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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디자이너 최윤희(63). 평소에 기자는 그녀를 ‘해피 바이러스’ ‘에너자이저’라고
불렀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초록색 물들인 헤어스타일의 그녀가 늘 ‘해피 해피’를 부르
짖으며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 긍정의 마인드를 전파하는 까닭이었다.
우울한 일이 있을 때도 그녀와의 대화 5분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출연 중이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통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몸이 아파 방송 출연은 물론, 외부 활동을 일절 못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픈 몸도 몸이지만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뼈밖에 남지 않아 도저히 사람들 앞에
설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
방송 출연을 중단하면서 중병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은 과로에 영양 부족이 누적된 결과였다.
누군가는 암 같은 중병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토록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일절 활동을 못할 정도면 암보다 더 무서운 중병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요양하고 있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지만, 꽤 오랜 시간 그녀는
환자복을 입고 있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요즘 그녀는 전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며, 몸의 병을 이겨내고 선물로 받은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깊은 절망에 빠졌던 나날들, 그러나 그녀는 특유의 유머와 재치를 섞어 근황을
전해왔다.
# 자살 미수 사건… 산다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질 때
인간의 탈을 쓴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방송에 나와서 리얼 토크를 하고 있었다.
보육원에 자원봉사를 나갔던 천사는 생후 5개월 된 아기를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아기는 두 다리가 없고 손 하나가 뭉툭했다.
그 아기의 이름은 김세진, 현재 13세, 빛나는 수영 선수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석권해서 소년이 획득한 메달 숫자만
해도 무려 45개라고 했다.
나는 천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인격의 ‘사이즈’를 생각했다.
‘저런 천사에게 비하면 나는 완전 오이장아찌잖아?
구겨진 은박지잖아?’
부끄러웠다.
그리고 나를 돌아볼 기회가 얼마 전 한 번 더 찾아왔다.
몇 달 전 나는 병원에 입원했었다.
강의를 마친 후 갑자기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갔다.
빈혈에 영양 부족, 과로가 누적된 총체적 난국.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은 말하자면 배터리가 완전 방전돼버린 비상사태였다.
평소에 나는 살이 찔까 봐 고기는 먹지 않고 채소만 먹고 살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나이에 비해서 일을 너무 많이 했으니 탈이 나지 않은 게 이상했다.
완전 그로기 상태가 된 나는 전신에 퍼져 오는 통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산다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졌다.
나는 평소에 잔 다르크처럼 씩씩해 보이지만 사실은 ‘의박’(의지박약)에
‘성탄자’(성격 파탄자)다.
그래서 날마다 ‘좌 변덕, 우 헤까닥’ 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게 줏대 없는 내가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야 하니 오죽했을까?
나는 일단 인생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과격한 ‘어퍼컷’을 날렸다.
“야, 인생!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네가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길 것 같냐?
나 유명한 ‘싹퉁바가지’야.
너하고 맞장 한번 떠보겠어!”
반항 DNA가 뇌 속에 특별히 장착된 나는 하고한 날 상상토피아를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성수대교로 갈까?
양화대교로 갈까?
어느 다리가 성공 확률이 더 높을까?
혹시 난간에 걸려서 살아나면 어쩌지?
아예 높은 산으로 갈까?
설악산?
북한산?’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는 남편에게 ‘협찬’을 부탁했다.
“현장으로 나를 좀 운반해 줘.”
도인 같은 남편은 낮은음자리표로 한마디 던진다.
“죽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나의 처절한 희망 사항을 남편은 개미가 발레하는 것쯤으로 간주해 버린다.
결국 나의 자살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아마 남편은 나 때문에 심장 깊숙이 굳은살이 박이고 배꼽에 티눈까지 생겼을
것이다.
남편의 이상형은 나와 정반대, 완전 거꾸로다.
얼굴은 황진이, 사고방식은 신사임당.
아이고, 바랄 걸 바라셔야지.
터무니없는 것을 바란 남편은 그 죗값으로 나를 만났나 보다.
그래서 인생 세금 톡톡히 납부하며 엉겅퀴 밭두렁, 씀바귀 논두렁을 헤매고 산다.
# 쇼생크 탈출… 총체적 불량 인간의 버라이어티 ‘생쇼’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가수 조영남씨가 나를 까르르 뒤집어지게 했다.
“당신 쓰러졌다며?
목숨이 위태로운 거 아냐?
그래도 죽는 날짜는 택일을 잘해야 해.
날마다 대형 사건이 펑펑 터지니까 그런 날하고 겹치면 눈에도 안 띄어.
그리고 내가 왜 못 죽는 줄 알아?
내가 죽으면 요절도 아니고 완전 노환이라 뉴스거리도 못 되잖아?”
그다운 말이었다.
내가 출연하던 TV 프로그램에도 안 나가고 외부 활동을 일절 하지 않으니
‘중병’이라고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아들의 여자 친구가 가져온 동치미 덕분에 신기하게도 실종된 입맛을 되찾은
나는 나날이 상태가 호전됐고, 한 달여 만에 환자복을 벗었다.
퇴원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자 나는 두 팔로 V자를 그리며 외쳤다.
“오, 해피 데이!
200살까지 살고 싶어!
300살까지 살고 싶어!”
죽고 싶다고 한강까지 갔던 사람이 또 금방 살고 싶다고 소리치는 나를
남편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바라본다.
나는 뻔뻔하게 말한다.
“자기야, 고마워.
나 죽고 싶다고 앵앵거릴 때 살게 그냥 내버려둬서 고마워.
하하.” 나처럼 총체적 불량 인간을 짧게 ‘푼수’라고 칭한다.
푼수 최윤희는 날마다 극과 극을 오가면서 버라이어티 ‘생쇼’를 하고 산다.
그런데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
입원해 있을 때 나는 거의 하루 종일 TV만 바라보고 살았다.
따로 할 일이 없었다.
그동안 살아온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람’하게 된 기회였다.
한심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나의 일상사를 TV에 나가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는 사실이
심히 부끄러웠다.
시청자들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 TV 100번 나간 사람과 한 번도 안 나간 사람, 그 차이가 뭘까?
깻잎 한 장 차이도 없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앞으로 TV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퇴원 후 집에 온 나는 ‘쇼생크 탈출’ 다섯 글자를 아주 크게 써서 액자에 담아
침대 위에 걸었다.
나는 이제부터 쇼생크 탈출을 하리라.
스트레스의 감옥에서 벗어나 행복한 것만 생각하고 살리라.
# 인생의 깊은 골짜기… 천둥, 벼락을 이겨낸 나무는 강하다
얼마 전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교보문고 건물에 커다란 시가 붙어 있었다.
‘대추가 저 혼자 붉었을 리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나는 그 순간 나 자신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나는 붉은 대추인가?
혹은 퍼런 대추인가?
생뚱맞게, 염치없게, 눈치 없게 퍼런색으로 초지일관 버티는 대추는 얼마나 뻔뻔한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뺀질뺀질
인간미가 없다.
어려움도 이겨내고 고통도 뛰어넘고 역경도 극복해 본 사람이 발효 인간,
향기가 나는 것이다.
나 자신을 냉정하게 살펴본 결과, 나는 운명의 날벼락에 의해서 조금씩 붉은색을
띠어가고 있는 ‘ing형’ 대추라고 판명되었다.
위대한 사람들처럼 스스로 태풍, 천둥, 벼락을 만들 용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다.
어느 날 운명이 내 앞에 ‘느닷없이’ 떨어뜨려준 태풍, 천둥, 벼락….
이번 일 역시 나를 붉은 대추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셈이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랴.
생각해 보니 몇 년 전에도 내 인생에 우르릉 쾅쾅 초대형 벼락이 떨어졌다.
남편이 줄기차게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CT 촬영을 한 의사는 뇌수술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
나는 평소에 뇌수술을 하면 거의 ‘THE END’ 인생의 자막이 올라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경외과에 가보니 그야말로 이 세상은 모두 다 뇌수술만 하고 사는 것처럼
온통 뇌수술 환자투성이였다.
남편은 신경외과 병동에서는 주류에도 못 끼는 날라리 환자라고 했다.
정식 병명은 뇌경막하출혈. 옆방에 있던 꽃 같은 신부는 결혼 1주년 기념일에
수술실에 실려 왔다고 했다.
그녀의 머리는 마치 흥부네 바가지처럼 꿰매고 또 꿰맨 흔적으로 아예 바느질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
꽃미남 신랑은 신부가 예뻐 죽겠다는 듯 꼭 껴안고 병실 복도를 걸어 다녔다.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깔깔대며 웃기도 잘했다.
또 할머니 환자도 잊을 수 없다.
76세인 정아지 할머니는 별명이 ‘6백만 달러의 할머니’였다.
몸 이곳저곳 성한 곳이 하나도 없어서 손자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남편이 퇴원하던 날, 나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자기 덕분에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산책하고 온 것 같아.
멋진 여행이었어.
어쩌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깊은 산속, 그 아름다운 비경을 산책하고
오니까 인생이 더 신비스럽게 느껴져.”
남편은 그 후 언제 뇌수술을 했나 싶을 정도로 멀쩡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태풍, 천둥, 번개, 벼락을 나름 ‘찐하게’ 경험해 본 나는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다.
그래, 우리는 대추다.
처음엔 날것, 퍼런색 ‘초짜 대추’에 불과하지만 태풍과 천둥, 벼락을 맞으면서
붉은색, 우아한 대추로 ‘승격’된다.
삶의 아픔, 슬픔, 외로움들은 인생을 우아하게, 럭셔리하게 물들게 하는 재료인 셈이다.
만약 그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퍼런색 대추, 뻔뻔한 대추로 인생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라코타 전사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전사들에게 벼락 맞은 양물푸레 나무는 최고의 활을 만들 수 있는 재료다.
양물푸레 나무는 번개를 맞을 때마다 강해지고 또 강해진다.
그래서 그 나무로 만든 활은 상상을 초월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천둥과 벼락을 맞을 때마다 더 강해지고 강해져 웬만한 것쯤은 벼락 축에도
끼지 못하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아니한가.?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씨는…
청와대, 각 기업체, 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 공무원, 시민, 주부들을 대상으로
전 방위의 강의 활동 및 KBS, SBS, MBC 등 다수의 TV 강의를 해왔다.
저서로는 『유쾌한 인생사전』 『너의 인생에 태극기를 꽂아라』 『웃음 헤픈
여자가 성공한다』 등 2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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