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일본 애니메이션인 <PSYCO-PASS>(이하 사이코패스)를 보고서 인간의 조건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를 잠깐 얘기하자면, 배경은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은 SF식 배경이다. 초 고도화된 일본에서 사람들은 로봇이 정한 정신 건강 규정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로봇이 정한 기준치에서 적합하면 일반인, 감시자 등으로, 정신 건강 규정 기준치에서 벗어나면 그 즉시 잠재범, 범죄자 등의 칭호를 얻고 집행관 들에게 잡혀가거나 심할 경우 사살당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세계관으로 인간의 조건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나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배경을 집중하여 보았다. <사이코패스> 세계관은 인간들이 로봇의 규정에 맞게 살아가고, 로봇이 정한 인생을 살아간다. 때문에 그들은 삶의 의미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가지 못한다. 그저 생각 없이 하란 대로 따른다면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고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배경을 알고 보면서 일반인들 보다 범죄자, 잠재범들이 그나마 인간답다고 생각했다. 첫 화를 보면 이제까지 안정된 삶을 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범죄를 저지르지만 결국 처형당한다. 물론 작중에는 정말 범죄를 저지르며 나오지만, 범죄를 제거하고 본다면 너무나 인간 다운 인간이다. 헤르만 헤세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온” 인물인 것이다. 안락한 삶에서 나와 자신의 자유를 자신이 정하고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 답게 한다. 인간은 각자의 개성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자유가 존재한다. <사이코패스> 세계관에서 로봇을 본능이라 여기면 이해가 쉽다. 인간은 본능에 의지하지 않는다. 본능에 의지하는 삶은 동물, 짐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을 나누는 기준은 이성과 의지다.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기준이지 조건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건 자유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배경을 봐 보자,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인간답지 않은 삶이다.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정해진 신분의 삶, 더 나아가고 싶지만 억압받는 시기였다. 이런 억압이 싫어 행한 것이 프랑스 혁명이다. 인류사 전체를 봐도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침해 받으면 대담해지고 큰일을 행하려 한다. 이처럼 자유는 사람이라 일컫는 데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가 그저 존재한다고 완전체의 인간이라 할 수 없다. 다시 프랑스 대혁명으로 돌아가자면, 혁명으로 자유를 가진 국민들은 절제할 수 없는 자유를 얻었다.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쓰는 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혁명 이후 프랑스는 혼돈, 그 자체였다. 자유를 원해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로 망할 뻔했다. 자유는 너무 넓은 존재다. 자신의 자유가 될 수도 있지만, 자유의 나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유의 노예가 아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자유에게 억압받으면 안 된다. 때문에 넓은 존재의 자유를 자신에게 맞게 자른 다음, 사용하며 점점 늘리는 자유가 인간의 손에 와야 한다. 이것이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절제할 수 있는 자유다.
<사이코패스> 세계관에서 느낀 나에게 인간의 조건은 자유였다. 이를 인류사에서 그 어떤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한 사건인 프랑스 대혁명에 엮어봤을 때, 인간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재설정하게 되었다. 인간의 조건은 인간이 절제할 수 있는 자유다. 쉽게 말하자면 결국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에서 와는 다르게 현대는 너무 아이러니하며 아프다. 정해진 삶을 살아갈 수도 있지만 자신의 맘대로 살아갈 수도 있는 세상이다. 자유가 너무 넘치는 세상이다. 좋은 세상은 맞다. 하지만 현 사회가 아픈 이유는 개개인이 아직 적응하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해방 후에 프랑스 국민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을 이끌어 줄 리더를 원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리더가 되려 하고, 누군가는 은둔한다. 나에게 사회는 개인이 모여 이루어지는 곳이다. 개인들이 자신이 절제할 수 있는 자유를 다루기 시작한다면, 절대적으로는 좋은 이 세계를 유토피아적 사고지만 말 그대로의 인간 세계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