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최대의 화제작 이준익 감독, 황정민, 차승원 주연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보고 왔습니다. VIP 시사회라는 타이틀 답게 주연배우들 황정민, 차승원, 한지혜, 백성현, 이준익 감독을 비롯해 이들의 지인인 유선, 박예진, 이준기 뿐 아니라 천하무적 야구단 팀까지 많은 연예인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물론, 이런 것이 영화 감상과는 무관하겠지만, 그래도 눈은 즐거웠습니다. 다들 어찌나 길고 늘씬하며 얼굴들은 작은지, 배우는 괜히 배우가 아니더군요.
각설하고 영화는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개봉전부터 티저 예고편 하나만으로도 많은 영화팬의 가슴을 Heartbeat하게 만든 작품이어서 기대치는 꽤나 높았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날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 <아이언 맨 2 Iron Man 2,2010>과 맞짱드는 작품이기도 하니 왠만한 재미와 완성도가 없다면 KO패 당하는 건 뻔할 뻔잔데, 맞불을 놨으니 얼마다 잘 빠졌길래라는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개봉에 앞서 박흥용 화백이 그린 이 영화의 원작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읽었습니다. 원작을 읽고 나서 예고편을 보면서 짐작은 했지만, 원작과 영화는 정말 완벽하게 다른 작품으로 보면 됩니다. 사실, '원자글 버서난 작품처럼' 어려운 것도 없죠. 영화는 원작의 캐릭터와 기둥 줄거리만(약간)빌려왔고, 이준익 감독은 좀 더 영화에 어울리는 극적 장치를 가미했습니다. 황정학(황정민)과 이몽학(차승원) 그리고 백지(한지혜)의 비중을 높였고(역할 비중을 말이죠), 원작의 주인공인 견자(백성현)의 비중은 줄였습니다.
황정학과 이몽학의 대결구도로 펼쳐질 줄 알았던 작품은 영화의 2/3이 황정학과 견자의 로드 무비로 가다가 결국은 이몽학의 일장춘몽으로 끝이 납니다. 영화는 꿈이 큰 남자 이몽학, 꿈이 없는 남자 견자, 꿈을 잃은 남자 황정학, 그리고 꿈을 꾸는 여자 백지가 한 데 어우러져 꿈을 좇아갑니다. 꿈이 없음에도 꿈이 잡히지 않음에도 말이죠. 뜬구름 잡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제목과 왠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누가봐도 비극으로 치닫는 것이 예감되는 스토리라인이지만, 이준익 감독은 예상외의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하고(궁궐내에서 동인과 서인의 권력 다툼은 코미디), 예상했던 장면에서는 비장함이라는 카드를 꺼내듭니다. 이 와중에서 영화를 휘어잡는 이는 황정민. 맹인 검객 황정학으로 분한 그는 정말 말 그대로 스크린에서 칼을 들고 이리 저리 휘두르는 검객처럼 보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영화 대부분의 웃음과 긴장감 유발은 다 그의 빛나는 연기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상대역으로 부각시킨 이몽학을 맡은 차승원의 연기는 이전에 그가 해왔던 톤이라서 아쉽기는 했지만(개인적으로는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종반부에 치닫게 되면서 마치 꿈을 좇아 그 꿈을 빨아먹는 흡혈귀 마냥 허무하면서도 무서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백성현. 과연 제 2의 이준기가 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지만, 많은 분량에도 감정 표현의 격차가 제일 큰 견자의 역할을 나름 깔끔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물론, 두 배우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황정학한테 맞는 연기만큼은 일품이었습니다. 한지혜 씨가 맡은 백지역은 뭐 이렇다할 것은 없습니다면, 이 작품이 워낙 클로즈업을 자주하는 작품인지라 동양미가 느껴지는 한지혜라는 배우를 선택한 것은 탁월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천 만관객을 모을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능성 있는 작품이기는 합니다(물론, 분위기만 잘 타준다면 말이죠). 분명히 관객의 호불호는 명확히 갈리겠지만, 그래도 이준익 감독의 영화답게 수준 이상의 재미는 확실하게 가지고 가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화장실에서 모 배우와 모 배우는
A:"영화 어렵지 않았냐.",
B:"아니오 재밌던데요.",
A:"티켓 파워를 가진 젊은 관객층이 이 작품을 재밌게 볼까?",
B:"오히려 젊은 관객층이 재밌게 볼 것 같은데요.",
A:"그건 니가 애늙은이라서 그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우연치 않게 같이 있다가 들었습니다)
중년 배우가 걱정하는 "젊은 관객층의 호응"과 젊은 배우가 얘기하는 "젊은 관객층의 호응"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가 이 영화의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영화 2/3까지는 천 만이라면, 나머지 부분은 한 백 만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황정민 이라는 배우는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갈만 얹어놓는 배우라기 보다는 식당에서 그저 우리 밥을 먹어줘서 고마워할 만큼 대단한 배우라는 점입니다. 남우주연상 하나쯤 안겨주는 건 어떨런지. 그리고 이준익 감독님 시간 되면 황정학을 주인공으로 한 프리퀄 시리즈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첫댓글 아 기대되네요. 전 무엇보다 그간 황정민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에 어느정도로 소화할지 궁금하군요;
황정민이라는 배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
기대되네요...꼭 봐야겠습니다!
괜찮습니다. ^^ 볼 만해요.
기본적으로 배우에 대한 믿음이라면 황정민을 따라갈 한국 배우가 또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배우죠. 게다가 이준익 감독님..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분이어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네요. 한국가면 꼭 봐야 겠습니다.
이준익 감독님이 공들여 찍은 것 같아요. 한국 오시면 필수 관람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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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도 있지만, 백만도 있듯이...영화 종반쯤 가면 급격히 쳐집니다. 그 편차가 상당히 큰 편이죠. 그게 좀 아쉬웠어요. 그 편차는 배우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요
오 사우던님의 글을 보고나니 꼭 보고 싶어졌어요. 꼭 봐야지..
저 때문에 봤다가..욕할수도 있는데. ^^ 그래도 꼭 보세요.
추노의 잔상 때문인지 이몽학에게는 "황철웅"의 향기가 솔솔 나는 건 참 어쩔 수 없더군요.ㅎ(그리고 차승원이라는 배우도 점점 얼빠진 코믹, 아니면 그 반대지점. 이 두 가지로만 굳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전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어떠하냐 라고 물으시면 그냥 "황.정.민". 이라고 하겠습니다.
볼만한 외화 틈바구니에 있는게 걱정이기는 하지만 기대는 되는군요. 이준익 영화가 눈에 딱 들어온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황정민이 없었더라면 하는 건 있습니다. 완성도가 높다기 보다는 즐기기에는 무난한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듯 ^^
리뷰 잘 봤습니다. 간만에 스크린나들이 가야겠네요. ^^ 그런데 맹인검객하면 자토이치가 먼저 생각나서.. 자토이치에 비교되진않을까 걱정아닌 걱정을 하게되네요.
저도 자토이치가 생각났는데, 황정민이 만든 황정학이라는 캐릭터는 나름 독자적인 구축을 했다고 보입니다. ^^
모배우와 모배우가 누군지 궁금하네요. 대화가 참 인간적인거 같은데 ㅋ
류승룡&류덕환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고 싶었는데 꼭 봐야겠네요. 같이 보기로 한 사람이 바뀌긴했지만...ㅎㅎ
재수가 초큼 없네효
이영화 기자시사회 기사난거 오늘 아침에 봤는데 호불호가 엇갈리는 평이 지배적이더라구요...케릭터에 집중을 하다보니 이준익 특유의 이야기전개나 긴장감이 떨어지고 현정치를 비판하고자는 의도를 너무 의식적으로 넣었다는 평을 봤거든요. 그래도 영화는 직접봐야 아는것이니까 한번 보고 싶네요. 황정민 연기가 호평일색이던데....근데 같이 볼 사람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