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제1장 기록론 논쟁-1
교회사에 보면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도 신앙과 신학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1절 삼위일체 논쟁-1
삼위일체는 왜 중요한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位格)이 그냥 세 분의 하나님으로 계신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하면 될 것 아닌가?
물론 성경에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분이셔야 하지만, 만약에 삼위 하나님이 각기 다른 본체를 가지신 세 분의 하나님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삼위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본체를 가지신 하나님들이라면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것이나 죄인을 구원하시는 데에 세 분이 각각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구원하신다고 하시는데,
성자 예수께서 나는 도저히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그 방법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구원하자고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령께서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성도들은 그냥 내버려 두겠다고 하신다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삼위 하나님이 각기 다른 본체를 가진 세 분의 하나님이시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삼위의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각기 독립되어서 역사하시지만, 본체가 하나이시기 때문에 즉 삼위가 일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일에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우주를 운행하시는 방법인 작정이나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정에서 삼위 하나님은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쉽게 이해할 수 없어서인지 신학 논쟁 중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삼위일체 논쟁입니다.
삼위일체의 개념을 가장 처음 말한 것은 터툴리안이라는 신학자였습니다. 주후 160년경에 아프리카 북부의 튀니지에서 태어난 터툴리안은 하나님을 “하나의 본질과 세 위격”이시라는 말로 삼위일체를 표현했습니다.
그때까지 성경이라고 하면 구약성경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터툴리안은 성경 즉 구약성경과 구분하기 위해서 신약성경이라는 말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사실 “하나의 본질과 세 위격”이라는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며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삼위일체를 왜 이해하기 힘든가?
터툴리안은 위격을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persona라는 말은 배우가 맡은 역할이라는 것이 본래의 의미인데, 인격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다중 인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체가 들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다중인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킬박사라는 사람이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는 약품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실험했는데, 약을 마시면 악한 인격이 나타납니다. 악한 인격을 가진 자신을 하이드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약의 효과가 떨어지면 선한 지킬박사였다가 약을 마시면 악한 하이드로 변신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은 지킬박사라는 선한 인격을 나타내든지, 하이드라는 악한 인격을 나타내든지 둘 중의 하나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몸 안에 두 인격이 존재한다고 해도 두 인격이 동시에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터툴리안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한 본체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세 persona 즉 세 위격이 있는데, 이 세 위격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또 독립적으로 일을 하면서 세 위격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한 번에 한 인격만 나타나는 것처럼 성부가 나타나면 성자나 성령은 나타날 수 없고, 성자가 나타나면 성부와 성령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시에 나타나서 동시에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본체 안에 세 인격이 있는데, 세 인격이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서로 엇갈려서 나타난다면 아무 문제도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 세 인격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나타나고 또 동시에 각기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뒤에 공부할 “양태론”과 같은 이단 사설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님이 각기 하나님이면서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각기 독립된 세 위격이면서 또 하나라는 것이 우리 삶에 비슷한 무언가라도 있으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 인간의 삶에는 삼위일체와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아니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듯이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믿으려고 한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믿게 해주시면, 우리는 이해할 수는 없어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신학자라고 해도 이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딴소리를 하는 겁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은 없습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없지만, 성경은 곳곳에서 삼위일체의 개념을 말씀합니다.
첫째로,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히브리어 ‘엘로힘’으로 썼습니다. 엘로힘은 복수형입니다.
그러나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복수형이지만 주로 단수형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복수형이면서 단수를 나타낸다, 즉 셋이지만 하나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심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6]에서 사람을 창조하시며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이라고 하실 때 형상이나 모양은 복수형이지만 이 단어 역시 단수로 사용되는 명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즉 삼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라면 각기 세 가지의 모양과 형상이어야 할 텐데 그 모양과 형상은 하나라는 뜻입니다. 형상과 모양이 복수형이면서 단수로 사용되는 절묘한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라는 말씀의 ‘만들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사’인데, 이 말은 복수입니다. 글자 그대로 ‘우리가’ 만들자는 것이니까 삼위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인데 삼위의 하나님이 각기 협력하여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이 말씀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면 이름은 세 가지여야 합니다. 이름을 복수로 써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성경에는 이름이 단수로 쓰여있습니다. 세 위격의 이름인데 하나의 이름이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심을 증명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