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의식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나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과연 ‘나’입니까? 내가 아니라면 누구죠? 어렵습니다. 사실 그런 때가 온다면 살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소위 치매 환자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약 10년 가까이 치매를 가지고 사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처음 5년은 집에서 모셨고 뒤 5년은 요양원에서 지내시다 떠나셨습니다. 도저히 집에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사실 환자 본인보다는 주변의 가족이 더 힘들게 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치매 기가 시작되면 스스로 정리할 생각도 합니다.
인생은 선택과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란다. 아들에게 남겨놓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어르신은 자신의 삶을 끝내려고 합니다. 시력은 약해져서 점점 눈앞이 흐려집니다. 단순히 눈앞의 장애물을 피하는 정도만 남았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은 눈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그 목소리로 구분합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평생 함께 살아온 아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그 목소리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때문에 외출을 삼갑니다. 필요할 때는 안내해주는 동행인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어렵게 외출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실내에만 있다가 바깥바람을 쐬본다는 것이 얼마나 상쾌한 일이겠습니까? 이제 자주 가질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아직 자의식이 가능하여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삶을 정리하려 합니다. 그 때가 지나면 스스로의 죽음마저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닌 나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괜스레 나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만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그런 날을 맞기 전에 끝내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타의 자살과 같은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까?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위 존엄사를 하자는 것인데 그나마 사회적으로 아직 공인된 것은 아닙니다. 나라별로 수용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생명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너져가는 것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의식을 잃어버린 나는 사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그런 나를 살고 싶은가? 자신을 아주 잃기 전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는 없는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공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몰래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쫓아다니며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냥 안타깝다 생각하며 지나갈 뿐입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배우자가 이미 치매로 자신도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때로는 주변 사람에게 폭언과 폭력까지 행사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냥 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때로 묶어놓을 수도 있고 가둬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굶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일단 먹으면 배변도 돌봐주어야 합니다. 아주 힘든 일입니다.
이 두 노인을 돌봐주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문정’은 이 가정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퇴직한 노교수는 오히려 문정을 가리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대상은 치매로 앞뒤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노부인입니다. 그런데 어르신이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노교수에게도 돌봄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을 정성스럽게 돌봐주는 문정은 노교수에게 매우 고마운 사람입니다. 뭔가 떼주고 싶을 만큼 귀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수고에 답해줄 준비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문정도 그렇게 잘 대해주는 노교수가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욱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피고용인이고 문정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직장입니다.
문정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집을 마련하여 하나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소년원에 있지만 오래지 않아 나올 것입니다. 그 때는 어떻게든 집을 마련해두어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마련해둔 돈으로 조그만 집도 보아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갑니다. 사실 자신도 힘든 처지이기에 소개 받은 집단상담실에 다니며 치유 받으려 합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혼의 아픔, 아들과의 갈등, 노부인의 치매로 인한 스트레스 등등 속이 검게 타고 있을 듯합니다. 그래도 견디며 살아야 하니 버티려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름 애쓰며 이겨나갑니다. 어렵지만 자신의 경험도 나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사고가 일어납니다. 물론 고의적 살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당황하다가 신고까지 하려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들의 전화를 받습니다.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결국 시신을 유기합니다. 과연 그렇게밖에 선택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비닐하우스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아들과 함께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 어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과연 올 수 있을까요? 사람은 꿈을 가지고 삽니다. 사실 꿈조차 없다면 의미도 미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는 이루어가는 일입니다. 그 시간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영화 ‘비닐하우스’(Greenhouse)를 보았습니다. 아픕니다.
첫댓글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입니다.
예 어렵습니다. 근데 점점 이 문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머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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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날되세요
감사합니다. 멋진 한 주를 빕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