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천국이다.
♡탈북자 김수진♡
백 년이 뒤 떨어진 곳에
서 백년을 앞선 곳으로 왔다
나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들어섰다.
북한에서 꿈꾸던 사회주
의, 공산주의는 대한민국에
있었다. 대한민국은 천
국(天國)이다.
진실이 하나도 없는 곳에
서 거짓을 읽으며 살아온 것
으로 해서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절대
감정 표시를 잘하지 않는 나
는,
그때 이곳이 우리를 받아주
는 조국이라는 감동 속에서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당분간 우리들의 집인
국정원으로 가는 길에서 저절
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북한에 대비, 중국의 거리
들을 보고 감동에 젖었던 그
것은 봄눈같이 사그라지고 중
국을 대비할 수 없는 대한 민
국의 황홀한 광경에 내 입에
서는 "아, 아" 하는 신음 같은
작은 소음이 새어 나왔다. 말
문이 터지지 않았다.
시(時)에서 내가 노래했듯
이 백 년이 뒤떨어진 곳에서
백 년을 앞선 곳으로 단숨에
다 달았으니
내 외침이 막힐 수밖에 없었
다.
국정원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들을 실은 버스가 곧장
병원으로 향해지더니 우리들
의 건강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검진을 시작했다.
세심한 검진이 시작되었
고 이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마어마한 설비들 앞에
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
다.
약이 없는 병원, 설비 없는
병원에서 치료는 생각도 못하
고 중국에서 밀수해 들어오는
흔한 정통편(正痛片:중국산
두통약)으로 아픔을 달래시
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폭포 치듯 흘러내
였다.
국정원은 엄숙한 곳이기
도 했지만 우리들을 태국에서
부터 보듬어주고 품어준 곳이
기도 했다. 수천 리 길을 헤쳐
온 우리들의 수난의 옷들은
속옷부터 시작해서 겉옷, 신
발, 머리띠까지도 세세 낱낱
이 바꾸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입은 모든
옷들을 속옷부터 겉옷, 신발,
생활필수품 모두 개수를 세어
보았다. 모두 세어보니 40여
가지가 되는 것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을 국민의 부
담으로 매 한 사람 한 사람에
게 배려해 주었다.
그래도 그 물품들을 들고
북한처럼 어디에 서서 "고맙
습니다"하는 인사 같은 것은
시키지 않았다.
500g 간식 한 봉지를 받고도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 앞
에서 군침을 삼키며 먼저 인
사를 해야 했던 우리들.
빼앗긴 것이 더 많건만 적
게 차려지는 그것조차도 선물
이 되어 90도로 허리를 굽혀
감격해해야 했던 어제의 날
들이 허거프게 안겨왔다.
국정원에서의 조사를 마
치고 선생님들의 따뜻한 바래
움 속에서 이제 우리가 살아
갈 삶의 진로를 가르쳐주는
하나원의 수업들에서 내가 제
일 기다리는 시간은 한국사
(韓國史) 시간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로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
이 한국사라고 생각했으며 한
국사 교과서를 꼼꼼히 체크해
가면서 역사적인 연대(年代)
들과 시기들을 수첩에 적어놓
기도 했다.
이렇게 석 달이라는 짧고
도 긴 시간을 보내고 하나원
을 수료하였다.
2013년 8월, 나는 꿈속에서
도 그리던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다.
국가가 우리에게 배려해
준 임대아파트로 들어가기
전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거기에는 나의 이름과 주
민번호, 집 주소가 적혀 있었
다.
주민등록증을 품에 않았
을 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
앞에서
목이 메어 눈물을 흘렸다.
이 진정한 자유 민주
주의 국가의 국민이 되기 위
하여 탈출을 꿈꾸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
죽음과도 같은 탈출의
길에서 헤쳐온 가시덤불 길
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추
억으로 내 마음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주민등록번호가 내
심장의 한 곳에 소중히 자리
잡았다.
디디어 국가가 정해준 나
의 집으로 들어섰다.
규모가 반듯하고 쓸모 있게
꾸려진 집, 바닥과 천장, 기술
적으로 잘 계산되어 있는 집
은 종합적으로 인간의 심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내 마음
에 꼭 들었다.
꾸릴 수 없이 꾸리지 못했
던 북한의 창고 같은 집들이
떠올랐다.
대충 꾸리고 살았다는 나의
집, 이 집에 비하면 쓸모없는
헛간 같아 보인다.
이제 그 집을 머릿속에 떠올
리기도 싫다.
아무것도 없는 집이지만
푸근함이 확 밀려왔다.
황홀한 나의 삶의 거처지, 나
의 집 만세를 부르고 싶다. 방
안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
앗다.
전기 밥가마에 쌀을 앉힌
고 살짝 스위치를 누르니 "쿠
쿠가 맛있는 밥을 시작합니
다"하는 소리가 노래처럼 내
귀를 간지럽힌다.
아 - 나는 행복하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국도 끓인
고 나와 건발기(드라이어)로
머리를 날리며 상쾌함을 만끽
한다.
설거지대의 온수에 손을
잠그고 이슥토록 말없이 생각
에 잠기기도 한다.
전기가 없고 수도가 막혀 찬
물도 없어 물바케츠를 들고
우물가에 길게 늘어선 줄음
따라 물이 고이기 힘든 우물
바닥을 모래와 함께 퍼내던
일,
물 한 바케츠를 위해 밤잠을
자지 못하고 달과 함께 우물
가를 시켜서던 밤들, 어쩌다
나오는 수돗물에서 지렁이와
거머리를 건져내며 그 물을
그대로 마시면서도 다행으로
여겼다.
일터에서 돌아와 전기가
없는 저녁 어둠 속에서 더듬
어 키를 열고 기름등잔 아래
서 내내 자욱한 방 안에서 추
위에 떨며 찬물에 손 담그던
일, 그 모든 악몽(惡夢)과도
같은 것을 말끔히 쓸어버린
대한 민국의 나의 집.
1970년대 김일성이 여
성들을 부엌일의 무거운 부담
에서 해방시키겠다고 열렬히
선전한
3대 기술혁명의 만세가 전기
밥 밥솥 한 개도 해결하지 못
한 북한이 아니라 이 대한민
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완벽
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었
다.
전기를 명절선물로 받은
며 '배려 전기'라는 세게 어느
나라 사전에도 없는 이상한
부름말로 전기를 보는 것이
소원이어서 명절이 오기를 애
타게 기다리던 북한 인민들의
모습이, 하루 종일 켜도 깜박
하지 않는 TV앞에서 설움을
불러내고 있다.
확 트인 대통로를 따라 끝
이 없이 걷고 싶다.
도로는 나라의 얼굴이라고 일
걷는다.
대한 민국의 도로들은 신
화적인 도로였다.
공중에 선 도로들, 그 위로
달리고 있는 물매미같이 반들
거리는 자동차들. 이것이 내
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
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한민
국의 진면모가 하나, 둘, 나를
향해 다가왔다.
먹을 것이 너무 흔해서 무엇
부터 입으로 가져갈지 생각이
나지 않는 날들, 그 음식들 앞
에서 대성통곡 하기도 했다.
삼백만의 굶어 죽음 속에
합쳐진 내 친척들,
내 고향의 어린이들과 노인네
들, 쌀이 없어 갓난아기를 업
고 밥가마 앞에서 눈물을 짜
던 나의 동생, 그 모든 것이
내 설움을 불러와 통곡을 터
뜨리게 했다.
먹을 것이 흔한 곳에서 조
차 노인네들, 장애인들을 위
한 복지관, 그들을 위한 혜택,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아파트들마다에 있고 노인네
들이 들러 쉼 할 긴 벤치들이
거리의 곳곳 아파트의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북한에서 꿈꾸던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대한민국에 있었다.
대한민국은 천국(天
國)이다.
나는 지옥에서 천국은
로 들어섰다.
천국에서도 열심히 노력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내 몫이다.
나는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
부터 내 삶을 시작하려고 했
고 북한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을 꼭 이루기 위해 각오하
고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통일작
가(統一作家)로 나의 생(生)
을 빛내고 싶다.
-카톡으로 받은 글-
첫댓글 많은 고생을 하며 천국에 오셨으니 마음껏 즐기시고 행복하시기 바람니다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히 읽고 갑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도 할 겁니다.
다소간의 실망 또한 있을 것이기에 그 또한 잘 이겨내야 할겁니다.
암튼, 다소간의 부족함과 실망감이 앞으로 생겨난다해도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 천국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기에
그 또한 슬기롭게 잘 이겨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이전의 세상과는 다를 것이므로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우리들도 조상들게서 평남 덕천에사 도보로 강원 영월까지 왔답니다.저도 팔십중반인데 아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어느곳이나 힘든일은 있스니다 행복하게 살으십시요 위에글은 퍼갓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곳의 정신병자 좌 뻘들이 우굴거리고 있다
국가에서 비용이 들더라도 죄뻘들을 북한으로 안내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