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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재림의 날은
과연 어떤 날일까?
기쁨과 감격의 날일까?
슬픔과 통곡의 날일까?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며
동행하던 자들에게는
인류역사 최대의 기쁨과 감격의 날이되고,
주님을 등한히 하고
세상에 취하여 살던 이들에게는
가장 큰 통곡과 후회의 날이 될 것이다.
자신을 속이며
진리를 등지며 거짓을 주장하고
설교했던 거짓 목자들에게는
그날은 참으로 두렵고 엄숙한
심판의 날, 어린양의 진노의 날이 될 것이다.
다섯째인과 여섯째인은
더 이상 말탄 자들은 나오지 않고 재림을 초점으로 향하여
신속히 진행되어 간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5-17)
그날에는 부한 자의 재물이,
권력자의 권력이, 세상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이들의 미모나 자랑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3-24)
첫번째 인부터 네번째 인들을 땔때까지는 복음의 순결성이 안타깝게 퇴색되어져 왔다.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말로...전체적인 빛깔은 퇴색되어 왔으나 언제나 하나님의 진실된 백성들은 존재해왔다. 우리 주님이 반드시 오셔서 수고에 해당하는 상급을 주실 것이다.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2-13)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제단 아래서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어서 속히 심판하여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주기를 호소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와 구원의 상징인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 동안 쉬면서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제단아래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다니 그 무슨 말인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어떤 이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정말 죽은 이들의 영혼이 제단아래에서 부르짖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해괴망측한 일인가? 영혼불멸설의 관점으로 본다고해도 참 우스운 해석이 된다. 왜 주님을 위해 순교당한 자들이 천국으로도 못가고 왜 제단아래에서 울부짖고 있다는 말인가?
그 말씀의 바른 의미는 주님을 위해 순교당한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향단에 올려진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기도를 대제사장이신 주님이 받으셔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이 시대에도 주님을 위해 순교당하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존재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언제인가?
시대적으로 보면 다섯째 인은 사데 교회 시대로서 종교 개혁 시대(A. D. 1517~1755)에 해당된다. 순교자들의 호소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나 아직도 핍박은 계속되고 마지막 때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성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영혼불멸을 믿는 신앙, 즉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하는 사상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며 비성경적이다. 영혼불멸을 믿으면 부활은 의미가 별로 없다. 부활은 절대적인 죽음과 무에서 다시 살아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이미 하늘에서 복락을 누리며 살고 있는 영혼이 다시 부활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혼불멸을 믿으면 재림도 그 빛을 잃고, 마지막 심판도 필요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성경의 중요한 교리들이 모두 무너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죄인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사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지옥 갈 것이 무서워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다 흙으로 돌아가며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전 9:5; 시 6:5, 104:29, 115:17; 욥 14:10~12: 겔 18:4). “주께서 저희 호흡(ruach)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고 한 시편 104편 29절의 말씀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많이 참고하는 그랜드 종합주석은 "전형적인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영과 육은 분리되어 구원받지 않는다. 즉 인간은 영과 육이 하나로 되어 있는 전인적 존재이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도 영과 육이 함께 구원을 받는다"고 올바른 해석을 내리고 있다(그랜드 종합주석, 15:99).
프랑스의 유명한 신학자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그의 책 '영혼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에서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오류 가운데 하나는 영혼불멸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12쪽).
영산 장로교회 이재운 목사는 성경을 100번 통독한 다음에야 비로소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가르친 것이 성경에 근거가 없는 오류임을 발견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뜻에서 '인간의 사후세계 (서울:얼과 알, 2001)란 책을 저술하였다.
인간의 사후세계
그렇다면 제단 아래서 울부짖는 이 영혼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여기서 제단이란 말은 순교자들을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로 여기기 때문에 사용되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많은 부분들은 상징이나 표상으로 되어있다. 실제로 하늘에 백마의 기사나 청황색 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단 밑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살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결코 잊지 않으시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보증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이다. "대주재라는 칭호는 하나님께만 사용되었다(눅 2:29)."
상징적으로 순교자들의 피는 마지막 심판의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피가 올바르게 흘려졌다는 것을 심판의 날에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악의 세력은 여전히 세상을 압도하고 하나님의 개입은 너무나 미미한 것 같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피들이 어서 속히 심판의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잠시 동안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혹독한 시험이나 핍박이라 하더라도 잠시' 일 뿐이다. 잠시는 언제까지인가? 그들의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이다. 이 말씀은 순교자들의 수가 정해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이 아니다. 사단의 사악한 계획이 충분히 드러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입증되는 그 때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 6:12~13).
여섯째 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의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 해당된다. 여섯째 인을 떼자 무서운 사건들이 연속하여 일어난다. 지상에서는 큰 지진과 아울러 하늘에서는 놀라운 천체의 징조들이 나타난다. 해달별의 징조들이 일어난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는 땅이 흔들리고 천체들이 빛을 잃었다.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사 24:23). 감람산 강화라고 부르는 마태복음 24장에서도 예수께서는 재림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여섯째 인의 언어와 똑 같은 어휘를 쓰고 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 (마 24:29)릴 것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임재 때 일어나는 징조를 묘사하는 구약 성경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여섯째 인의 사건들이 상징인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날 사건인가? 예수께서 임하시는 것이 상징이 아닌 것처럼 그 징조들도 상징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여섯째 인의 시대를 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은 여섯째 인을 빌라델비아 교회시대와 일치시키고 큰 지진을 1755년 11월 1일(토)에 스페인의 리스본에서 발생하여 60,000명의 사망자를 낸 리스본 대지진으로 보기도 한다. 해가 어두워지는 사건은 1780년 5월 19일 미국 동북부에서 해가 어두워진 '암흑일' 사건으로, 별이 떨어진 것은 1833년 사자좌에서 유성 소나기가 발생했던 사건으로 해석한다.
“1780년 5월 19일의 암흑일은 그 매서운 뉴잉글랜드의 겨울에 곧 이어서 발생하였다. 아직도 시골에는 녹지 않은 눈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던 때였다.…5월 12일 뉴잉글랜드의 하늘은 유난히 음침했고 안개가 짙었다. 태양 빛은 가끔 육안으로 쳐다본다 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 희미하였다. 17일에는 옥수수를 심고 있던 농부들이 밭의 건너편 끝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18일에는 두꺼운 어두움이 저(低)지대 위를 내려 덮고 있었다. 태양은 평일보다 30분이나 일찍 넘어갔다. 불길한 정적이 일대를 압도하였다. 보름달이 솟았으나 구리빛에 가까운 붉은 색이었으며 시간이 흘러도 빛깔은 달라지지 않았다. 19일 아침에는 뉴잉글랜드의 거의 전역에서 일출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태양의 빛깔은 전날 밤의 달처럼 핏빛이었다.…검은 구름이 계속 퍼져 보스턴과 포틀랜드와 메인과 너머에까지 도달하여 그 영향권에 들어간 지역은 2만 5천 평방 마일에 달했다.…가축들은 ‘음매’하고 울면서 축사로 되돌아갔다. 수탉들이 홰를 치면서 보금자리를 찾았다.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로 이것이 왠 일이냐고 불안해 하다가 교회로 몰려갔다.…주 의회 회의실에는 촛불이 켜졌다. 여러 장소에도 촛불이 켜졌다. 대낮이면서도 어둠이 너무 짙었기 때문에 신문도 읽을 수 없었고, 주부들이 음식을 준비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그 날은 보름 하루 뒷날이었는데 여러 지역에서는 평상시의 달이 떠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나서도 달을 볼 수가 없었다.”(맥스웰, 요한계시록 연구, 193,19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계 6:14)
이런 일들이 문자적으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과연 어떤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질까?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세상이 저절로 되어졌다고 생각하고, 진화론을 신뢰한다. 자신의 지식과 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허세를 떨며, 자신이 마친 신이라도 된듯 교만하고 자랑하고 있다.
하늘의 대기권이 종이짝처럼 말려져 간다면, 세상의 무슨 과학이 인간의 무슨 능력이 이를 해결할 것인가? 우리가 신뢰하며 견고히 서있는 땅들이, 대지(大地)가 물결처럼 요동칠 때가 온다니 누가 제대로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살며 기동하는 모든 힘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 덕분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하나님의 절대섭리와 사랑, 돌보심의 덕분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능력의 한계를 경험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가서야 그들은 결코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 아님을 명백히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모든 이론과 철학을 파하고 우리 주님이 영광 가운데 구름가운데 천천만만의 천사를 거느리고 나타나실 때 그들은 그때에 비로소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 6:15-16)
그 중에 어떤 이들은 부르짖듯 한탄할 것이다.
정말 하늘이 있다면
정말 주님이 이렇게 오시는 것이 맞다면
정말 영원한 세계가 이렇게 존재한다면
왜 나에게 정말 간절히 진지하게 알려주지 않았소!
그때 믿는 자들은 뭐라고 답변을 할까?
내가 그때 자네에게 말해 주지 않았소. 천국은 분명히 있다고,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내 말은 자네가 그 말은 안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간절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요.
그것이 정말 사실이었다면 내 멱살이를 붙잡고서라도 끌고갔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주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할 것인가?
재림을 위한 올바른 준비는
단순히 “언젠가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내 안에 오시는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이다.
성경은 재림 준비를 날짜 계산이나 공포가 아니라
믿음과 사랑, 순종과 깨어 있음이다.
주님 오늘도 제 마음을 엽니다.
저를 다스려 주시고, 말씀안에, 주님안에 바르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영원한 것들에 우리의 영원한 시선과 관심을 두며 살게하여 주옵소서!
https://youtu.be/_5F6S4WgHwo?list=RDPdRthFdvEzc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낮게 평가할 때에 실망하신다. 그분은 당신이 택하신 백성들이 당신이 그들에게 놓으신 값에 의하여 자신들을 평가하기를 원하신다. ”(소망, 667-6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