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무조건 반대 아니다… 보(洑) 등 대운하 공사 말자는 것
중앙·지방권력 대립은 과한 표현… 道 잘 이끌려면 정부와 협력해야
지방의회 반대로 무산됐던 청주·청원 통합 이뤄낼 것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목소리, 야당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일방적으로 독주해왔습니다. 민심을 거스르는 정권은 국민의 따끔한 심판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시종(李始鍾·63·민주당) 충북지사 당선자는 이번 지방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원인에 대해 "민주당이 잘한 것이 아니라 반(反)한나라당, 반MB 정서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은 자만하면 안 되고 오히려 이번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당선자는 선거가 끝나고 오랜만에 휴식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텃밭인 충주에서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주말을 보냈다. 시내 곳곳에서 민선자치 이후 첫 고향 출신 도백을 배출한 지역민들의 기쁨이 피부로 느껴졌다. 5일 오후 지인들과 함께 충주 남산을 등반하고 내려온 이 당선자를 만나 1시간가량 인터뷰를 가졌다. 며칠 전까지도 선거운동 강행군으로 목이 쉬고 극도로 지친 표정이었으나 등산으로 땀을 빼고 난 덕인지 훨씬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 ▲ 이시종 충북지사 당선자는 5일 오후 지인들과 함께 충북 충주 남산을 등반하고 내려온 직후 가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종시 수정안만큼은 반드시 막겠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유태종 기자
표심에서 확인된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반의 원인부터 물었다.
"3공화국 시절부터 면면히 흘러온 지방분권의 커다란 물줄기를 이 정부가 콱 막아버렸어요. 수도권 규제 철폐, 세종시 백지화, 뉴타운 개발, 용적률 향상 등등 모든 면에서 수도권공화국을 지향하지 않았습니까. 서울 위주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인 수도권 외곽, 강원·충청 주민들의 반감이 선거에서 폭발한 겁니다." 이 당선자는 "단순히 기분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 출신 광역단체장이 대거 당선된 것을 두고 일부에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충돌'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경계했다.
"충돌이 아닙니다. 지나친 표현이며 과민반응일 뿐이죠. 지방정부를 제대로 이끌려면 중앙정부와 협조를 잘해야지요. 지역사회와 주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세종시 문제처럼 손해 보거나 무시당하거나 차별당할 때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자는 게 아니라 지방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광역단체장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야당 도지사 탄생이 지방행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는 "여·야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체장이 얼마만큼의 개인적 역량을 보여주느냐가 포인트"라고 말했다.
"민선 2·3기 이원종 충북지사의 사례를 보세요.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 시절에 여당 국회의원들과 협조해 많은 일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여·야 따지지 않고 조화롭게 행정을 추진한 결과 고속철도 오송역 유치, 혁신도시, 기업도시, 세종시 등 대형 프로젝트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세종시 수정안 철회가 최상책"
이 당선자를 비롯해 충북 지역 기초자치단체장 및 광역·기초의원 등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이번 선거에서 '세종시를 지켜주십시오'라는 문구 하나로 초반부터 기선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심에 이시종 당선자가 있었다.
"세종시가 원안대로 '행정도시'가 될 때 청주·오송·오창 등 충북지역이 '경제도시'로 성장하면서 골고루 혜택을 입게 됩니다. 세종시가 잘 되면 가장 큰 이익을 보고 거꾸로 안 되면 망하는 지역이 바로 충북입니다." 충북이 충남이나 대전보다 세종시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그는 대정부 관계에 있어 세종시 문제만큼은 양보할 뜻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세종시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보면 됩니다. 수정안에 대해 '그러지 말라'고 분명히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이며, 다시 수정안을 들먹이면 충청도민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입니다. 정부 스스로 빨리 철회하는 게 최상책이죠."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대규모 보(洑) 건설과 준설작업 등 대운하 사업을 전제로 한 공사가 안 된다는 것이지, 모든 사업을 전면 중단하자는 의미는 아니다"며 "상류지역의 지류와 소하천 등을 환경친화적으로 정비하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 등의 반대에 부딪혀 세 차례나 무산된 청주·청원 행정구역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청주시와 청원군은 원래 같은 생활권으로 당연히 통합돼야 한다"며 "2012년까지 통합 준비작업을 마무리하고 시행 시기는 당사자들과 협의해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6전 6승'의 불패(不敗) 신화 기록
이 당선자는 충주 출신으로 청주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 내무부와 충북도 등에서 정통 관료로 일하다 민선 기초자치단체장을 거쳐 국회의원 경력까지 쌓았다. 그는 선거에만 나오면 승리하는 '6전 6승'의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48세 때인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무부 고위간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충주시장에 출마했다. 당시 그는 전국 35개 시·군 행정구역을 통합하고 광역시를 출범시킨 지방자치 준비작업의 실무책임자(지방자치기획단장)였다. 충주가 너무 낙후돼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내 고향을 위해 제대로 일해보자'는 생각에 당시로선 파격적인 '하향지원'을 했다고 한다. 내리 세 차례 민선시장에 당선돼 순탄하게 시정을 이끈 그는 17·18대 총선에 잇따라 당선된 데 이어 이번에 도지사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잘난 것도 없고 정치 수완이나 술수, 언변도 없는데 시민이 잘 봐준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면 된다는 비(非)정치적 면모를 보여 준 것이 가장 큰 무기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 당선자는 '불패신화'의 비결에 대해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