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오래된정원
#황석영
- 희망은 있는가? -
-‘오래된 정원’- 을 읽고
황석영이 쓴 ‘오래된 정원’ 상하편을 읽었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작가는 1989년 평양학생축전 당시 무단 입북했다가 독일에 머물며 남한 최초의 북한 여행기라 할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발표했었다. 그 후 1993년 귀국하여 오년 여의 옥고를 치르며 이 작품을 구상하였고 출감 후, 중앙의 모 일간지에 연재했는데 이번에(2000,5월) 창비에서 두 권의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심상치 않은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이 객지, 장길산, 무기의 그늘 등의 작품세계가 시사하듯, 극명하게는 광주항쟁기록인 (그는 중국 장춘에서 출생했으며 유신시절과 격변의 5공 중반기까지 호남에서 살았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증명하듯 작가는 암울한 시대를 대다수 침묵하고 방관하던 지식인들과 달리 치열(?)하게 살아온 듯싶다. 사실, 경험에 근거한 리얼리즘이 그의 특징일 것도 같다.
본시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작품이 작가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는 논리에서 본다면 ‘오래된 정원’은 인간 황석영의 사상이나 인생관의 결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인데...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신이 무너지고 광주항쟁이 있었던 격변의 70년대 말과 80년 상반기에 걸쳐 교사출신으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오현우(주인공)는 어떤 한계 때문에, 그리고 민중의 무관심에 절망하여 사회주의로 경도된다.
결국 조직이 폭로되어 당국의 수배를 받는데, 기약 없는 도피 생활 중에 시골에서 한윤희라는(조직의 동조자) 미술교사를 만나 짧은 한여름동안 사랑을 불태우게 된다.
좌익이던 아버지 때문에 고통 받았던 불행한 성장기를 보냈던 윤희는 아버지에 대한 여러 마음의 빚 때문에 현우를 쉽게 이해하고 사랑에 빠진 것인데.....
여하간 두 사람이 동거하는 갈뫼라는 마을에서의 꿈같은 생활, 그 아름다운 묘사는 마치 에덴동산을 방불한다. 사소한 음식 만들기에서, 시냇가의 빨래터에서, 동심으로 돌아간 낚시와 화단 가꾸기에서, 그리고 시골 대자연의 풍광에서 행복을 만끽하는 두 연인. 그러나 현실은 회피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는 것, 이별을 예감한 윤희가 현우의 초상화를 끝낼 무렵, 현우는 낙원을 떠나간다.
결국 현우는 검거당해 18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다.
석방직후에야 비로소 윤희가 암으로 삼 년 전에 죽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미처 받지 못한 세 통의 편지와 갈뫼에서 그간의 행적을 기록한 윤희의 노우트를 보고 자신의 딸 은결이까지 낳았음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현우의 투쟁의 전말 및 감옥생활의 여러 회상과 소묘들(문명화된 나라에서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낙후된 환경이며 요즘 말로 엽기적이다), 그리고 마음의 행로등과 대치되어 홀로 딸을 키우며 대학원을 이수하고 미술학원을 꾸려가며 운동권학생들을 도우며 유럽으로 유학까지 가서 다른 남자와 사랑도 하고 사별도 하고 동서독의 통일현장도 지켜보며 붕괴된 소련의 시베리아 횡단열차까지 타는 윤희의 신상기록이 번갈아가며 나오는 형식인데...
말할 것도 없이 격동기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운동권이던 윤희선배인 송영태가 월북하는 상황도 나오는데, 작가의 전력에 비추어 의미심장하다.
신문연재 때와 달리 마지막 부분에 덧붙인 공원에서 딸과의 만남. 은결은 윤희동생 정희가 입양해 키우고 있는데 아버지 친구라고 가장하지만 은결은 현우가 벌써 아버지임을 알고 있다.
어쨌거나, 오현우나 혹은 작가 황석영의 결론은 과연 무엇인가?
진부하긴 하지만 그 어떤 이념도 주의도 인간, 혹은 민족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단정해 말하리만치 간단명료한 세상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어쩌면......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란 윤희의 마지막 편지 끝 부분과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요. 혹시 바위틈 사이로 뚫린 길을 걸어 들어가 갑자기 환하고 찬란한 빛 가운데 색색가지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본 건 아닌가요.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란 윤희 노우트의 마지막 부분에 녹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화해’와 ‘희망’일 것이다. 부조리하고 폭력적이고 절망적인 현실과의 화해는 포기, 혹은 변절이 아닌 인간에 대한 관용과 사랑일 것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오래된 정원’의 의미를 전쟁과 폭력과 굶주림과 억압의 공포가 없는 태고적 평화로운 아시아의 저편에 있는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이라고 말하는데 ‘갈뫼’마을이 그 은근한 비유일 것 같다.
아울러 작가는 본 작품을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라 밝히고 있다.
끝으로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일까’ 반문하고 있는데......
당금의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상봉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
아니,장담하며 단언하며 확신한다.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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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래전(2000년 여름)에 썼던 독후감입니다. 1999년에 신문연재때 보며 상당히 감동받았지요.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서 독후감을 구한다기에 후딱 써넣은 것인데 워낙 응모자가 없어서인지 입상했다며 상장과 상품을 주더군요.
10년이 지났건만 영화도 못 봤지만 그리 큰 희망의 조짐은 안 보이는군요. 당시보다 내환과 외우가 오히려 더 많아진 현실 같습니다...........과연 희망은 있는지...?
2011, 4월
첨언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후기작을 거의 못봤기도 했지만 표절논란도 있고 썩 개운치 않은 정치이념과 행각때문에 풍파도 많았던 풍운아겠지요. 갸웃하는 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십년전부터 노벨상 물망에 오르는 것을 보면 타고난 천재며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작가라고 감히 평하고 싶네요. 적어도 위 작품은 제게 쉬이 소화가 되었으므로 90점은 주고 싶군요.
워낙 널리 알려져 이미 포스팅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난데없이 생뚱할지도 모르지만....가입인사로 받아주시길...
2021. 4
20년도 넘었지만 큰 희망은 안보이고 힘든 세월이 이어지리라는 2023, 4. 24
첫댓글
추억을 저도 소환해 봅니다
독후감 이라기 보다는 열심히 아주 열심히 정보관이나
시민 도서관을 다니면서 읽었던 책들을 나름 이런저런
생각들을 읽고 정리를 해두었다는
요즘이야 꼭히 책이 아니어도 읽을 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주신 글을 읽어 보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
전엔 도서관도 자주 갔는데 요즘은 안간지 오래 되었네요.ㅠ 체력문제나 모바일 탓이 크겠지만 워낙 즐길 거리가 많아서 같습니다. 모두 핸폰만 들여다보니 과연 진화중인지 퇴화중인지 😢
감사합니다.
감사 백배합니다^^
세계 제일 그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