를 언급한 이유는 그분이 메시야의 오심을 장기간 기다렸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초림의 주님을 기다렸고 신약 시대에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일본 춘주전국시대에 천하를 주름잡던 세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따 노부가나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이 세 사람이 울지 않는 앵무새를 보고 각자 다르게 말했습니다. 오따 노부가나는 “앵무새가 울지 않거든 죽여 버려라”고 말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앵무새는 울려라”고 말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혼란했던 정국을 평정했는지 아십니까? “울 때까지 기다려라”고 말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안나는 기다릴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초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섬기고 있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초지일관의 신앙입니다.
지난 2001년 7월 ‘김창선 할아버지와 손순이 할머니‘의 감동적인 사연이 뉴욕타임스에 소개되었습니다. 손순이 할머니는 1941년 당시 16살의 꽃다운 나이에 3살 위인 김창선씨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한 달 만에 신랑 김씨는 강제징용이 되어 당시 일본령이었던 사할린으로 끌려가서 탄광에서 일했습니다.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게 패한 후 소련은 일본인들을 사할린에서 쫓아냈습니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소련이 붕괴되어 러시아로 바뀔 때까지 사할린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국적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금지된 채 사할린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씨는 고향에 있는 손씨에게 “걱정하지 말아요. 2년 후에 돌아갈 것이요.”라는 첫 번째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후 김씨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1954년 마지막 편지에서 손씨에게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1963년에 러시아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사할린에 끌려 간지 57년 만인 1998년 우리 정부의 도움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고향으로 돌아와 57년 전에 헤어진 첫 아내 손씨를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연을 들은 대구 지역의 어느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2001년에 김할아버지와 손할머니는 다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것은 손순이 할머니의 순애보입니다. 손할머니는 남편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후에도 마치 남편과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비록 남편과 떨어져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 남편 꿈을 꾸었답니다. 손할머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꿈속에서 우리는 여기 우리 집에서 언제나 함께 있었어요. 서로 매일같이 이야기도 하고 생활을 했죠. 마치 우리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듯이요.” 남편 김할아버지는 러시아 여성과 재혼을 했지만, 손 할머니는 재혼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에게는 한 남자만 있다’며 재혼하지 않고, 무려 57년 동안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저는 손할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60년 이상을 과부로 살며 초림의 주님을 기다린 안나 생각이 났습니다.
신앙은 주님을 기다림입니다. 창 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메시아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아담에게 그리스도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후손인 마귀를 이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456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예언을 믿고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을 말씀하신 후에 약 400년을 침묵하셨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했습니다. 나라는 로마제국에 빼앗겼고, 백성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야 할 헤롯왕은 온갖 못된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잃어버렸고 유대교는 생명이 없는 형식뿐이었습니다.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안나는 달랐습니다. 안나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에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기 시작해서 나이 84세가 될 때까지 변함없이 주님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초지일관,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조급합니다. 얼마나 급한지 라면을 끓일 때 5분을 기다리지 못해서 설익은 라면을 먹습니다. 고기를 구울 때는 구워지기 전에 설익은 고기를 먹습니다. 커피 머신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는데도 컵을 붙들고 있습니다. 신호 정지선에서 앞 차가 출발을 조금만 늦게 하면 빵빵합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이 아무리 노력해도 조급한 성격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참지를 못하는 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잘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주여! 저에게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를 주옵소서. 지금 당장 주옵소서.”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어도 기다려야 합니다.
창 5:22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에 관한 말씀입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저는 에녹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는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언제까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까? 365세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무려 300년을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그의 신앙이 너무나 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승천시키셔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갔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험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겠습니까? 수많은 고난의 파도, 시험의 파도가 그를 덮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녹은 변함없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초지알관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괴롭고 힘들수록 주의 전을 찾고 주님 앞에 나아오는 성도들이 있고, 반대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기면 주의 전을 떠나고 주님을 멀리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안나처럼 초지일관해야 합니다. 환경과 사람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30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처럼 살아야 합니다.
3. 기도와 금식으로 섬기는 영성입니다(37절).
37절에 보니 안나는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상당히 효과적인 기도의 방법입니다. 우리 교회 소유권을 변경할 때 하나님은 저에게 40일 금식을 명하셨고 많은 성도들이 금식에 동참했습니다. 놀랍게도 토요일에 금식이 끝났는데 월요일에 소유권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공무원은 저에게 우리 교회 같은 땅이 교회로 명의 변경이 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금식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성경에서는 보통 회개할 때 금식을 했습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은 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는데 그때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짐승까지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특별한 은혜가 필요할 때 금식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죽어갈 때 금식했습니다. 사 58:6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줍니다. 멍에의 줄을 끌러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합니다. 모든 멍에를 꺾습니다.
우리의 힘은 물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라는 파이프를 통해서 힘을 주십니다. 지난 2002년 영국의 BBC 방송은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면 형편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성적도 초라했습니다. 3수 끝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가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기도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라고 믿습니다. 저를 따라서 해봅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편이다.”
안나는 금식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금식과 기도는 섬김이었습니다. 37절에 보면 안나는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습니다. 제가 첫 번째 40일 금식을 하게 된 것은 이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처럼 나를 섬겨 금식할 수 있느냐?” 두 번째 금식할 때 주신 말씀은 행 13:2이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저에게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안디옥교회처럼 너도 나를 섬겨 금식할 수 없느냐?” 안나는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과 주의 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민족을 섬겼습니다.
신앙생활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생활이 되어야 하지만 더 발전해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요즘 신학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3중직이 아니라 4중직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 그리고 집사직입니다. 집사직을 논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섬김의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행 13:36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신앙생활에서 섬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일생 엄청난 업적을 세웠습니다만 이 말씀에서는 다윗의 일생을 요약하면서 그가 세운 업적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섬기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섬겼습니다. 그는 목동으로 있을 때에는 양을 섬겼고 가족을 섬겼습니다. 그가 골리앗과 싸운 것은 백성을 섬긴 것입니다. 그가 장군이 된 후에는 백성을 섬겼고 왕을 섬겼고 나라를 섬겼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그는 백성과 나라를 섬겼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금식 많이 하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재능이나 물질이나 시간이나 몸을 드리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섬긴다고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섬김을 위하여 건강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섬김에는 보상이 있지만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말고 섬겨야 합니다. 섬김을 사명으로 알고 섬깁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섬김을 위하여 건강도,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능력도 주신 것으로 알고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도와 말씀으로 여러분과 교회와 하나님을 섬깁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찬양으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물질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몸으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재능이나 능력으로 섬깁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장자이기에 섬김의 영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는 영성입니다(38절).
38절에 보면 안나는 감사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안나는 너무나 약점이 많아서 감사가 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안나는 자기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했습니다. 안나는 어떤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를 했을까요?
➀지파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안나는 아셀지파였습니다. 아셀은 야곱의 본 부인이 아닌 실바라는 첩의 자식으로서 야곱의 8번째 아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셀지파에는 유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셀지파의 몇 가지 기록은 부끄러운 기록입니다. 사시기 1장에 보면 아셀지파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지파입니다. 사사기 5장에 보면 사사 드보라가 전쟁에 승리할 때 그 전쟁에 동참하지 않았던 지파입니다. 형편없는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안나는 지파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초림의 주님을 만났고 금식과 기도로 섬기는 삶을 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안나는 지파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했습니다.
➁여자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성경에 남자 선지자는 많은데 여자 선지자는 9명밖에 없습니다. 구약에 4명은 미리암, 훌다, 드보라 그리고 노아댜입니다. 그리고 신약에는 빌립의 네 딸이 예언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름이 나온 여자 선지자는 안나뿐입니다. 안나는 여자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여자가 지도자가 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기름부음을 통해 세워졌던 왕이나 제사장 가운데는 단 한명도 여자가 없습니다. 사사 중에는 드보라가 유일했습니다. 이렇게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과 영적인 활동이 제한적인 시대에 안나는 주님을 만났고 주님에 대하여 증거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안나는 여자의 한계를 뒤어넘어서 감사했습니다.
➂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이때 안나 84세였습니다.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많은 분들이 젊을 때는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주의 일에 동참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뒤로 물러납니다. 저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서 힘이 없으면 봉사는 못해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나는 어떻습니까? 8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활동이 왕성했습니다. 탈무드에는 “어리석은 자에게 있어서 노년은 겨울이나, 지혜로운 자에게 있어서 노년은 황금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안나는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했습니다.
➃팔자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약 14살에 결혼해서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63년 정도를 과부로 살았다면 세상말로 보통 팔자가 아닙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의 팔자타령이나 하고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나는 팔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적 거장이 되어 주님을 만났고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안나는 팔자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안나처럼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5. 메시야를 알아보고 전하는 영성입니다(38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메시야입니다. 아담으로부터 4,000년입니다. 아브라함부터 2,000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0년 동안 기다리던 예수님이 성전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는 누구나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와서 예물을 드립니다. 예수님도 절차대로 성전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을 알아본 영성을 가진 사람은 시므온과 안나 뿐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언을 하였습니다. 안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살았다가 죽은 사람이 약 600억 명이랍니다. 여자만 300억 명입니다. 그 많은 여자들 가운데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난 최초의 여인이 안나입니다. 안나는 주님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했습니다.
성도는 안나처럼 초림의 주님을 만나지는 못했으나 성령의 역사로 주님을 믿고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의 실체가 믿어져야 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안나가 주님을 증언했던 것처럼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가족에게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가장 먼저 가족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가족을 주님에게로 인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또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예수님을 믿는 것에 제한이 없습니다만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복음 때문에 14년이나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감옥을 자신의 선교지로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목사님은 같은 방에 갇힌 한 살인자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나 잔인하고 난폭해서 간수들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힘든 중에도 금식하며 그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쳐서 깊은 잠을 잘 때도 목사님은 침대에서 내려와 마룻바닥에 엎드려 그 살인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밤에 목사님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려가며 기도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뒤에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돌아보니 살인자가 목사님을 쳐다보며 “당신 뭐하고 있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이요”, “무엇을 위해 기도하지?” 목사님이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소.” 그는 자기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의 변화가 너무나 엄청났기에 그 소문은 교도소 전체로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교도소 소장이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 살인자에게 어떻게 했는데 그가 변하된 것이요?” 목사님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그를 위해 기도했을 뿐이고, 그를 변화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감사한 것은 안나가 메시아를 알아보고 메시아를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지만 대부분 주님을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이웃에게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오후에 학생들이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 버스킹을 합니다. 여러분도 가능하면 함께 가셔서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전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함께 하셔서 예수님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초림의 주님을 만난 안나의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1. 성전을 중심의 영성입니다. 2. 변함없는 영성입니다. 3. 기도와 금식으로 섬기는 영성입니다. 4. 하나님께 감사하는 영성입니다. 5. 메시야를 알아보고 전하는 영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