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공
이정화
공이 굴러간다
발이 교차한다
비가 떨어진다
심장이 떤다
ㅂ
당연한 말들을 넘어서서
가슴을 열어 뛰는 심장을 보고 싶어
구름을 혜집어 물방울을 세고 싶어
쏟아지는 박동을 손으로 잡고 싶어
야자수 유리컵이 부서져버렸을 때
깨진 유리에도 감각이 생겼다
정원에 문을 열자
한편에 펌프가 돌고
담을 넘어 공이 하나 들어온다
널브러진 나무들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있었지
알 수 없는 이름의 식물들
그것들의 체계를 헤아려보고
있었을까
가슴과 심장
힘없는 녹색의 심장을 떠올려보지만
야자수는 깨져버린 다음이다
지금도 지하수를 끌어올리며
펌프는 돌아가고
젖은 흙냄새
썩기 시작한 뿌리와 무른 잎
웃자란 잔디 너머
나무의 가슴이란 건
아스러졌겠다
만질 수 없겠다
주먹 사이로
흘러나오는
펌프의 소리
두 개의 공 부딪치듯이
나를 앞서 박동하는
심장
결국 이해엔 숨이 빠져버렸다는 사실
슬픔은 부딪치는 두 개의 공
공의 미끄러운 표면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가 우연히 내 발밑에 멈추는 것
오래된 스프링클러가 돌아간다
멈춰버린
정원에 공
—월간 《현대문학》 202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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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 1998년생. 2023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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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공 /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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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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