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또 쏴 봐요. 총으로는 절대 우리를 꺾지 못해요.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해요.”
13살 어린이의 눈에 비친 4·19 혁명의 뜨거운 순간
4·19 혁명은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 정부의 독재와 부정부패, 부정 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민주 항쟁이에요. 1960년 4월 19일에 우리나라 곳곳은 “선거를 다시 하라.” “이승만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로 몹시 뜨거웠어요. 거리마다 시민과 학생 들이 뛰쳐나와 이승만 독재와 3·15 부정 선거로 짓밟힌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목소리를 드높였지요. 거기, 그날, 그때를 함께한 영규, 홍철이, 말숙이를 통해 우리도 4·19 혁명의 열기 속으로 들어가 보아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납치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다
『4월의 소년』은 13살 어린이 영규, 홍철이, 말숙이, 삼총사가 4·19 혁명을 직접 겪으며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 정태 형, 현수 형, 신문 기자 아저씨,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의 모습 등을 생생히 담아낸 역사동화예요. 1960년대를 살다 간 시민들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한눈에 알 수 있지요. 이승만과 자유당의 부정부패를 참다못해 일어선 우리 국민들의 용기와 희생, 그리고 정의로운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4월의 소년』의 주인공인 영규 삼총사는 1950~6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예요. 그때 대한민국 사람들은 무척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을 보내야 했어요. 일제 강점기, 6·25 전쟁 등을 겪으며 나라 곳곳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먹고사는 일조차 힘들었지요. ‘홍철이’처럼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도 여럿이었고요. 그래서 홍철이와 ‘영규’같이 신문 배달을 하거나 거리에서 껌이나 사탕을 파는 아이가 많았어요. 또 ‘현수 형’처럼 구두닦이를 하는 아이,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는 아이도 있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힘겹고 고달픈 생활에 좌절하지 않았어요. 가난한 환경을 탓하기보다 나름의 방식으로 현실을 극복하며 밝고 씩씩하게 자라났지요.
영규 삼총사도 때로는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며 때로는 장난과 농담으로 고단한 생활을 살아 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새벽 신문 배달을 하던 영규는 골목에서 납치 사건을 목격했어요. 눈앞에서 여럿이 한 남자를 폭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덜덜 떨었지요. 영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사내들은 남자를 어디론가 끌고 갔어요. 그때 영규는 우연히 납치범 가운데 한 사내의 얼굴을 알아봤어요. 범죄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이지요.
목차
완벽한 납치 사건 9
출동! 하나마나 탐정단 19
대통령 뽑는 날 36
부끄러운 승리 49
납치범이 나타났다 58
해체 위기에 놓이다 67
세상을 뒤흔든 한 장의 사진 75
아주 특별한 임무 83
피의 화요일 97
4·19 소년 109
승리의 화요일 119
새로운 임무 128
| 역사 탐구 |
4·19 혁명은 왜 일어났을까? 139
4·19 혁명에는 누가 참여했을까? 144
4·19 혁명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146
저자 소개
글: 박지숙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2003년 중편동화 「김홍도, 무동을 그리다」로 제1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김홍도, 조선을 그리다』, 『빈센트 반 고흐』, 『우리나라 역사, 첫 번째 이야기』, 『한옥, 몸과 마음을 살리는 집』 등이 있고, 엮은 책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열하일기』,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논어』,『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징비록』등이 있다.
그림: 이다혜
일상의 조각들을 모아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잡지와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그림을 그린 책으로는 『이야기 교과서 인물 : 이중섭』, 『밥벌이로써의 글쓰기』, 『네, 저 생리하는데요?』, 『대단한 사람들의 소소한 인생 상담』이 있습니다.
출판사 리뷰
웬일인지 납치 수사에 미적대는 어른들,
하나마나 탐정단이 출동할 차례다!
영규는 당장 집으로 달려갔어요. 납치 현장에서 발견한 ‘자유당’ 완장을 손에 꼭 쥔 채로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오 순경 아저씨에게 납치 사건을 알렸어요. 1960년대에는 한집에 주인집과 셋집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오 순경 아저씨네가 주인집, 영규네가 셋집이었어요. 오 순경 아저씨는 정의로운 경찰이었고, 믿을 만한 어른이었지요. 또 영규의 단짝 말숙이의 아버지이고요. 오 순경 아저씨는 당장 납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고 이튿날 피해자를 찾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피해자는 영규가 신문을 배달하는 탱자나무 집인 정태 형네 아버지였어요. 그리고 오 순경 아저씨의 친구였지요. 말숙이는 당장 범인을 찾아 벌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오 순경 아저씨도, 피해자의 가족인 정태 형네 할아버지도 선뜻 나서지 않았어요. 어른들은 납치 사건이 자유당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쉬쉬한 거였어요. 자유당은 이승만 정권과 한통속이라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지요.
어른들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못마땅한 말숙이는 ‘우리가 나설 때’라며 영규를 쿡쿡 찔러 댔어요. 결국 영규, 홍철이, 말숙이는 ‘하나마나’ 탐정단을 결성하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어요. 하나마나 탐정단은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범인을 추적하는 틈틈이 3·15 부정 선거, 자유당의 횡포 같은 부정부패를 직접 목격해요. 그러면서 자유당의 독재와 부정부패가 심해질수록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도 강해진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깨닫지요.
특히 홍철이는 대통령 선거 며칠 전에, 화장실에서 의심스러운 투표용지를 발견하고는 자유당을 ‘표 도둑놈들’이라고 손가락질했어요. 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무신, 설탕, 돈 등을 뿌려 대는 자유당도 문제지만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받는 어른들도 문제라며 제법 철든 소리를 해 댔지요. 말숙이는 3·15 부정 선거를 겪으며 오 순경 아저씨와 큰 갈등을 겪지요. 오 순경 아저씨가 시위대를 공격할까 걱정하는 한편, 반대로 시위대가 오 순경 아저씨에게 돌을 던지면 어떡하나 싶어 전전긍긍했어요. 영규는 투표소에서 본 자유당의 횡포, 4할 사전 투표, 샌드위치 표나 피아노 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부정 선거가 난무하는 현실에 크게 놀랐고요.
그 뒤로 하나마나 탐정단은 4·19 혁명의 현장에서 부정 선거를 바로잡고자 맨몸으로 나선 어린 학생들,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과 군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신문 기자, 학생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모습 등 다양한 장면을 바라보며 나름의 방식으로 조금씩 성장해 나갔어요. 오 순경 아저씨를 비난하기 바빴던 말숙이는 아빠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영규는 시위하는 학생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내달렸어요. 홍철이는 시위대에 직접 참가해 경찰과 군인에게 맞서기까지 했지요. 1960년 4월 19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한민국 시민들은 너도나도 거리로 뛰쳐나왔어요. 소년 김주열의 죽음이 시민들 마음속에 혁명의 불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지요. 어떤 사람은 김주열의 죽음에 분노하고 어떤 사람은 김주열의 죽음에 부끄러워하며, 모두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4?19 혁명 속으로 뛰어들었지요.
4·19 혁명의 그날처럼, 작은 용기의 힘을 잊지 않기를!
1960년의 4·19 혁명은 시민들의 승리로 끝났고 대통령 이승만은 하야했어요. 하나마나 탐정단도 값진 승리를 얻는 데 작은 힘을 보탰지요. 그러나 희생 없는 승리는 없다고, 소년 김주열의 죽음을 비롯해 4?19 혁명의 승리 뒤에는 안타깝게 희생된 시민들이 많았어요. 하나마나 탐정단도 의젓하고 다정한 정태 형을 잃었지요.
하지만 하나마나 탐정단은 정태 형을 잃은 슬픔에 멈춰 있지 않았어요. 납치범을 잡겠다는 정태 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았지요. 4·19 혁명 이후 들어선 장면 정부는 자유당 정권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지만 《4월의 소년》에서는 하나마나 탐정단, 오 순경 아저씨, 홍철이 아버지 등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범인을 잡았어요. 이 결말을 통해 우리는 4·19 혁명 당시에는 부정부패를 완벽히 쓸어버리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시민들의 힘과 역량을 키워 ‘진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라는 응원과 위안을 얻어요. 또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자신감도 키워 나갈 수 있지요.
아직 우리 사회는 불안정해요. 그래서 가끔씩 부정부패를 마주하고 실망하기도 하지요. 어느 날, 여러분이 부정부패에 가로막힌다면 “악당이 무섭다고 계속 뒷걸음만 칠 수 없다. 정태 형도, 마산 사람들도 두렵지만 한 걸음씩 나아갔다. 한 명씩 한 걸음씩 나아가면 백 명이면 백 걸음이 되는 거다.”라는 영규의 혼잣말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이 작은 용기의 힘을 잊지 않는다면, 더디지만 사회는 좋은 쪽으로 변할 테니까요. 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도 4?19 혁명도 처음에는 작고 보잘것없는 하나 마나 한 일이었지만 끊임없이 계속해 나갔기에 우리 역사가 바른길로 나아갔다는 점을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