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전남 고흥군 거금도란 섬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을 평범하게 보냈다. 내 고향 거금도는남해안의 아름다운 섬이다.




1969년 전남 고흥군 거금도란 섬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을 평범하게 보냈다. 내 고향 거금도는 남해안의 아름다운 섬이다.
1988년 청운의 꿈을 안고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고 난 후 학교앞, 광장과 거리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는 운동권 학생으로 변신했다.
1991년 학내 시위 주동 혐의로 수배가 되어 쫓겨 다니다가 원주에서 검거된 후 영등포구치소, 춘천교소도에서 10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당시 반성문 쓰면 석방시켜준다고 했으나
‘반성할게없다'고 끝까지 맞섰다. 그래서 그냥 살았다.
1993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되어 등록금투쟁, 8.15 통일투쟁, 총장 이중국적투쟁, 연고전 방북투쟁에 앞장섰다. 2만 연세의 대표자!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1995년 정치권에 투신하여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2002년까지 재직하였다. 주로 국회 정보통신위원회, 산업자원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에너지, 자원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뤘다.
2002년 서갑원 의전팀장(전 국회의원)의 소개로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만나게 되었고, 그해 대통령 선거캠프 의전팀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통령님과 당선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200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에 입성하여 참여기획, 행사기획, 제2부속실, 의전비서관실에서 5년간 일하고 2008년 퇴직하였다. 의전비서관실 근무시절 (직업 외교관이 아닌) 최초의 민간인 출신 해외순방 실무책임자가 되어 대통령님 해외 행사를 기획, 입안, 답사, 집행하였다 (이태리,스페인,사우디,카타르,쿠웨이트,과테말라,싱가포르)
2009년 민주당노원을 지역위원회 사무국장과 일촌공동체 노원센터 사무국장을 거쳐, 2010년 민주당노원을 청년위원장 으로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뜻과 가치를 전파하는 활동을 했다.
8대 서울시의원에 당선되어 노원구민 및 서울시민과 함께하고 있으며, 환경수자원위원회에 배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2013 비영리단체 창경포럼 고객패널평가정보 제공 & 전문가/기업/아이템 상담 실시간 콜센터 [ 1688-9759 ]
첫댓글 오승록 서울시의원 지난 활동 한눈에 볼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