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리더십
막10:43-45
21세기 리더십 패러다임 중 현재 국내외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입니다.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말은 그린리프(R. Greenleaf)라는 경영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그는 헤르만 헤세의 '동방 순례'라는 책에 나오는 하인 레오(Leo)의 이야기를 통해 서번트 리더십의 개념을 설명하였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레오는 순례자들의 허드렛일이나 식사 준비를 돕고, 때때로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밤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순례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살피고, 순례자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배려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일행은 큰 혼돈에 빠져 결국 여행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레오가 없어진 뒤에야 그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후 일행 중 한 명이 몇 년을 방황한 끝에 마침내 레오를 만나고, 여행단을 후원한 교단을 찾았는데 그는 그 때 비로소 서번트로만 알고 있던 레오가 실제로는 그 교단의 수장이자 정신적 리더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서번트 리더십은 상반된 단어로 여겨지는 두 단어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결합하여 생겨난 역설의 리더십으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막10:44)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정신과 일치합니다. 즉 서번트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며, 헌신하는 리더십이며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는 하이터치인 것입니다. 중국을 천하 통일한 모택동은 자신의 군대에 지시하기를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사병과 장교가 다르지 아니하다."고 하여 장교와 사병이 같이 식사하고, 같은 침낭에서 잠을 자게 하고, 인민복이라 하여 장교와 사병이 같은 군복을 입어 계급의식과 함께 위화감이 없도록 하였답니다. 그리하여 장교와 사병이 신뢰감과 충성심을 바탕으로 열악한 환경과 무기를 가지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에게 서번트 리더십이 필요할까요?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미래경영]에서 현재와 같은 지식산업시대에는 여러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의 구분이 없어지며, 지시와 감독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리더가 구성원(부하)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조직원을 이끄는 기존의 리더십 패러다임 대신 리더가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며, 구성원들이 함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서번트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번트 리더십을 이루는 핵심요소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제임스C.헌터 등)은 경청, 공감, 치유, 스튜어드십(Stewardship), 공동체 성장을 위한 노력 등을 말하지만 저는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사명입니다. 리더를 사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고 말씀하시는 주님이 우리를 이곳에 불러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위치나 배경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려는 만큼 자신의 사명에 대한 책임 의식, 서비스 정신, 공헌 의식이 투철합니다. 둘째는 헤아림입니다. 주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알아주는 마음이듯,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때문에 서번트 리더십은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충만한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의 근원입니다. 셋째는 행함으로 실천하는 리더십입니다. 훌륭한 머슴은 주인의 마음을 살피고 그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일을 묵묵히 감당합니다. 마지막으로 찾아내기입니다. 구성원들의 숨은 잠재력을 발굴하고 가장 적절한 업무를 적절한 시기에 맡겨서 원하는 결과와 목표를 달성시킬 수 있는 능력, 즉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연저지인(연疽之仁)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어 깊은 감동을 준다는 뜻으로, 중국의 고서인 史記에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위(魏)나라 문후(文侯) 시대에 유명했던 오기(吳起) 장군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는 사령관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의복이나 식사도 일반 사병과 똑같았으며, 군을 지휘할 때도 말을 타고 다니지 않은 장군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느 날 오기가 군을 시찰하던 중, 종기로 고생하는 한 병사를 만났습니다. 오기는 그 병사와 종기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기야 그를 치료하기 위해 그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었습니다. 이 소식이 그 병사의 어머니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그 어머니는 아들을 치료해 준 오기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통곡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사람들은 '지체 높은 장군이 종기를 빨아 치료해줬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야 할 터인데 왜 통곡인가?'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난번에도 오 장군이 내 남편의 종기를 빨아주더니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소. 그런데 이번에는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다고 하오. 지아비도 목숨을 걸고 오 장군을 위해 싸웠는데, 하물며 아들놈이야 오죽하겠소." 결국 오기가 위나라 최고의 장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며 싸워주는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린리프는 그의 책 [서번트 리더십 원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적은 사악한 사람이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 무관심한 사람도 아니다. 시스템도 아니다. 목소리 높여 항의하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적은 착하고 영리하며 활기찬 사람일 수도 있다. 지도자 위치에 있으면서 서번트이기를 포기할 때, 그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적이 된다. 지도자적 능력을 지녔음에도 진정한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는 사람, 곧 서번트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번트이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가 됩니다. 그러므로 서번트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교사는 리더입니다. 더욱 우리는 영혼을 다루는 기독교사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웃과 세상을 바르게 섬기기 위한 복음적 방법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생활해야 합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에서 서번트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리더는 먼저 공동체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알아야합니다. 우리 학교의 설립목적은 물론 우리 학교의 비전과 사명을 분명히 해야 하고 이에 대한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리더인 우리 모두가 서로 섬기며,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들과 아이들도 가르침의 대상보다는 섬기는 대상으로 여길 때 비로소 참된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귀한 사명까지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